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88)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88화(88/193)
| 88화. 직업 역량 향상 교육 (2)
정성빈은 한참을 시원하게 웃었다.
그러고 나서는 훌쩍이며 눈물까지 닦더니 내게 말했다.
“형.”
“왜?”
“형이 판다고 하시면 제가 팔각음이온탄산수 한 병은 살게요.”
“어디 가서 그런 거 사 오기만 해. 그 물로 화장실 청소하라고 시킬 거니까.”
나는 단단히 으름장을 놓고 정성빈과 함께 비상구에서 나왔다.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찾아온 시스템의 경험치 두 배 주간―이 이름은 정성빈이 지어 줬다. PC방에서 많이 쓰는 표현이라나―을 맞아 우리는 전원 미친 듯이 연습했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하냐며 의문을 갖는 놈이 있을 줄 알았는데 녀석들은 내 말을 듣자마자 알겠다고 했다.
가만히 둬도 알아서 연습하는 놈들이라 그런가?
아니면 그냥 나한테 궁금한 게 없는 걸 수도.
아, 학생조가 조금 아쉬워하긴 했다.
‘저희도 학교 안 가고 연습하면 안 돼요?’
‘기연아, 나 혈압 오르게 하지 말고 등교해.’
그래도 잘 타일러서 등교시켰다. 이것이 학부모의 고충인가 보다.
일정이 빠듯해진 탓에 나 또한 24시간을 5나노 공정으로 나눠 써야 했다.
숙련도를 3점 올리기 위한 내 일과는 이랬다.
3:30 기상
4:00 씻고 기획 업무
4:30 토스트 굽고 연습실 출근
5:00~10:00 춤 연습 (1)
10:00~16:00 노래 연습(샤워, 점심, 회의 포함)
16:00~19:00 춤 연습 (2)
19:00~21:00 트레이닝
21:00~23:00 춤 연습 (2)
23:00~00:00 귀가 후 씻고 모니터링
00:00~00:30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
00:30 취침
한평산업에서 갈고 닦은 근성과 시스템의 근로 지원 기능 덕분에 몸을 갈고 있다. 살다 살다 이 둘에게 감사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물론 멤버들까지 이렇게 살도록 만들진 않았다. 걔들은 근로 지원을 못 받으니까.
덕분에…….
“시간 다 채웠으면 다들 집에 가라.”
“형은요?”
“몇 번을 말하게 하니, 청현아. 나는 갈 길이 멀어서 좀 더 있다 갈게.”
“아니, 형 그러다 쓰러져요!”
……이런 실랑이를 일주일째 반복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어설픈 줄 아나. 이런 걸로 쓰러질 거였으면 한평산업 때 벌써 쓰러졌을 거다.
“청현아, 주위 좀 둘러봐 봐.”
그렇게 말하며 나는 이청현의 한쪽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현재 시각 밤 10시. 모두가 댄스 트레이닝을 받고 춤 연습 5시간까지 마친 시각.
이 시점에 멀쩡하게 서 있는 건 나뿐이었다.
나머지는 죄다 바닥에 붙어……. 아니다, 최제호는 그나마 앉아 있구나.
어쨌든.
“나만 멀쩡하지? 이게 너희가 이만 집에 가야 하는 이유야.”
“이 형은 도대체 체력이 어디서 나오는 거야?”
“난 이미 이해를 포기했어.”
얼빠진 이청현의 목소리를 듣던 강기연이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두 놈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녀석들이 잽싸게 짐을 챙겨 돌아가도록 놈들을 재촉했다.
그때 가방을 들고 일어서던 최제호가 질문했다.
“퇴근 같이 안 해도 돼? 유한수 지나가면 어쩌려고.”
“아냐, 그 인간 아까 4시에 퇴근하더라.”
내가 또 상사 퇴근 시간은 기가 막히게 잘 알지.
그러니 애들 데리고 빨리 숙소에나 가라며, 나는 최제호의 등을 밀고 연습실의 문을 닫았다.
놈들이 떠나자 언제 소란스러웠냐는 듯 연습실이 조용해졌다. 나는 그제야 작게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속이 울렁거리는 걸 애써 참으며 손으로 입가도 두어 번 매만졌다.
솔직히 말해서, 내 상태가 썩 좋은 건 아니었다. 단지 ‘녀석들보다는’ 덜 힘들 뿐이지.
나는 시스템을 켜고 누적 피로도를 확인했다.
+
.
.
.
누적 피로도: 35% (근로 지원 서비스 적용 중)
+
기본 피로도가 35%. 여기에 근로 지원 서비스로 절찬리 할인 중인 20%까지 더하면 총 피로도는 55% 정도일 것이다.
40%가 넘어갔을 때 코피를 쏟았으니 이 이상 올라가진 않게 주의를 해야겠는데.
사람들 앞에서 코피를 바가지로 쏟고 시선을 모으는 일은 피하고 싶다.
이를 위해선 휴식을 위한 최대 효율을 찾기 위해 갖은 잔머리를 굴려야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열받는다. 이런 거 한평산업 시절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
물론 남 부장은 내가 토악질을 하다 화장실에서 네 발로 기어 나와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긴 했지만.
‘한평산업 재입사 안 하려면 닥치고 열심히 해야지, 뭐…….’
나는 반쯤 체념한 상태로 물을 마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엔 멤버들이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놈들까지 데뷔 전처럼 가출을 하거나, 싸우거나 아프기라도 한다면 스트레스로 피로도가 20%는 더 올라갔겠지.
그래, 얌전히 연습 잘하는 게 어디냐.
나는 사고를 칠 때와 안 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녀석들의 눈치에 박수를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이런 평화를 비웃기라도 하듯, 다음 날 내 마음의 호수에는 곧바로 바윗돌이 던져지고 만다.
* * *
“컴백을 미뤄야 할 것 같다고요?”
정성빈이 물었다. 우리를 불러 모은 민주경 님의 말 때문이었다.
5월 초~중으로 예정해 두었던 두 번째 앨범의 발매를 미뤄야 할 것 같다는, 말 그대로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다.
“왜요?”
성급함을 참지 못하고 최제호가 튀어나왔다.
“6월에 뉴리 씨가 컴백할 예정인데, 너희가 5월에 나오게 되면 회사 내에서 지원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할 것 같아. 이러면 둘 다 손해거든.”
UA 소속인 저명한 발라드 가수의 컴백 일정과 우리 쪽 일정이 겹친단 의미였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그런데 주경 님, 이 이야기가 갑자기 나온 이유를 여쭤도 될까요?”
이런 얘기를 하려면 진작에 했어야 했다. 이미 앨범 커버 견적까지 받은 지금이 아니라.
내 질문에 민주경 님이 머뭇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더니 민주경 님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사실은 뉴리 씨 앨범이 4월엔 나왔어야 하는데, 그게 많이 밀렸어.”
“그렇군요.”
“뉴리 씨도 3년 만의 컴백이라 회사에서 정말 잘 준비할 생각이었거든. 그래서…….”
민주경 님이 말끝을 흐렸다.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멋쩍겠지. 이해한다.
일정이 밀리는 거야 회사에선 흔한 일이다.
하물며 2개월 정도야, 답답해서 속 터진 담당자가 다섯 명쯤은 있겠지만 있을 수 없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공들여 3년 만의 컴백을 준비해 준다는 회사가 날짜를 두 달이나 미룰 정도로 일정 관리를 허술하게 했다고?
이제 막 푸시에 들어가야 할 그룹 일을 미루면서까지?
게다가…… 우리 다음 앨범 컨셉을 알면서?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이 모든 의문에 대답이 될 단 하나의 키워드도 떠올렸다.
“주경 님, 제가 지금 선을 넘는 건가 싶어서 굉장히 조심스러운데…… 괜찮으시다면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응? 아니야, 편하게 물어봐!”
“혹시, 뉴리 선배님 쪽에 유 PD님이 가 계신가요?”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헙 소리가 났다. 슬쩍 눈동자를 굴려 보자 이청현이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민주경 님이 난처하다는 듯 웃었다.
“이월이 너는 눈치도 빠르다. 맞아, 지금 유 PD님이 그쪽 진행하고 계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래도 저희 이번 주에 예정되어 있던 정기 회의는 그대로 진행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 내가 연락 돌려 놓을게.”
그러더니 민주경 님이 멤버들과 하나씩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마, 얘들아. 업계에서 이런 일은 정말 많고, 큰일 축에도 못 껴. 회사가 너희를 소홀히 여기는 게 아니니까 불안해할 거 없어. 알았지?”
따뜻한 위로의 말이었다. 민주경 님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이럴 때마다 느껴졌다.
민주경 님의 말이 맞기도 하다. 한평산업에서도 남 부장이 결재를 세 달 미뤘는데 아무 문제도 안 생겼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건 큰일이 맞고 우리는 X됐다.
예정된 시기에 컴백하지 않으면 스파크는 6월에 나올 서바이벌 프로에 못 나갈 가능성이 높다. 인지도가 아직 부족하니까.
당장의 화제성을 생각하면 서바이벌 프로그램만큼 인지도를 끌어모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거기에 캐스팅되기 위해선 최소한의 인지도가 필요하다니.
경력직 같은 신입 뽑겠단 소리와 같지만 현실은 더럽고 치사한 법. 빠른 시일 내에 1위를 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쩐지 요즘 평화롭더라니. 이제 잠은 다 잤다 싶었다.
* * *
나는 침대에 누워 시스템을 불러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직원을 위한 사내 대출 같은 건 없나? 보증 체력 지원이라거나.’
그러자 시스템이 튀어나왔다.
+
[SYSTEM] ‘책임자’ 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하여튼 요즘 사원들 독해. 자기들이 남들처럼 일할 건 생각 안 하고 남들 받는 건 다 받아야 직성이 풀리지?
+
진짜 억울하네. 제가 대체 무슨 일을 안 했죠?
화가 솟구쳤지만 참았다. 지금은 어떻게든 시스템을 살살 구슬려서 뭐라도 더 받아먹는 게 중요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전에 데뷔일을 앞당겼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곧바로 스케줄러를 꺼냈다. 우리가 다음 컴백일로 잡아 놓은 일정이 홀로그램 스케줄러에 선명히 적혀 있었다.
‘이건 어디까지 당겨지려나?’
데뷔 일정은 1년까지 당겨졌었는데.
대충 앞으로 끌어당기는 동작을 취하자 일정이 몇 칸씩 앞으로 움직이더니 1주 정도 전의 날짜에서 멈췄다. 5월의 극 초반이었다.
그렇다면 날짜는 충분히 당길 수 있다는 거고.
문제는 이번엔 무슨 사건이 터지냐는 건데.
부장 놈…… 아니, 시스템 놈아. 이번에도 누가 가출할 예정이니?
+
▶ 요즘은 그래도 우리 부서가 안정기에 접어든 것 같아. 이럴 때일수록 다들 분위기 흐리지 말고, 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합시다?
+
여전히 못마땅한 말투였지만 이제 내겐 저 말에서 힌트만 빼먹을 수 있는 짬이 생겼다.
결론인즉, 누가 갑자기 도망가거나 피 터지게 싸울 일은 없다는 거지.
인간관계 문제가 아니라면 나머지는 그나마 덜 골치 아플 것이다. 나는 조금의 미련도 없이 컴백 일정을 앞당기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자 얼마 전에 왔던 업무들이 죽지도 않고 돌아왔다.
+
[SYSTEM] ‘새 업무’가 할당되었습니다.▷ 컴백을 위한 인력 확보하기
▷ 보상: 안정적으로 컴백할 확률 상승
[SYSTEM] ‘새 업무’가 할당되었습니다.▷ 직무 역량 향상시키기
▷ 보상: 안정적으로 컴백할 확률 상승
[SYSTEM] ‘새 업무’가 할당되었습니다.▷ 멤버들과 비밀 이야기 나누기
▷ 보상: 안정적으로 컴백할 확률 상승
+
그것도 평소의 세 배로.
하 X발. 그냥 당기지 말 걸 그랬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