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91)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91화(91/193)
| 91화. 사내 불화 (1)
정성빈에게 김이월은 분명 팀에서 가장 의지가 되는 멤버였다.
친구나 동생들에게는 털어놓기 어려운 고민도 김이월 앞에서는 어쩐지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김이월은 유능했고, 재주가 많았으며, 적극적이기까지 했다.
비록 연습생을 늦게 시작한 데다 춤에는 일가견이 없었지만 김이월은 매번 인정할 수밖에 없는 노력으로 조금씩 성장해 나갔다.
그래서 정성빈은 김이월에 대한 것만은 단 한 번도 걱정해 본 적이 없었다.
딱 하나, 건강 관리 빼고는.
김이월은 멤버들에 비해 체력도 월등히 좋았다. 다른 멤버들이 장시간의 연습에 지쳐 나동그라져도 김이월은 늘 덤덤했다.
어디 그뿐인가?
모두가 지친 상태로 숙소에 돌아와 잠을 청할 때도, 김이월은 젖은 머리가 다 마르기도 전에 노트북 앞에 앉는 게 일상이었다.
PT 수업을 빠진 적도 없다. 오히려 김이월의 기계처럼 변함없는 훈련량에 트레이너 선생님이 놀랄 정도였다.
언젠가 한 번은 김이월이 구워 준 빵을 먹으며 같이 등교하던 동생 기연이가…….
‘이월이 형 사실 사이보그인 거 아니에요?’
……라고 할 만큼 그는 한결같았다.
지나치게 잠을 못 자는 시기엔 다크서클이 좀 짙어지긴 했지만 김이월은 언제나 평온했다.
잠이 부족하다고 지치지도, 식단을 조절한다고 예민해지지도 않았다.
딱 한 번, 다 같이 모니터링을 하던 중에 피곤하다며 먼저 방에 들어간 적이 있긴 했지만.
그게 몸이 안 좋아서가 아니었다는 건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더 캐묻지 않았을 뿐.
게다가 김이월은 누가 자신을 걱정할 때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성향이 아니었다.
김이월이 하는 말들은 대부분……
‘난 알아서 잘게. 신경 쓰지 마.’
‘아직은 괜찮아. 먼저 들어가.’
‘시간 되면 정리하고 갈게.’
……등이었으니까.
정성빈은 김이월이 일과 스케줄에 있어서는 언제나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정성빈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종종 그의 건강을 염려하는 말을 하거나, 동생인 이청현을 들먹여 얼른 자라고 가끔씩 잔소리를 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그 김이월이 연습실 한복판에서 코피를 흘렸을 때.
정성빈은 크게 놀라면서도, 머릿속 한구석에서 올 게 왔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모두가 화들짝 놀랐지만 김이월만 미동도 없었다.
오히려 김이월은 평온하게 코 밑에 휴지 뭉치를 가져다 대며 말했다. 코를 막고 연습을 하겠다고.
손가락 사이로 피가 줄줄 새는데도 김이월은 태평했다.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 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는데도 말이다.
모두가 김이월에게 숙소에 돌아가라고 권유했지만 김이월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10분이 넘도록 피가 멎질 않는데도 고집을 피우는 모습에, 웬만해선 형들에게 큰 소리 내는 법이 없는 강기연이 억지로 짐을 챙기고 나서야 김이월은 연습실을 떠났다.
그렇게 김이월이 방 침대에 눕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모두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니저 형께 꼭 연락을 드려 둬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정성빈도 침대에 누워 잠들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깨우기 전까지는.
그 누군가는 잠든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고 약하게 흔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작은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다.
‘성빈아, 성빈아…….’
여러 번 제 이름을 부른 건 자신의 친구이자 또 다른 룸메이트, 박주우였다.
정성빈은 힘겹게 눈을 떴다.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흐릿하게나마 박주우의 인영이 보였다.
‘으응…… 왜?’
‘깨워서 미안해. 그런데…… 이월이 형 어디 나갔어?’
‘뭐?’
그 순간 정성빈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과 함께 잠에서 깼다.
‘그게 무슨 소리야? 형 방에 안 계셔?’
정성빈이 벌떡 일어나 앉아 물었다. 어둠에 적응된 눈이 박주우의 불안한 표정을 고스란히 보았다.
‘자다 깬 김에 이월이 형 또 코피 나는 건 아닌가 걱정돼서 보러 갔는데, 형 침대가 비어 있어서……. 너한테는 얘기하고 간 건가, 하고.’
그런 이야기, 정성빈은 들은 적이 없었다.
정성빈은 곧바로 이불을 걷어차고 다른 멤버들의 방으로 향했다.
박주우의 말처럼 1층 침대 한 칸이 비어 있었다.
혹자는 다 큰 성인 남성이 밤에 자리 좀 비울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정성빈이 그간 보아 온 김이월은 규칙에 어긋나는 일은 단 하나도 함부로 하지 않는 성정이었다.
그런 김이월이 말없이 자리를 비웠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다는 건데.
정성빈은 급하게 거실로 나가 전화기를 집었다. 그리고 매니저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이월이 밤중에 급히 병원에라도 간 거라면 분명 매니저가 동행을 했을 테니까.
그러나 정성빈의 기대가 무색하게도, 신호음이 끊긴 후엔 한참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것 같은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 형…….’
‘성빈이니?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졸음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에 정성빈은 당황했다.
정성빈은 최대한 침착하게, 갑자기 내일 일정이 기억나질 않아 전화를 드렸다며 죄송하단 변명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거실 수납장 앞에 꿇어앉아 통화 중이던 정성빈을 지켜본 박주우가 물었다.
‘……매니저 형도 모르신대?’
‘응. 아무래도 형 혼자 나간 것 같아.’
정성빈은 불안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자꾸만 낮에 봤던, 김이월의 창백할 정도로 하얀 낯빛과 손등 위로 끊임없이 흐르던 피가 생각났다.
그때였다. 정성빈을 지켜보던 박주우가 말했다.
‘동네라도 한 바퀴 돌아보고 올게……. 편의점에 약이라도 사러 간 걸 수도 있으니까.’
‘응? 아니야, 내가 다녀올게. 넌 더 자.’
‘성빈이 넌 내일 학교 가야 하잖아. 난 연습 전까지 자면 돼.’
그러면서 박주우는 현관으로 향했다. 문득 정성빈은 박주우가 고열로 앓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김이월은 망설임 없이 한밤중에 바깥으로 뛰쳐나갔었다. 그래서 지금의 박주우가 더 적극적인 걸지도 몰랐다.
동시에 김이월이, 자신을 위해 팀에 제안했던 것도 떠올랐다.
‘그럼 적어도 회사 내에서는 2인 1조로 다니자.’
……라던 그 말을.
정성빈은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그리고 박주우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두 사람은 동네 여기저기를 한참이나 뛰어다녔다.
편의점이란 편의점은 전부 돌았고, 근처에 있는 병원의 응급실까지 갔다.
김이월이라는 이름을 가진 키 큰 남자가 온 적 없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뿐이었다.
‘약 사러 나간 게 아닌 건가……?’
박주우가 말끝을 흐리며 중얼거렸다. 시간은 이미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무언가가 정성빈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얼마 전, 김이월이 갑자기 던졌던 질문이었다.
‘일주일만 내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연습하면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확실히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해 봐. 그럼 넌 내 말대로 할 거야?’
‘확실히요?’
‘응, 확실히.’
일주일. 그리고 그 뒤로 꼬박꼬박 멤버들이 5시간 단위로 연습하도록 시간을 체크했던 김이월.
그리고 거의 15시간가량을 매일 채워 가며 연습했던 김이월 본인까지.
‘주우야.’
‘응?’
‘나 형 어딨는지 알 것 같아.’
그 길로 정성빈은 곧장 달렸다.
어디로 가는 거냐는 박주우의 질문에도 정성빈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연습실이라고만 대답했다. 박주우는 놀란 듯했으나 크게 반문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정성빈은 이 연습 중독자인 형이 연습실에는 없길 바랐다.
끝까지 연습을 하겠다고 버틴 게 조상신의 계시인지 뭔지 때문만은 아니길 기도하면서.
그러나 UA의 지하에서 정성빈과 박주우를 맞이한 건, 분명히 불을 끄고 나왔을 연습실에서 새어 나오는 하얀 불빛이었다.
정성빈이 연습실의 문을 열자, 온몸이 땀에 젖은 채 후련하다는 듯 서 있는 김이월의 모습이 보였다.
* * *
나는 정성빈의 얼굴을 한 번, 연습실 벽에 걸린 시계를 한 번 쳐다보았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설마 너 혼자 왔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성빈의 어깨 너머로 박주우의 머리통이 보였다.
미성년자 둘이 손 붙잡고 밤 외출했구나. 혼나려고.
오밤중에 연락도 없이 뛰쳐나온 걸 지적해야 할지, 그래도 용케 둘이서 같이 온 걸 칭찬해야 할지 고민하려던 찰나 정성빈이 정색을 했다.
“형, 지금 그게 중요해요?”
보기 드물게 정성빈의 미간에는 주름까지 져 있었다.
“저희가 형 없어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그리고 몸도 안 좋으면서 왜 이 시간까지 연습실에 계세요?”
그제야 나는 이놈들이 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들킨 건 유감이지만 이미 시간은 다 채웠으니 돌아가도 아쉬울 건 없었다. 나는 물병의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미안. 너희가 다 자는 줄 알았어. 이제 들어갈…….”
“아니, 사과가 듣고 싶은 게 아니라요!”
정성빈의 목소리가 연습실에 울렸다. 정성빈이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피가 그렇게 많이 나는데 계속 괜찮다고만 하고, 병원 가자고 해도 듣지도 않고! 큰 병이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성빈아, 고작 코피 하나로…….”
“보통은 고작 코피 하나 때문에 옷이 다 젖진 않아요. 걷다가 휘청거리지도 않고요!”
정성빈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 티셔츠가 피범벅이 된 게 꽤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정말 병원에 갈 필요는 없었는걸. 내 코피는 건강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페널티니까.
게다가 지난 9년간 받은 건강 검진에서 문제가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내게 큰 병 따위가 있을 리가.
이걸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난감했다. 박주우가 어설프게나마 정성빈을 말려 주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박주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성빈은 멈추진 않았다.
“저희는요, 형이 둘씩 다니라고 해서 지금도 같이 왔어요. 형이 말한 것처럼 연습 시간 다 채우고 형이 하라는 건 다 한다고요. 그런데 왜 형은 아프면 멤버들한테 얘기하기로 한 것 하나도 안 지키세요?”
“아픈 게 아니어서 그랬어. 코피를 예상하는 사람이 어딨어.”
“청현이나 기연이가 그랬어도 형 똑같이 말씀하실 거예요? 이 정도 코피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연습 시간 채우고 가라고?”
정성빈은 내가 유한수에게 맞았을 때보다도 더 집요하게 굴었다.
나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린애랑 입씨름을 하고 싶진 않았는데.
“성빈아, 너도 그때 그랬잖아.”
“……뭐가요?”
“연습 말이야. 성과가 없어도 할 거라며.”
내 말대로만 하면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너는 열심히 연습할 거냐고 묻던 내 질문에, 정성빈은 분명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기억력이 좋은 정성빈은 그때의 대화를 바로 기억해 냈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분명히 성과가 나올 것 같아서 그랬어. 컴백하기 전에 최대한 모양새는 갖춰 두고 싶어서.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이렇게 무리한다는 전제는 없었잖아요.”
“그거야 컨디션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지. 지금 멤버 중에 한계까지 연습 안 하는 사람도 있어?”
“그 한계가 왜 형한테만 그렇게 각박해요? 저희 다 최선을 다하는 건 맞지만 형처럼 적게 자고 많이 연습하진 않아요. 형이 다 신경 써 주고 있으니까! 그런데 왜 형은 매사에 본인한테만…….”
“성빈아, 설마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 비해 훨씬 부족해서 이러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