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76)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76화(76/193)
| 76화. 인사 고과-동료 평가 편
스파크 전원이 처음 나오게 된 라디오는 유명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DJ를 맡은 ‘달밤의 대화’였다.
나름 몇 년간 프로그램을 끌어온 달밤의 DJ이자, MYTH의 간판 그룹 ‘헬라스’의 래퍼 ‘폴로’ 씨는…….
“그럼 우리 이월 씨…… 큽. 어휴, 죄송해요! 아니, 얼굴은 다들 너무 잘생겼는데 머리띠는 또 너무 귀여운 걸 쓰고 오셔서!”
우리를 볼 때마다 웃음을 참지 못하셨다. 프로이실 줄 알았는데 유감입니다.
“지금 보라로 시청해 주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리 스파크 멤버분들께서 이름이 적힌 귀여운 머리띠를 쓰고 오셨어요.”
“신인의 패기로 썼습니다!”
“이건 회사에서 시킨 건가요?”
“아뇨, 이월이 형이…….”
폴로 씨의 질문에 믿고 있었던 박주우가 고자질을 시전했다. 내가 너한테 먹인 전이 몇 갠데 감히 날 일러?
“이런 머리띠는 주문 제작으로 사는 건가? 이름 알려 주면 이렇게 만들어 주는 거예요?”
“아뇨, 제가 만들었습니다.”
“이걸 만들었다고요?”
“네. 숙소에 재료가 있어서요.”
한평산업 대표 아드님의 학예회 준비물 만들었던 경험으로 한 땀 한 땀 공들여 제작했다.
“이월 씨가 보기와는 다르게 엄청 절약가시네요!”
“그렇죠? 저희 형이 생긴 건 완전 도련님 같은데 엄청 절약가예요!”
폴로 씨의 말에 이청현이 신나서 맞장구를 쳤다.
그보다 도련님이라니. 도련님은 너 아닐까?
그 뒤로도 폴로 씨와 녀석들은 굳이 ‘머리띠 너무 퀄리티 좋아요!’ 따위의 댓글을 읽으며 1부 내내 시답잖은 대화를 이어 갔다.
광고 시간에도 머리띠 토크는 끝나질 않았다.
폴로 씨는 손깍지를 끼고 턱을 괸 채 이쪽을 보고 물었다.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숙소에 이런 재료가 왜 있어요?”
“자컨용 소품 만들려고 샀던 게 남아 있었습니다.”
“소품도 만들어요? 대박이다.”
처음에는 신인 그룹 대상으로 할 얘기가 없어서 스몰 토크라도 하는 건가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이 사람, 내 수제 머리띠에 단단히 꽂힌 듯했다.
나는 3분 정도 저 사람의 관심이 진심인지 연기일지 지켜보다 말했다.
“혹시 몰라서 선배님 것도 만들어 봤는데, 지금 드려도 될까요?”
“제 거요? 설마 머리띠요?”
“네.”
“진짜요?!”
그렇게 탐나면 선배님도 쓰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녹음 부스 밖에 두었던 가방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머리띠를 꺼내 건네주자 폴로 씨가 배를 잡고 웃었다.
“제 건 금색이네요?”
“달밤의 대화 DJ님이시잖아요. 빛나는 노란 달을 형상화했습니다.”
나는 되도 않는 말장난을 하며 머리띠를 쓴 폴로 씨를 보고 박수를 쳤다. 잘 어울리신다는 습관적 아부였다.
마침 내 옆자리였던 강기연이 귓속말로 물었다.
“선배님 건 언제 만들었어요?”
“제일 먼저 만들었지. 원래 상사 것부터 챙기는 거야.”
나는 약간 비뚤어진 강기연의 머리띠를 바로 해 준 다음 잔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곧 2부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광고 듣고 왔습니다. 그 사이에 여러분, 저도 이름 머리띠가 생겼어요!”
“와!”
리액션 훈련을 열심히 시켜서 그런지 다들 반응 속도가 수준급이다. 물론 나도 웃으면서 열심히 호응했다.
“2부에는요, 우리 스파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시간! 멤버 퀴즈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퀴즈의 형식은 간단하다. 맞은편의 멤버가 자기 자신과 관련된 퀴즈를 내면 제한 시간 내에 많이 맞히면 되는 문제였다.
이와 관련해 방송 전 작가님들께 사전 질문지도 받아 작성했었다.
놈들이 내 문제를 하나도 못 맞힐 것 같다는 게 문제지만.
이런 퀴즈에서는 기본적으로 멤버와 관련된 TMI가 나온다. 생일이나 형제자매 수, 좋아하는 노래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이야기를 멤버들에게 한 적이 없다. 녀석들이 정답을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너무 못 맞히면 불화설이 날까 봐 내 맞은편에 앉게 될 정성빈에게 미리 언질이라도 주려다가, 또 너무 잘 맞히면 짜고 친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참았다.
‘그나마 형제자매 질문이 없어서 다행이지.’
누나에 대해 말하려고만 하면 목소리가 안 나오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지금 상황에 저 질문을 받았다간 누나가 있는데도 외동이라고 하게 되는 불상사를 빚을지도 몰랐다.
제일 먼저 문제 맞히기에 나선 박주우-강기연 조합은 각자 열 문제 중 네다섯 문제씩을 맞히며 준수한 관심도를 보였다. 다년간 룸메이트로 지낸 세월이 빛을 본 것이다.
또 다른 룸메이트인 최제호-이청현 조합도 나쁘지 않았다.
최제호가 비록 세 개라는 저조한 성적을 내긴 했지만, 이청현이 일곱 개를 맞히는 기염을 토했다.
“제호 형, 저한테 관심이 너무 없는 거 아니에요?”
“아니, 네가 오늘 신은 양말 색이 뭔지 내가 어떻게…….”
“전 형 신발 끈 색도 맞혔잖아요!”
“……미안.”
그래도 세 개면 놀라운 성장이다. 저번에 보니까 3년 차 때도 두 개 맞히더라.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이월 씨랑 성빈 씨 차례네요. 성빈 씨, 각오 한마디 해 주세요!”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형, 저희 힘내요!”
맞은편의 정성빈이 날 보고 응원하듯 주먹을 흔들었다.
그리고 정성빈은 본인의 각오에 걸맞게 제법 선전했다.
‘최근 내가 제일 많이 본 영상은 뭘까?’
‘우리 뮤비요.’
‘그럼 내가 이번 컨셉이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멤버는?’
‘청현이!’
무려 네 문제나 맞힌 것이다. 진심으로 놀랐다.
찍어서 맞힌 건가 했는데 정성빈에겐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청현 씨가 이번 앨범 컨셉하고 잘 맞았나 봐요?”
“아, 이월이 형이 청현이 얼굴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제가요?”
설마 내가 팬 사인회 연습할 때 이청현 보고 잘생겼다고 해서 이러나? 확신의 근거가 너무 빈약해서 당황스럽다.
“이제 이월 씨가 다섯 문제 이상을 맞혀야 하는데, 어때요? 자신 있어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내가 기운차게 대답하자 정성빈이 박수를 쳤다. 이게 다 무슨 꼴인가 싶다.
현타가 짙게 온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폴로 씨가 힘차게 진행을 이어 갔다.
“좋습니다! 그럼 시작!”
“이거 형이 아실지 모르겠는데……? 형, 제 애창곡은요?”
“성도 선배님의 『해가 비치는』.”
“정답! 작년에 저는 몇 반에 있었을까요?”
“3반?”
두 번째 질문에선 약간 고민하는 듯이 대답했지만, 사실 어떤 질문이 나오든 맞힐 자신이 있다. 멤버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말하라는 질문 정도가 아니라면야.
“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뭘까요?”
“보라색.”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제목을 말해 주세요!”
“『마지막 공연』!”
옆에서 강기연이 ‘형 뭐예요……?’라고 중얼거렸다.
아무렴 이 정도도 모르겠냐. 내가 스파크 라디오를 몇 년이나 들었는데.
질문 하나를 남겨 두고 1분은 순식간에 끝났다. 사방에서 감탄사가 터졌다.
“이월 씨, 총 아홉 개 성공!”
“형은 시간만 있었으면 다 맞혔겠는데요? 잔디위키야, 뭐야!”
이청현이 원거리 하이파이브를 시도했다. 나도 적당히 허공에 손을 흔들어 주었다.
“와, 이월 씨는 멤버들한테 관심이 엄청 많나 봐요!”
“다행히 아는 문제들이 나와서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정성빈 극성팬 김이월’로 소비되는 걸 막을 수 있겠지.
내가 얼마나 멤버들과 함께 노출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지 시스템이 빨리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결재나 좀 빨리 해 줬으면.
내가 아홉 문제를 맞힌 덕분에 나와 정성빈 조합은 1등을 차지하게 됐다.
1등 조 미션이 우정 셀카 찍는 거길래, 셀카를 지지리도 못 찍는 정성빈을 대신해 내가 카메라도 들었다. 기념비적인 스케줄이었다.
* * *
이후로도 시스템은 좀처럼 반응이 없었다.
말투만 남 부장 같은 게 아니라 결재 속도도 남 부장과 동기화한 걸까. 화가 치밀었다.
그런 내게 시스템이 돌아온 건 막방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미튜브 프로그램 하나를 촬영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매니저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발언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저희가 실제로 입었던 교복이요?”
“응. 막방이니까 좀 더 현실감 넘치는 컨셉으로 가 볼까 하고! 회사에서는 일단 다들 좋다고 동의한 상태거든.”
어느덧 막방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기획 팀에서 ‘우리 애들의 진짜 학생 시절 모습을 보여 주자!’라는 의견이 나왔다는 것이다.
“매니저님, 전 고등학교에 안 가서 고등학교 교복이 없는데…….”
“그…… 중학생 때 교복은 안 맞을까, 주우야?!”
머리가 절로 지끈거렸다.
자기 교복을 들고 오는 건 나도 생각해 봤던 아이디어다.
하지만 실행으로 옮기진 않았다. 여섯 명 전원에게 교복이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캐리어 하나와 함께 스파크 숙소에 떨어진 날 제외하더라도.
고등학교에 가지 않은 박주우는 맞는 교복이 없을 거고, 고등학교를 진작에 졸업한 최제호는 교복이 멀고 먼 본가에 있을 터였다.
그래도 당장 교복 없는 놈들이 둘이나 있으니 내 교복 걱정은 안 해도 되겠…….
“가족들한테 택배로 보내 줄 수 있는지 물어볼게요.”
“그럼 제호 형은 됐고. 주우 넌 스쿨룩 느낌 나는 사복으로 입는 거 어때? 매니저님, 각자의 교복인 거면 색감 같은 게 꼭 동일해야 하는 건 아니죠?”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최제호는 가족들에게 부탁을 하겠다고 하질 않나, 정성빈은 남의 옷가지까지 챙겨 주질 않나.
“그래도 될 거야. 그럼 다들 옷 챙기는 덴 문제없는 거지?”
있다.
엄청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