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83)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83화(83/193)
| 83화. 우리 회사 만능 엔터테이너 (2)
짧은 전화를 통해 매니저님에게 전해 들은 전말은 이랬다.
지난번 출연했던 달밤의 대화 DJ, 폴로 씨가 속해 있는 그룹 헬라스는 해외 투어를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방송사는 폴로 씨의 대타를 채우기 위해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단다. 후보는 모두 자신의 라디오에 애착이 있는 폴로 씨 본인이 선정했고.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헬라스가 너무나도 글로벌 스타인 나머지, 해외 투어를 지나치게 오래 돌게 되면서 공석이 너무 많이 생긴 것이었다.
덕분에 폴로 씨의 지인들이 총출동했음에도 자리가 하나 비게 되었는데…….
― 폴로 씨가 널 추천했다던데?
그분께서 그 자리에 날 넣었다지 뭔가. 폴로 씨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보는 눈이 없으시네.
라디오 나갈 시간 같은 거 없다. 난 바쁘단 말이다.
아침엔 식빵 구워야지, 오전엔 목이 찢어져라 노래해야지, 점심엔 샐러드 받아 와서 날라야지, 오후엔 몸이 부서져라 춤춰야지, 저녁엔 저염식 도시락 차려 줘야지, 밤엔 시스템과 씨름하며 스파크를 어떻게 하면 비겁하게 음악 방송에서 날치기로 1위 시킬지 고민해야지…….
머리가 여섯 개여도 연산을 못 따라갈 지경이다. 메이크업을 담당하시는 스태프분께서 제발 휴식기에 잠 좀 많이 자고 오랬는데. 이러다간 컴백해서 또 혼나게 생겼다.
― 게다가 그날 게스트로 나오는 그룹이 파르테래. 청취율도 그렇게 낮진 않을 거야!
매니저님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끈 없는 아이돌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겠지.
그와 반대로 내 기분은 점점 바닥까지 추락했다.
폴로의 공석에 같은 MYTH 출신인 아이돌들을 두고 내가 들어간다?
심지어 그 회차에 게스트로 MYTH에서 전폭적으로 밀어줘야 할 신인 그룹이 나오고?
파르테 팬이라면 이 상황을 아주 요상하게 볼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당장 라디오 측과 파르테의 스케줄표만 떠도 커뮤니티는…….
≫ 게스트랑 DJ석이 바뀌어야 할 것 같은데^^; ㅋㅋ;;
└ 그니까여…… 우리 메댄들 라디오 나가면 매번 10인분씩은 하는 애들인뎅…… ㅋ큐ㅠㅠㅠ
≫ 아니 MYTH야
지금 누굴 챙겨야 되는지 몰라??? ^^^^^^^^
……이렇게 될 거다. 눈앞이 캄캄하군.
우리보다 먼저 활동 끝난 파르테가 전원 출연한다는 것부터 충분히 한솥밥 먹는 식구들에게 메리트를 준 거라고는 생각한다.
그래도 생판 남인 나한테 단독 진행을 주는 건 아니지. 내가 파르테였어도 서운했겠다.
하지만 데뷔 3주차인 신인 아이돌 그룹의 구멍 멤버에게 단독 DJ 기회를 걷어찰 자격은 없었다.
팀을 알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엎드려 빌기라도 해야 할 입장이면 모를까.
나는 전화기 너머의 매니저님에게까지 내 의욕이 닿도록 힘차게 외쳤다.
“정말 영광이네요!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참아라, 김이월. 이게 다 1위를 위한 밑거름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정말이지, 9년 후에 주인 없이 홀로 남아 있을 내 작고 소중한 원룸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 * *
결전의 날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그동안 내가 무진장 바빴기 때문이다.
근로 지원 서비스를 추가로 받은 것도 모자라서 대출은 안 해 주냐고 물어볼 뻔했다. 이게 비활동기가 맞나?
“이월아, 너 진짜 그 옷으로 되겠어?”
운전을 하시던 매니저님이 신호에 걸린 틈을 타 내 쪽을 보며 물었다.
‘그 옷’이라 함은 검은색 베이스에 검붉은 기하학적 무늬가 잔뜩 들어간 내 상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럼요.”
내가 이걸 찾느라 지하상가를 얼마나 찾아 헤맸는데.
검은색을 배경으로 한 검붉은 무늬는 파르테의 공식 색상이었다.
무늬가 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며칠을 거듭해 발품을 판 끝에 화면상으로는 제법 흡사하게 보일 만한 옷을 찾았다.
“그 팔찌도 끼고 갈 거고……?”
이번에는 매니저님이 내 손목을 흘끔 쳐다보았다.
오늘 아침 정성빈의 도움을 받아 둘둘 감고 온, 가짜 가시덤불로 만든 임시 팔찌였다. 천원샵에서 가짜 장미꽃 사다가 머리만 떼어서 만들었다.
“당연하죠!”
나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파르테 뮤직 비디오의 음산함을 재현하려면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가뜩이나 몇 달 선배님들 제치고 라디오 진행하게 된 마당에 눈 밖에 나 봐야 좋을 거 하나도 없다.
그러니 파르테 홍보나 열심히 해 주고, 광고 나갈 때 슬쩍 스파크 노래 한번 트는 것이 오늘의 내 목표다.
멤버들아, 기다려.
내가 『Flowering』 꼭 한번 라디오에 재생시키고 올게.
* * *
세련됨을 철저히 포기한 내 패션은 라디오 작가님들께 큰 웃음을 선사했다.
‘이월 씨, 그거 설마 개인 사복이에요?’
‘게스트 존중형 맞춤 의상입니다!’
그런 옷은 어디서 구했냐길래 지하상가에서 12,000원 주고 샀다고 했더니 또 한바탕들 웃으셨다. 오늘부터 이 구역의 해피 바이러스는 나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작가님 한 분께 간단한 설명을 듣고 있는 찰나 스튜디오의 문이 열렸다.
스파크가 게스트로 출연할 땐 각자 일찍 대기실에 도착했다가 인사를 드리고 설명을 들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파르테가 거의 정시에 도착한 탓에, 우리는 녹음 부스에서 정신없이 인사를 나누게 됐다. 하긴, 인사에 장소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안녕하십니까! 스파크 김이월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아하하. 그래요.”
파르테의 리더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토닥거렸다.
웃음소리만으로도 꼰대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내 생기 넘치는 꼰대 레이더가 이놈도 쎄하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일단은 내 할 일이나 제대로 하고 봐야지.
그때 뒤에서 누군가 픽 하고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송민일이었다.
내 차림새를 본 녀석이 중얼거렸다.
“튀어 보겠다고 애쓰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지만 저 새X, 분명 열심히 비웃고 있을 거다.
하지만 생각을 해 보세요, 민일 씨.
제가 튀고 싶었으면 황금 왕관 쓰고 나왔지, 네놈들 뮤비에 2분 내내 나온 가시덤불을 차고 왔을까요?
그보다 나 지켜볼 시간이 있으면 뒤에 있는 네 멤버들 표정도 좀 봐라. 애들이 하도 놀라서 간이 다 쪼그라들었겠다.
‘너희 팀 생각해서 이러고 온 건데 왜 꼽 주세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송민일 뒤에서 삶은 고사리처럼 쪼글쪼글해진 애들이 조금 가여워서 참기로 했다.
과연 송민일이 언제까지 주둥이를 풀어 두려나 두고 보는데 리더가 나섰다.
“민일아,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야. 후배님 기죽잖아.”
파르테보다 두 달쯤 늦게 데뷔한 김이월 씨는 선배님의 배려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 저걸 제지라고 해도 될지는 의문이지만.
“긴장하면 원래 잘하던 것도 실수할 수 있으니까, 마음 편히 가지고 해요.”
파르테의 리더가 말했다.
제 딴에는 나름 본심을 숨기고 사람 좋은 척하는 것 같은데 내 눈엔 이미 보인다. 저 말의 본의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실수하지 마라.’라는 게.
‘실수하는 건 이쪽도 사양이니까 상관없지만.’
경영학과 재학 중 했던 발표 nn번, 한평산업에서 했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PT nnn번.
그간 녹취 따느라 무수히 들었던 스파크 라디오.
여기에 오늘의 일일 DJ를 위한 폴로 씨 모니터링까지.
미안한데, 너희나 말 안 씹게 잘해야 할 거다.
이쪽은 준비 끝이거든.
* * *
홍콩에서의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
뒤풀이 자리까지 마친 멤버들이 녹초가 되어 앉아 있는 벤 안에서 헬라스의 메인 래퍼, 폴로가 핸드폰을 꺼냈다.
뒤이어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내는 폴로를 본 헬라스의 리더, 유르가 조수석에서 몸을 돌려 폴로를 쳐다보았다.
유르는 폴로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한 번, 폴로를 한 번씩 보더니 물었다.
“라디오 모니터링하게?”
“응. 지금쯤 최신 회차분 떴을 거라.”
폴로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피곤하진 않냐든가, 방금 콘서트가 끝났는데 좀 쉬라며 걱정의 목소리를 보탰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함께하고 있기에 나올 수 있는 말들이었다.
폴로는 멤버들의 걱정 가득한 말에 기운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들 아직도 내 체력을 모르나 봐? 나 아직 쌩쌩해!”
“그래, 너 잘났다…….”
체념한 듯한 모 동료의 말에 모두가 폭소했다.
“채준이가 달밤대에 애착이 많잖아. 가뜩이나 이번엔 공백도 긴데 얼마나 신경 쓰이겠어.”
이런 상황이 올 때마다 폴로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건 유르뿐이었다. 폴로는 리더의 이런 다정한 면을 좋아했다.
“준이는 얼른 라디오 들어. 나머지는 숙소 도착할 때까지 좀 자는 게 좋겠다.”
“옙.”
리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벤 안은 금세 조용해졌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해외 투어를 한 번 하고 나면 몇 키로가 빠지는 건 예삿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폴로에게는 그 피로감을 넘어서는 애정이 있었다. 자신이 다년간 DJ를 맡아 온 라디오에 대한.
일을 잡아 온 소속사에서조차 ‘아이돌이 하는 방송은 아이돌 팬이나 듣겠지.’라는 말을 했을 때 폴로는 생각했다.
‘아이돌 팬은 청취자도 아니야?’라고.
바로 그날 폴로는 목표를 세웠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연예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게스트로 누가 나오든 한 번씩은 들어 볼 채널을 만들겠다고!
게스트에 따라 청취율이 변하는 아이돌 라디오에서 폴로의 결심은 무의미한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거물급 게스트를 모실 수 있느냐에 따라 방송이 잘될지 안될지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로는 정말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 노력은, 폴로의 채널이 ‘게스트빨’이라는 무례한 단어에서 완전히 벗어나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으며 결실을 맺었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며 폴로는 라디오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폴로는 불가피한 사유가 생겼을 때면 꼭 자신의 대타를 본인이 엄선해서 섭외까지 해 놓고 자리를 비웠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회차의 DJ를 맡게 될, 신인 그룹의 멤버는 이례적인 라인업이었다.
처음 DJ 후보 리스트를 본 그의 리더가…….
‘이번에 데뷔하신 분한테 섭외 연락을 넣었다고?’
‘응. 한다고 했으면 좋겠다!’
‘하겠지. 하지만 의외네.’
……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리더의 말끝에 ‘연차가 어느 정도 있지 않으면 추천 안 하는 줄 알았는데.’란 말이 붙으려다 만 것도 폴로는 알았다.
유르의 말마따나 폴로의 선택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같이 일하는 라디오 작가들도 다들 놀라셨었으니까.
하지만 스파크의 라디오를 듣지 않은 유르와 달리, 그날 현장에 있었던 작가들은 이내 폴로의 선택에 흥미를 가졌다.
‘폴로 씨도 느꼈구나? 뭔가 똑 부러진 이미지가 있지? 말도 잘했잖아.’
‘인터뷰지도 엄청 일찍 받아 갔었어. 마도 하나도 안 뜨고, 애들이 준비 많이 해 온 것 같더라.’
‘신인치고 오디오도 안 겹치고.’
매주 다른 아이돌과 일하는 작가들에게 이 정도의 인상을 남기는 건 운이 아니라 재능이다. 폴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한번 찔러 봤다.
그 말 잘하는 여섯 명 사이에서 발군으로 말을 잘하고, 가장 눈에 띄는 데다가.
라디오 첫 출연에서도 쫄지 않는 담대한 심장을 가진 신인 그룹의 맏형, 김이월을 말이다.
다시 보기를 재생하자 광고가 흐르는 빈 스튜디오가 보였다. 폴로는 이어폰을 하나씩 끼고 볼륨을 높였다.
‘오늘도 그 웃긴 머리띠 쓰고 왔으려나.’
기왕 쓸 거라면 이번엔 DJ로 오는 만큼 본인 이름이 아니라 파르테의 그룹명이라도 만들어서 쓰고 오는 게 나을 텐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폴로는, 화려한 프린팅 무늬 티셔츠로 상체를 감싸고 대본을 든 채 입장하는 김이월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