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75)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75화(75/193)
| 75화. 인사 고과-자기 평가 편
김이월이 독특한 성격이라는 건 몇 편의 자컨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선크림 바르는 걸 깜박해? 이 죄를 무슨 수로 씻을 거야?』
『공지 읽고 확인 이모티콘 안 누른 거 누구야? 한 번만 더 이러면 공지를 뒤통수에 붙여 주는 수가 있어.』
『셀카는 200장 찍으면 한 장 건진다는 마음으로 찍어. 얼굴 믿고 서너 장 깔짝거리지 말고.』
김이월은 좋게 말하면 철두철미한 프로 아이돌이었다.
팬들 사이에서 김이월은 벌써 살아 있는 아이돌의 덕목 같은 남자, 팬심을 지나치게 잘 아는 남자, 그룹 기강 세게 잡는 남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동시에…… 이상하게 말하면, 어딘가 수상한 인생 2회차 같았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형, 댓글에 형 잘생겼대요!』
『어? 어, 어……. 감, 사합니다.』
이럴 땐 영락없이 갓 데뷔한 아이돌인데.
『골드버그 만들어 보고 싶으시다고요? 제가 연습용으로 그려 본 설계도도 있긴 한데…… 이걸 메일로 보내 드리면 되나?』
『회사에 공유 드라이브 열 수 있을지를 따로 여쭤볼게요. 안 되면 도션 페이지라도 파 보겠습니다.』
곧바로 사람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이다.
직장인인 사람들이 봤을 땐 김이월의 이런 발언들이 더욱 요상하게 보이는 듯했다.
≫ 도션 아는 남돌이라니 진짜 이상한 말이다
일 잘하는 소속사? 같은 느낌
└ 비유 눈물 나네
≫ 스팤 이월 약간 다른 의미로 골 때리는 듯
멤버들에게 한마디 하라니까 ‘금리 올랐을 때 적금 하나씩들 들어라’ 이러네ㅋㅋㅋㅋㅋ
애들 넥타이 매 줄 때까지만 해도 으른 맏형 같았는데 지금은 그냥 잔소리 엄청 많은 학생 주임 같음
└ 근데 나도 저 말 듣고 적금 들었음 1금융권 이율 5% 넘더라
└ 선한 영향력이네
└ 선한 영향력 ㅇㅈㄹㅋㅋㅋㅋㅋㅋㅋㅋ
백해원이 이 모든 말을 전부 이해할 순 없었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SNS 검색란에 김이월의 이름을 검색하고, 스파크에 대한 반응을 살피고 있는 시점에서.
자신이 고작 미니 앨범 한 개밖에 내지 않은 따끈따끈 신인 그룹에 입덕했다는 걸 말이다.
* * *
스파크 데뷔 2주째.
그리고 김이월과 시스템의 강제 계약 1년 하고도 약 2주째 밤.
나는 모가지가 부러져 슬픈 볼펜을 흔들며 스파크의 콘텐츠를 한 번씩 시청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쁘지 않네.’
지금까지의 반응만 보아도 과거 스파크의 데뷔 성적이나 언급량은 충분히 넘어설 것으로 보였다.
커뮤니티도 마찬가지.
아직 별도 게시판이 생긴 건 아니지만, 매일 아이돌 게시판엔 스파크를 언급하는 새 글이 올라왔다.
대충 ‘화려한 아이돌판에 탄산감을 주는 팔성사이다돌’로 소비되는 것 같았다.
‘탄산감이라.’
나는 때마침 일시 정지해 둔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겼다. 쾌남처럼 웃고 있는 최제호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했다.
이 녀석이 이렇게 웃는 날이 올 줄이야.
최제호의 미소가 귀한 건 과거 스파크의 팬덤 사이에선 유명했다.
무대에서라면 컨셉 표현을 위해서라도 좀 웃었겠지만.
하필이면 스파크가 영 좋지 못한 컨셉만 하는 바람에, 최제호의 웃는 안면은 ‘비릿한 미소 최강자’나 ‘계략을 꾸미는 게 확실한 섭남’ 따위의 명예로운 칭호만 얻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화면 속의 최제호는 뉘 집 센터인지 모를 만큼 시원하게 웃으며 잘도 그 힘든 춤을 추고 있었다.
이게 내가 알던 0.5 동태 눈깔 최제호 맞냐?
금강산 절경이 부럽지 않다. 김이월이 직접 뽑은 아이돌판 10대 절경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 아주 마음에 든다.
발전한 게 비단 최제호뿐이랴. 다른 놈들도 아주 괄목할 성장을 보였다.
박주우는 휙휙 바뀌는 카메라를 잘도 찾아 가며 시선을 맞췄고, 이청현은 과하지 않은 메이크업으로 이목구비는 다 살리면서 튜닝의 끝이 순정이라는 것을 아낌없이 증명했다.
넘겨짚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멤버들이 모두 제 몫을 해서인지 정성빈도 예전보단 훨씬 더 편안하게 제 파트를 소화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강기연이 카메라 앞에서 본인의 춤 실력을 전부 보여 줄 수 있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그간 했던 잔소리가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래 이 새X들아, 말 잘 들으니까 얼마나 좋냐.
나는 벅차오르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뮤비와 무대 영상을 홀린 듯 돌려 보았다.
실력 있는 놈들이라 그런지 역량은 말할 것도 없고.
나름 균형 잡힌 식사를 하도록 한 덕분에 때깔도 고운 데다, 생긋생긋 웃으면서도 땀날 때까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제법 기특…….
잠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이놈들이 어떤 놈인지를 그새 잊었나?
안 해도 될 야근을 만든 건 남 부장이지만, 그 야근 시간을 배로 늘리던 게 이놈들이었는데.
고작 1년 함께했다고 내 분노가 풀릴 것 같냐고.
나는 머릿속의 잡념을 털어 내는 상상을 하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모니터링에 집중했다.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부서가 있는가 하면, 회사의 돈을 쓰기만 하는 부서도 있다.
대표적인 예시를 꼽으라고 하면 인사 팀이 아닐까.
백 오피스라는 표현에 걸맞게 우리 팀의 업무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내 업무도 마찬가지. 내가 만든 작업물이 눈으로 볼만하게 나왔던 건 채용 공고 이미지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내가 낸 아이디어가, 내가 섭외한 장소에서, 내 의도대로 완성된 것을 보는 건 묘한 기분이었다.
기이한 현상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었다.
≫ ua 신인 남돌 찍먹함
요즘 다들 센 곡 들고 오고+얘네 티저도 좀 어두운 영화? 같이 나오길래 걍 비슷한 그룹 나오는구나~했는데
너무 시원시원 청순하게 나와서 좀 놀람ㅋㅋ 약간 예상 외
근데 오히려 눈에는 띄는 거 같아
컨셉추얼한 걸로 나왔으면 ㅍㄹㅌ에 묻혔을 듯
└ 바이럴 할 거면 티라도 안 나게 하던가ㅋㅋㅋ
└ 누가 돈 받고 이렇게 대충 바이럴을 해ㅋㅋㅋㅋㅋ 어이x
≫ 데뷔 무대에 이 정도 헤메코 실화냐
보통 갓 데뷔하면 메이크업이 자리 못 잡아서 아무리 세련되게 하려고 해도 촌스러운 티가 나기 마련인데 얘넨 그런 게 없음
스탭들이 영혼 갈아서 준비한 게 티 남ㅇㅇ
└ ㅇㄱㄹㅇ…… 교복 체육복 점프수트 스쿨룩 다 입었는데 구린 코디가 하나도 없음
≫ 신인인데 라이브 세상 안정적인 아이돌.gif
은 스파크
이번에 데뷔했는데 무대마다 라이브 완전 탄탄해!
자컨에서 잠깐씩 노래 부르는 것만 들어봐도 애들 다 노래 잘하는 것 같아
└ ar 깔고 하면 라이브 누가 못하는데ㅋㅋ
└ 이 정도면 잘하는 거 아닌가? 당장 비슷하게 데뷔한 그룹들만 봐도 라이브 기복 심하던데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은 덕도 있겠지만, 어그로성 악플을 제외하면 스파크라는 그룹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후기는 거의 없었다.
물론 그 헤메코를 공으로 얻은 건 아니다. 피눈물 흘리며 만든 의상 레퍼런스 모음집으로 얻어 낸 거지.
그렇다고 해도…….
‘기분이 이상한데.’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지금까지 안 한 적이 없다.
한평산업에서나 아르바이트에서는 돈을 받으니 월급값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일했다.
스파크를 위해 시스템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노력한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내 탈퇴로 이 팀이 입을 이미지 손실을 최대한 보상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은, 내가 받은 것에 대해 돌려줘야 할 최소한의 도리인 건데.
‘김 대리, 사람이 너무 유도리 없으면 그것도 문제다. 김 대리 사회생활 안 할 거야? 회사 혼자 다니게?’
‘김 대리는 자기가 일 되게 잘하는 줄 알지? 착각하지 마. 김 대리가 여기 아니면 어디서 적응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 일 잘하는 소속사+애들이 짱이다
이제 막 데뷔한 거긴 한데 자컨에도 데뷔 앨범 컨셉에 다 맞춰서 자막+멤버 소개 설명 다 넣어 주고
무대마다 뮤비에 나온 소품 시간순으로 들고 나오는 것도 좋음
뭐랄까 되게 작은 부분까지 신경 쓰는 느낌이야
애들도 포카 ㄹㅇ 성의껏 찍어 준 게 보이고…… 이런 거 보면 대기업보다 중소돌이 더 퀄리티 좋은 경우 많은 거 같음
└ 미니 앨범인데 포카 말고도 학생 사진+조 뽑기 종이+수업 시간표 기타 등등 구성 알찬 것만 봐도 진심인 게 보임ㅇㅇ 생각 많이 하고 준비한 듯
한평산업에서 들었던 말과 한평산업 바깥에서 듣게 되는 말이 조금 다르다는 게, 내게는 낯설었다.
나는 하루빨리 시스템이 내 KPI 달성 여부를 확인하길 바랐다.
이 위화감이 오래가지 않도록.
* * *
음방처럼 무대를 주력으로 하는 스케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스케줄도 많았다.
‘보이는 라디오’도 그중 하나였다.
방송 현장을 영상으로도 생중계하는 ‘보이는 라디오’는 아이돌을 게스트로 부르는 채널을 시작으로 금세 대중화가 되었다.
오늘 예정된 스파크의 스케줄 역시 보이는 라디오 출연이었다.
≫ 2X1023 보라 캡처본 퍼옴
사진1
사진2
사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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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캡 때문에 얼굴 1도 안 보여서 아쉽긴 한데 애들 1시간 동안 볼 수 있으니까 참는다…… ㅋㅋ
(출처 SNS)
그리고 나는 그 보이는 라디오의 캡처본을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뜬 경험이 있었다.
다섯 놈이 전부 챙 모자를 쓰고 나와서 녹취록 따는 내내 얼마나 열받았는지 모른다.
얼굴을 다 가릴 거면 옷이라도 좀 다르게 입을 것이지. 이놈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검은 모자에 검은 옷을 고수했다.
아, 녀석들이 주야장천 그림자 룩만 입었던 이유는 의외로 얼마 전에 알게 됐다.
‘저희 옷장에 너무 검은 옷만 있는 거 아니냐고요?’
‘어차피 연습실만 왔다 갔다 하니까 굳이 옷을 신경 써서 살 필요를 못 느끼겠던데.’
룸메이트들이 말해 줬거든.
그렇다.
이놈들, 연습할 때 편하고 바닥에 좀 쓸려도 티 안 나는 옷이면 만사 오케이였던 거다.
너희들이 복장 규정 있는 직장인이냐? 단색만 입게?
이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연습용 트레이닝복을 검은색이 아니라 무지개 색으로 맞추는 거였는데.
이미 지나 버린 일은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
대신 이제부터 보이는 라디오에 나갈 땐 아무도 모자를 못 쓰게 했다. 정당한 사유(예를 들어 염색모 스포 방지라거나)가 없는 한.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이든, 기존의 팬이든 영상이나 캡처본을 잠깐만 봐도 멤버를 구분할 수 있도록…….
“이거 진짜 써야 해?”
“싫으면 네 이름은 이마에 쓰든가.”
“…….”
다 같이 반짝이 톤으로 만든 이름 머리띠를 쓰기로 했다. 무려 손재주 좋은 이청현과 힘을 합쳐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머리띠를 들고 있는 최제호에게 말했다.
“걱정 마. 알레르기 반응 없는지 저번에 다 같이 확인했잖아.”
“됐다…….”
최제호가 제 몫의 버건디 색 머리띠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꼽냐? 꼬우면 사람들이 네 얼굴만 봐도 이름을 바로 알 만큼 성공하든가.
그렇게 신인 아이돌 스파크의 여섯 멤버는, 비장한 표정으로 글리터가 들어가 반짝이는 이름표 머리띠를 하나씩 쓴 채 라디오 부스에 입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