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70)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70화(70/193)
| 70화. 첫 출근 기념일 (1)
입학식, 입사일, 가입일…….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날은 많았다.
어떤 날은 준비할 게 많아 정신이 없었고, 어떤 날은 첫날부터 늦을까 봐 알람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어떤 날은 아무 감흥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내 인생에, ‘데뷔일’은 처음이었다.
스파크에게도 역사적인 날이 될 오늘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숍 갔다가 바로 촬영장 갈 거니까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 방송국 가면 다들 인사 잘하고!’
‘들었지? 다들 인사 똑바로 안 하면 오늘 밤에 재밌는 꼴을 보게 될 거야.’
‘진짜 질린다, 너…….’
매니저님의 말에 한마디 거들었을 뿐인데 최제호가 질색을 하며 대꾸했다.
나는 지한테 안 질린 줄 아나. 하여튼 웃기는 놈이다.
최제호가 질색팔색을 하든 말든 이청현은 개의치 않고 긍정적인 기운을 뿜어냈다.
“오늘 날씨도 너무 좋지 않아요? 시작이 좋다고 해야 하나?”
날이 좋을 건 알고 있었다. 해가 변해도 이맘때는 매번 겨울치고 날이 좋았으니까.
과거 스파크도 이렇게 해가 좋은 늦겨울 날 데뷔를 했다.
날짜로 치면, 바로 오늘.
나로 인해 데뷔 연도가 앞당겨졌으니 데뷔일이라도 유지해 주고 싶었는데 다행히 일이 잘 풀렸다.
그렇게 숍에서 전원 꽃단장을 하고 방송국으로 출발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얘들아, 이제 내리자!”
매니저님의 하차 신호에 이청현이 차의 문을 열었다.
신인 아이돌의 프로필 사진에는 언제나 갖은 의심이 뒤따른다.
이건 분명 보정일 것이라느니, 피부 톤이 이럴 수는 없다느니.
하지만 그런 말은 이청현의 얼굴 앞에선 전부 무색해질 것이다.
내가 괜히 이청현을 첫 타자로 내보낸 게 아니란 말이지.
과연, 이청현이 차에서 내리자 사방이 술렁이는 게 차 안에서도 느껴졌다.
“와, 형들! 사람 엄청 많아요!”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지 마라.”
나는 복화술로 이청현에게 잔소리를 시전하며 차에서 내렸다.
이윽고 다리 길이가 이삿짐센터 사다리차 못지않은 놈들이 줄줄이 내리자 시선이 무서울 정도로 이쪽을 향했다.
나는 적당히 녀석들에 가려질 만한 위치를 찾아 놈들을 따라갔다. 내가 사진에 찍히는 건 최대한 피할 심산이었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포토 존 앞에는 사람이 몰려 있었다.
아마도 오늘 음악 방송에 출연하는 가수의 팬들이겠지.
나는 사람들이 들고 있는 슬로건을 보며 머릿속으로 오늘의 출연진이 누구일지를 예상해 보았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낯익은 이름이 들렸다.
“스파크 잘생겼다!”
퍼뜩 시선을 돌려 보니 여성분 한 분께서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스파크……라고 했지, 방금?
벌써 스파크를 알아보는 사람이 생긴 건가?
아니, 그보다 인사를 해야 하는데.
순식간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난장판이 된 머릿속에서 지난날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직캠 파일을 끄집어냈다.
원만한 출근길을 위해 내가 찾아봤던 무수한 출근길 직캠에선 아이돌들이 두 손을 흔들거나 한 손을 살짝 올리며 화사하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래도 되는 걸까?
겨울바람이 이렇게나 매서운 날씨에, 입장 시간까지 함께 대기하며 덕톡을 나눌 팬 한 명 없을 척박한 환경까지 와 준 분께 손만 흔드는 정도로 인사를 끝내도 되는 거냔 말이다.
한평산업에서 허리가 꺾이도록 인사를 하던 내게 한 손 인사란 너무나도 양심에 찔리는 행위였다.
그래서 나는 그냥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부디 저분께서 내 깊은 감사의 마음을 알아주시길 바랄 뿐이다.
* * *
고개를 들 겨를도 없이 인사를 하고 방송국에 입성한 우리에게 다음으로 주어진 것은 어마어마한 대기 시간이었다.
신인이면 으레 있는 일이라고 들었지만, 이야기로 듣기만 하는 것과 실제로 3시간 넘게 방치되는 것은 또 달랐다.
그래도 심심하진 않았다. 여섯 명 전원 자기 계발 활동에 매진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대기실에서 할 수 있는 생산적인 활동이요?’
‘응. 그렇다고 너무 집중해야 하는 건 안 돼. 중간에 영상으로 촬영할 수도 있으니까.’
정성빈의 질문에 대답해 주기 무섭게 이청현이 치고 들어와 물었다.
‘대기실 브이로그 같은 거 찍으려고요?’
‘그것도 있고, 설마 몇 시간씩 된다는 대기 시간을 아무것도 안 하면서 낭비할 건 아니지? 잘 거 아니면 뭐라도 챙겨 놔.’
내 마지막 말에 녀석들은 왜인지 모르게 약간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헛짓하면서 체력 깎을 바엔 잠을 자라는 뜻도 없잖아 있었는데, 성실하게 뭔가를 하나씩 들고 오기까지 했다.
다들 너무 진지하게 가방에서 일거리를 꺼내길래 얼떨결에 내가 영상 팀에게 카메라를 넘겨받아 대기실 풍경을 찍게 됐다.
나는 캠코더를 들고 정성빈과 박주우 쪽으로 다가가 질문했다.
“첫 번째로 리더님. 뭐 챙겨 왔어?”
“불러 보고 싶은 노래가 있어서, 가사 외우려고 필사 재료 챙겨 왔어요!”
“주우는?”
“영어 공부하려고…… 단어장 가져왔어요.”
두 사람은 인서트를 따라며 공책과 단어장을 카메라 앞에 가지런히 내밀기까지 했다.
이 얼마나 모범적인 모습인가. 학업에 열중할 시기인 우리 아이에게 소개해 주기 딱 좋은 아이돌이다. 이 둘은 나중에 라이브 방송으로 스터디 윗 미 같은 것 좀 시켜 줘야겠다.
다음으로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은 막내들을 찍었다.
“너흰 뭐 가져왔어?”
“큐브요. 이청현이 오늘 안에 맞추면 편의점 쏜대요.”
강기연이 작은 큐브를 들어 보였다.
친구가 데뷔 무대를 앞두고 긴장할까 봐 이청현이 머리를 좀 쓴 모양이다. 혹시 몰라 UA 창고에서 주워 온 뽁뽁이는 안 꺼내도 되겠다.
이청현은 오선지에 열심히 음표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카메라에 오선지가 담기지 않도록 주의하며 물었다.
“이건 무슨 곡이야?”
“아, 찍어도 괜찮아요! 저희 데뷔곡 편곡 방향 생각해 보는 거라.”
“요즘도 악보를 이렇게 손으로 그려?”
“자동으로 할 수도 있는데, 처음에 배우길 손으로 쓰는 것부터 배워서 그런가 이쪽이 더 편하더라고요. 보실래요?”
그러더니 이청현이 내게 불쑥 오선지를 내밀었다.
자를 대고 그린 것처럼 반듯하게 그려진 음표들이 정갈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멋지긴 하네.
“이거 멤버들 찍는 거죠? 저희가 마지막이에요?”
“아니. 아직 최제호 안 찍었어.”
나는 카메라를 들어 대기실의 반대쪽 구석에서 불꽃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최제호를 촬영했다.
나는 최제호에게 다가가 물었다.
“몇 개째야?”
“지금이 딱 50.”
“땀 내지 마. 춤출 힘까지 다 쓰면 어떡해.”
“이 정도론 그럴 일 없어.”
허세는 아닌 듯 최제호가 평온한 얼굴로 일어났다. 그리고 내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뭐야?”
“카메라 달라고. 너도 찍혀야 할 거 아냐.”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내가 녀석들을 찍을 생각만 했지, 누가 날 찍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서 말이다.
벙찐 나를 두고 최제호가 카메라를 가져가며 물었다.
“넌 뭐 가져왔는데?”
뭐 가져왔냐고?
나는 여기서 뭔가를 할 생각이 없었다니까?
이놈들 다섯 명을 돌아가며 찍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게 뻔한데 내가 뭐 하러 허튼짓을 하겠는가.
촬영을 담당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영상 팀에서 지원을 나와 주신 덕분이었다.
그러나 영상 팀만을 믿을 순 없었다. 아이돌의 비하인드 카메라와 발라드 가수의 카메라는 결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단체와 개인이라는 것부터, 흐름이나 분위기도 약간씩 다른 법인데…….
문제는 이 차이가 촬영 전문가들에겐 ‘그거 그냥 개인 취향 차이 아니야?’ 정도로 느껴질 만큼 미미한 수준이라는 데 있었다.
그렇다면 이 차이를 누가 느끼길래 내가 카메라맨을 자처해야 하는가?
≫ 제발 애들 얼굴 좀 찍어달라고오오오옥
대기실 안 궁금하다고오오옥
이상한 데다 포커스 잡지 말라고오오오ㅓ오오오오옥!!!!
≫ 아니 좀…… 카메라 수를 늘려 봐…… 대화를 하는데 화면에 애는 하나밖에 안 나오잖아…….
└ 제 새끼도 자막으로밖에 안 나오더라고여ㅎㅎ 영혼 보내기 된 줄ㅎㅎ
≫ 화면 잘 잡는 건 좋아
애들이 화면에 안 잡힌다는 게 문제지ㅋㅋㅋㅋ
정답은 바로 스파크를 사랑해 마지않는 팬들이었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UA가 다음부턴 꼭 인력을 늘리겠다고 약속했지만, 다음 활동이 돌아오기 전까지 스파크의 팬들은 자신의 최애들을 목소리로 찾아내야 했다.
그런 불상사를 막고자 나도 카메라맨으로 자원하려 했건만.
그래도 당황하진 않았다. 혹시 몰라서 소소한 취미 용품을 챙겨 오긴 했거든.
나는 가방에서 자신만만하게 준비물을 꺼냈다.
“난 컬러링 북 가져왔어.”
“……뭐 가져왔다고?”
나는 굳이 캠코더 밖으로 고개를 옮겨 맨눈으로 확인하려는 최제호에게 색칠 연습장을 흔들어 보였다.
“컬러링 북. 색연필도 챙겨 왔어.”
“그거 산 거야?”
“아니, 숙소에 있던데?”
“그게 왜 숙소에 있어?”
“매니저님 거래. 매니저님께서 안 하신다고 나 주셨어.”
“그 형은 컬러링 북을 왜 샀대?”
너한테 마음 수양 겸 시켜 보려고 사셨대.
그런데 매니저님이 컬러링 북 사 온 날 네가 숙소에 찬물을 바가지째 끼얹었다더라.
그 뒤로 얘가 빛을 못 봤다길래 내가 데려왔다. 잘 쓰마.
“형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요?”
이제는 어디서 정성빈까지 튀어나와서 물었다.
이러면 곤란한데.
탈퇴한 멤버와 현 멤버가 한 화면에 나오면 팬들이 힘들게 모자이크 처리를 해야 한단 말이다.
나는 미래의 정성빈 팬들을 위해 한껏 고개를 숙여 색연필을 고르는 척하고 말했다.
“그건 아닌데. 있는 걸 안 쓰면 아깝잖아.”
자원 낭비는 남 부장 같은 인간에게 쐬어 주는 에어컨 바람으로 충분하다. 한쪽이 실컷 써 대고 있으니 나라도 절약해야지.
내가 고개를 처박고 12색 색연필을 고르거나 말거나, 정성빈과 최제호는 내 머리 위에서 떠드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러네요. 절약이 중요하긴 하죠…….”
“우리 정도면 낭비하는 건 아니지 않냐?”
됐고. 다 찍었으면 가라, 좀.
모두가 각자의 자기 계발 활동을 끝내고, 강기연만 여전히 큐브를 못 맞추고 있는 와중 매니저님이 우리를 불렀다.
음악 방송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대기실을 모두 돌며 그룹을 소개하고 앨범을 드리는, 이른바 ‘인사드리기’의 시간이었다.
이런 관행도 사라져 가는 추세라고 들었는데, 아직은 방송사 나름이라나.
그래도 딱히 걱정할 부분은 없었다. 이놈들이 어디서 목격되든 공손해 보이도록 다섯 명 전원의 자세를 개조…… 아니 교정해 줬으니까.
아이돌 그룹이 한 달에도 몇 개씩 생겨나는 마당에 우리를 특별히 신경 쓰는 선배 가수라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나마 연차가 아주 오래되어, UA 소속 가수와 친분이 있는 가수들이 ‘아, ○○ 누나네 애들이구나.’라며 챙겨 주는 정도였다.
모두가 이청현의 얼굴을 보고 흠칫한 걸 제외하면 아주 무난한 첫인사였다.
마지막으로 들른, 오늘로 막방을 찍는 파르테의 대기실에 들어가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