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73)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73화(73/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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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무대에서 녹슨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뒤이어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온 남자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턱을 괴고 카메라를 응시했다.
남자는 슬쩍 웃고서 속삭이듯 말했다.
[청현]가 볼까
그와 동시에 무대에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흑발에 라운드 테의 안경을 쓴 남자와, 화려하게 세팅된 회색 머리에 얼굴에는 캐릭터 밴드를 붙인 남자가 나란히 나왔다.
안경을 쓴 멤버 ‘이월’은 평범하게 교복을 갖춰 입은 반면 ‘제호’는 넥타이부터 온데간데없었다.
[이월]단 하나의 꿈이
생생할 때가 있어
[제호]긴긴 밤 어둠 속에서 나를
잠들 수도 없이
두근거리게 만드는 힘
다음으로 나온 멤버도 제호만큼이나 인상이 강렬했다.
[기연]소원을 담은 연료에
불씨를 붙여
밤하늘에 보내는
한 발의 신호탄
대신 제호보단 훨씬 더 단정한 차림의 기연이 무언가를 쏘아 올리는 시늉을 하자,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무대 중앙으로 뛰어오며 노래를 이어 나갔다.
[성빈]울려라 경고음
터져라 환호성
그리고 여섯 명이 모두 대열을 갖춰 모였을 때, 멜로디는 절정을 찍었다.
[주우+ALL]세상이 달아올라
뜨거워질 때까지
음악이 중반을 향해 달려가자 청현이 다시 등장했다.
조명이 켜지기 전까진 잘 드러나지 않았던, 옷과 머리카락에 물감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차림으로.
[청현]분명한 목표는 동력이 돼
땅을 박차고 일어나
햇볕이 쏟아지는 낮을
가르게 만드는 거야
태양처럼 뜨거운 가사에 환한 미소.
그리고 그에 걸맞게 잘 짜여진, 한 편의 공연 같은 안무까지.
청량함을 한껏 뽐내는 파란 조명과, 그보다도 더 맑게 웃는 여섯 명의 얼굴이 조화롭게 화면을 채웠다.
[주우]울려라 경고음
터져라 환호성
[성빈+ALL]마음이 끓어올라
흘러넘칠 때까지
클라이맥스까지 휘몰아친 무대는 여섯 명 전원이 끝을 빨갛게 칠한 종이띠를 한 장씩 들고 서로를 쳐다보는 것으로 끝났다.
그야말로, 대낮의 불꽃놀이 같은 무대였다.
* * *
‘XX.’
백해원의 머릿속엔 원색적인 욕설만 떠올랐다. 백해원을 비롯한 많은 현대인들이 극도로 행복할 때 욕을 참지 못하지 않는가.
백해원은 ‘아……. 잠시만.’이라고 생각하며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방금 본 영상을 한 번 더 돌려보았다.
영상이 끝나고는 다시 속으로 욕을 했다.
‘개쩐다.’
백해원이 할 수 있는 표현은 이게 전부였다.
세상에 잘생긴 아이돌은 많다.
하지만 멤버 모두가 잘생긴 그룹은 흔치 않다.
심지어 모두가 ‘내 취향으로’ 잘생긴 그룹은 더더욱!
백해원은 죄 없는 침대를 세 번이나 팡팡 두들겼다. 습관적으로 자신의 이마도 몇 번 쳤다.
‘이건…… 이건 뮤비를 봐야 해.’
SNS에 짧은 글을 올릴 틈도 없이, 백해원은 검색창에 ‘스파크 Flowering MV’를 검색했다.
뮤비는 5분이 넘었다.
드라마 타이즈인가. 어렴풋이 짐작만 하며 백해원이 영상을 재생했다.
6분할 된 화면에서 여섯 개의 손이 알람을 끄는 장면으로 영상은 시작되었다.
핸드폰 위에 손을 올린 채 그대로 잠이 든 누군가를 제외한 다섯 개의 손이 침대 위에서 사라졌다.
가장 먼저 교실에 도착해 교과서를 서랍에 넣는 정성빈.
오자마자 창틀에 책가방을 던지고 책상에 엎드려 다시 잠을 청하는 김이월.
조용히 들어와 창밖만 뚫어져라 응시하는 박주우와, 이어폰을 꽂은 채 핸드폰만 만지고 있는 강기연.
그 뒤에 들어온 최제호까지, 멤버들은 하나둘 교실로 모인다.
그리고 최제호의 가방 안에 든 연장 몇 개가 클로즈업된다.
‘뭐야. 일진물이야?’
따뜻한 색감의 뮤비를 편안하게 감상 중이던 백해원은 양아치를 미화하진 않을까 싶은 마음에 미간을 찌푸렸다.
잠시 이대로 뮤비를 끌지도 고민했으나, 일단은 계속 봐 보자는 심산으로 백해원은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스위치가 켜지는 장면이 잠깐 삽입된 후 카메라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학생들이 모두 들어오고, 교사까지 들어와 출석을 부를 때쯤 부스스한 머리 그대로 이청현이 뛰어 들어오며 타이틀과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여섯 명의 수업 태도는 제각각이었다.
반듯하게 앉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수업을 듣고 있는 멤버가 있는가 하면.
김이월의 이마는 책상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고, 이청현은 교과서 밑에 다른 공책을 펴 놓은 채 낙서만 하고 있었다.
더욱 신경 쓰이는 것은 영상에서 자꾸만 강기연의 팔찌와 이청현의 벨트 고리에 달린 키링, 최제호의 수상할 만치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자꾸만 비춰 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뮤비에는 드라마 타이즈만 나오진 않았다.
백해원은 스타일링을 달리한 군무 샷이 나올 때마다 지금 스크린샷을 뜰지 말지 고민하다가, 우선은 뮤비를 다 보고 뜨기로 결심하고 과감히 영상에 집중했다.
군무 샷 이후의 배경은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바뀌었다.
잡동사니가 한가득 쌓인 책상에 학교 도면을 펼쳐 놓은 여섯 명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다.
정성빈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다 보면, 종이의 끝에 ‘Boom!’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설마 학교를 터트리나?’
어쩐지 한두 명 빼곤 다들 인상이 범상치 않더라.
백해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들은 무언가를 착실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정성빈은 김이월이 가방에서 한 뭉치 꺼낸 종이들을 김이월의 지시에 따라 벽면에 붙였다.
박주우 또한 컨테이너 박스의 문밖에 ‘화기 주의’ 표시 스티커를 붙였다.
강기연이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느라 재킷을 버려둔 채 팔을 걷어붙이고 나오는가 하면, 최제호는 뒤적거리며 뭔가를 찾던 이청현에게 넥타이를 빼앗기기도 했다.
‘터지는 게 환호성이 아니라 학교 맞나 본데……?’
데뷔 무대에서는 심의를 통과하기 위해 가사를 바꾼 걸까. 백해원은 피식피식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영상에는 중간중간 의미를 알 수 없는 장면도 등장했다.
주로 금색의 공이 빠른 속도로 물건 밑을 지나가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영상이었다.
이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기다리다 보면 분명 누군가가 끝장나는 해석 글을 올려 주리라.
그러니 지금 영상을 멈추고 이를 분석하는 것보단, 눈앞에 펼쳐지는 댄스 브레이크를 보는 게 더 중요했다.
다년간 아이돌을 덕질해 온 백해원은 굳이 순간 캡처를 뜨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들의 안무가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는 걸.
폐교를 배경으로 한 교복 컷과 대형 컨테이너 배경의 점프 슈트 컷이 어지럽게 교차되었다. 노래 역시 막바지를 향해 내달렸다.
『울려라 경고음
터져라 환호성』
판자들을 모두 밀어 넘어뜨리는 강기연과 용접 마스크를 들어 올리는 이청현.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모두를 지켜보는 박주우와 장도리를 양쪽 어깨에 걸친 최제호가 차례로 지나갔다.
그리고 정성빈은 김이월이 건넨 성냥을 넘겨받아 눈앞의 심지에 불을 붙였다.
정성빈의 얼굴 위로 불꽃이 일렁였다.
『마음이 끓어올라
흘러넘칠 때까지』
카메라는 위로 젖혀지듯 하늘을 향하고, 화면이 어두워졌다.
동시에 노래가 멎으며 고요해졌다.
“……뭐야?”
그래서 결국 학교는 터진 거야, 만 거야?
백해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화면이 다시금 밝아졌다.
처음 멤버들이 모였던 교실이었다.
칠판에는 크게 ‘조 짜기(제비뽑기)’가 적혀 있고, 그 앞에 여섯 명이 모여 있었다.
끝이 빨갛게 물든 제비를 하나씩 들고.
‘어?’
분명, 데뷔 무대에서 멤버들이 엔딩에서 하나씩 들어 보였던 제비였다.
그제야 백해원의 머릿속에 멤버들이 피곤에 쩔어 보이는 얼굴로 머리 쓰고 힘쓰며 갖은 고생을 했던 장면들이 지나갔다.
‘조별 과제였구나……!’
어쩐지 애들이 한껏 거칠어 보이더라. 현역 고등학생인 백해원은 그 심정을 십분 이해했다.
‘그래서 얘넨 대체 무슨 과제를 한 건데?’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뮤비에선 배경으로만 활용되었던, 컨테이너 벽 앞의 잡다한 물건들이 카메라에 잡혔다.
강기연의 팔찌로 동여맨 나무토막들과 최제호의 넥타이가 온갖 장치에 기묘한 모양새로 걸려 있었다.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 ‘골드버그’ 장치였다.
불의 열기로 인해 실이 녹으며 끊어지자, 금색으로 칠해진 공이 반으로 갈린 PVC 관과 나무젓가락 등을 타고 쉼 없이 질주했다.
뮤직비디오에 계속해서 나왔던 알 수 없는 장면이 이 컷과 겹쳐졌다.
도미노를 쓰러트리거나 이청현의 키링 위에서 튀어 오르며 빠르게 컨테이너 한 바퀴를 돈 쇠공이 나무 버튼을 누르자, 버튼과 연결되어 있던 낚싯줄이 당겨지며 ‘펑’ 소리가 났다.
동시에 박 밑에 서 있던 최제호, 정성빈, 이청현, 강기연 네 명의 머리 위로 꽃잎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박에서 펼쳐진 ‘조별 과제 대 성공!’이라는 수제 현수막이 초라하게 흔들렸다.
모두가 꽃가루를 털어 내거나 입에서 뱉어 내는 와중 정성빈이 멈칫하고 물었다.
『그런데…… 지금 이거 찍은 사람?』
나머지 세 명의 표정이 뻣뻣하게 굳었다.
네 사람은 삐걱거리며 한쪽 벽면을 응시했다.
그러자 보호구를 착용한 채 소화기를 들고 대기 중이었던 박주우가 컨테이너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삼각대를 놓고 동영상을 찍던 김이월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렇게 모두가 성공의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끌어안는 것으로 영상은 정말 끝이 났다.
엔딩 크레딧도 있었다.
감독 정성빈
기획 김이월
설계 이청현
제작 강기연
지원 최제호
점검 박주우
.
.
.
촬영 김이월
마지막의 촬영 담당만 폰트와 기울기가 달랐다. 마치 급하게 추가한 것처럼.
정말로…… 완벽하게 바보 같은 조별 과제 재질이었다.
* * *
그날 백해원은 아주 바쁜 시간을 보냈다.
정보의 바다를 다 뒤졌는데도 아무도 스파크의 뮤비 해석을 올리지 않아 본인이 울면서 짜깁기 해석을 올려야 했으며.
갓 데뷔한 주제에 한가득 올라와 있는 자컨을 한 컷 한 컷 음미하며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SNS에 글을 남길 수 있었다.
≫ 님들아 스파크 하쉴?
얼굴이 맛있고 하는 짓이 이상해요
└ ㅋㅋ아니 보통 반대로 쓰지 않냐구
└ 반대로 쓸 수가 없는 얼굴이라 그래요
≫ 미헌님 ㅅㅍㅋ 입덕 가시나요??
└ 아직 입덕은 아니고여 엄,, 찍먹?
└ 구라 까지 마 당신 전에도 이러다 마블링 시리즈 5차 관람 갔잖아
벅차오르는 마음까지 기록하고 난 후 백해원은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번 무대에 제비 들고나왔으면 다음엔 뭐 들고 오려나…….’
동시에 머릿속에서 자꾸만 방금 들은 노래의 후렴구가 울렸다. 스며듦의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