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8)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8화(8/193)
| 8화. KPI 수립 (1)
회사에서 데뷔조의 구성에 들어간다.
이 말인즉슨 내가 여기서 삐끗했다간 스파크와 데뷔해야 한다는 과제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았다.
나야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으니 심장을 졸이며 ‘하늘이시여 저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라고 애원할 입장이긴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세기의 재능맨들인 스파크 녀석들마저 어두운 표정이었다.
놈들의 면면을 본 민주경 님이 안쓰럽다는 듯 웃었다.
“다들 긴장 풀고. 응? 지금까지 고생 많이 했으니까, 보상받을 날이 왔다 생각하고 열심히 하기다?”
민주경 님이 충격 속보를 떨어트리고 돌아가자 연습실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박주우가 먼저 보컬 룸으로 들어가고, 최제호까지 빈 물병을 챙겨 밖으로 나가고 나서야 나머지 녀석들도 삐걱대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야 처음 듣는 이야기라지만 이놈들은 평가 시기가 다가온다는 것 정도는 알았을 텐데.
저렇게까지 침울해 하니 ‘평가가 얼마나 박하길래…….’ 싶은 생각부터 들었다.
평가를 못 봐서 떨어지는 건 큰 문제다.
하지만 힘겹게 턱걸이로 붙는다고 한들, 까마득히 실력이 차이 나는 나를 스파크 멤버들이 받아 줄지도 중요한 문제였다. 내가 저 녀석들을 불편해하는 것과 별개로.
아직 턱걸이로 붙여 준다는 사람도 없는데 설레발치는 건가? 나도 참, 생각이 짧다니까.
나는 바싹 마른 얼굴을 두어 차례 쓸어내렸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의 버석함과 피로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자신감이 떨어졌을 땐 기운을 북돋아 주는 주문이 필요했다.
‘월급 고작 그거 받고도 그렇게 일했는데 못할 일이 뭐가 있나…….’ 말이다.
하물며 지금의 보상은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도 다시 살게 해 준다는데 감지덕지하지. 게다가 그 지옥 같은 한평산업을 내 커리어에서 지울 기회 아닌가.
누군가는 이런 기회를 얻고 싶어도 못 가질 텐데. 고민 따위는 배부른 소리였다.
나는 얼굴에 책임감을 빙자한 철 가면을 단단히 둘렀다.
뻔뻔하게 한번 가 보자고.
* * *
민주경 님에게 신입 도와주기를 부탁받은 정성빈은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하게 평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정성빈은 평가 날짜부터 시작해 처음 온 연습생이 주로 준비하는 것과 가이드라인을 차례로 알려 주었다.
“……이렇게 하면 평가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나요.”
“준비할 게 적진 않구나.”
“아무래도 매번 순위가 나오니까요.”
정성빈은 평온한 얼굴로 마케팅 팀의 안 차장님 같은 말을 했다.
안 차장님, 아침마다 지표 보고를 하시느라 항상 피폐하셨지.
정성빈의 얼굴에도 그와 흡사한 삼라만상이 담겨 있었다.
나는 나를 안심시키는 말까지 섞어 가며 설명을 마무리한 정성빈에게 소박한 감사를 전했다.
“고마워.”
“네?”
“너도 준비할 거 많을 텐데 계속 나 도와주고 있잖아.”
내 말을 들은 정성빈이 눈을 크게 떴다. 마치 이런 말을 몇 번 안 들어 본 사람처럼.
확실히 스파크 내에선 많이 못 들었을 것 같은 말이긴 했다. 대부분 자기 할 일은 혼자서 하려고 하는 녀석들이니까.
심지어 이청현을 제외하면 스파크 멤버 전원 표현이 많지 않은 성격이기도 했다.
인사와 감사는 아껴서 좋을 게 없는데. 아무래도 데뷔조 꼽사리만 완료되면 하루에 한 번씩 ‘그랬구나’라도 시켜야 할 것 같았다.
남들한테 업혀 가는 입장이니 나도 뭐라도 기여를 하고 가야 수지 타산이 맞지 않겠는가.
정작 정성빈은 나의 계산적인 생각이 무색해지게 가슴 따뜻한 말을 해 주었다.
“저만 그런 것도 아닌데요, 뭘. 기연이는 다음에도 형이 왼쪽이랑 오른쪽 틀리면 거울 앞에 묶어 두고 알려 줄 거래요.”
“너무 고마워서 콧물이 다 나네.”
멀리서 강기연이 ‘저 뭐요?’라고 소리쳤다.
“어, 너 최고의 교사라고.”
내 말을 들은 강기연이 대체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강기연은 설명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았지만 굳이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녀석들을 솔직하게 칭찬한 것만으로도 내가 스파크에게 쓸 수 있는 오늘분의 긍정 에너지가 바닥났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와 강기연의 거리는 연습실의 끝과 끝이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연습실에는 나와 강기연만 남아 있었다.
UA의 연습 스케줄은 9 to 10 체제로 운영되었다. 금방이라도 고용노동부에 고발당할 일정이었다.
살살 녹는 발등을 수습해야 하는 나는 여기에 매일 추가로 연습을 했고.
그러나 나와는 수준이 확연히 다른 강기연도 오늘은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프면 일찍 들어가서 쉬기나 할 것이지. 그간 쉰 연습을 벌충하려는 게 분명했다.
나로서도 연습실에 혼자 남는 게 마음 편했다. 야간 자율학습 하는데 학생 주임이 내 등 뒤에 서 있으면 될 공부도 안 되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가뜩이나 스파크와 모든 시간을 함께해야 하는 것도 고문 같은 상황이었다.
녀석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누끼를 따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용기 있는 자가 자유를 얻는 법.
나는 하루에 고작 2시간밖에 되지 않는 소중한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강기연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기연아, 안 들어가?”
“형은요?”
“선생님께서 나 연습 많이 하라고 하셨잖아.”
“형 쉬는 시간에도 절반쯤은 연습하잖아요.”
“도와준 너희 성의가 있는데 기본은 해야지.”
내 말을 들은 강기연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 대답했다.
“그럼 잘 안되는 부분은 기억해 놨다가 내일 얘기해 주세요. 저도 오늘은 더 연습할 게 있어서.”
아니, 넌 집에 가라고. 난 혼자 있고 싶다니까?
아픈 사람이 주변에서 계속 돌아다니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회계 팀 한 과장님이 허리 디스크로 쓰러지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런 내 눈에 강기연의 발목은 위험 요소 그 자체였다. 누군가가 풀썩 쓰러지는 모습을 또 보고 싶진 않았다.
“발목 다쳤잖아. 더 쉬어야 하지 않아?”
“무리가 많이 가는 동작이 아니면 괜찮대요.”
대답이 바로 나오는 걸 보니 병원에서 나름 이것저것 물어보고 온 듯했다. 치밀한 녀석.
미성년자인데 집에 안 가도 되냐고 더 묻기도 전에 강기연은 연습실의 반대쪽 구석으로 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자 스파크의 잡지 인터뷰가 떠올랐다.
『Q. 연습실 소등 담당이라는 일화가 있다던데?
성빈: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저희 멤버들이 다 그랬어요. 항상 누구 한 명이라도 추가 연습을 하고 왔던 것 같아요. 다들 성실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도 컸거든요. 무엇보다 데뷔를 꼭 하고 싶었어요. (웃음)』
과거로 돌아오기 전 본, 한평산업에 달린 직업 행성 리뷰도 생각났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불이 꺼지지 않는 등대 같은 회사라고 했었지 아마.’
적어도 한평산업은 밖에서 봤을 때 불이 꺼지지 않는 티가 났었다.
하지만 이놈의 연습실은 지하에 박혀 있어서, 어린 연습생들이 밤새워 노래를 부르든 춤을 추든 무엇 하나 바깥에서 보이는 게 없었다.
이렇게 연습해서 데뷔를 했는데도 스파크는 3년 넘도록 1위를 못 했다. 믿어지지 않지만 현실이 그랬다.
스파크가 데뷔한 아이돌 세상은 월요일 저녁에 급 개최된 회식 자리에 비교하는 것도 실례일 정도인 가시밭길이었으므로.
그렇게 힘들게 데뷔했으면 활동을 더 치열하게 하든가.
모니터링을 대신 뛰어야 했던 내 입장에선 스파크가 열정적으로 활동하지 않은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팬들이 보기엔 좋은 모습이 아니었겠지.
활동기에 라이브 방송을 딱 한 번 켜는 그룹이 어딨냔 말이다.
‘뭐…… 지금은 남 생각할 때도 아니지.’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갈 길이 구만리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혹시 더 남아 있을 거예요?”
한창 거울 속의 나와 씨름하고 있는데 강기연이 음악을 끄고 물었다.
“지금 11신데.”
“11시?”
정말로 시계는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턱밑까지 쫓기는 기분은 남 부장이 내일까지 사무실 책상 배치 좀 바꿔 달라고 했을 때 이후로 간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집에 가 봤자 돌아오는 건 업보뿐일 게 뻔했다.
한 치 앞 정도는 내다볼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한 나는 내일의 나를 위해 좀 더 남아 있기로 결심하며 강기연에게 물었다.
“너야말로 안 가?”
“조금만 더 하려고요.”
“일찍일찍 다녀. 키 안 커.”
기껏 뼈 빠지게 연습했더니 굴러온 돌에게 명절 잔소리나 들은 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참아라. 이게 다 너 미래에 180 못 넘는 거 알아서 하는 말이니까.
미래의 본인이 그걸로 엄청 스트레스받더라고.
비록 팬들은 쟬 173cm 거대 강아지라면서 ‘왕 귀여운 기여니’라고 불러줬지만, 하필이면 그룹에 키 큰 애들이 많으니 더 신경이 쓰인 모양이었다.
여담이지만 나도 저 녀석이 혼자만 푹 꺼진 탓에 꽤나 곤경을 겪었다.
저놈 때문에 SNS 헤더 편집하기가 얼마나 번거로웠는지를 말하려면 140자가 모자랄 거다. 세로 사진 업로드 엄금을 걸고 싶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그래도 이제 막 중학교를 졸업한 애를 한밤중에 혼자 걸어가게 할 순 없었다. 심지어 발목도 안 좋은 애를.
나는 찝찝한 기분을 뒤로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장장 14시간 만에 나온 건물 밖에는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좀처럼 날씨가 풀리지 않아 숨을 뱉을 때마다 하얗게 김이 나왔다.
“발목은 좀 어때?”
“형 그거 되게 자주 물어보시네요.”
“너흰 몸이 재산이잖아.”
내 말을 들은 강기연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비죽거리다 말았다.
부상에 대한 경각심이 없네. 병원비 무서운 줄 모르는 녀석들 같으니.
연습생들 사이에 전체적으로 산업 안전 보건 교육이 시급해 보인다. 20차시씩 강의 듣게 시키면 싫어도 알아서 관리하겠지.
하지만 강기연에게 늦게 자면 키 안 큰다고 잔소리한 건 좀 마음에 걸렸다.
사회인이라면 누구나 상사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개 같은 법 아닌가.
비록 내 존재는 상사라기보단 쥐덫 정도에 불과하겠지만 미안한 건 미안한 거였다.
나는 때마침 불이 켜져 있는 편의점을 가리키며 강기연에게 물었다.
“편의점 들렀다 갈래?”
그러고는 강기연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녀석을 편의점 안으로 밀었다. 물론 강기연의 발목을 고려하여 아주 부드럽게.
체력이 아슬아슬했던 건지 강기연은 매가리 없이 편의점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먹고 싶은 거 골라.”
“왜요?”
“내가 잔소리했잖아. 미안함의 표시야.”
자고로 진정성 있는 사과는 금전적 보상으로 하는 거랬다.
바람 때문에 코끝이 빨개진 강기연이 내 말을 듣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 아, 일찍 가라고 한 거요?”
“응.”
나는 머뭇거리는 강기연을 냉장고 앞으로 몰아넣었다.
강기연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온 음료 하나를 집었다.
비싼 거 먹으라고 하려다, 이 녀석이 샐러드에 소스도 안 뿌리는 극한의 관리돌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얌전히 계산해 줬다.
비록 내 전 재산이라곤 이 피 같은 1,500만 원이 전부였지만.
밤 11시까지 육체노동을 한 학생에게 음료수 하나 사 주는 거라면 누나도 이해해 줄 것 같았다. 어차피 저 돈을 대학에 내기도 글렀고.
결제가 끝난 이온 음료를 넘기자 강기연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1,200원짜리 하나 사 놓고 무슨. 나야말로 연습 도와줘서 고마워.”
“도와주는 게 아니라 구제해 주는 거죠.”
“그건 그래.”
짧은 대화 후 우리는 말없이 숙소를 향해 걸었다. 직장 동료와 함께하는 것처럼 숨 막히는 퇴근길이었다.
내 미래처럼 캄캄한 골목까지 지나자 우리는 숙소가 있는 빌라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입구에서 강기연에게 들어가 보라고 손짓했다.
“형은요?”
“노래방 갈 거야. 매니저님께는 미리 허락받았어.”
“노래방엔 왜요?”
“연습하러.”
강기연이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너도 연습실이 24시간 개방이 아닌 게 아쉽겠지.
나도 일이 밀리는 것보단 철야를 해서라도 해치우는 게 속 편한 쪽이라 그 마음 잘 알았다.
‘뭐, 노래방만 갈 건 아니지만.’
검은 속내를 숨기며, 나는 강기연에게 어서 들어가 보라고 손짓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