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68)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68화(68/193)
| 68화. 비즈니스 예절 교육 (1)
티저가 뜬 뒤로 스파크에 대한 언급량은 아주 미미하지만 눈에는 띌 정도로 올라갔다.
티저가 온라인에 뿌려짐과 동시에 내 데뷔 역시 빼도 박도 못하게 됐다.
덩달아 우리도 전원 지옥 훈련에 들어갔다.
회사가 연습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지 않았냐고?
“얘들아, 힘들지?”
“네, 형…….”
“나도 힘들다. 그래도 아직 눈은 떠지니까 조금만 더 해 보자?”
응, 내가 강요했다. 원래도 잘하는 놈들이었지만 시간을 들일수록 더 잘하길래 뼛가루까지 쥐어짜는 중이다.
박주우 사태를 겪은 후로는 멤버들의 컨디션까지 고려하며 섬세하게 채찍질했다. 이 정도면 VIP 의전이다.
내 누적 피로도도 만만치 않게 솟구치고 있지만…… 나도 아직은 아침에 눈이 떠지니까 괜찮겠지, 뭐.
숨이나 돌릴 겸 물을 마시려는데 박주우가 다가와 물었다.
“형, 내일 아침에는 사인회 연습하는 거 맞죠……?”
“응.”
스파크의 ‘연습’은 비단 데뷔 무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데뷔를 위한 김이월의 종합 온 보딩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었거든.
나는 데뷔 날짜가 확정됨과 동시에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멤버들에게 낮에는 무대 연습을, 밤에는 팬 사인회와 팬 미팅 연습을 시켰다.
UA에서는 팬 서비스와 관련된 교육을 크게 시키지도 않았거니와, 스파크가 데뷔 초에 자잘하게 구설수에 올랐던 이유가 모두 팬 이벤트 관련 대응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 팬싸 갔다 탈덕한 후기 씀
솔직히 내 돌 팬섭 후진 거 모르지 않았음ㅎ
원래 순덕일 땐 다 눈막귀막하고 덕질하잖아?? 나도 똑같았음
걍 내 새끼들 낯가려서 그런 거라고 XX 커버 쳐 주고ㅋㅋ
근데 내가 n십만 원 들여서 간 팬싸에서 한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이 다 “아…… 감사합니다.” 이 말만 하니까 XX 현타 오더라
아 진짜요충의 뒤를 잇는 XXX들임 그날 뜬눈으로 밤새고 다음 날 탈덕함
└ 이거 ㅇㅈ…… 나는 걔네 만난다고 풀메에 옷 사고 네일 새로 하는데 돌은 샵에서 세팅 다 받고 매니저가 운전하는 차 타고 왔으면서 피곤한 티 XX 내는 거 개빡쳐
└ 쓰니 누구 덕질했는지 초성으로라도 알려주면 안 돼?
└ ㅅㅍㅋ
└ 돈은 지가 써 놓고 원하는 팬 서비스 못 받으니까 이제 와서 돌 탓ㅋㅋㅋㅋㅋ 돌한테 뭐 맡겨 놓음?
└ 내가 내 돈 내고 앨범 사서 팬싸 당첨된 건데 그 정도 요구도 못 하나ㅎ 댓쓴이는 꼭 세트 메뉴 시켜서 단품만 받아도 컴플레인 걸지 말고 나온 거나 순순히 먹길 바라ㅎ
그때의 커뮤니티 게시판엔 무서운 말들뿐이었다. 남 부장의 딸도 PDF를 따야 하네 말아야 하네 하며 열을 냈었지.
스파크가 팬 사인회를 말아먹은 이유는 나중에 정성빈의 입을 통해 밝혀졌다. 녀석들 전원이 극도로 긴장한 탓이었다.
선배 아이돌들이 팬 사인회에서 동태 눈깔 떴다가 두들겨 맞은 걸 봤으니 자기들은 뭐라도 해야겠는데, 도대체 뭘 해야 할지 감을 못 잡았다는 거다.
이걸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정성빈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
당시 정성빈의 옆자리에는 언제 어디서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최제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제호가 팬 사인회에서 선을 넘는 발언을 한 적은 없었지만, 멤버들이 연습생 때 최제호의 말투로 여러 차례 감정이 상했다고 말했던 만큼 정성빈의 걱정도 이해가 갔다.
나 역시 남 부장과 같이 면접에 들어갔다가 등이 축축하게 젖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큰형이 의지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꽤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최제호는 좋은 센터였지만 좋은 형은 아니었고.
게다가 당시의 강기연은 긴장만 하면 맥을 못 추는 놈이었으니, 정성빈이 믿을 거라곤 없는 사교성을 박박 긁어모아 힘냈던 박주우와 연하인 이청현뿐이었을 거다.
그러니 이벤트에서 집중이 됐겠나. 헛소리나 안 한 게 다행이지.
그렇다고 녀석들의 충분하지 못한 팬 서비스를 정당화할 순 없다. 돈을 받은 사람에겐 받은 만큼의 일을 할 의무가 있지 않은가.
그러니 진행한다.
스파크의 모의 팬 사인회.
* * *
지난 주말, 나는 200여 개의 보이 그룹 팬싸 후기와 포스트잇을 분석해 FAQ 목록을 만들어 단체 메시지 방에 공유했다.
[★공지★ 1. 마지막에 외출하는 사람 가스 불 점검 2. 쓰레기는 보이는 대……]나
[내일모레까지 각 질문에 대한 답변세 개씩 생각해 와.] [무작위로 질문 들어왔을 때
대답하는 연습할 거야.]
큐티 프리티 비주얼리 이청현
[막내들 확인했습니다~]정신적 지주 정성빈
[성빈, 주우 확인했습니다. :)]정신적 지주 정성빈
[제호 형께도 알려드렸어요! :)]나
[제호야 *^^* 답장하기 귀찮다고 동생 시킨 거 아니지? *^^* 너 그렇게 답 없는 꼰대 아니지? *^^* 만약 그런 거면 좀 실망이다 ㅠㅠ *^^*]센터 황제 최제호
[아 내가 시킨 거 아니라고]최제호가 억울해하거나 말거나, 녀석들의 준비 자세를 확인하는 날은 빠르게 돌아왔다.
현실감 넘치는 공간 조성을 위해 연습실에 긴 책상과 의자까지 갖다 놓자 후기에서 본 사진 같은 장소가 재현되었다.
맞은편에서 내 지시에 따라 책상 위에 물병을 인원수대로 올려놓던 최제호가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연습하면 팬 역할은 누가 해?”
“내가.”
“네가?”
최제호가 떨떠름하게 반문했다.
하지만 생각을 해 봐라.
길어야 3개월 사인하거나, 아예 사인회에 참석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 나.
그리고 최소 7년은 사인회 해야 하는 너희.
둘 중에 누가 더 사인 연습을 열심히 해야겠냐? 당연히 네놈들이지.
“그게 좋은 인선일까요? 형 같은 팬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나 같은 팬이 어떤 팬인데?”
“듣고 싶으세요?”
강기연까지 최제호를 거들었다.
아무래도 다들 내 연기력을 의심하는 것 같다.
어이가 없네. 내가 너희들 입술 모양을 읽어야 해서 팬싸 직캠을 몇 번이나 돌려 봤는데.
내가 영상으로 본 스파클러분들만 1만 5천 분 정도는 될 거다. 덕분에 그 앞에 앉은 팬들의 제스처 정도는 안 보고도 따라 할 수 있게 됐다.
어쩔 수 없지.
보여 주마. 한평산업 인사 팀 배 남 부장 성대모사 대회 1등의 위엄을.
제1회 스파크 (모의) 팬 사인회의 첫 번째 타자는 정성빈이었다.
두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것이, 정성빈은 약간이나마 긴장을 한 것 같았다.
다른 녀석들과 달리 어느 정도는 이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녀석이다.
나는 크게 감동하며 소품으로 준비한 스케줄러를 정성빈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외쳤다.
“성빈아, 나 최애 너로 잡았어!”
“……네?”
사인하는 척을 하려던 정성빈이 딱딱하게 굳더니 삐걱거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어째 기특함이 5초도 못 가게 만드냐. 나는 바로 정색하며 말했다.
“성빈아, 팬이 너를 최애로 뽑았다는데 정신 팔고 있을 거야? 사인회를 맞아 최애에서 (구)최애 되고 싶어?”
“아뇨, 순간 너무 당황해서…… 죄송해요!”
“당황은 연습이 부족할 때 나오는 거야. 명심하자.”
나는 정성빈의 옆에 주르륵 앉아 있는 나머지 네 명에게도 경고한 뒤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이제 우리 둘 사이에는 긴장을 넘어 비장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포스트잇! 포스트잇 질문에 답변 체크해 줘!”
“네, 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이것들아.
이거 끝나면 팬 미팅용 장기 자랑도 연습해야 하니까.
* * *
김이월이 팬 사인회 연습을 하자고 할 때까지만 해도 강기연은 별생각이 없었다.
무관심했다는 게 아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인데 특별한 감흥이 생길 리가 없었다는 뜻이다.
이런 것까지 고려할 시간이 있었나 싶어 놀랍긴 했다. 완벽을 좋아하는 김이월의 집요함이 때때로 광적이라는 것을, 강기연은 이럴 때마다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그의 기행에 이상함을 느낄 단계는 넘어섰다.
오히려 완벽주의자인 김이월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 연장자의 기행이 이해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김이월이 SNS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며 테이블과 물병, 의자들을 사진과 똑같이 각 맞춰 준비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헉…… 청현아, 너 진짜 잘생겼다…….”
두 번째 멤버인 이청현에게 말을 걸고 있는 지금의 김이월은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니면 뭔가에 씌었거나.
입을 틀어막고 감격한 표정을 짓는 연기가 아주 일품이었다. 강기연이 토속 신앙만 믿었어도 분명 저 형에게 귀신이 들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에이, 그렇게 자꾸 칭찬만 해 주셨다가 저 버릇 나빠지면 어떡해요!”
그걸 받아 주고 있는 제 친구는…….
원래 이상한 놈이었지.
강기연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괜찮아. 얼굴로 권력이 정해진다면 우리 청현이가 대통령이야.”
“진짜죠? 이따 다른 멤버들한테도 그러면 안 돼요?”
“미안, 그건 못 본 척해 주라.”
신났다 아주.
강기연이 고개를 저으려다 참았다. 건방지게 가상 팬 사인회에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간 무슨 험한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러나 강기연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김이월의 고개가 뒤에 남은 멤버들을 향해 돌아왔다.
김이월의 검고 깊은 두 눈동자에선 안광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얘들아.”
“……네.”
“팬 사인회 하는데 왜 미소가 풀려? 내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환한 웃음 유지하라고 하지 않았나? ‘스파크 첫 팬싸부터 마감 떨이 동태전 됨’ 이런 말이 듣고 싶은 거야?”
“웃으면 되잖아, 웃으면!”
“그래, 최제호 특히 너. 그러면 되는 걸 왜 여태 안 웃어서 내가 한 말 또 하게 해?”
“…….”
“한 번 말할 때 찰떡같이 알아듣자, 알았지?”
김이월은 얼굴에선 살기를 뿜어내며 눈만 사람 좋게 웃었다. 이청현이 ‘거짓된 상냥함’이라고 이름 붙인 미소였다.
강기연이 침을 꿀꺽 삼켰다. 맛이 간 게 분명한 저 형에게 잘못 걸렸다간 오늘 곱게 집에 돌아갈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이런 타이밍에 하필 세 번째로 등장한 멤버는 박주우였다.
낯을 많이 가려 유난히 김이월에게 개인 교습을 많이 받았던 박주우였기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하지만 미소는 유지한 채―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부디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메인 보컬이 보컬 연습실에 끌려가 혹독한 개인 교습을 받게 되는 일만은 없길 바라며.
“주우 안녕!”
김이월의 발랄한 인사가 죽지도 않고 또 나왔다.
그러자 박주우가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형, 반지가 정말 잘 어울려요.”
뭐?
박주우가…… 김이월한테?
저렇게 상냥하고 다정한 어조로……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