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90)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90화(90/193)
| 90화. 직업 역량 향상 교육 (4)
‘이 정도면 그냥 코안이 찢어진 거 아니야?’
나는 손을 타고 신발 앞코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 핏방울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무슨 놈의 코피가 이렇게 자주 나냐고.
전기소작술을 받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눈앞에 불쑥 휴지가 들이밀어졌다.
고개를 살짝 들자 휴지만큼 새하얗게 질린 박주우의 얼굴이 보였다.
“형, 휴지…….”
“어어, 고마워.”
나는 코를 최대한 세게 틀어쥐었다. 그런 내게 정성빈이 물었다.
“형,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별거 아니야.”
그러자 최제호가 티슈를 북북 뽑으며 말했다.
“이게 별거 아니냐? 바닥이 시뻘건데?”
“바닥?”
나는 시선을 내려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어차피 닦으면 그만인 걸, 뭘 그렇게까지…….
“아니, 바닥이 왜 이래?”
연습실 바닥에 핏자국이 흥건했다.
내가 주춤거리다 핏방울을 밟기라도 한 건지, 몇 군데엔 신발 자국까지 남아 있었다.
“왜긴 왜겠어요. 형, 신발 벗고 저기 좀 가서 앉아 있어요!”
그러더니 이청현이 물티슈로 내 신발 밑창을 닦기 시작했다. 이청현에게 물티슈 몇 장을 받아 든 강기연도 연습실 바닥을 닦는 데 동참했다.
“야, 됐어. 내가 할…….”
“뭘요. 형이 바닥 닦는다고요? 코피를 그렇게 흘리면서?”
쭈그려 앉아 신발을 닦던 강기연이 내 쪽을 흘겨보며 말했다.
이청현도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 사람이 잠도 안 자고 매일 연습이랑 일만 하는데 몸이 배겨요?”
“고소하다는 것처럼 들리는 건 내 기분 탓이니, 청현아?”
“그럼요.”
내가 이청현과 한 마디씩 주고받는 사이 박주우가 내 팔을 슬슬 잡아끌었다. 그러더니 나를 소파에 앉히고 새 휴지를 쥐여 주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시는 게 좋겠어요.”
정성빈이 말했다.
하지만 그건 안 된다.
연습 시간 마저 채워야 직무 역량 강화 프로그램에 색칠할 수 있단 말이야!
앞으로 2시간만 버티면 되는데. 이대론 못 가지.
나는 대의를 위해 망신을 견디기로 결심하고 비장하게 말했다.
“아냐, 휴지로 막고 할게.”
“네?”
멀리서 이청현이 기가 차다는 듯이 대답했다.
고개를 들자 다섯 명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건 금방 멈춰. 코 좀 막고 하면…….”
“아뇨. 아무리 그래도 이 상태로 춤을 추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형.”
“저도 성빈이 말에 동의해요. 그냥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정성빈과 박주우가 좌우에서 한마디씩 해댔다.
어이가 없네. 많이도 안 하겠다니까? 딱 2시간만 시켜 달라고!
일이 난처하게 돌아갔다. 나는 머리를 벅벅 헤집고는 녀석들에게 조금 더 온건한 태도로 협상안을 제시했다.
“그럼 동선만이라도 어떻게 안 될까?”
“오늘 몇 시간 더 연습한다고 뭐가 엄청 달라질 것 같아? 됐으니까 넌 그냥 숙소 가라.”
최제호가 젖은 휴지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며 말했다.
그보다 뭐가 엄청 달라진단다, 이 친구야. 언제까지 댄스 숙련도 한 자릿수인 멤버랑 같은 무대 설래?
‘자기는 아쉬운 거 없다 이거지.’
괘씸하기 짝이 없다.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연습까지 방해하진 말라, 이거야.
하는 수 없이 나는 강기연에게 구조 요청의 눈빛을 보냈다.
연습에 대한 집착이 누구보다 강한 데다, 최제호와 갈등을 빚는 횟수가 스파크 녀석들 중 압도적으로 많은 저놈이라면 분명 내 편을 들어 줄…….
“기연아, 너 뭐 해?”
나는 나와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내 가방을 집어 드는 강기연을 보며 물었다.
강기연은 내 가방을 열더니, 내 물병과 다이어리를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짐 싸요.”
“그거 내 짐인데?”
“그래서 싸는 건데요.”
짐을 다 싼 강기연은 똑딱이 단추까지 야무지게 닫더니 내게 가방을 건넸다.
“숙소 가시죠, 형.”
“뭐?”
“형 없인 연습이 제대로 안 돌아갈 것 같아서 걱정되면 저희도 오늘 연습은 여기서 끝낼게요. 성빈이 형, 저희 오늘 하루만 일찍 가도 되죠?”
강기연의 표정이 싸늘했다.
아무도 녀석의 이런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박주우와 이청현은 정성빈이 안 된다고 할세라 허겁지겁 자기 짐을 챙기고 있었다.
“너희 지금 뭐 해?”
“뭐 하긴요. 퇴근하려고 짐 싸죠!”
그러더니 이청현은 자신의 백팩을 뒤에 메고, 내 가방은 앞으로 둘러메며 일어섰다.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자기들은 연습 못 하면 죽을 것처럼 굴더니, 왜 갑자기 이러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 얘가 사람 구실은 하도록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너희가 지금 선의를 보일 때냐고.
황망히 앉아 있던 내게 결정타를 날린 건 최제호였다.
녀석은 달려 나가는 동생들의 뒤를 따라 미적미적 걷다가, 연습실 문 옆에 멈춰 서서 스위치에 손을 얹고 말했다.
“뭐 해. 안 나와?”
X발, 나 좀 내버려 둬!
* * *
불이 꺼져 어둑어둑한 방.
거실에서 스며드는 따뜻한 불빛과, 푹 쉬라는 룸메이트 동생의 다정한 말까지.
다 X같다. X발.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염없이 괴로워했다. 내 20시간이 생으로 날아가게 생겼으니 말이다.
이토록 격렬한 분노는 오랜만이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이놈의 코는 왜 또 난리인지.
‘또 피로도가 올라갔나?’
설마 하는 마음으로 시스템을 켜자 컴컴한 이불 속에서 시스템이 환하게 빛났다.
+
.
.
.
누적 피로도: 45% (근로 지원 서비스 적용 중)
+
아니, 이거 언제 이렇게 올라갔대?
저번에 마지막으로 본 게 30%대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피로도가 훌쩍 올라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피로도가 60%만 되어도 사지가 후들거렸었지.’
그럼 내가 이 꼴이 된 게 이해는 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평산업 직원일 때는 말이야, 아무리 코피가 나도 코에 탈지면 쑤셔 넣고 일을 해야 했다 이 말이야.
그렇게 혼자서 들어 주는 사람 없는 꼰대 어록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스위치가 눌리는 소리와 함께 거실의 불이 꺼졌다.
“형, 안녕히 주무세요!”
“어.”
이청현과 최제호가 밤 인사를 나누는 소리도 들렸다.
아까부터 거실에서 체력 관리니, 수면 시간 부족이니 대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만.
아무래도 모처럼 일찍 연습을 마치고 온 김에 자기들끼리 리프레시 겸 일찍 자기로 합의를 한 모양이었다.
리프레시 좋지. 코피 터지고 쓰러지는 것보다야.
머리 위와 건너편에서 이불 뒤척이는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조용해졌다. 거실 바깥도 금세 잠잠해졌다.
뚝딱이를 이렇게 내버려 두고 너희는 잠이 오니?
나는 열불이 터져서 눈을 못 감겠는데.
얘들은 뭐 하러 이런 삼엄한 경비력으로 아이돌을 하나 싶…….
……잠깐.
이제 이놈들 다 잔다는 거잖아.
그럼 쟤들한테만 안 들키고 나가면 되는 거 아닌가?
오늘의 연습량을 다 채우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시간이었다.
이것 때문에 그간 쌓아 온 연습 시간을 모두 날리는 건 너무 아까웠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이라도 했으면 모를까, 한 건 연습밖에 없으면서 성과도 못 얻으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런 경험은 죽어라 야근했는데도 회사가 포괄 임금제라 야근 수당을 못 받았던 걸로 족하다.
나는 이불 밑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튀자!’
누가 깰지도 모르니 알람을 맞출 순 없지만 그거야 안 자고 버티면 될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 채운 연습 시간인데. 이렇게 타의로 엎어지는 꼴은 못 보지.
나는 녀석들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맞이하길 기원하며, 뜬 눈으로 온 신경을 귀에 기울였다.
* * *
스파크 어린이들은 생각보다도 빨리 잠들었다.
한 30분 기다리니까 거실에 인기척이 없어지더라고.
이게 다 그동안 열심히 굴린 덕이다. 잘했다, 과거의 나.
“후…….”
연습하는 동안 다행히 코피가 또 나진 않았다. 그래, 눈치가 있으면 이놈도 잠자코 있어야지.
여차하면 구강 호흡 하면서 연습할 뻔했다. 천만다행이다.
내가 이렇게 간절한데 스파크 놈들은 협조도 안 해 주고.
나는 몰래 나오느라 양말조차 들고 나와야 했던 2시간 전의 내 모습을 회상하며 눈물지었다.
처음부터 그냥 내가 연습하게 내버려 뒀으면 이 야밤에 자발적으로 회사에 복귀하는 정신 나간 짓 따위 안 했을 텐데.
나는 속으로 갖은 불평을 하며 음악을 껐다. 동시에 시스템에 있던 댄스(2)의 빈칸이 칠해졌다.
+
[SYSTEM] 직무 역량 강화 프로그램 진행 현황▷ 김이월
댄스(1) ■■■■■□□
댄스(2) ■■■■■□□
보컬 ■■■■■□□
+
신난다, 오늘도 만근이다!
앞으로 이틀만 버티면 나도 이젠 조금 더 진화한 뚝딱이가 되겠…….
“형!”
깜짝이야.
나는 떨어질 뻔한 심장을 부여잡고 큰소리가 난 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땀에 전 채 문을 열어젖힌 정성빈이 서 있었다.
* * *
정성빈은 요즘 마음이 복잡했다.
일과 관련해서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회사에서 가장 어린 그들을 잘 대해 주려 노력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문제가 생길 뻔한 날이면 그룹의 맏형인 김이월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 주는 덕이었다.
그룹의 분위기도 좋았다.
한때 정성빈은 자신들이 이 상태 그대로 데뷔를 하면 어떻게 되려나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사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어쩌면 일부는 나빴을 수도 있고―좋은 것도 아니어서 어색하게 삐걱거리는 멤버들을 볼 때마다.
정성빈은 남자애들의 사이라는 게 단박에 좋아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곤 했다.
간절한 기도 덕분일까.
맏형인 김이월이 들어온 후로, 그룹은 아슬아슬해 보이는 갈등의 골을 넘어 조금씩 더 나은 모양새를 갖춰 갔다.
그렇다면 이 팀은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는가?
그 질문에 정성빈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언급되었던 ‘김이월’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