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89)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89화(89/193)
| 89화. 직업 역량 향상 교육 (3)
우선 직무 역량 향상. 이건 OJT 미션으로 연습 빡세게 하면 되니까 패스.
다음으로 멤버들과 비밀 이야기 나누기? 이건 대체 뭘까 싶다.
비밀 이야기가 뭔데? 정산 비율 이런 대화 나누라고? UA는 직원들끼리 연봉 정보 공유하는 거 안 막나?
그래도 안정적으로 컴백할 확률이 높아진다니까 뭐라도 나눠야지, 뭐.
여차하면 다 보컬 연습실에 몰아넣고 내가 대학에 못 가게 된 101가지 이유라도 들려줘야겠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 페널티도 없을 테니까.
그러면 남은 건…….
+
[SYSTEM] ‘새 업무’가 할당되었습니다.▷ 컴백을 위한 인력 확보하기
▷ 보상: 안정적으로 컴백할 확률 상승
+
이건데.
컴백을 앞당기면 회사의 인력을 어느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거다.
그러나 그것도 일정한 수준에서지, 우리가 데뷔할 때만큼의 푸시를 기대하긴 힘들었다.
‘뉴리라는 분 쪽 업무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 이상 말이야.’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는 대충 세 가지가 있었다.
하나. 뉴리 씨가 갑자기 담대해져서 모든 의사 결정 과정을 불도저처럼 밀어붙인다.
둘. 유한수가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본인의 숨겨 둔 능력을 자각하고 이를 발휘한다.
셋. 인원 충원 안 되는 UA에서 내가 온갖 잡일을 맡아 하며 뉴리 씨 쪽에 들어갈 시간을 최소화한다.
누가 봐도 정답은 3번이겠지.
나는 쓰게 웃었다.
그러고는 뉴리 씨가 이전에 냈던 앨범들이나 미리 봐 둘 심산으로 노트북을 켰다. 여차하면 겸사겸사 자료 조사도 진행할 생각으로.
그러나 스파크를 향한 나의 희생은 곧 순수성과 자발성을 잃고 말았다.
“기획안을 한번 읽어 보겠냐고……요?”
기획 팀에서, ‘(4차)’라는 말이 붙은 기획서를 들고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떨떠름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조심스럽게 몇 장짜리 기획서를 받아 들었다.
‘이걸 왜 나한테 주지?’
기획 팀이야말로 이 업계의 프로일 텐데 내가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난처해 죽겠다. 나는 한숨을 삼키며 기획서를 찬찬히 읽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여신의 귀환, 그리고 새로운 여정』
짜증 날 정도로 익숙한, 촌스러운 타이틀을.
‘유한수 요즘 무슨 게임이라도 하나?’
강남역 지하철 광고에서 몇 번은 본 것 같은 단어들이었다.
그쪽은 게임 광고니 그렇다 치지만, 여기는 조금 필드가 다르지 않나?
나는 직원분 앞에서 미간을 찡그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내 노력은 3초 만에 물거품이 될 뻔했다.
『기획 의도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매혹적인 목소리로 청자들을 홀리는 세이렌의 후손이라는 컨셉으로, 3년 만에 더욱 성숙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뉴리의 이미지에 변화를 꾀하며…….』
뒤는 더 가관이었기 때문이다.
유한수 그 인간은 어디서 이상한 게임 하나 다운받은 게 틀림없고. 이 인간은 여성 가수들에게 섹시 컨셉밖에 못 주나?
애초에 기획 팀은 이걸 왜 보여 주는 걸까? 나 엿 먹으라고?
아니면 당신들만 멘탈이 박살 나긴 아쉬우니 나도 이 고통을 함께하자고?
어느 쪽이든 고통스러웠다. 나는 황급히 기획서를 다시 갈무리해 직원분에게 돌려 드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미숙해서 무어라 말씀을 드리기조차 어렵네요!”
“이월아, 잠깐만!”
직원분께서 도주하려는 나를 다급히 붙잡았다. 제발 절 놔 달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가 유한수랑 척진 걸 회사 사람들이 공공연히 다 아는데 이게 무슨 법도란 말인가.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냐고!
차라리 누적 피로도가 천장을 뚫어서 쓰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려는데 직원분이 말씀하셨다.
“부담 갖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주면 돼. 우리도 지금 애매해서 여기저기 의견을 물어보고 다니는 거라.”
애매라니. 대체 어떤 점이?
눈 감고 봐도 유한수가 뉴리 씨를 서해안 갯벌에 세워 놓고 뮤비 찍은 다음 크로마키로 주상절리 백만 개 합성하자고 할 게 뻔한데.
내 불신이 전달되었는지 직원분께서 멋쩍게 웃었다.
“음……. 의견 물어보면서 우리가 아무 설명도 안 해 주는 건 좀 그렇겠지?”
“대외비면 말씀 안 해 주셔도 괜찮습니다. 저 그런 거 전혀 신경 안 쓰니까요!”
“요즘은 애들도 대외비라는 말을 쓰니? 아무튼.”
직원분이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사실 기획 팀 내부에선 이 건에 회의적이야. 기획의 신선함 이전에 이미지부터 뉴리 씨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
“그런가요?”
“응. 이월이 너, 뉴리 씨 뮤비 본 거 있어?”
본 적은 있다. 대체로 에너지가 넘치는 느낌이었지. 본인이 주위에 밝은 기운을 뿌리고 다니는 타입이기도 하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분이 말을 이어 갔다.
“뉴리 씨는 발라더 중에서도 도전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야. 이번 신곡도 소재가 독특하거든. 그래서…….”
“이런 컨셉과는 맞지 않는다는 거군요.”
내 말에 직원분이 한숨을 쉬었다. 유한수가 뉴리 씨의 이전 작품은 전혀 들여다보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의아한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기획 팀이 왜 이걸 나에게 들고 왔냐는 것이다. 그것도 어디가 이상한 것인지 이미 내부에서 인지하고 있는 마당에.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 모함당할 생각은 없었던 터라, 나는 조심스럽게 직원분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이걸 왜 저한테까지 물어보시는 건지 여쭤도 될까요? 가요계 트렌드는 저보다 성빈이가 더 잘 알고, 창의력은 청현이가 더 좋은데.”
“넌 어쩜 그렇게 애가 꼼꼼하니?”
남 부장 쌍화차를 전자레인지에 10초 더 돌렸다가 불벼락을 맞은 뒤로 이렇게 된 것 같긴 한데.
특별히 대답하지 않는 내게 직원분이 말했다.
“우선, 팀 외부의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있는 이유는 우리가 유 PD님께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지 염려되어서야. 왜, 사람은 미워해도 일은 미워하면 안 되잖아?”
보통은 반대 아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넌 유의미한 업계 경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들이 잡아 낼 수 있는 문제점은 경력직들이 있는 팀 내부에서 이미 지적되어야 맞는 거야. 그게 안 되면 그 팀은 이미 기능을 상실한 거지.”
“…….”
“더 나아가서 어린 너한테 물어본 건, 우리가 요즘 트렌드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지 싶어서 그런 거였어. 엔터 산업이 아무리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해도 젊은 세대 당사자들을 따라가긴 힘들거든. 유 PD님 기획도, 우리가 보기엔 별로지만 너희 세대에선 통할 수 있는 걸지 모르니까.”
직원분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웃었다.
놀랐다. UA가 이 정도로 직업 정신이 투철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팀이 있는 회사에서 어쩌다 사이보그 전사 컨셉이 나왔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다음으로는, 부끄러웠다.
이 사람들은 진지하게 작업물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유한수와의 처신이나 생각하고 있던 내 모습이.
반성하자. 그리고 많이 배우자. 나는 속으로 되새겼다.
“아참, 이월아.”
대화가 끝난 줄 알았는데 직원분이 다시 날 불러 세웠다.
“아까 네가 그랬잖아. 왜 성빈이나 청현이가 아니라 너한테 물어봤냐고.”
“아, 그거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너를 콕 집어서 물어본 가장 큰 이유는 네 센스가 좋아서야.”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내 뇌가 딱딱하게 굳은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는데. 나한테 쓸 만한 센스가 남아 있을 리가.
그런 내 생각을 눈치챈 것처럼 직원분이 내 어깨를 톡톡 다독였다.
“너 감 좋다고. 그것도 놀랄 만큼. 적어도 우리 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해.”
* * *
“그래서, 기획 팀 칭찬에 홀라당 넘어가서 어제 새벽까지 뉴리 선배님 아이템을 찾은 거예요?”
쉬는 시간을 맞아 내 쪽으로 다가온 이청현이 물었다.
“청현아, 그렇게 얘기하면 나 운다?”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내 손가락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10분 안에 첨부 파일과 형식적인 인사, 그리고 웃음 이모티콘을 보내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그런 내 홀대에도 이청현은 굴하지 않았다.
“언제는 또 안구가 건조해서 눈물이 나오려다가도 들어간다면서요?”
“넌 어쩜 그렇게 한 마디 한 마디가 논리적이니.”
나는 다다다 쏘아붙이는 이청현을 외면하며 기획 팀에 보낼 메일의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럼 어떡해. 같은 직장인으로서 고군분투하는 직장 동료를 그냥 둘 순 없잖아.
“형은 잠이 너무 부족해요. 성장기가 끝났다고 지나치게 방심하는 경향이 있어.”
이청현이 말하자 뒤에서 박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부터 청현이 네가 일정 조율 대신해 주겠다고?”
“그럴까요? 그럼 저한테 포워딩 좀 해 주세요.”
요놈 봐라. 같이 날밤 몇 번 새웠다고 생태계 이해가 아주 빠삭하다.
“됐어. 농담이야.”
그렇게 말하며 나는 바닥에서 일어났다. 이청현이 누가 농담을 그렇게 정색하고 하냐고 투덜거렸지만 이것도 못 들은 척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연습 재개까지 2분 정도가 더 남아 있었다.
나는 그동안 업무 진행도를 확인할 요량으로, 몰래 연습실 구석에 가 시스템을 열었다.
+
[SYSTEM] 직무 역량 강화 프로그램 진행 현황▷ 김이월
댄스(1) ■■■■■□□
댄스(2) ■■■■□□□
보컬 ■■■■■□□
▷ 최제호
댄스 ■■■■■□□
보컬 ■■■■■□□
.
.
.
+
5일차에 접어든 오늘도 멤버 전원이 무사히 연습 시간을 채우며 순항하고 있었다.
남은 건 내가 오늘 밤까지 부족한 연습 시간을 마저 채워 댄스(2) 항목까지 올 출석 도장을 찍고 남을 이틀을 빡세게 달리는 것뿐이었다.
이것만 성공하면 이제…….
≫ X발 뚝딱이 눈감아 주기도 지친다
이월아 연습 좀 해……. 멤버들 보기 안 부끄러워……?
≫ ㅋㅋㅋㅋㅋ맏형이면서 실력 제일 딸리는 수준
X라 얘는 왜 막판에 끼어들어서ㅠㅠ 짜증나ㅠㅠㅠㅠ
≫ 얘는 걍 아이돌이 체질이 아닌 거임
백날 연습 열심히 한다고 멤버들이 어필해 주면 뭐 함? 대중한테 보이는 실력이 딱 이 수준인데
연습해서 이 모양이면 애초에 이 길이 안 맞는 거지
……라며 괴로워하는 5인 지지자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겠지.
죄송합니다, 가급적 눈에 안 띄도록 조심하겠습니다.
“형, 저희 쉬는 시간 끝났어요!”
진척도 확인이 끝나기 무섭게 정성빈이 나를 불렀다.
“응, 갈게.”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구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코 밑이 뜨거워지더니 무언가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황급히 코와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뭐지? 콧물인가?’
세상 쪽팔린다. 다 큰 어른이 코 하나 제때 못 풀고 콧물을 줄줄 흘리는 꼴이라니, 스파크 6인 지지자였던 사람도 당장 5인 지지로 돌아설 일이다.
“형, 왜 그러세요……?”
박주우가 물었다.
나는 녀석들이 누구보다 추할 내 근처로 가까이 오지 않도록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미안. 나 지금 되게 추잡한 꼴일 것 같은데, 못 본 척하고 휴지만 좀 가져다주지 않을래?”
“혀, 형! 형 피 나요!”
내가 애처롭게 손을 뻗고 있는데 이청현이 소리를 질렀다.
피라니?
그때 익숙한 쇠 냄새가 났다. 콧물일까 봐 필사적으로 안 먹으려고 애쓰던 무언가가 입술 사이로 스며들었다.
나는 천천히 코를 틀어막았던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붉은 피로 손이 흥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