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79)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79화(79/193)
| 79화. KPI 설계 지원 프로그램 (1)
그간 잘만 나불거리던 시스템은 한참 동안 잠잠했다.
나는 인내심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시스템을 더욱 채근했다.
‘우리 누나, 살아 있냐고.’
이게 확인이 안 되면 KPI고 아이돌이고 알 게 뭔가.
내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앞길 창창한 애들한테 피해까지 끼쳐 가며 이 난리를 치고 있는데.
도무지 화가 가라앉질 않았다. 속에서 천불이 나는 듯했다.
그런 내게 시스템이 나타나 말했다. 짧은 한마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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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책임자’ 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 회사가 만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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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발, 그렇다면 어쩔 건데?
시스템이 나처럼 글러 먹은 인간을 아이돌로 데뷔시킨다는 말 같지도 않은 목표를 지정할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한 게 있었다.
나보다 아이돌에 적합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으며, 산 사람의 시간을 돌리고 죽을 사람을 살려 주는 것보다 간단한 일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 이 일이 오직 내게만 일어났다?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내게?
그렇다면 이런 가설이 나오는 것이다.
내가 누나를 살리기 위해서 의지할 곳이 시스템밖에 없었던 것처럼, 시스템에게도 내가 아이돌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이렇게 귀찮은 짓을 해 가면서까지.
그럼 여기서, 시스템이 필요로 하는 인간인 내가 목적 달성을 우선하지 않고 경로를 이탈하면 어떻게 될까.
가령, 지금 당장 이 건물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KPI 달성 결재가 나기 전에 그간의 업무를 백지화한다든가 말이다.
시스템은 내 사고를 읽을 수 있으니, 내가 하는 생각이 농담이 아니라는 건 충분히 체감할 수 있을 터.
그러니 시스템은 증명해야 할 것이다.
누나가 멀쩡히 살아 있고, 누나에게 향후 벌어질 일에까지 간섭할 수 있다는 걸.
갑질하다가 하나 있는 을이 죽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그 순간 시스템이 노이즈가 낀 것처럼 지직거렸다.
그리고 곧이어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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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책임자’ 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김 대리가 원하는 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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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하라고.
한평산업이 나한테 월급 줄 수 있다는 걸 매달 따박따박 돈으로 증명한 것처럼.
그러자 긴 문서가 나타났다. 새로운 서비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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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은 ‘을’이 KPI 달성에 실패할 경우를 제외한 모든 경우에 ‘을’의 혈연을 외부의 위협 요인으로부터 보호합니다.
▷ ‘갑’은 ‘을’이 요구할 시 ‘을’의 혈연 1인(지정 가능, 1회 지정 후 변경 불가능)의 현황을 사생활 및 ‘비밀 유지 사항 위반’의 기밀에 해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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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서비스’라는 단어로 포장하는 게 말이 되나 싶긴 하지만.
적어도 누나가 아직 무사하고, 내가 허튼 짓만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별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나는 바로 ‘복지 서비스’에 누나를 등록하고 현황 공유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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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복지 서비스’ 이용 내역▷ 관계: 혈연
▷ 건강 상태: 좋음
▷ 심리 상태: 좋음
▷ 기타: 취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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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알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쳤다. 나는 선명하게 빛나는 ‘좋음’ 표시를 한참 바라보다가, 두 손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 * *
번뇌 끝에 새벽 5시에 간신히 눈을 붙였건만 5시 반이 되자마자 알람이 울렸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게 이렇게 거지 같을 줄이야.
잠을 설친 탓인지 머리가 멍했다. 얼굴 한쪽을 두어 번 때리자 잠이 좀 깼다.
나는 세수까지 마친 뒤 익숙하게 프라이팬 앞에서 식빵을 구웠다. 평일 아침이면 눈 감고도 넥타이를 매던 것처럼, 이젠 아예 빵을 굽는 게 학습된 모양이다.
멤버들에게 빵을 나눠 주며 저녁에 있을 라이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충 ‘요즘 인터넷에 내 개명 얘기가 돌아다녀서 댓글로 관련 질문이 올라올지도 모르는데, 개명한 거 맞으니까 그 얘기 나오면 내가 설명할게.’라는 이야기였다.
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모니터링을 금지시켰고, 내 얘기가 SNS에 많이 돌아다니던 건 아니라 모를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형 개명한 거였어요?!’
녀석들은 생각보다도 더 크게 반응했다. 이청현은 아주 화들짝 놀라더라.
강기연도 어쩐지 이름이 되게 특이하다고 생각했다며 맞장구를 쳤다. 앞으로 어디 가서든 이놈들이 딱 이만큼만 리액션해 주면 좋겠다.
예정대로 라이브는 이날 저녁 7시에 시작되었다.
‘[스파크] (2X0319) 과제 후기 발표 시작합니다!’ 라이브의 컨셉은 모든 과제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개운한 마음으로 소소하게 뒤풀이를 하는 조원들이었다.
라이브의 취지에 맞게 멤버들은 전원 투명 메이크업이라는 걸 받고 왔다.
나만 다크서클이 너무 심해서 ‘투명 메이크업처럼 보이는 안 투명 메이크업’을 받았고.
스태프님, 이 자리를 빌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빛나는 이름 머리띠 역시 잊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의 라이브엔 무려 앞에 먹을 게 놓여 있었다.
뒤풀이 컨셉에 빈 식탁을 놓을 수는 없으니 회사에서 먹고 싶은 과자를 하나씩 준비해 준 것이다.
한평산업 탕비실에서 견과류만 꺼내 먹었던 내게 6종 과자 모음은 충분히 호사스러운 간식이었다. 심지어 지난 몇 달간 상당한 식단 관리를 해 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나 보는 이들의 시선에선 이 간식상이 매우 조촐해 보였던 듯했다.
≫ 얘들아…… 설마 그게 간식 전부야?
≫ 사람이 여섯 명이라 간식도 여섯 개만 있는 거 아니지? 아니라고 말해
≫ UA가 간식 먹는 걸로 꼽준다면 포토칩을 흔들어 주세요
스파크의 라이브에 생전 처음 올라온 게 과자 여섯 봉지인 데에 분개한 댓글이 우후죽순 올라왔기 때문이다.
녀석들이 웃으며 평소 간식을 자주 먹진 않는다고 해명한 덕분에 방송은 아주 훈훈했다.
댓글을 못 본 이청현이 모처럼의 과자 파티에 신나서 포토칩을 흔들려고 하는 바람에 정성빈이 경기를 할 뻔한 것 빼고.
이어서 멤버별로 근황을 전하는 시간이 되자, 예상했던 대로 개명 관련 댓글이 하나둘씩 올라왔다.
≫ 이월이 이름 개명한 거야?
≫ 혹시 2월에 태어나서 이름도 이월인 건가요?
≫ 개명한 이유 알려 주세요!
나는 방송을 보는 분들의 궁금증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다른 멤버들에게 더 많은 시간이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능한 한 비슷한 질문들을 모아 읽었다.
“개명 관련 질문이 많네요. 개명한 것 맞고, 지금 이름은 제가 직접 지었습니다!”
“형이 지은 거였어요?”
강기연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미안하다. 개명한 걸 오늘 알려 줬더니 설명이 부족했구나.
“응. 예상하신 분들도 계신데, 2월에 태어나서 이월로 지은 것 맞습니다! 이름을 바꾸면 운이 좀 트인다고 해서 바꿨어요.”
예전에는 이렇게 말하면 다들 개명 사유를 이해해 줬었지. 이때만큼 사주의 존재에 감사한 적이 없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박주우가 독특하고 좋은 이름 같다며 칭찬했다.
실상은 ‘김효일’이라는 이름이 지긋지긋해서 개명 신청하러 가 놓고, 막상 바꿀 이름을 정하지 않았던 탓에 급히 내 신상 정보에서 따다 지은 거지만.
이 와중에 정성빈은 ‘운세는 중요하죠. 암요.’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저 자식, 내가 조상신의 계시를 받고 개명한 줄 오해하는 것 같다.
나는 내게로 쏠린 이목을 분산시키고자 다른 멤버들의 이름 유래를 물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녀석들이 멘트를 치는 동안 댓글을 확인했다.
≫ 얘들아 막방까지 고생 많았어♡
≫ 과자도 6개에 머리띠도 재활용ㅠ 이 시대의 절약돌
≫ 우리 제호 피지컬 개쩐다…… 제호야 어깨너비 좀 재 줘
≫ 이청현 얼굴이 오늘도 나라를 구함
다행히 ‘간식 가지고 쪼잔하게 구는 UA’와 같은 댓글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라이브와 관련된 반응이 주가 되는 게 훨씬 낫지.
‘최제호 어깨 너비…… 이청현 얼굴…….’
나는 댓글에서 언급된 키워드를 최대한 암기하고 나서 진행 중인 대화에 복귀했다.
그 후의 내용은 사전에 정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대 소품은 매번 어디서 샀는지, 활동에서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따위의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렇게 라이브가 막바지를 향해 갈 때쯤, 정성빈이 댓글 하나를 읽었다.
“여기, 얼굴 보고 들어왔다가 무대 보고 입덕한 분이 계시대요. 언제 무대 보셨는지도 알려 주면 안 될까요?”
“오늘 보고 자려고……?”
박주우의 질문에 정성빈이 활짝 웃으며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 무대엔 내가 많이 잡혔을까? 아니라면 좋겠는데.
입덕 계기가 된 무대 영상이 모자이크로 인해 저퀄리티로 떨어지는 건 그분에게 너무 죄송하니까.
“제호 형이 볼펜 부순 날이라는데요? 어차피 볼 거면 저희 이따 다 같이 거실에 모여서 봐요!”
이청현이 잔뜩 신나서 말했다.
최제호를 제외한 모두가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고 있는데도 웃음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 웃었다. 라이브의 분위기가 깨지지 않도록, 아주 신경 써서 말이다.
밤이 되자 녀석들은 정말로 TV 화면 앞에 모였다. 팬분이 입덕했다는 무대 영상을 단체로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참고로 나는 빠질 생각이었다.
이제 같이 있을 날도 얼마 안 남았겠다, 녀석들에게 다섯 명이서 함께 공유할 추억을 만들어 줄 심산이었다.
그러나 내 원대한 배려는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형, 잘 거 아니면 같이 봐요! 맏형이 빠지면 쓰나!’
이청현 놈이 나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요즘 피부 관리 잘하길래 곱게 이름 석 자만 불러 줬는데, 이 일을 기점으로 당분간은 ‘이청현 놈’으로 부르기로 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소파 구석을 차지한 최제호의 옆자리에 앉았다.
녀석 역시 불편한 표정으로 쿠션을 끌어안은 채였다. 그래, 너도 이 상황이 어지간히 적응되지 않겠지.
“다들 앉았죠? 영상 틀게요!”
정성빈의 신호와 함께 영상이 재생됐다.
새파란 조명이 무대 위로 쏟아지고, 대열을 갖춘 여섯 명이 카메라에 담겼다.
놈들은 화면에 누군가가 잡힐 때마다 크게 반응했다. 그러고는 서로를 열심히 칭찬했다.
‘불편하다.’
혼자서만 스파크의 영상을 모니터링해 온 세월이 너무 길어서일까? 다 같이 모두가 나오는 화면을 보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불편한 감정은 내가 혼자서 클로즈업될 때마다 커졌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이 들었다.
나는 결국 위화감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자 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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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을’의 KPI ‘6인조 보이 그룹으로 데뷔’가 확인되었습니다.+
고대해 마지않던, KPI 승인 알림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