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78)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78화(78/193)
| 78화. 인적 사항
“저런 교복을 입는 학교가 너희 학교 말고 또 있었구나……. 진짜 충격이다.”
백해원이 혀를 찼다. 제 오빠와 아이돌이 같은 학교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은 생각지도 않은 채였다.
이건 백해인도 마찬가지였다. 언뜻 생각해 보았을 때, 제 친구들 중 연예인을 할 만한 놈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백해인은 그저 투덜거리기만 했다.
“우리나라에선 시금치 색 원단밖에 생산을 안 하나?”
백해인이 불만과 함께 시선을 돌리려던 찰나, 잘 익은 파김치 같은 교복을 입고 춤추던 남자의 얼굴이 크게 화면에 잡혔다.
“어?”
백해인이 멈칫했다. 그러자 백해원이 말했다.
“왜? 네가 봐도 너랑은 얼굴 때깔부터 다르지? 역시 얼굴이 날개다, 날개야.”
백해원이 감탄하거나 말거나, 백해인의 시선은 브라운관을 떠나지 못했다.
녹색 교복을 입은 남성이 두어 번 정도 더 클로즈업되고 나자, 백해인이 중얼거렸다.
“쟤가 왜 저기서 나와……?”
백해원이 무슨 소리냐며 백해인을 올려다보았다. 이어지는 백해인의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나 쟤 알아. 우리 학교 앤데.”
“뭐?”
“우리 학교 교복이라고. 쟤 걔지? 김한.”
“아, 깜짝이야. 아니거든? 쟨 김이월이야.”
“본명이야? 예명 아니고?”
“쟤네 다 본명 써.”
백해원이 김샜다는 듯이 대꾸했다. ‘내 아이돌이 알고 보니 내 혈육의 사돈의 팔촌의 이모의 고모의 아들?’이라는 상황을 기대했지만, 역시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백해원의 실망한 어조에도 백해인은 굴하지 않고 말했다.
“아닌데? 진짜 김한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야, 상식적으로 너희 학교에 저런 사람이 있었으면 내가 몰랐겠냐?”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그건 그래.”
백해원은 백해인에게 거짓말 좀 작작하라며 등을 돌렸다.
그러나 정말로, 화면 속 남자는 백해인의 같은 반 학우를 꼭 닮아 있었다.
“쟤 이름이 진짜 김이월이야? 개명한 적 없대?”
“그런 얘기 한 적 없는 거 봐선 아닌 듯.”
백해원의 말에 백해인이 턱을 매만지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걔가 아이돌 같은 걸 할 린 없지.”
“뭐래, 아이돌 무시하냐?”
백해원이 발끈했다. 동생이 그러든 말든 백해인은 태평하게 말했다.
“시비 좀 그만 털어 줄래? 나는 비꼬려는 의도 전혀 없었거든? 하여튼 심보가…….”
“아, 계속 쫑알거릴 거면 좀 꺼져!”
백해원이 쿠션을 집어 던지자 백해인이 잽싸게 피했다. 다년간의 내공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아니, 김한 걔는 공부 잘했었으니까 그렇지. 모고 맨날 개 잘 봤던 것 같은데. 그런 애가 지금 아이돌 하겠냐?”
“너랑 친하진 않았겠네. 넌 빡대가리잖아.”
“어, 축구할 때만 말 섞었다 이 새X야.”
오누이의 사이에선 쉬지 않고 불꽃이 튀겼다.
그러다 백해원의 머릿속에 유난히 똑 부러져 보이던 김이월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김이월이 연습생 생활을 스무 살부터 시작했다는 말도.
백해원이 백해인에게 말했다.
“야, 졸업 앨범 좀 가져와 봐.”
“궁금한 사람이 꺼내서 보세요. 저는 빡대가리라 앨범 같은 게 어딨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아, 짜증 나!”
백해원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었다.
비록 제 손으로 창고를 헤집어야 했지만, 백해원은 넘치는 사랑의 힘으로 엄마 아들의 졸업 앨범을 손에 넣었다.
그곳에는 앳된 김이월의 얼굴과 ‘김한’ 두 글자가 또렷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 * *
≫ 이월이 이름 본명이야?
이 제목을 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그래서 눈을 비비고 글을 다시 읽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 이름이 본명이냐는 문장이 선명했다.
해당 글이 올라온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3시간쯤 전이었다.
검색을 해 보자 비슷한 글이 몇 건 있었다. 다행히 수는 매우 적었다.
느낌상으론 어디서 한번 말이 나온 걸로 카더라가 돌고 있는 듯했다. 커뮤니티라거나 비공개 계정 같은 곳이겠지.
개명을 한 건 맞지. 맞긴 한데…….
‘옛날 이름이 알려지는 건, 좀.’
골치가 아팠다. 내가 전 이름을 끔찍하게 싫어했어서 말이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개명한 걸 알게 됐을 때 ‘그래도 부모님이 지어 주신 소중한 이름이잖아. 바꾸는 게 아쉽진 않았어?’라고 묻곤 했다.
참고로 전혀 아쉽지 않았다. 효도를 제일로 생각하라면서 이름을 ‘효일’로 지어 놓고 막상 자식을 방치했던 걸 생각하면 열이 뻗쳐서 개명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
더 슬픈 건 내가 누나보단 사정이 나았단 거였다.
누나 이름은 출생신고를 했던 지역의 주민센터 명칭을 적당히 줄여서 지었다고 들었다. 그냥 눈에 뵈는 대로 지었단 뜻이다.
누나는 개명까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꾸역꾸역 이름을 갈았다. 나이가 차자마자 바로 개명 신청을 했으니까.
기왕 이번 생에서도 개명이 진행됐으니, 예전 이름은 끝까지 없는 것처럼 살고 싶었다.
스파크에서 나가기 전에 본명이 밝혀지면 민간인으로 돌아갔을 때 ‘김 대리님, 본명이 ‘효일’이었다면서요? 개명한 이유라도 있는 거예요?’라는 말을 들을 게 뻔하지 않은가.
그러나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진 않을 것 같았다.
아이돌 팬들이 어떤 존재인가. 당사자도 잊었던 과거 썰을 놀라운 서치 실력으로 찾아내는 사이버 고고학자들 아니던가.
내가 아무리 내 이름 석 자를 숨기고 싶다고 해도 누군가가 졸업 앨범 한 번만 까발리면 다 끝장날 일이었다.
한평산업에서도 악착같이 숨겼던 이름이지만 어쩔 수 없지. 멤버들에게라도 먼저 내 이름은 김효일이었으며, 효를 중시하는 유교 소년으로 살 뻔했다고 말하는 수밖에.
나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 말을 증명하기 위해 상세 증명서를 발급하려는데…….
“어?”
뭔가 이상했다.
‘개명 후 이름’ 항목은 정확히 ‘김이월’로 되어 있지만, ‘개명 전 이름’이 ‘김효일’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내 교복에 달려 있던 이름인 ‘김한’이 적혀 있었다.
다녔던 학교는 그대로인데 명찰과 이름만 바뀌었다, 라.
그전엔 대학엔 합격했지만 가진 못했고 말이다.
앞서 겪었던 일들을 분석하자면, 지금까지의 현상은…….
1. 물가, 주요 사건, 주가 등의 굵직한 사회적 요인들은 내 기억과 대체로 일치한다.
2. 내 이름, 양친의 거주지, 내 학력 등 개인적인 요인은 시스템이 판단한 기준에 의해 임의로 변경된다.
……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사람이 9년 전으로 돌아온 것도 불가사의한데, 나 하나 아이돌 만들겠다고 인적 사항 조작해 가며 이 XX을 떠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냔 말이다.
심지어 내 개명 전 이름 따위는 아이돌이 되는 것과 하등 상관이 없는 영역이다.
이 부분까지 건드린다는 건 시스템이 KPI 외에도 나를 컨트롤하고 싶어 하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었다.
대체 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이름이 ‘김효일’에서 ‘김한’으로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그렇게 자식들을 버러지 취급했던 인간들이 날 두고 사라진 걸 보면 우릴 향한 그 인간들의 마음이 그닥 달라진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이런 귀찮은 짓을 하는 건데?
지금만큼은 진심으로 시스템과 싸우고 싶었다. 누나만 아니었다면 당장에라도 창밖으로 뛰어내려서, 시스템이 공들여 설계한 이 X같은 짓거리를 전부 무의미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분노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나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대신 나는 머리를 굴렸다. 과거가 기억나지 않는다면 미래라도 예상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며 현황을 되짚었다.
양친이 나에게 가지고 있는 기대치가 박살이 났든, 내게 저번 생보다 더 진절머리가 나서 일찌감치 나를 내쳤든.
가족의 모양새는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달라져 있다.
그리고 가족과 관련된 내 기억은 불완전하다.
두 가지를 조합하자,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가설이 나왔다.
만약 누나 역시 나처럼 본가에서 분리가 되었고, 그로 인해 내가 기억을 온전히 되찾거나 KPI를 전부 달성하기 전까지는 누나와의 접점을 찾는 게 아예 불가능하다면.
그래서 누나가 어떤 상황에 처했건 간에, 정보가 부족한 내가 시스템에 일방적으로 휘둘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
미친 듯이 돌아가던 머리가 순식간에 멈췄다.
“X발!”
나는 두 손으로 식탁을 내려쳤다. 터져 나오는 화를 참으려 애썼다.
여태껏 시스템에 놀아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때 머릿속에 불현듯 지난번에 본 시스템이 떠올랐다.
+
[SYSTEM] ‘책임자’ 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 일하는 데 그게 꼭 필요해?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충분히 고민해 봤어?
[SYSTEM] ‘책임자’ 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비품 목록 줄 테니까 이 안에서 골라. 이렇게까지 챙겨 주는 회사 없다는 걸 김 대리가 좀 알아야 되는데,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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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의 시스템은 분명 기존의 시스템과 달랐다.
평소의 시스템과 같이 업무를 주는 게 아닌, 내게 말을 걸고 내 생각에 반응해 대안을 주었던 것이다.
나는 시스템과의 상호 작용이 가능하다는 가설을 세움과 동시에 시스템을 불러냈다.
시스템은 곧바로 나오진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감정이 시스템에 생생히 전달되도록 분노를 키웠다.
‘XXX야, 나와라.’
시스템은 상스러운 비속어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전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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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책임자’ 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 지금 시간이 몇 시야? 김 대리는 갑이 우스워? 내가 이렇게 아무 때나 연락해도 되는 존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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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고, 너 똑바로 얘기해.’
나는 시스템을 노려보며 물었다.
우리 누나가, 지금 살아 있긴 한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