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74)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74화(74/193)
| 74화. 퇴사 예정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컷 소리가 나기 무섭게 나는 허리를 숙이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또 한 번의 음악 방송 녹화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걸로 벌써 음방만 3회째.
나는 오늘 몫의 소품이었던 일명 ‘이청현의 잇템’ 인형 달린 볼펜을 수거하며 생각했다.
‘앞으로 음방을 몇 번이나 돌아야 하는 거지……?’
첫 번째 음방이 끝나던 순간, 분명 내 눈앞엔 시스템이 나타났었다.
+
[SYSTEM] ‘책임자’ 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 기안 올린 거 봤어! 그런데 내가 오늘은 일이 너무 많네. 김 대리 거 급한 건 아니지? 내가 이번 주 안으로는 꼭 볼게, 김 대리가 양해 좀 해 줘라. 알았지?
+
X나 급하다.
점심시간에 다리가 터지도록 뛰어서 은행 왔더니 예상 대기 시간이 50분이라는 걸 들은 직장인만큼 심장이 터질 것 같단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혹시라도 자다가 시스템의 미션 완료 알람을 못 볼까 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애초에 스파크가 핫 데뷔를 한 게 벌써 지난주였다.
그러니 확인 기간이 일주일 필요하다고 해도 한참 전에 끝났을 건데.
‘시X, 봤다는 말도 구라였구나!’
내가 안일했다. 남 부장 말투를 쓰는 놈이 기안을 제때 볼 리가 없지.
아무리 내가 을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다. 시스템 나라엔 고용노동부도 없나?
‘……오늘부턴 진짜 인수인계서 쓰려고 했는데.’
스파크의 첫 활동 기간은 6주.
이 6주는 내가 UA와 싸워 얻어 낸, 스파크의 인지도를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는 최적의 활동기였다.
처음부터 활동 하나는 마무리하고 팀을 떠날 생각이었지만, 일단은 시스템 쪽에 내 사직서가 수리되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나는 초조하게 볼펜을 흔들었다. 볼펜 끝에서 당근 인형이 세차게 덜렁거렸다.
남 부장…… 아니 시스템이 갑자기 ‘김 대리, 실적이 너무 안 좋은데? 좀 더 일해 줘야겠어.’라고 할 요소 같은 건 원천 차단했다.
스파크의 뮤비 조회 수만 해도 과거 데뷔 초의 두 배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과거 스파크의 성적이 나빴던 덕도 있지만, 매일같이 하고 있는 커뮤니티 모니터링에서도 스파크는 확실히 좋은 의미로 알음알음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 과제 배분 완벽하네
등교하자마자 자는 양아치 → 밤새 숙제한 모범생
학교에 연장 들고 오는 양아치 → 준비물 챙겨 온 모범생
찐 흑막 같은 양아치 → 조장
신비로운 분위기의 아웃사이더 → 안전 관리인
수업 시간에 딴짓만 하는 걔 → 과제에 충실한 금손 모범생
교복이 너저분한 양아치 → 어려운 일 다 맡아서 해 주는 모범생
└ 드림팀이었던 거임
≫ 너 인형 모가지 어디다 팔아먹었어
다 같이 음방 엔딩에서 볼펜으로 글씨 쓰는 척하는데 혼자 황급히 볼펜 숨기는 남돌.gif
└ 볼펜 숨기는 애 이름이 뭐예요??
└ 스파크 제호라네요~
≫ 남고생 여섯 명이 학교에서 과제하는 게 이렇게 중독성 있는 거였나
재생을 멈출 수가 없다
└ 정말 재밌어 보이는 과제네요 특히 학생들의 얼굴이
≫ 무대 엔딩 아이템 변천사.zip
조별 과제 제비 > 자 > 볼펜ㅋㅋㅋ 다음엔 뭐 들고 나올지 기대된다
└ 막방에 박 들고 와서 머리에 깨는 거 아닐지 심히 걱정……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연히 박은 안 깰 거다. 그놈들의 얼굴에 해가 갈 수 있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서 말이다.
지금까지 읽어 본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게시 글은 이거였다.
≫ 개X소의 희생양이 또 하나 나오나 싶었는데
무대는 X나 잘하네…… 본가 유전자 어디 안 가는 듯
물론 호감성 후기만 있지는 않았다.
비판을 가장한 비난부터 원색적인 깎아내림까지 별의별 글이 다 있었다.
하지만 눈여겨 읽진 않았다.
절반 정도는 멤버들에 비해 현저히 실력이 떨어지는 내 직캠에 관한 내용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연예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붙는 어그로성 글이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대중 여러분. 눈엣가시 같은 뚝딱이 김이월 씨는 곧 빠져 드리겠습니다…….
성적도 전보다는 좋겠다, 앞으로 한 1년 정도는 뭐 해야 할지도 다 정해 뒀겠다.
나는 시스템이 몰래 말을 바꾸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조금이라도 빨리 인수인계서 작성에 착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형, 저희 라이브 공지 올릴게요!”
그래.
내일 할 라이브만 무사히 끝내고 말이지.
* * *
백해원은 지난 며칠간 미튜브에 빠져 살았다.
전부 엊그제 데뷔한 아이돌 그룹 탓이었다.
이번에 데뷔해 놓고 무대는 왜 그렇게 잘하며, 떡밥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콘텐츠의 바다에서 쉬지 않고 4시간을 헤엄치던 백해원은 마음이 축축해진 채로 인정해야 했다. 자신이 스파크에 빠져 버렸다는 것을.
‘좀만 더 뜨고 나서 잡을걸…… 그럼 덕친이라도 있을 텐데……. 아니야 입덕은 빠를수록 좋댔다…….’
백해원의 머릿속은 번뇌 그 자체였다.
그런 백해원이 심신이 지쳐 버린 상태에서도 핸드폰을 붙들고 있는 이유 역시 그놈의 아이돌 때문이었다.
어제 음악 방송이 끝난 뒤, 이제 막 개설된 그룹 ‘스파크’의 공식 SNS에는 라이브 방송 공지가 올라왔다.
≫ ★ 공지 ★
얘들아, 우리 곧 발표인데……
혹시 내일 저녁에 다들 시간 괜찮아?
우리 집에서 같이 준비하자!
핸드폰 챙겨 오는 것 잊지 말고!
너무나도 심플하지만 지독하게 컨셉추얼한 공지였다. 이렇게 평범한 개성파 공지가 또 있을까.
그리고 그 대망의 라이브는 SNS에서 지인들과 시시덕거리고 있던 백해원에게 성큼 다가왔다.
[스파크] (2X0227) 조별 과제 발표 시작합니다!‘방송 제목에 날짜도 붙여 주고…… 팬들 백업하긴 쉽겠네…….’
백해원은 본인이 그 팬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고 방송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똑같은 디자인의 검정 트레이닝 복을 맞춰 입은 여섯 명이 모여 앉은 화면이 나타났다.
『매니저님, 저희 방송 켜진 것 같은데 맞나요?』
패드를 보고 있던 멤버 김이월이 화면 너머의 사람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백해원은 소머즈라 다 들었다.
‘일단 예의 합격.’
인성은 입덕 여부를 결정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한번 좋아하기 시작하면 어지간한 일에는 흐린 눈으로 대처하게 될 수도 있으니, 아예 시작부터 단추를 잘 꿰자는 게 다년간 산전수전을 겪으며 성장한 백해원의 신념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인성 터진 아이돌이 어딨냐고?
많다. 절대 백해원의 구 본진이 그랬다는 건 아니…….
사실 맞다, XX.
‘아, 안 돼. 집중, 집중!’
업계에서 매장당한 그 새X들 생각을 하느니 눈앞의 스파크에 집중하는 게 백배는 이로울 거다.
멤버들은 연결이 원활하다고 느꼈는지, 단체 인사와 함께 방송을 시작했다.
『드디어 저희가 데뷔 이래 첫 라이브 방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수!』
리더인 정성빈이 말하자 모두가 정성빈을 따라 박수를 쳤다.
그 모습을 본 백해원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딱 하나뿐이었다.
‘우리 성빈이…… 혼자 저렇게 말랑하게 생겨서 이 냉혹한 그룹에서 어떻게 버티나…….’
가운데에 앉은 정성빈을 기준으로 양옆에는 기 한번 지독하게 세 보이는 좌기연 우청현이, 뒷줄에는 방금 전까지 수금하다 온 것 같은 형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형님들의 말투가 대단히 상냥하단 거였다.
『최제호, 댓글 볼래?』
『그래, 내가 읽을게.』
한 명이 좀 사이보그 같긴 했는데, 뭐. 첫 방송이면 긴장할 수도 있지.
『첫 방송이라 저희가 하고 싶은 얘기가 정말 많았는데요…… 이월이 형, 그거 꺼내 주실 수 있을까요?』
『응.』
정성빈의 부탁에 김이월이 소파 뒤에서 꺼낸 것은 대형 폼보드였다.
1. 데뷔 소감
2. 뮤비 비하인드
3. 오늘의 TMI
4. 향후 계획
그것도 오늘의 대화 주제가 순서대로 적힌.
‘저거 자컨에서 멤버 소개할 때 썼던 보드 아닌가?’
언뜻 보이는 익숙한 색상과 낯익은 사이즈에 백해원은 합리적 의심을 멈출 수가 없었다. 소품 재활용이라니, 너희들 제법 친환경적인 녀석들이구나…….
그보다 TMI 뭔데. 그게 이렇게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만한 소재인 거야?
백해원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스파크는 ‘1. 데뷔 소감’에 부직포로 만든 듯한 빨간 별 도형을 붙여 놓고 데뷔의 기쁨과 감사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이월이 데뷔 후로 며칠 동안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청현의 고발은 꽤 흥미로웠다.
자컨에서는 뭔가, 나사가 하나 잘못 끼워진 FM 같았는데 말이다.
돌아가며 짧게 소감을 남기는 것으로 데뷔에 대한 감상은 끝이 났다. 다음은 뮤비 비하인드 차례였다.
『이번 뮤직비디오에선 이걸 빼놓을 수 없죠. 골드버그!』
이청현이 식탁 밑에서 뮤비의 한 장면이 인쇄된 종이를 꺼냈다. 카메라 밑에 도대체 몇 개의 시각 자료를 숨기고 있는 건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때 정성빈이 놀라운 말을 했다.
『이 골드버그 장치, 전부 청현이가 만들었어요.』
『아, 기획은 이월이 형이 했고 설계만 제가 했습니다! 만드는 건 멤버들이 다 같이 도와줬어요!』
그러니까 결국 그 거대한 장치를 이청현 본인이 짰다는 이야기였다.
『청현이가 고생 많이 했지…….』
박주우가 웃으며 말했다. 이 상황이 놀라운 건 백해원뿐인 듯했다.
그렇게 모든 동작이 스톱 모션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쉬운 일인가? 잘은 몰라도 계산이 잘 맞아야 한다고 본 것 같은데?
때마침 강기연이 이 부분을 짚어 주었다.
『중간에 되게 많이 실패했어요.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정말. 컷 나눠서 찍자고도 했었는데 청현이가 원 테이크로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멋있게 나왔잖아요! 도와준 우리 멤버들 사랑합니다!』
강기연과 정성빈 콤비의 주고받기가 끝나자 이청현이 사방에 윙크와 함께 하트를 날렸다.
그러자 김이월이 친절하게 이청현의 몸을 카메라 정면으로 돌려주었다. 고마워요 스피드 이월!
『오랜만에 머리 썼더니 힘들지만 즐거웠습니다! 당분간 수학 공부는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래 봤자 이청현 너 두 달쯤 지나면 또 시험 기간 아니냐?』
『아, 제호 형……!』
투덕거리는 내용도 참 소박했다. 백해원네 학교의 남자 반에 가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생활 밀착형 하이틴이네…….’
라이브 중에 슬쩍 들여다본 SNS의 타임라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백해원이 방송 끝나면 덕톡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대화 주제가 세 번째 것으로 넘어갔다.
TMI라 봐야 오늘 뭘 먹었다든가, 편의점에서 무슨 간식을 봤다는 등의 내용이겠지.
백해원은 이때를 틈타 과자라도 가져올 생각으로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러나 백해원은 과자를 가지러 나가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의 귀를 의심하기 바빴다.
분명 화면 속 김이월은 오늘 뭘 먹었다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최제호는 스테이크 에그 샐러드 먹었어요. 소스는 머스터드였는데 오늘 별로 안 끌린다고 해서 주우가 안 먹고 빼 둔 오리엔탈 소스 뿌려 먹더라고요. 노른자는 남겼지? 성빈이는…….』
디테일이 거의, 내 최애가 밥 비벼 먹는 방법까지 따라 하려고 적어 두던 자신과 흡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