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80)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80화(80/193)
| 80화. KPI 설계 지원 프로그램 (2)
‘끝이다.’
소파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그럼 이제 누나에 대한 기억을 되찾을 수 있는 걸까.
누나의 사고도 예방할 수 있고?
한평산업 말고 다른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단 말이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나는 내가 글씨를 잘못 읽은 것은 아닐까, 눈을 깜빡여 가며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시스템에 적힌 문구를 반복해 읽었다.
몇 번을 확인해도 시스템의 글은 그대로였다.
+
[SYSTEM] ‘을’의 KPI ‘6인조 보이 그룹으로 데뷔’가 확인되었습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동시에 나는 머릿속으로 신속히 뒷일을 계획했다.
우선은 다음 자컨이 올라가기 전에 회사에 탈퇴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그래야 다음 영상부턴 내 부분을 잘라서 올릴 테니까.
위약금은 묵혀 뒀던 주식을 전부 팔면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이다. 뭣하면 알바 세 탕 뛰고 머리카락이라도 팔지 뭐.
내가 빨리 나가야 이청현 놈도 내 이부자리를 뺀 자리에 작업용 노트북이나 짐을 둘 테니, 얼른 고시원이라도 잡아야겠지.
혹시 몰라 그간 조금씩 정리해 둔 차기 컨셉 기획안이나 아이디어 목록, 인수인계서는 기획 팀에 USB로 전달할 생각이었다.
‘오늘 라이브 방송에서 나왔던 키워드만 보완해서 드리자. 그리고…….’
나는 눈을 빛내며 자신들의 무대 영상을 보고 있는 녀석들에게 시선을 한번 주었다 거뒀다.
이 녀석들에게도 최대한 빨리 얘기하는 게 좋겠지.
회사에 얘기하기 전에 이놈들에게 먼저 말하는 것이 도리일 듯했다. 내 투입으로 인해 가장 많이 피해를 봤으며, 앞으로도 한참 이미지 손해를 보게 될 당사자들이니까.
내가 계속 남아서 멤버들의 발목을 잡는 것보단 초반에 나가는 편이 팀에도 이로울 것이라는 점이 그나마 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이 파트만 끝나면…….’, ‘이 절만 끝나면…….’이라며 타이밍을 잡고 있던 찰나 시스템이 다시 빛났다.
가뜩이나 예민한데 대체 왜 지금 이러나 싶어, 나는 신경질적으로 시스템을 확인했다.
그곳엔 말도 안 되는 글이 적혀 있었다.
+
[SYSTEM] ‘책임자’ 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내가 이번 성과 봤는데, 김 대리가 그럭저럭 1인분은 했더라고? 하긴, 김 대리도 월급 받는 값은 해야지. 다음 건은 좀 더 열심히 해 봐.
[SYSTEM] ‘을’의 KPI로 ‘스파크 6인으로 음악 방송 1위 달성’이 지정되었습니다.+
무슨 X소릴 하는 거야.
KPI는 이미 달성했잖아? 왜 이게 또 나오는데?
나는 멍하니 시스템 창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전에 보았던 ‘성과 보상’ 항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
+
그러니까 분명, KPI를 달성하면 보상이 주어진다고…….
그 순간 내 시선이 한 곳에 꽂혔다.
‘최종?’
내 기억으로 ‘6인조 보이 그룹으로 데뷔’ KPI 앞엔 ‘최종’이란 단어가 없었다.
나는 설마, 하며 시스템을 불러냈다. 자꾸만 X됨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자 다시 시스템 화면이 변했다. KPI와 관련된, 이전에는 보지 못한 내용이 적힌 창이었다.
+
[SYSTEM] ‘을’에게 ‘KPI 진행 현황’이 고지됩니다.▷ 1차: 6인조 보이 그룹으로 데뷔
▷ 2차: 스파크 6인으로 음악 방송 1위 달성
▷ (이하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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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발.
X발, 이게 말이 되나?
이딴 개 같은 말장난으로 사람을 속인다고?
황당한 나머지 말도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머리가 백지장이 되었다.
허무함과 허탈함에 몸이 떨렸다.
그러니까, 앞으로 몇 개나 될지도 모르는 KPI를 다 달성해야만 최종 KPI라는 놈이 나오고.
그걸 전부 완수해야지 최종 KPI 보상이라는 게 나온다는 거지?
난 그것도 모르고 이별 준비나 뼈 빠지게 하면서 놀아났고?
화가 치밀었다. 시스템이고 뭐고 다 찢어서 쓰레기통에 처넣고 싶었다.
“야, 너 왜 그래?”
내가 속으로 알고 있는 모든 육두문자를 속사포처럼 내뱉고 있는 사이 누군가 내 팔을 흔들며 물었다.
최제호였다.
“형,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은데.”
이어서 정성빈이 걱정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고 보니 거실이 조용했다. 언제 끈 건지, 다른 무대 영상이 일시 정지되어 있었다.
“형 혹시 피곤해서 먼저 자려고 했던 거였어요? 내가 괜히 붙잡았나?”
이청현이 난감한 기색을 표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피곤할 만도 하죠. 저희도 정리하고 들어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서 쉬세요.”
“거실 불, 바로 끌게요……!”
강기연과 박주우도 차례로 한마디씩 덧붙였다.
시스템도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이놈들 데뷔 길에 내가 친 초만 한 바가지다. 나만 아니었어도 고난도 안무를 잔뜩 넣어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신입 남돌 군무’로 입소문을 타든, ‘보컬 전원 천상계인 실력파 남돌’ 소리 들으며 승승장구할 일만 남은 녀석들이란 말이다.
그런데 몇 번씩이나 이 녀석들이 태워 주는 버스 타면서 무임승차나 하라고? 기약 없이?
양심 같은 건 버렸다 생각하면서 이 악물고 데뷔조까진 끼었다. 한평산업이 지옥만큼 싫었고, 누나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내 사리사욕을 위해서 이 녀석들을 몇 번이나 이용할 자신은 없었다.
이 팀에 걸려 있는 인생이 오직 이놈들 몫 다섯 개만은 아니지 않은가.
가슴이 답답했다. 나를 향한 다섯 쌍의 눈과 시선을 맞출 자신이 없었다.
“……미안해, 조금 피곤해서 그런가 봐. 난 신경 쓰지 말고 너희끼리 보던 거 마저 봐.”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그리고 녀석들이 조용히 거실을 정리하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쓰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 * *
당연하게도 나는 한숨도 못 잤다.
활동이 끝난 기념으로 최제호와 이청현이 늘어지게 자고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일 따름이었다.
나는 밤새도록 내가 스파크에 남았을 때의 장점과 단점을 정리했다.
장점으로는 대충 두 가지가 있다.
1. 팀이 데뷔와 동시에 멤버 탈퇴 이슈를 겪지 않아도 된다.
2. 혹시나 앞으로 발생할지 모를 대형 논란을 막을 수 있다.
반면 단점은 수두룩했다.
1. 내 허접한 움직임으로 인해 팀 전체의 수준이 떨어져 보인다.
2. 내가 오래 머물수록 추후 팬이 모자이크 처리해야 할 자료가 많아진다.
3. 외모 평균치가 떨어진다.
4. 팀의 평균 연령이 높아진다.
.
.
.
그리고 무엇보다, 5인조 스파크를 좋아하게 될 미래의 팬에게 실례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다크서클이 짙어져 있을 게 눈에 선했다.
나는 터덜터덜 거실로 걸어 나왔다.
뒤이어 습관처럼 식빵을 구우려다가, 나 같은 새X에겐 식빵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식탁에 앉아 노트북이나 폈다.
때마침 PC 메신저에 매니저님의 연락이 와 있었다.
찬영 매니저님
[얘들아, 오늘 중으로 자컨 아이디어 정리해서 여기에 올려 놔~]멤버 개인의 매력을 보여 주기 위해 비활동기에 준비해 올리려던 개인별 자컨 이야기였다.
기획 때까지만 해도 나는 다섯 명의 주제 예시나 정해 뒀지 내 건 고민하지도 않았다. 이때 찍은 자컨은 내 탈퇴 발표 뒤에나 공개될 예정이었으니까.
“하…….”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초기의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이 팀에 남아야 한다. 그것도 더 높은 목표까지 노려 가면서.
심지어 시간이 무한한 것도 아니었다.
스파크는 데뷔 4년 차에 첫 1등을 했다. 그 뒤로는 성적이 꽤 좋았지만, 그전까지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몇 년 뒤 일어날 누나의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걸 고려하면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 두어야 했다. 언제 또 시스템이 농간을 부려서 뒤통수를 후려갈길지 모르니까.
결론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이 그룹을 1위로 만들고, 남은 비공개 KPI까지 모조리 끝내야 한다는 건데.
그게 되면 내가 한평산업에서 남 부장 졸개 짓이나 하면서 살았겠나.
어제부터 하도 화를 내서 그런지 이젠 머리가 아팠다.
‘1위……. 1위라.’
나는 기계처럼 포털 사이트에 ‘아이돌 1위’를 검색했다.
최근 음악 방송에서 1위를 차지한 아이돌들의 뉴스가 주르륵 떴다. 쟁쟁한 라인업이었다.
이걸 뚫고 스파크가 1위라. 나라는 모래주머니까지 달고서?
음, 절대 안 되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다섯 명의 1위를 앞당기는 거면 모를까, 나까지 껴서 스파크가 1위를 하는 그림은 상상이 가질 않았다.
내 시선은 곧 매니저님의 메시지로 옮겨 갔다.
1위라는 먼 미래를 고민하기 전에 이쪽이 더 시급하긴 했다. 탈퇴할 생각만 하느라 내 자컨 같은 건 생각도 안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초에 내 자컨 같은 걸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긴 할까?
다크서클을 가리려고 기초화장을 빡세게 하고, 새벽엔 이름 머리띠나 만드는 데다가, 장기 자랑이라곤 지하철 노선도 외우기와 직업 행성 별점 맞히기밖에 없는 무능한 남돌의 라이브를 말이다. 나 같아도 볼 마음이 뚝 떨어진다.
나는 그나마 스파크의 자컨을 모니터링하면서 재밌었던 콘텐츠로 뭐가 있었는지를 떠올리려 애썼다.
그리고 장렬히 실패했다. 이것들이 팬들도 인정한 노잼 그룹이었다는 걸 잠깐 잊고 있었다.
‘스터디 윗 미…… 같은 거 하면 안 되나.’
기말고사 대비 다 함께 공부해요! 같은 느낌으로 가고 싶었지만, 고등학교 졸업한 지 한참 된 아저씨가 속에 들어찬 이상 이 역시 재미가 없을 게 자명해서 관뒀다.
남 영상 소재 짜는 건 자신 있다. 하물며 스파크가 대상이라면 멤버별로 할 일을 스무 개씩 짜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 혼자서 뭘 하는 게 좋겠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었다.
골머리를 앓던 그때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자 강기연이 하품을 하며 나오고 있었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늦잠 주무실 줄 알았는데.”
“눈이 일찍 떠져서. 너야말로 토요일인데 일찍 일어났네.”
“습관이 돼서요.”
노트북이 켜져 있는 걸 본 강기연은 아침부터 뭘 하냐고 물었다. 나는 인터넷 창을 하나둘 닫으며 대답했다.
“매니저님께서 자컨 뭐 할지 정해서 알려 달라고 하시길래 고민 중이었어. 넌 정했어?”
“형이 준 리스트 보면서 어느 정도 후보군만 생각해 뒀어요. 안 그래도 이따 형한테 여쭤보려고 했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괜찮지. 그런데 내가 문제야.”
“왜요?”
강기연이 맞은편 의자를 빼내 앉으며 질문했다.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어서.”
“저희 건 열 개씩 찾아 주지 않았어요?”
“내가 하려니까 이거다 싶은 게 없더라.”
내 말을 듣던 강기연이 별 고민 없이 말했다.
“형 그거 하면 되잖아요.”
“뭐?”
“‘무엇이든 대답해 드립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