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65)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66화(65/193)
| 66화. 새해 소원 (2)
때아닌 일출 구경 이야기가 나온 전말은 이랬다.
강기연에게 빌릴 물건이 있어 잠시 남의 방을 찾았던 이청현은, 사찰 영상을 보며 힐링 시간을 갖던 박주우를 발견했다.
모난 곳이 없어 사이가 원만했던 두 사람은 평소에 종종 그랬듯 상대방의 활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딱 붙어서 작은 공기계 화면 하나로 대한민국 사찰 탐방, 도심 속 자연 찾기 등을 보던 녀석들은 알고리즘에 이끌려 ‘안 보면 후회하는 새해 일출 Top-10’까지 가 버렸다.
새빨갛게 타오르는, 무려 한 해의 시작을 알린다는 새해 일출은 외출을 잘 하지 않는 편이라던 박주우와 유년기에 공부만 했던 이청현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데뷔를 앞둔 지금, 모두 함께 일출을 보러 가면 좋겠다.
다 함께 멋진 풍경을 보면서 팀워크를 돈독히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두 사람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대로 그룹 활동의 결정권자인 리더에게 달려갔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정성빈은 정말 좋은 생각이라며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강기연은 멤버들 다 가면 간다고 했다나.
“……최제호는 뭐라고 했는데?”
“제호 형은 좋대요!”
“걔가? 농담 아니고?”
“네. 안 그래도 요새 몸이 찌뿌둥했다던데요.”
이청현의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일 때문도 아닌 그냥 단체 활동에도 기꺼이 참가하겠다고 하다니. 게다가 가는 이유가 몸 풀고 싶어서라니. 별의별 춤을 다 추던 녀석에겐 지금까지의 댄스 트레이닝도 부족했나 보다.
내가 황당해하는 동안 이청현은 아예 대놓고 내게 절 사진을 보여 주며 영업에 들어갔다.
“여기 어때요, 형? 2km 조금 넘는다는데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
녀석, 산에서의 2km가 평지에서의 2km랑 같은 줄 아는구나.
문득 이 어린 친구가 200대 명산 도장을 꼭 모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도전해 보라고 해야지.
어쨌든 다들 해 뜨는 걸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면 이청현이 고른 절은 피해야 했다. 저긴 경치가 별로기 때문이다.
‘새해 일출 보는 건 진짜 운이 맞아야 되는 건데.’
남 부장도 몇 년간 나를 끌고 다녔지만 이거다 싶은 일출을 본 경험은 없었다.
덕분에 나는 남 부장 몫의 컵라면과 보온병을 짊어져 터질 것 같은 어깨와 더불어, 내가 몇 번을 왔는데 일출 한 번을 못 보냐며 운도 더럽게 없다는 욕을 3시간 동안 듣느라 이미 다 터진 귀청과 함께 하산해야 했다.
나는 이 어린 영혼이 상처받지 않도록 일출이 얼마나 운에 달린 일인지, 그리고 12월 31일에 뜬 해와 1월 1일에 뜨는 해에는 사실 아무 차이도 없다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냐는 이야기를 미리 전해 주었다.
그러자 이청현은 이렇게 답했다.
“그렇게 보기 힘든 일출을 저희가 이번에 딱 가서 처음으로 본다? 그럼 대박인 거죠, 형!”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딱 나와 주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차갑게 언 건빵을 씹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등산은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피곤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번 등산이 검색에 익숙한 젊은 세대와 함께한다는 것이었다.
이놈들은 젊으니까 남 부장네랑 다르게 알아서들 필요한 거 챙기겠지. 적어도 내가 쇼핑몰에서 등산 스틱 정보를 긁어모을 필요는 없을 거다.
과연 정성빈과 이청현은 벌써 인터넷으로 등산 용품과 코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겨울이니까 많이 춥겠지? 혹시 목도리 없는 사람?”
“저 운동화는 연습용밖에 없는데, 연습용 운동화 신고 산에 가는 건 좀 그렇죠? 높은 데 갈 거 아니니까 컨버스 신어도 되려나?”
내 무응답을 허락으로 받아들인 건지 놈들은 크게 들떠 있었다.
녀석들의 열정과 별개로 저 짧은 대화에서 신경 쓰이는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굳이 끼어들진 않았다.
일출 보는 건 아이돌이 되라는 KPI랑 상관없는 거잖아.
내가 왜 근무 시간 외에 녀석들을 챙기는 봉사를 해야…….
“강견, 너 패딩 입고 갈 거야?”
“올라가면 더울걸. 얇게 입고 가자.”
잠깐. 어디서 막내 둘이 불손한 대화를 한 것 같은데.
“핫 팩 챙기면 되지.”
“산에 쓰레기 버릴 데도 없는데 뭘 그렇게 챙겨. 이청현 넌 추위도 별로 안 타잖아. 그냥 적당히 입어.
“적당히 입긴 뭘 적당히 입어? 다 독감 걸리고 싶어? 약국 앞에서 데뷔 무대 할래?!”
나도 모르게 입에서 큰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멤버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쪽을 쳐다보았다.
너흴 어쩌면 좋니, 이 겨울 산의 추위도 모르는 예비 동태들아…….
* * *
1월 1일 새벽, 우리는 매니저님의 인솔 아래 다 같이 눈 쌓인 산에 올랐다.
살이 에일 듯 차가운 공기가 매니저님이 빌려주신 패딩 너머로도 느껴졌다. 입김으로 눈앞이 흐렸다.
“와, 이월이 형 말 안 들었으면 얼어 죽을 뻔했다…….”
넥워머에 내의, 핫 팩으로 중무장한 이청현이 팔뚝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당연하지. 해 뜨기까지 한두 시간 기다려야 되는 줄 아냐?
컴컴한 겨울 산에서 가만히 몇 시간씩 서 있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체력과는 별개로 추위와도 맞서야 하니까.
나는 찬 바람에 귀하신 보컬들 목이 상할세라 숙소에서부터 타 온 따뜻한 꿀생강차를 끊임없이 공급했다.
녀석들의 신발에는 일출 소리가 나온 날 내가 바로 주문했던 아이젠이 채워져 있었다.
손에는 결국 내가 알아보고 손수 주문한 등산 스틱도 하나씩 들려 주었다.
지나치게 장비빨 아니냐고? 데뷔를 앞두고 산에서 누구 하나 발목 삐는 것보단 중무장이 백배 낫다. 앞으로는 그냥 등산 용품 쇼핑몰에 회원가입을 하든가 해야지, 원.
“해는 언제 떠요?”
강기연이 물었다. 이청현과 멋진 돌탑을 쌓고 왔는지 장갑이 눈투성이였다.
“곧 뜰걸. 해 뜨면 소원 빌 거라면서 돌탑까지 쌓았어?”
“이청현이 두 번 빌면 두 배로 이뤄질 거라고 우겨서요.”
풋풋하구나.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진 않단다. 나도 한평산업이 나를 잘라 주길 매일 기도했는데 안 이뤄졌거든.
내가 백일기도를 올리던 과거의 추억에 젖으려던 찰나, 매니저님과 어묵 국물을 나눠 마시던 최제호가 우리를 불렀다.
“야, 저거 해 뜨는 거 아니야?”
“응?”
그럴 리가.
제대로 된 일출은 생각보다 보기 힘들다.
날이 조금만 흐려도 해가 구름 뒤에 가려져서 쥐도 새도 모르게 날이 밝아지는 게 부지기수니까.
게다가 아무리 날이 맑다고 해도 아직 해가 보이기엔 이른데.
“어, 진짜다!”
“형, 빨리 오세요……!”
정성빈과 박주우가 큰 소리로 우리에게 외쳤다. 녀석들의 얼굴 위로 옅은 주홍빛의 햇볕이 들고 있었다.
추운 곳에서 목 쓰지 말라고 그렇게 얘길 했는데.
산에서 뛰지 말라고도 그렇게 얘기했건만 이청현과 강기연은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질 않나.
다들 정신 교육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그 전에.
“어때요, 성빈이 형? 오길 잘했죠?”
“그러게. 진짜 멋지다. 그렇지 주우야?”
“……응. 오길 잘했어.”
“제호 형이 대표로 소원 좀 빌어 봐요. 큰형이잖아요.”
“강기연 넌 왜 나만 갖고 그러냐? 김이월 시켜.”
나는 떠오르는 해를 보며 감탄하는 인파 속에서, 자기들끼리 구시렁거리고 있는 녀석들에게 말했다.
“됐고, 해 다 뜨기 전에 소원이나 빌어. 너희 그거 하고 싶어서 온 거잖아.”
내 말에 정성빈 이하 3인이 두 눈을 감았다. 강기연을 제외한 세 명은 손까지 모았다.
나는 그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최제호에게 다가가 물었다.
“넌 왜 소원 안 비냐?”
그러자 최제호가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또. 순순히 따라오길래 너도 소원 빌고 싶은 줄 알았지.
내 표정과 소원 비는 동생들을 번갈아 쳐다보던 최제호는 장단이나 맞춰 주겠다는 듯 삐딱하게 서서 눈을 감았다.
나는 매니저님의 핸드폰을 빌려 남자애들 다섯 명이 나란히 눈 감고 서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소원 비는 모습을 찍었다.
그리고 녀석들이 원 없이 소원을 비는 동안 가만히 떠오르는 해를 지켜보았다.
소원.
소원이라.
살면서 빌었던 소원다운 소원은 퇴사하고 싶단 것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토록 많이 올랐던 산에서 최초로 일출을 본 것을 기념하며, 처음으로 퇴사가 아닌 다른 소원을 빌었다.
‘다시 만날 때까지 누나가 행복했으면.’
……라고.
아니나 다를까, 소원을 빌기가 무섭게 이청현이 달려와 물었다.
“형! 형은 소원 뭐 빌었어요?”
“첫방에서 음 이탈 내는 놈 없게 해 달라고 빌었어.”
“헙…… 나도 그거 빌걸.”
그렇게 나는,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면 헤어져야 할 다섯 말썽쟁이와 눈길을 밟으며 하산했다.
* * *
연습을 며칠씩 빼먹지 않는 한 잘 추던 춤을 못 추게 될 일은 없다.
자연스럽게 데뷔 직전의 춤 연습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게 목표가 아닌, 더욱 완성도를 높이는 걸 목표로 했다.
노래도 비슷했다. 카메라를 보는 연습도, 팀 구호도.
모든 것이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보강 개념이라면, 유일하게 딱 하나 성격이 다른 것이 있었다.
“성빈이 형, 저희 오늘 저녁 일찍 먹으면 안 될까요…….”
“기연이 너 배고프니……?”
아이돌의 평생 숙제, 다이어트 말이다.
스파크 녀석들은 자기 관리가 철저한 편이다.
이놈들의 자기 관리는 지난 7년간 경로를 이탈한 적이 없었다. 해체 기사의 기사 사진에서조차 녀석들의 턱선은 살아 있었으니까.
그 말은 녀석들이 언제나 극한의 신체 조건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말과도 연결되었다.
그나마 강기연은 키가 커야 한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닭 가슴살이 든 저녁을 먹었으나, 데뷔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은 짤없이 풀만 먹어야 했다.
그 옆의 이청현은 거의 세상을 다 산 표정이었다. 내 덕분에 운동+식단 조절이라는 선택지라도 생긴 걸 감사하게 생각해라.
“치킨 먹고 싶어…… 후라이드로…….”
“그럼 난 치킨 무…….”
치킨이 먹고 싶다는 이청현의 옆에서는 식탐이 0에 수렴하는 박주우까지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나는 두 파김치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치킨 먹고 운동을 더 하면 되잖아.”
“치킨 칼로리가 얼마나 높은데요! 그거 다 만회하려면 한두 시간으론 어림도 없을걸요?!”
“잘 아네. 그럼 참아.”
“진짜 형은 찌르면 피 말고 고드름이 나올 거예요.”
이청현은 툴툴거리면서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한계에 부딪힐 때가 되긴 했지.’
애초에 한창 잘 먹을 때인 녀석들이 숨어서 간식 한번 안 먹는다는 게 말이 안 됐다.
그룹에 무(無)양념 박주우 선생부터 좌우명이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만 곱다.’인 게 틀림없을 강기연까지 포진해 있으니, 어떻게 지금까지는 서로를 보며 잘 참아 온 것 같다만.
나도 마지막으로 쫄면을 먹은 게 언제인지 아득했다.
그 집 양념장이 진짜 맛있었는데, 유감이다.
“덜 먹고 움직이니까 배고프긴 하네.”
정성빈이 멋쩍게 웃었다.
이건 큰일이다. 좀처럼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 녀석이 저럴 정도라는 건 뱃가죽이 등에 붙었다는 말과 같았다.
그러더니 정성빈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그런 놈을 보고 있으니 불현듯, 매일같이 굶주렸던 유년기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