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81)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81화(81/193)
| 81화. 구내식당 오픈
무엇이든 대답해 드립니다?
“그게 뭔데?”
내가 묻자 강기연이 대답했다.
“형 팬카페에 올라오는 글에 답변 거의 다 달잖아요. 그런 거 하면 안 돼요?”
강기연 말대로, 나는 스파크 팬카페에서 FAQ 태양신처럼 답변을 달고 있었다.
≫ 얘들아 라이브 끝나고 과자 다 먹었어?
└ 조금 남아서 밀봉 집게로 집어 놨어요. 오늘 제일 인기 많은 과자는 벌꿀피자였습니다! 🙂
새 글이 올라오는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하루에 30분만 투자하면 충분히 달더라.
댓글을 올린 당사자는 나 말고 다른 멤버의 답글을 원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정보가 늘어나는 건데 기분 상하진 않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달았다.
“그러게. 좋다.”
강기연의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 집중도도 낮출 수 있고.
“그럼 형 질문 모아야겠네요?”
“평소에 모아 둔 거 있어서 괜찮아. 이벤트성으로 조금 더 모으는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평소에 그런 건 왜 모은 건데요…….”
강기연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누군들 모으고 싶어서 모은 줄 아냐.
이렇게 나는 한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했다.
영상을 나부터 찍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기 전까진 말이다.
“저부터요?”
나는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가리키며 매니저님에게 물었다.
연습실에 오늘 처음 와서 하는 말이 ‘자컨은 이월이부터 찍게 될 것 같아!’라니.
‘리더는 정성빈인데 왜요?’라고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나는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어른이니까 참았다.
그리고 매니저님은 그런 어른스러운 내 마음가짐을 산산이 짓밟았다.
“응. 이월이 네가 생일이 제일 빠르잖아. 나이순으로 간다네.”
요즘 같은 때 아직도 나이를 운운하다니, 너무 고리타분하지 않나?
도리상 대장님 제일 먼저 앞세우고 나머지는 실력순으로 내보내 줘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고작 2월에 태어났다는 죄로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을 것 같은 영상을 찍게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를 제물로 삼아 다른 놈들의 조회수가 급등하길 기원하는 수밖에.
‘그런데 누가 내 자컨에 관심 같은 걸 가질까?’
내가 이 그룹 팬이라면 직캠만 봐도 뚝딱이인 걸 알 수 있는 구멍 멤버에겐 눈길조차 주고 싶지 않을 것 같은데.
보는 사람이 없다고 대충 하진 않을 거지만 영상 팀에서 촬영을 지원해 주는 만큼의 성과는 있어야 할 텐데. 큰일이다.
“뭘 그렇게 혼자서 중얼거려?”
최제호가 건들건들 다가와서 물었다.
“자컨 때 뭘 해야 하나 하고. 혼자서 20분 꽉 채울 분량 뽑는 거, 생각보다 어렵잖아.”
“흠.”
남은 진지하게 고민 중인데 저 혼자 아주 태평하다.
그런데 잠시만. 네가 지금 태평할 때는 아니지 않냐?
나는 조금 얼떨떨해진 채로 물었다.
“넌 걱정 안 돼?”
“난 댄스 메들리로 10분 채울 듯.”
이 새X 봐라?
“태도 뭐냐? 벌써 나사 빼놓고 다닐래?”
내가 정색하고 말하자 최제호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비단 언짢다기보다는 당황한 기색도 있는 듯했다.
“아니, 나 대충하려고 한 거 아니거든?!”
최제호가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우리 앨범이 수록곡 포함해도 10분이 안 되는데, 고작 두세 곡 가져다 메들리 운운하는 게 대충하겠다는 뜻이 아니면 뭐야?”
“커버 댄스 할 거였다고!”
아. 그 얘기였어?
확실히 댄스 멤버이자 센터인 최제호에겐 항상 커버 댄스에 대한 수요가 있었다. 이전에 눈에서 진물이 나도록 봐 놓고 그걸 어쩌다 잊은 건지.
최제호 본인이 이런 기특한 의견을 내다니 머릿속에서 전산 오류가 난 게 아닐까 싶었지만 이번 일은 엄연히 내 실수였다. 나는 녀석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오해했어.”
“됐어. 그런데 너 뭔 일 있냐?”
“나? 왜?”
“예민하게 굴잖아. 어제부터 계속.”
내가?
생각지도 않고 있던 부분이었다. 이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어 내가 최제호의 말을 잘 이해했는지 곱씹기까지 했다.
아니, 물론 시스템 때문에 어제부터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긴 했는데…….
일전에 정성빈이 내 불편함을 눈치챈 것보다 더한 충격이었다.
이번 상대는 무려 최제호 아닌가. 무신경하기로는 북극곰보다 더한 녀석일 텐데.
이놈이 나를 보고 예민하다고 느꼈다면 다른 녀석들은 나를 얼마나 불편하게 여겼을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피곤해서 그랬나 봐. 지금은 괜찮아.”
“그럼 됐고.”
그러더니 최제호는 등을 돌려 제 할 일을 하러 가 버렸다.
막차 타 놓고, 실력은 제일 부족하면서, 나이를 무기로 잔소리까지 하는 애가 ‘나 지금 예민해요.’라는 티를 팍팍 내며 돌아다니는 숙소라니.
“최악이야.”
단전에서부터 깊은 한숨이 나왔다. 아무래도 나사는 내가 빼놓은 모양이다.
* * *
나는 기분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아주 실망했다.
그래서 반성하는 의미로 사죄의 일기를 앞뒤로 빼곡하게 세 장이나 썼다. 손가락이 부러지는 줄 알았다.
멤버들에게도 숙소 분위기를 해쳐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온순한 놈들답게 다들 ‘저흰 잘 못 느꼈어요! 사과 안 하셔도 돼요!’로 일관했지만.
비뚤어진 태도를 고쳐먹기 위해 나는 자진해서 암암리에 멤버들의 수발을 들었다.
신발장에 습기 제거제도 사다 넣어 놓고, 베란다 물청소도 깨끗하게 했다. 무려 아무도 모르게.
그나마 지금이 비활동기여서 다행이지.
활동기였다면 한 손으로는 거실 바닥을 닦고 한 손으로는 기획서를 쓰며 양발로는 스텝 연습을 해야 했을 거다.
혼자 이러는 걸 들켰다간 숙소 규칙에 의해 전원이 집안일을 하게 되니, 오늘 아침에도 몰래 우렁 신랑처럼 숙소를 치우고 있었는데…….
“거기서 뭐 해?”
보리차 끓이려고 부엌에 갔다가 최제호와 이청현이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걸 목격해 버렸다.
“저희 그…… 설거지할 거 없나 하고요!”
“내가 아까 다 했는데?”
애초에 이 숙소엔 설거지랄 것도 별로 없다. 뭘 먹는 놈이 있어야 설거지가 나오든가 하지.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하다 걸린 이청현은 바로 물러났다.
나는 최제호를 보며 눈으로 물었다. 대충 ‘너는 뭐라고 변명할 생각이냐?’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최제호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이청현이 김치전 먹고 싶대서 일단 나와 본 건데.”
“아, 형!”
“둘이서 아주 작당 모의를 하고 있었구나?”
바깥을 보니 푸슬푸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직 아침이라 그런지 바깥에선 빗소리만 들려왔다.
이런 날 전 생각 안 나기 쉽지 않지.
나는 뻘쭘해하는 녀석들을 쳐다보다 물었다.
“해 줘?”
“네?”
“부침개. 맛있게 한다는 보장은 못 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꼬치전 전문가라서 말이다.
그래도 좋은지 이청현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꽃이 다발로 핀 줄 알았다.
내가 몸을 숙여 싱크대 밑에서 프라이팬을 찾는 사이 이청현이 최제호에게 말했다.
“형, 형 어머님 김치전 레시피 알아요?”
“모르는데.”
“왜? 최제호네 김치전이 맛있어?”
내가 묻자 이청현이 고개가 떨어지도록 끄덕였다. 그러더니 속사포 랩처럼 최제호 군의 어머님 표 김치전이 얼마나 맛있는지 열변을 토했다.
“제가 진짜 딱 한 번 먹어 봤거든요? 저 그런 맛있는 김치전 처음 먹어 봤잖아요. 형도 그거 알죠? 전은 가장자리가 제일 맛있는 거? 그런데 제호 형네 어머님 전은 가운데도 바삭해요. 분명 탄 건 아니거든요?”
“……그 정도인가?”
“그 정도요? 와, 참나.”
최제호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리자 이청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형이 어머님표 김치전의 가치를 모르나 본데요. 그 전은 주우 형도 맛있다고 했었어요.”
“박주우가?”
예상외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최제호가 약간 놀랐다. 덩달아 나도 좀 놀랐다.
“걔가 뭐 맛있다고 한 적이 있었나?”
최제호가 물었다. 진심으로 궁금한 표정이었다.
“그 형은 원래 살기 위해 먹는 과잖아요? 음식이 있으니까 먹는다, 이런 느낌. 그런 주우 형이 맛있다고 했으면 이건 보장된 거죠.”
그건 그랬다.
입맛도 본인의 성격을 따라가는 건지, 박주우는 기름진 것보다 담백한 것을, 자극적인 것보단 순한 것을 좋아했다.
강기연이 자기 관리를 위해 소스 없는 샐러드를 먹는다면 이쪽은 채소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 소스를 치우는 편이었다.
‘마실 게 탄산밖에 없으면 탄산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으니까.’
하지만 추석 때 박주우가 동그랑땡 맛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건 기성품이라 통과했나.
어쨌든. 자발적 노비가 되기로 한 마당에 도련님들이 김치전 자시고 싶어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상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나는 최제호의 어깨를 붙잡고 내 쪽으로 돌려세웠다.
“야.”
“왜?”
“어머님께 레시피 좀 받아 와라.”
* * *
“여보세요? 어, 엄마…….”
나와 이청현이 양쪽에서 갈구는 걸 견디다 못한 최제호는 결국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러게 진작 어머님께 요리 좀 배웠으면 얼마나 좋아.
그렇게 내가 이청현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창틀 먼지를 닦고 있던 와중 부엌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야, 뭐 깼냐?”
“싱크대 부서진 거 아니에요?”
나와 이청현은 한마디씩 하며 걸레를 집어던지고 부엌으로 뛰어갔다.
그러자 싱크대와 식탁 사이에 쪼그려 앉은 최제호와, 놈 앞에 와르르 쏟아진 프라이팬들이 보였다.
“아, 내가 뭐 좀 쏟았어. 엄마, 프라이팬 뭐 쓰라고?”
최제호는 큼지막한 프라이팬을 양손에 하나씩 들더니 미간을 팍 찌푸렸다.
그 뒤로 이어지는 최제호의 통화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부침 가루? 몰라. 밀가루는 안 돼?”
“적당히 쉰 김치? 얼마나 쉬어야 적당히 쉰 건데?”
“먹으면 안다고? 우리 숙소에 김치 하나밖에 없는데.”
최제호가 마지막 질문을 날리자 수화기 너머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최제호네 어머님의 인내심이 바닥나는 소리 같았다.
순간 나는 어쩐지 미래를 보고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팬케이크처럼 두툼한 김치밀가루빵 여섯 덩어리를 흥건한 기름과 함께 먹는 모습 말이다.
입가가 김치 기름으로 번들번들해진 다섯 놈들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내 손은 이미 최제호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왜?”
최제호가 물었다.
‘왜?’ 같은 소리 하네.
전화기나 내놔, 이 새X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