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85)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85화(85/193)
| 85화. 우리 회사 만능 엔터테이너 (4)
나는 어린이들의 기쁨을 뒤늦게 질투하며 괴로워하는 이청현의 마음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했다.
가정의 달을 맞은 어린이의 기쁨 같은 거 나도 모른다. 애초에 어린이날 선물이라는 걸 받아 본 적도 없고.
단지 나는 레퍼런스로 쓰란 의미에서 준 의견이었는데 이청현에겐 참고 대상에게 공감하는 게 꽤 중요한 모양이었다. 이게 창작자와 직장인의 차이일까?
나는 ‘미튜브에서 활기찬 어린이들 영상 찾아 줘?’라고 말하려다, 고운 얼굴로 죽을 쑤기 직전인 이청현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비상이다. 저 얼굴 없으면 1위 못 하는데!
나는 세상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번뜩이는 재치를 발휘해 비장의 해결책을 찾아냈다.
“일어나서 선크림 발라.”
“네?”
“나갈 거니까 선크림 바르라고!”
* * *
“……작곡에 참고할 게 있어서 나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사진사가 필요하다는 죄로 끌려온 강기연이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그런 강기연의 등 뒤에서 돌연 물기둥이 뿜어져 나왔다.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물 쇼였다.
“맞아. 어때, 청현아. 영감이 솟구칠 것 같지?”
“분수가 기가 막히게 솟구치긴 하네요!”
이청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맨바닥에서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내가 놈들을 이끌고 온 곳은 아이들의 성지라는 아이들대공원이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곳 중에선 여기에 애들이 제일 많았다.
“초등학생 때 이후론 여기 올 일 없을 줄 알았는데…….”
강기연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너는 초등학생 때 오고 안 왔구나. 나는 초등학생 때도 안 왔던 아이들대공원을 스물여섯 때 처음 왔단다.
‘그것도 한평산업 신제품 스냅 사진 찍어야 하는데 인력이 없다고 해서 말이지.’
씁쓸한 추억에 젖기도 전에 큰 웃음소리와 함께 킥보드를 탄 어린이 두 명이 우리 옆을 쏜살같이 지나갔다.
나는 이청현의 어깨가 내려앉기라도 할까 봐 대신 짊어지고 온 백팩에서 작곡 노트와 필통을 꺼내 주었다.
“자. 너는 오늘 진도율 60% 달성할 때까지 숙소 못 간다.”
“큰일이다. 여기 혹시 노숙도 된대요?”
“응, 너 같은 말썽꾸러기 어린이는 3일까지 노숙 가능하대.”
빈 의자에 이청현을 앉혀 놓는 사이 강기연이 다가와 물었다.
“그럼 전 뭐 해요? 진짜 얘 사진만 찍어요?”
“어. 가끔 저기 자연광 밑에 가서 셀카도 찍고 와.”
“형은 뭐 하고요?”
“나는 동영상 찍어야지.”
그러면서 나는 백팩 깊숙한 곳에서 캠코더를 꺼냈다. 촬영 팀에 양해를 구하고 빌려 온 비품이라 신줏단지 모시듯 챙겨 왔다.
“이것도 자컨으로 올리게요?”
강기연의 질문에 이청현이 화들짝 놀랐다.
“형! 이것도 콘텐츠로 올라가요? 저 좀 부끄러운데?!”
“안 올라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찍는 거야.”
자신의 창작물에 아직 자신감을 보이기 어려워하는 이청현을 두고 ‘네가 곡을 쓰는 모습을 모두에게 공개할 거야!’ 따위의 짓을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어디까지나 만일을 대비하고 싶을 뿐이지.
어느 날 UA가 포카용으로 모아 둔 사진 이미지를 죄다 분실했다거나, 이놈들이 찍은 사진이 죄다 초점이 안 맞아서 포카에 실으려고 확대했더니 픽셀이 깨진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팬 송 뮤비에 영상을 넣어야 하는데 4분 30초가 도저히 안 나온다든가 하는 사태를 대비해서 말이다.
이런 내 머릿속을 읽을 수 없는 녀석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뭐 해? 각자 할 거 안 하고?”
“허…….”
내 말에 두 녀석이 똑같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나도 바빠.
* * *
따사로운 봄볕이 내리쬐는 3월 초의 드넓은 공원.
시원한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부서지듯 흔들리며 서로 부딪히는 소리.
어디선가 계속해서 밀려오는 꽃향기, 아이들의 웃음소리, 물줄기가 솟아오르는 소리, 그리고…….
벤치에 앉아 죽을상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순수한 즐거움의 원천에 대해 고뇌하는 신인 아이돌 한 명과 그놈을 맞은편에서 열심히 찍고 있는 또 다른 신인 아이돌 한 명, 이 모든 광경을 뙤약볕 밑까지 기어 나와 쭈그려 앉은 채 캠코더로 녹화 중인 회춘한 아저씨 하나까지.
멋진 조합이다. 올해의 풍경에 선정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훌륭한 그림이다.
사진을 죄다 역광에서 찍는 바람에 내게 10분 정도 족집게 강의를 들은 강기연은 이젠 눈까지 빛내며 최고의 피사체를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기연아, 사진 몇 장이나 찍었어?”
“200장 넘은 것 같은데요.”
“네 셀카는?”
“세 장이요.”
“그럼 이제 이청현 그만 찍고 네 셀카 찍으러 다녀와. 공원 안에서만 돌아다니고, 스무 장 이상 찍기 전까진 돌아오지 마라.”
“예.”
그러더니 강기연은 순순히 자리를 떠났다.
녀석이 엄청난 셀카를 찍어 오길 기원하면서, 나는 내 등 뒤에서 노트를 노려보고 있을 이청현에게 말을 걸었다.
“기연이 갔으니까 이제 말해 봐.”
“네?”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는 거잖아. 아니야?”
돌아보자 이청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독심술 쓴다, 왜.”
한평산업에서 는 게 눈치밖에 없어서 말이야.
하물며 같은 방을 쓴 지 1년이 넘은 데다 매일 한 연습실을 쓰는데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그럼에도 저 순진한 이청현은 놀란 기색을 거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청현은 잡기 놀이라도 하는지 기운차게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을 보며 물었다.
“형은 저희한테 왜 이렇게 잘해 줘요?”
“뭐?”
이청현이 어떤 질문을 해도 당황하지 않으려던 내 다짐이 무색하게 예상치 못한 질문 공격이 들어왔다.
잘해 주다니.
누가? 내가?
너희한테?
장담컨대 나만큼 이 녀석들의 근거리에서 온갖 비속어를 가슴에 새기며 분노와 슬픔을 느끼는 사람도 없을 거다.
‘딱히 잘해 준 것도 없고.’
시스템이 준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상황을 제외하면 나는 언제나 스파크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이놈들과 어울리며 한 거라곤 빵 굽기, 빨래 개기, 무드 등 불 켜 놓기 정도밖에 없을 텐데.
잘해 준다는 건 좀 더…… 친절하고 다정한 거 아닌가.
종종 안부를 물어봐 준다거나, 가끔 용돈을 쥐여 준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내가 ‘너의 말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표정으로 말하는 걸 알아챈 이청현이 말을 이었다.
“보통은, 주변에 있는 사람이 뭐가 잘 안 된다고 할 때 이렇게까지 안 해 주지 않아요?”
“‘이렇게까지’라는 게 뭔데. 너 데리고 공원 온 거?”
“딱 그것만이 아니라요.”
내가 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더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뭔가를 해 준 기억은 없었다.
“형이 공원 얘기를 했으니까 예로 들어 보겠는데, 보통 사람들은 공감해 주거나 조언을 해 주지 이렇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진 않잖아요.”
“그야 난 네가 느끼는 부담감을 완전히 공감해 줄 수도, 너한테 기술적으로 조언을 해 줄 수도 없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응원으로 끝내지 않는다는 게 신기한 거예요.”
“살다 보면 나보다 친절한 사람 일억 오천 명 정도는 만날 거다. 무엇보다 바로 한 지붕 아래에 정성빈 같은 애 살잖아?”
“에이, 형이랑 성빈이 형은 뭐라고 해야 하나…… 계열이 다르죠.”
“그거 욕이지?”
“어떻게 알았어요?”
이청현이 능청스럽게 대꾸하더니 크게 웃었다.
그때, 멀리서 부산한 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돌리자 우리 쪽으로 걸어오던 강기연이 아이들에게 에워싸인 게 보였다.
어린이 한 명에게 장난감을 받아 드는 걸 봐선 대충 뭘 뜯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나 보다 싶었는데…….
“형, 쟤 애들한테 비눗방울 쏴 주고 있는데요?”
급기야 강기연은 허공에 비눗방울이 거세게 튀어나오는 거대한 물총을 쏘며 아이들에게 비눗방울 쇼를 선사하기 시작했다.
이청현은 배를 잡고 깔깔거리며 웃더니, 자기도 끼워 달라며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가지가지 한다.’
생각하면서 나는 이청현이 구기기 일보 직전이던 노트와 필기구를 차곡차곡 정리했다. 그래도 어쩐지 오늘 밤쯤엔 이청현이 좋은 멜로디를 뽑아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룹에 불어닥칠 검은 미래를 말이다.
* * *
KPI를 새로 받은 이후, 나는 회고의 시간을 가지며 멤버들에게 각자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 앞으로의 활동에서 바라는 것을 질문했었다.
최종 KPI를 달성하기 전까진 녀석들이 원하는 걸 최대한 맞춰 주겠다 결심한 덕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최제호는 이렇게 말했다.
‘가족 관련된 이야기는 웬만하면 안 하고 싶어.’
과거에도 스파크는, 특히나 최제호는 가족 관련 언급을 자주 하지 않았다. 데뷔 이후 연차가 좀 쌓이고 나서는 더욱 그랬다.
최제호를 최애로 삼고 덕질하셨던 남 부장의 따님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나 또한 본의 아니게 최제호가 가정사를 거론하고 싶지 않아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 내 동생이 제왕님 동생이랑 같은 반인데 제왕님네 이혼 가정이래
애비가 술 먹고 도박해서 그랬다는 듯;;
제왕님 윤슬 라이브에서도 술 거의 안 마시던데 보고 배운 게 있어서 음주 도박은 안 할 듯ㅇㅇ 안심쓰
└ 이런 새X는 신고 안 되냐?
└ XX XX아 글 내려
└ 안심?? 싸패도 아니고;;;
‘어머님이랑 아버님이 갈라서셨다고 했었지.’
요즘 세상에 이혼이 무슨 흠이냐는 사람도 많고, 몹쓸 부모랑 사느니 각자가 찢어지는 게 더 낫다는 사람도 많지만.
사람에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진절머리가 나는 가족도 있기 마련이었다. 최제호에겐 부친이 그런 존재인 듯했다.
그래서 나는 확답을 줄 순 없지만 최대한 그런 질문은 피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대답했다. 사회에서 가족과 관련된 질문이 얼마나 쉽게 나오는지는 말해 봐야 입만 아프니까.
그래도 정말로 노력은 하려고 했는데.
“야, 김이월.”
잔뜩 화가 난 최제호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다음 자컨, 이것도 네가 기획한 거냐?”
지금까지 들어 본 적 없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