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7)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7화(7/193)
| 7화. 꼰대 시스템 (6)
졸업장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더니.
본가도 잃고 학위도 잃은 아침이 밝았다. 대단히 화창하게.
“끝났다.”
“뭐가요?”
“모든 게 다.”
“형 괜찮아요?”
어젯밤 내 격정적인 감정 변화를 2층 침대에서 지켜본 이청현이 물었다.
나는 너무나도 안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진짜 안 괜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개인 감정으로 조직의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은 최악이니까.
심지어 이청현은 어젯밤 광분한 내게 작곡에 쓰는 노트북까지 빌려준 녀석이었다.
내가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화를 낼 대상과 그러지 말아야 할 대상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애써 괜찮다고 대답하며 얼굴을 쓸어내리는데 피부가 촉촉했다. 어젯밤에 이청현 놈이 내 얼굴에 마스크 팩을 붙여 놓은 덕분인 것 같다.
X발, 부지런해서 더 아름다운 녀석. 이런 식으로 하다간 포카 시세 1위밖에 할 수 없다.
그래도 밤새 괴로워하며 현실을 23만 번 정도 부정한 끝에 득도할 수 있었다.
무조건 데뷔를 한다.
그래서 이 치욕을 씻는다.
먹고 살 길도 찾는다.
그러기 위해 당장 오늘 기초 안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숙지한다.
이제부턴 정말 데뷔뿐이야.
나는 굳건히 다짐했다.
* * *
그리고 얼마 뒤.
서당 개는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아이돌은 3개월이면 컴백을 한다더니. 나 또한 3일 만에 괄목할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쉬는 시간을 제외한 공식 연습 약 30시간.
여기에 개인 연습이 추가로 4시간.
더해서 개인 강사 다섯 명의 집중 교육까지.
도합 34시간 동안 수많은 도움을 받으며 안무 외우기에 매진한 끝에, 비록 폼은 새천년 체조와 유사하지만 4분 분량의 안무를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출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입 시절의 독기를 품었더니 역시나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아마 안광은 다 뒤져 있겠지만.
+
[SYSTEM] ‘업무’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경험치(20) 지급
▷ 누적 경험치: 80
▷ 누적 포인트: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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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곡의 안무를 숙지하는 데 성공하면서 포인트도 모였다.
‘두고 봐. 1점만 더 모아서 댄스 숙련도 3 간다.’
한 번 지옥에 떨어지고 나니 내 마음속엔 악과 근성만이 남았다.
본디 인간은 극한의 상황에서 숨겨진 능력을 찾게 되는 법이었다.
남 부장이 지가 까먹고 있던 보고서를 나더러 4시간 안에 써서 내라고 했을 때 나도 내 잠재력을 깨달았었지.
과거의 경험이 이딴 데서 용기를 줄 줄은 몰랐지만.
‘앞으로 뭐가 오든…… 죽었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해낸다.’
나는 비장하게 각오를 다졌다.
그런데 X발, 춤만 연습해서 되는 게 아니라 노래도 연습해야 되는 거잖아.
K-연습생 빡세다.
* * *
예로부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며칠 만에 데뷔 이래 비주얼 구멍은 없다고 평가받은 고귀한 면면들 사이에서, 연예인 처음 본 티 한 번 내지 않은 채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것도 조금 불은 쫄면의 양념 맛까지 음미하며 말이다.
번쩍거리는 얼굴들 사이에서 아침부터 쫄면을 즐기는 나. 제법 강심장이다.
까치집을 한 남자애들이 연습실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분식을 먹는 광경은 나름 학창 시절도 떠오르게 했다.
그저 이런 얼굴을 가진 애들이 없었을 뿐이지.
아이돌의 유형을 친근한 편과 그렇지 않은 편으로 나누면 스파크는 명백히 후자였다.
그 이유의 8할은 그들의 얼굴에서 비롯되었다.
최근의 아이돌 그룹은 공통적으로 외모의 성격이 다른 멤버들을 한 그룹에 모으는 경향이 있었다.
이 중에 네 취향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시장에서, 연예 기획사의 비주얼 목표가 ‘어떻게 이런 애들을 한곳에 모아 놨냐.’ 소리를 듣는 그룹을 만드는 쪽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UA는 무식했기에 용감했다.
차갑고 날카로운 냉미남은? → 잘생겼다.
잘생긴 멤버가 많으면? → 좋다.
이렇게 도식화를 한 것일까. 아니면 UA가 냉미남을 선호했던 것일까.
UA는 스파크를 ‘날카로운 냉미남이 많아서 좋은’ 그룹으로 만들어 버렸다.
다시 말해, 한 그룹에 궁극의 냉기 철철남들만 모였다는 뜻이었다.
먼저 천지가 개벽함과 동시에 태어났을 듯한 얼굴을 가진 명실상부 스파크의 비주얼 담당, 이청현.
백두산 천지에서 떠 온 물로만 세수를 시켰다고 해도 믿을 만큼 이청현의 얼굴엔 티 한 점 없었다.
이청현이 가을날의 아침 하늘처럼 서늘한 바람이 깃든 청명한 얼굴을 가졌다면 그의 동갑내기 친구 강기연의 얼굴에선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눈보라가 치는 강풍 속에서 데킬라 한 병은 거뜬히……. 아니다. 다음 달에 고등학교에 들어갈 신입생에게 부적절한 비유였다.
꿀 타지 않은 따끈한 생강차를 한 병이나 원샷할 수 있을 듯한 외모를 가진 강기연은 팀의 막내라곤 믿을 수 없는 비주얼을 자랑했다.
이청현, 강기연보다 한 살 많은 중간 라인의 얼굴 사정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
메인 보컬인 박주우의 별명은 인간 새벽 산안개였다.
과거의 나는 이 별명이 박주우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모니터링 중 본 박주우의 표정 80% 정도가 멍해 보이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주우를 실물로 보고 나서는 바로 해당 별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창백할 만큼 하얀 박주우의 민낯은 새벽녘의 산속에서 산신령 같은 한복을 입고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비주얼이었다.
리더 정성빈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속세마저 떠난 것 같은 외모라 어쩐지 웃을 때마다 냉소를 짓는 것 같다고 평가받은 이청현과 달리, 정성빈의 미소는 누가 보아도 아이돌 미소였기 때문이다.
≫ 솔직히 정성빈은 온미남 아님?
웃는 얼굴 봐 이게 어케 온미남이 아냐
└ (대충 온미남들 사이에 낀 정성빈 사진)
└ 응 울 애기 온미남 아니네 내가 눈에 콩깍지가 씌었네
그런 정성빈조차 밖에 나가면 확신의 냉미남 소리를 들었지만.
멤버들 대비 눈썹이 1도라도 더 내려간 정성빈을 어떻게든 온미남 계열로 밀어 보려는 팬들의 노력은 제삼자인 나조차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다.
물론 정말로 눈물이 나진 않았다. 모니터를 너무 많이 봐서 안구 건조증이 왔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스파크를 대표하는 센터이자 남 부장의 따님을 사로잡은 죄가 큰 최제호.
이놈은…… 태생이 북극에서 태어난 것 같았다.
이목구비에 ‘저는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가 바탕체 13pt로 쓰여 있는, 말 그대로 밖에서 마주치기 싫은 상이었다.
과연 내가 고용노동부의 신고 접수 페이지에 접속한 팔백여 번 중 이백 번쯤 기여한 것이 당연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분위기였다.
저놈만 아니었어도 내 월 평균 야근 시간이 20시간은 줄었겠지.
하나같이 대단한 면면들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내가 꼈다.
나는 오늘 아침 거울에 비쳤던 내 얼굴을 떠올렸다.
어디로 보나 사회에 좀 덜 찌든 흔한 20대의 얼굴이었다.
‘외모 숙련도 같은 건 없나.’
정작 있어야 할 건 없고 쓸데없는 것만 있는 느낌이다.
시스템은 아이돌에게 외모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듯했다. 나는 데뷔만 하면 버릴 패다 이거지.
나라는 인간의 존재 의의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고민했던 건지, 나를 지켜보고 있던 이청현이 물었다.
“형, 쫄면 별로예요? 바꿔 드릴까요?”
“아냐. 다른 생각 중이었어.”
“무슨 생각 중이었는데요?”
“난 이미 틀렸지 않나…… 하는 생각.”
“밥 먹다 말고 뭔 소리래.”
그러더니 이청현은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고민이 많은 아침이었다. 아무도 날 이해해 주진 않겠지만.
* * *
댄스 수업이 혼돈과 파괴 그리고 절망 그 어디쯤이었다면 보컬 수업은 그보단 사정이 나았다.
환희의 목각 인형 댄스를 시연해야 하는 불상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소주병에 숟가락 꽂고 노래 부르던 비운의 직장인 영혼을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이월아, 노래 부를 때 몸에 힘만 좀 더 빼 볼래?”
“네, 주의하겠습니다.”
“긴장하지 말고 불러 보자. 노래는 나쁘지 않으니까.”
긴장하지 않으면 바로 남 부장 애창곡 메들리가 나와서 조심해야 하는데. 내가 또 한 트로트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주먹을 꽉 쥐고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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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업무’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경험치(20) 지급
▷ 누적 경험치: 100
▷ 누적 포인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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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첫 보컬 수업 완료에 대한 경험치도 얻었다.
아쉽게도 외모 숙련도는 높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 얻은 복지 포인트 1점도 댄스 숙련도에 투자했다. 역시 미남은 하늘에서 내려 주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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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평가(100)
― 보컬 숙련도: 4/20
― 댄스 숙련도: 3(▲)/20
― 자기 PR: 12/20
― 근태 관리: 18/20
― 조직 내 적응력: 10/20
누적 경험치: 0
누적 포인트: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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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숙련도를 보니 뿌듯하진 않아도 약간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이대로만 가면 데뷔 전까진 고장 난 댄스 기관차에서 탈출할 수 있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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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책임자’ 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직급도 단 사원이 신규 입사자 시절이랑 똑같이 일하면 곤란하겠지? 이젠 퍼포먼스를 좀 보여 줍시다. 뭐가 나아졌다는 걸 보여야 나도 위에 할 말이 있지.
[SYSTEM] ‘업무’ 적응기가 완료됨에 따라 획득 가능한 경험치가 조정됩니다.▷ 기존: 기본 경험치 20 지급
▷ 변경 후: 기본 경험치 10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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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그냥 때려치우라고 고사를 지내라. 어?
아예 삼색나물 싹싹 비벼서 제삿밥을 먹이라고.
* * *
연습실이 돌아가는 상황에 적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약 1,400일간 남 부장의 눈치를 보며 생존한 경험 덕분에 말이지.
아, 가끔가다 연습실 거울 너머로 최제호와 눈이 마주치긴 했다.
그동안 하도 눈칫밥을 먹어서인지 이젠 최제호의 눈빛에서도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도 뚝딱거리면 오늘은 진짜 버리고 간다.’
‘마음이 아프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란다.’
최제호의 미간이 쥐포처럼 찌그러졌다. 저쪽도 나의 안광 텔레파시를 읽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둘이서 뜨거운 눈빛을 나누고 있는 와중 연습실에 누군가 찾아왔다. 지난번에도 연습실을 찾아온 적이 있는, 날 UA에 캐스팅했던 분이었다.
매니지먼트 본부의 민주경 님이라고 했던가.
여느 때처럼 각 잡힌 안부 인사가 끝나자 민주경 님이 말했다.
“곧 월말 평가 있는 건 다들 알지? 이월이는 아직 모를 것 같아서 다시 공지해 주려고 왔어.”
자세한 것까진 몰라도 월말 평가의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다. 스파크가 연습생 썰 풀면서 하는 말이 월말 평가 얘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평가가 열흘이나 넘게 남았는데 공지를 해 주는 UA의 배려에는 감사했다.
오후 회의 당일에 나를 집어넣고 지는 반차를 써서 도망간 남 부장에 비하면 UA의 처사는 그저 빛이었다.
“평가는 저번이랑 똑같이 진행할 거야. 자세한 설명은 음…… 성빈이가 이월이한테 좀 해 줄래?”
“네!”
착해 빠진 정성빈은 순식간에 인수인계를 맡았는데도 힘차게 대답했다. 정말이지 사회생활을 기가 막히게 할 타입이었다.
벌써 저런 티를 내면 양심 팔아먹은 인간들이 이용해 먹으려고만 할 텐데.
이를테면 데뷔만 하고 나면 튀려는 나 같은 사람 말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엔 대표님도 오실 거란 거. 무슨 뜻인지 알지?”
내가 스파크의 대변인으로 성장하게 될 정성빈의 미래를 염려하는 사이 민주경 님이 덧붙였다.
“슬슬 각 잡고 구성 들어갈 거야, 데뷔조.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