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86)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86화(86/193)
| 86화. 이달의 (비)우수 가족을 소개합니다
최제호는 신경질적으로 내 가슴팍에 두세 페이지 정도 되는 종이 묶음을 밀어 넣었다.
종이에는 큰 글씨로 제목이 적혀 있었다.
[스파크 자컨 (21화) 기획안-유년기 회상]한 장을 넘기자 다음에는 나름의 개요 같은 것이 보였다.
1. 앨범 컨셉 및 어린이날에 맞춰 초~중학생 때 입었던 의상 재현
2. 가족과 함께했던 어린이날 추억 에피소드 (진행: 성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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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보자마자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화낼 만하네.’
요구한 게 가족 이야기 안 하는 것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걸 이렇게 대놓고 무시해 봐라. 화가 안 나는 게 이상하지.
나 역시 이 소재가 껄끄러운 건 마찬가지다. 어린이날 추억이라고 해 봐야 공휴일을 맞아 출근하지 않는 집안사람들을 피해 집 근처 놀이터로 도망갔던 기억밖에 없고.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쌍심지를 켜고 있는 최제호에게 대답했다.
“내가 짠 거 아니야.”
“그럼 회사겠네.”
그러더니 최제호가 연습실 문을 향해 직진했다.
누가 봐도 화가 난 모양새라, 나는 다급히 최제호를 멈춰 세웠다.
“어디 가?”
“사무실.”
“사무실엔 뭐 하러. 설마 따지려고?”
“그럴 건데. 왜?”
최제호의 표정은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눈깔이 돌아 있는 것이, 정말로 가서 깽판이라도 칠 기운이었다.
마음은 이해한다. 화가 나겠지. 특히나 가족 문제라면.
나는 최대한 당황하지 않은 척 녀석을 만류했다.
“일단 머리 좀 식히고 가.”
놈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어렵사리 돌려서.
그러나 최제호는 대답 없이 연습실을 박차고 나섰다.
‘망했다. 저대로 나가면 좋을 게 없는데.’
조직 생활이란 참으로 모순점이 많다.
예의 있게 말하면 듣지도 않는 불상사가 있는가 하면, 중요한 일이 틀어졌을 때 감정을 내보이면 회사가 놀이터냐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게 사회였다.
그런 곳에서 최제호가 본인이 얼마나 황당하고 분개했는지를 표현한들 감정적으로 나오지 말라는 소리만 들을 게 분명했다.
심지어 저놈은 한때 ‘멤버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인기 남 아이돌’이란 제목이 달린 영상의 주인공이었다.
나는 녀석이 말 한마디 잘못해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꼴을 딱 한 번만 말려 주고자 녀석의 뒤를 쫓아 나섰다.
‘너 회사에서도 그렇게 무뚝뚝해?’
내가 한평산업에 입사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 누나가 이런 걸 물어본 적이 있다.
‘사회성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어. 왜?’
‘너도 사회성을 신경은 쓰는 놈이었구나…….’
‘안 잘리려면 어쩔 수 없잖아.’
첫 사회생활에서 겪은 시행착오는 가지각색이었다. 덕분에 나는 카멜레온처럼 대화에 맞추는 기술을 연마해야 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직장인에게는 듣는 자세도 중요했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인사 담당자가 듣게 되는 고민이란 대충 이런 것들이었다.
‘대리님, 저 진짜 퇴사하고 싶은데 어떡하죠?’
‘대리님, 저희 회사 부서 이동은 어떻게 신청해요?’
‘저희 팀 진짜 이번에 인력 충원 없대요? 제발 아니라고 해 주세요……. 차라리 날 죽여…….’
이런 류의 고민은 경청이 필수다.
무엇이 이 사람을 퇴사하고 싶게 만들었는지, 왜 이 사람이 부서 이동을 하고 싶어 하는 건지 듣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마지막 질문엔 유감이라며 숙연해지는 것밖에 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지금 최제호에게는 도대체 어떤 자세로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녀석을 편들어 줘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족은 아주 큰 의미가 있으니까.
알고는 있는데…….
‘공감을 못 하면서 억지로 공감하는 척하는 게 영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한평산업의 악질적인 행위에 대한 불만 성토에는 얼마든지 공감이 갔다. 다들 정말 고생이 많으시다는 말이 돈 뱉는 자판기처럼 술술 나왔으니까.
반면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마음으로는 최제호가 화낼 만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머리에서는 ‘그래도 일인데.’라며 자꾸만 브레이크가 걸리려고 했다.
이대로라면 최제호와 대화한답시고 가서 겉으로만 들어 주는 척하게 될 게 뻔했다.
X발, 그렇다고 누나 목숨이 저당 잡혀서 아이돌 하는 것에 비하면 이 정도 문제는 문제도 아니라는 소시오패스 같은 발언을 할 수도 없고.
최제호의 뒤를 쫓아 뛰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리고 이 추격전은, 최제호가 사무실이 있는 3층 계단을 전부 오르기 전 내가 최제호의 팔꿈치를 붙잡으며 끝이 났다.
“야.”
내가 부르자 최제호가 신경질적으로 내 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한 계단 위에 삐딱하게 서 있는 최제호를 올려다보며, 여전히 최제호의 팔을 잡은 채로 말했다.
“허락 없이 잡아서 미안해. 그런데 사무실에 가긴 가더라도 그 전에 나랑 얘기 한 번만 하면 안 될까?”
“네가 아이템 낸 거 아니라며. 그런데 왜 너랑 얘기를 해?”
“내가 중간에 확인했으면 걸러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그런 면에선 내 책임도 있지.”
이건 진심이다.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내내 내 실책을 통감했다.
그런 나의 진정성이 무색하게 최제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걸 왜 네가 하는데?”
최제호가 조소하며 말했다.
“네 눈엔 내가 어지간히 대가리 빈 놈인가 보다? 야, 나도 화낼 번지수 정도는 찾을 줄 알아.”
“…….”
“아이디어 내고, 앨범 컨셉 짜고, 기사 쓰고 앨범 판매 추이 기록하고……. 애초에 그게 네가 할 일이야? 왜 그걸 네가 다 하는 것도 모자라서 남의 실수까지 뒤집어쓰려고 하는데?”
“그야.”
한평산업에서는 그게 당연했으니까.
한평산업에선 월급을 받았으니까 그랬던 거고, 여기선…….
“내가 부족한데도 회사가 나한테 기회를 준 거니까. 뭐라도 더 하려고 그러는 거야.”
“…….”
“……나대는 것처럼 보였으면 그건 미안하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잖아.”
최제호가 제 머리를 벅벅 헝클었다.
“아, 몰라. 어쨌든 이건 그냥 안 넘어가.”
“넌 겁도 없다. 이제 막 데뷔해 놓고 회사가 안 무섭냐?”
“난 잘못한 건 잘못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는 주의야. 그리고 내가 뭐 잘못했어?”
잘못한 건 없지. 네 말대로 잘못은 회사가 했지.
그래도…….
아니다. 됐다.
이놈 말이 틀린 것도 아닌데 시비를 걸어서 뭐 하겠나.
애초에 내 목적은 최제호의 화를 조금이라도 가라앉히는 거였다. 목적을 달성한 이상 최제호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었다.
나와 최제호는 비상구 계단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
“왜 그렇게까지 난리 쳤는진 안 물어봐?”
그리고 최제호는 이런 고요한 분위기에 굴하지 않았다. 그래, 네 성격 짱이다.
어쩐지 멋쩍어져서, 나는 얼굴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남들한테 말하기 싫은 게 있어서 그런 거잖아. 그런 걸 뭐 하러 또 묻냐.”
“그럼 넌 왜 따라온 건데?”
“네가 당장 화난 것 때문에 해야 할 말은 못 하고 이상한 말이나 할까 봐 그렇지.”
“뭐?”
최제호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
이 새X, 미간에 주름 생기니까 어지간하면 인상 쓰지 말래도 죽어도 안 듣는다.
나는 미간 펴라며 한마디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비상구에 인기척이 없는지를 살핀 뒤 다시 계단에 앉았다.
“너 그대로 사무실 갔으면 어떻게 행동했을 거 같아?”
“어?”
“아까 그 상태로 가면 회사분들께 어떻게 굴었을 것 같냐고.”
내 말에 최제호가 멈칫했다.
안 봐도 뻔하지. 오만 가지 말이 다 나왔을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의 내용보다 태도를 평가해. 네가 맞는 말을 하고 있어도, 네 행동이 무례하다고 생각하면 우선 방어적으로 나온다고.”
“…….”
그러자 최제호가 말없이 턱을 괴었다.
잔소리 듣는 기분이어도 참아라. 지금만 잘 넘기고 나면 현역으로 활동하는 동안 먹을 욕이 조금은 줄어들 테니까.
나는 깊은 상념에 빠진 최제호를 가만히 지켜보며 이 망나니를 어떻게 좀 얌전히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책임을 지워 주면 머리가 식으려나?’
이놈은 웬만한 일론 부담감을 느끼는 성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모 아니면 도라는 심경으로 말했다.
“가서 최대한 잘 말해 봐. ‘이월이도 그런 주제는 부담스럽다던데, 이것만 빼 주시면 다른 부분은 저희 둘이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나도 가족 얘기하긴 피차 싫었다, 이거지.”
최제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나 그렇게 풍족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처럼 보였어?”
나는 일부러 농담하듯 물었다. 그러자 최제호가 대답했다.
“아니, 그건 아닌데.”
이 새X가…….
“너는 싫은 일도 시키면 할 줄 알았지.”
“하기야 하겠지. 그런데 가족 얘기로는 진짜 할 말이 없어서, 하려면 쥐어짜야 돼.”
아무리 그래도 팬들에게 전할 정보로 ‘우리 엄마 아빠께서는 유통기한이 7개월 지난 라면을 먹어도 괜찮다는 걸 배울 기회를 주셨다.’ 같은 건 부적절하지 않겠나.
“그러니까 머리 조금만 식히고 가서 얘기하고 와. 네가 가서 깽판 쳤다가 혼나기만 하고 오면 나 바로 썰 착즙 들어가야 하니까.”
“에이, 씨.”
최제호가 다시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조금 전과는 달리, 독기가 빠진 게 확연히 눈에 보였다.
그렇게 최제호를 보내고 연습실로 내려가려는데 최제호가 나를 불렀다.
“야.”
“왜?”
돌아보자 최제호가 몇 계단 위에서 내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최제호가 계단 손잡이에 팔을 걸치고 서서 물었다.
“……껄끄러우면 네 얘기는 빼고 해 줘?”
순간, 나는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사람이 이렇게 순진할 수가 있나. 쟤가 스물한 살이 맞긴 하구나.
나는 ‘나 나름 신경 쓰고 있다’고 이마에 적힌 듯한 최제호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난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알아서 해.”
* * *
가족사 이슈는 그 이후 원만하게 봉합이 되었다.
어떻게 끝이 났는지 구구절절 최제호에게 캐묻진 않았지만, 녀석이 덤덤히 돌아온 걸 보면 UA의 어른들이 성숙한 대처를 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덕분에 숙소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평온했다.
얼마 전 멤버 전원을 끌고 봄나들이까지 다녀온 이청현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곡 작업을 했다. 저러면 멜로디가 안 섞이나 궁금할 정도로 기이한 행위였다.
그렇게 완성된 노래는 아주 신나고 좋았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잘 어울리는 싱그러운 이미지와 다시 한번 이어 가는 청량감까지.
모든 게 내가 원했던 대로였다. 단 한 가지만 빼고.
“청현아.”
“왜요?”
“이거 음이 왜 이렇게 높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