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72)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72화(72/193)
| 72화. 첫 출근 기념일 (3)
스파크의 데뷔곡, 『Flowering』의 무대용 음원은 무거운 철문이 열리는 듯한 소리로 시작된다.
박자에 맞춰 몸을 돌리자 무대를 열어 줄 데뷔 앨범의 도입 담당 이청현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청현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턱을 괴고 카메라에 시선을 주었다.
이청현은 분명 장난기가 묻어 있으면서도 과하지는 않은, 의미심장하고도 신묘한 미소를 짓고 있을 거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몇 번이나 함께 연습하며 거울 너머로 지켜보았으니까.
그리고…….
『가 볼까.』
나레이션 같기도 한 이청현의 목소리가, 시원하게 노래의 시작을 알렸다. 동시에 무대에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밝고 화사한 느낌의 반주가 울려 퍼졌다. 이청현이 몇 날 며칠간 공을 들인 부분이었다.
‘이월이 형, 차가운 심상을 살리면서 여름의 햇살처럼 청량한 느낌을 낼 순 없을까요?’
‘레퍼런…… 아니, 참고 이미지를 몇 개 뽑아 놓고 그걸 보면서 작업해 봐. 설원 위로 파란 하늘이 있는 사진 같은 거.’
‘헐, 형은 진짜 천재예요!’
천재는 이청현 본인인 줄도 모르고. 천재가 아니고서야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이런 곡은 쓸 수가 없지 않겠는가.
나는 수천 번 들은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생각했다.
지금 내 동작이 멤버들과 제대로 일치하고 있을까?
방금 내 파트에서 나도 모르게 음을 놓치진 않았나?
왜 아직도 1절이지? 체감상 130절 정도 지난 것 같은데?
나만 갖은 오두방정을 떨고 있는 것이 아닌지 불안했다. 스파크 놈들은 알아서 잘만 하고 있어서 더더욱.
이청현의 곡은 수려하면서도 화려했다.
정성빈과 박주우는 음 하나도 놓치지 않았고, 강기연도 제 파트를 무사히 소화했다.
최제호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대열의 맨 뒤로 이동했던 내 눈에도 센터에 서 있는 최제호는 코앞에 있는 것처럼 크게 보였다.
나뿐이었다. 이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쯤 되면 빨간 불이 들어오는 카메라를 제대로 찾고 있는 스스로가 기특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평정심을 찾지 못하는 건 좋지 않았다.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는 언제든 사고를 유발할 수 있으니까.
‘침착하자.’
나는 동선을 이동하는 틈을 타 작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연습한 대로만 하면 틀릴 일 없다는 거 알잖아.’
그리고 속으로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그나마도 가사를 잊을까 봐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치워 버렸다.
1분 남짓한 시간은 정신을 붙잡고 있을 새도 없이 흘러갔다. 머리가 핑그르르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덥다.
숨이 막힌다.
녀석들을 방해하면 안 되는데, 내가 이 녀석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숨과 함께 차오를 때쯤.
여섯 명이 대열을 갖춰 모이며, 멜로디가 절정을 찍을 때.
그러니까, 멤버 전원이 다 함께 이 노래의 첫 후렴구를 불러야 하는 그 순간.
내 시야에 조금 전 짧은 대화를 나누었던 팬분들이 들어왔다.
약간 상기된 얼굴과 슬로건을 꽉 쥔 두 손.
인이어를 껴서 들리진 않지만, 무관심한 다른 팬들 사이에서 큰 소리로 응원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입 모양.
그리고…….
[데뷔 축하해]다섯 글자가 크게 박힌 종이 배너까지.
속이 울렁거렸다. 명문화하기 어려운 감정이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조명 때문인지, 얼굴이 뜨끈했고…….
『세상이 달아올라, 뜨거워질 때까지!』
이청현이 밤새 애를 써 만들었던 멜로디가 처음으로 빛을 보았다.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길 봐, 한 번뿐인 마법을 보여 줄 테니까.』
하필이면 내가 부르는 가사는 또 왜 이 모양일까.
나 말고 멤버들을 주목시키면 좋을 텐데.
이 노래도, 무대도, 관객도 모두 저 녀석들을 위한 건데.
그런 생각에 잠긴 내게 순리처럼 후렴구가 돌아왔다.
나는 마이크를 떨어트리지 않도록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힘차게 발을 내디디며 노래했다.
『울려라 경고음, 터져라 환호성.』
『마음이 끓어올라 흘러넘칠 때까지!』
여섯 명이 진이 다 빠지도록 영혼을 갈아 넣어서 녹음을 하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가서야 최고의 조합을 찾을 수 있었던 화음이 짜릿할 정도로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이제는 인이어를 뚫고 응원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쩌면 실제로 들린 걸지도 모르지.
나 같은 사람이 부를 가사가 있고, 저 응원에 나를 끼워 주고, 겹겹의 멜로디에 내 자리가 있다는 게.
이 모든 사실이 너무나 낯설고도 다정해서, 찰나의 순간이 긴 꿈 같았다.
* * *
무대는 성공적이었다.
박주우와 정성빈이 얼음도 쪼갤 것 같은 고음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강기연도 가사 한번 틀리지 않은 채 제 소임을 다했다.
원래부터 무대 체질인 이청현은 연습도 잘했으면서 실전에서 더 잘했다.
댄스곡이 아닌 발라드로 데뷔했다면 데뷔 시점에 이 정도의 임팩트를 보여 주지 못했을 터다. 그렇게 생각하니 과거 UA의 선택이 더 아쉬웠다.
최제호는 그야말로 혼자서 펄펄 날아다녔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객석의 시선이 최제호에게 모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난 놈은 난 놈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훌륭히 첫 녹화를 마친 뒤, 무대 밑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스탭분의 사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리허설에서 본 녹화까지 어떻게 버텼나 싶을 정도로 멤버 절반이 눈물을 쏟은 것이다.
매니저님이 찍은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자신이 큰 실수 없이 무대를 마쳤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눈물을 뚝뚝 흘린 강기연과, 그런 친구에게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로 장난을 치는 이청현.
그리고 오랜 기다림의 끝에 정말로 데뷔하게 된 정성빈의 흐느낌까지. 무대 밑이 촉촉하다 못해 축축할 지경이었다.
내게 저 벅차오름을 달랠 자격이나 있겠나 싶어, 나는 말없이 녀석들의 등을 다독이며 놈들을 양 떼 몰듯 대기실로 몰았다.
그때 최제호가 내게 말을 걸었다.
“넌 안 우네.”
“울 만큼 고생하진 않았지, 내가.”
“그런가.”
“왜? 나 울면 달래 주려고?”
“돌았나…….”
최제호는 진저리를 치며 혼자 대기실로 들어가 버렸다.
냉정한 자식. 앞으로 내가 네 앞에서 우나 봐라.
* * *
대한민국의 고등학생, 백해원은 방학을 맞아 침대에 누워 인생을 성찰하던 중이었다.
백해원이 핑크빛 침대에 누워 어떻게 하면 인간은 고3을 거치지 않고 어른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때.
백해원의 핸드폰이 수차례 진동하며 애타게 주인을 찾았다.
익숙한 SNS 알람이었다.
최근 백해원은 새 글을 올린 적이 없었다. 새삼 알람이 울릴 일이 없다는 의미다.
백해원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집었다. 누군가가 백해원을 소환하는 중이었다.
≫ 아 근데 걔네 약간 @minamhunter 님 취향일 거 같은?
구미가 당기는 소환술이었다.
백해원은 바로 자신이 태그된 게시 글을 확인했다.
≫ 존잘남 너무 오랜만에 봐서 심장 부여잡고 비계로 도망 옴;;;
└ 엔넷 방청 가신다더니…… 대어를 건지셨나요
└ ㄴㅔ…… 정신 나갈 것 같습니다 본계에서 떠들면 돌 맞을 거 같은데 이걸 나만 알고 있을 수도 없고
└ 아 근데 걔네 약간 @minamhunter 님 취향일 거 같은?
그곳에선 백해원의 오랜 친우들이 재미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한때 그들은 모 보이 그룹의 미모와 매력에 열광하다 인연을 맺게 되었다.
SNS에서 내 새끼들 덕질하다가 사이버 친구가 되었다는 뜻이다.
울 애기를 향한 사랑과 그들의 우정은 영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영원한 건 내가 파는 그룹의 소속사와 최애의 이름 세 글자, 그리고 그들의 우정뿐이었다.
4년 내내 일을 X같이 하는 소속사.
과거의 영광은 찾아볼 수가 없는, 관리를 안 해서 나보다 빨리 나이를 먹어 가는 나의 최애.
결정타는 연예면에서만 보던 내 새끼를 사회면에서 보게 되었을 때 왔다.
백해원은, 그때만큼 팬을 부끄럽게 만드는 아이돌은 망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덕질을 해야 하나?
백해원 외 n명의 팬들은 세게 현실 자각 타임을 겪었다.
그리고 그들은 저마다의 고민 끝에 구 본진을 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몇 장씩 샀던 앨범과 악착같이 모았던 포스터, 굿즈를 열심히 중고로 팔아 버리던 그들조차 버리지 못한 게 있었으니.
바로 함께 우리 애를 응원하고, 우리 애 욕하던 애들을 같이 욕했으며, 이제는 우리 애까지 함께 욕하게 된 동지들이었다.
고난과 역경은 그들이 서로를 고작 덕친으로 부르는 수준에서 한 단계 진화하게 만들었다.
≫ 팬 다 빠져나가는 마당에 이런 말 웃기긴 한데…… 저 솔직히 님들 놓치고 싶지 않아요 이런 유잼 인간들 어디 가서 만나……
└ 됐고 다들 비계 하나씩 파시죠
그렇게 백해원…….
아니, ‘미남 헌터’를 포함한 약 30인의 도적들은 꿀단지 같은 장르를 찾아 드넓은 연예계를 무법자처럼 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그 과정도 순탄하진 않았기에, 이들은 본계에선 저마다의 남자들(그들은 사람이기도, 종이이기도, 2.5D이기도 했다)을 앓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용해 주는 비계에서만 각종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어디 팬케이크가 맛집이더라 따위의 정보만 올라오던 곳에서.
누군가가 백해원을 부르며, 네 취향의 아이돌이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었다.
백해원이 지난 몇 년간 그룹 내 비주얼 멤버만 콕 찍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말이다!
백해원은 곧바로 답신을 보냈다.
└ 그런데 왜 태그만 하고 누군지는 안 알려 주시죠? 저희 우정이 이것밖에 안 됐나요? 실망입니다ㅡㅡ
역시나 그쪽에서도 칼답이 왔다.
└ 헌터님께서 이미 그물에 집어넣으신 줄 알았져
약간의 밀당 끝에 백해원은 ‘스파크’라는 이름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 그룹에서의 정보력은 믿을 만했다. 이들은 적어도 보정을 떡칠한 사진만 보고 섣불리 실제 인물을 평가하지 않으니까.
백해원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검색창에 ‘스파크’를 입력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단정하고 깔끔한 프로필 사진 속에 들어 있는, 좌우 대칭 완벽한 조각 미남들의 얼굴을 말이다.
백해원은 바로 포털 사이트의 사진들을 저장한 뒤 SNS로 달려갔다.
≫ 저 지금 혼절 직전임
이거 허위 매물 아니죠????? 화면으로 보이는 것과 실물이 다르면 님들 다 사기죄로 고소할 거임
└ 아 월척이요~
└ 허위 매물이라뇨? 그들은 찐입니다
모두가 낄낄거렸지만 백해원은 진심이었다. 물론, 언니들도 진심이고.
믿음직한 동료의 말에 힘입어 백해원은 이제 막 올라온 무대 영상 하나도 찾아냈다.
‘와. 무대가 첫방 하나밖에 없다니.’
신인도 이런 신인이 없다.
그러나 놀람도 잠시, 백해원은 엄청난 미남자가 클로즈업된 썸네일에 홀린 듯 영상을 재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