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93)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93화(93/193)
| 93화. 임직원 농장 체험 (1)
7일간의 지옥 OJT는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덕분에 한동안 정체기에 머물러 있던 내 숙련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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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평가(100)
― 보컬 숙련도: 10(▲)/20
― 댄스 숙련도: 9(▲)/20
― 자기 PR: 12(▼)/20
― 근태 관리: 18/20
― 조직 내 적응력: 11/20
― 누적 피로도: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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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숙련도 올랐고, 댄스 숙련도도 올랐고.
누적 피로도도 40%를 넘으면 코가 박살난다는 걸 안 후론 1% 단위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데.
‘자기 PR은 왜 떨어진 거야?’
며칠 못 본 새 자기 PR이 1점 떨어져 있었다.
설마하니 감점도 될 줄은 몰랐다.
기술적 요인이 아닌 항목들 점수야 변할 수도 있는 거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감점 사유는 안 알려 주나.’
인사 평가를 했으면 사유는 알려 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속으로 불평하자 시스템이 나타났다.
+
[SYSTEM] ‘책임자’ 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아, 김 대리! 내가 김 대리네 PT 봤거든? 그런데 다른 사원들에 비해 김 대리가 좀…… 눈에 안 띄더라? 상대 평가라 내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 미안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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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설명과 함께.
빡친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사유라 더 빡친다. 어떻게 그 쟁쟁한 멤버들 사이에서 눈에 띌 수 있겠나.
저 점수 하나 지키겠다고 나서는 것도 못 할 짓이다. 뚝딱이면 얌전히 구석에나 있어야 그나마 덜 거슬리지 않겠는가.
주제도 모르면서 나댔다간 가뜩이나 모난 돌이 얼마나 정을 맞게 될지, 상상도 하기 싫다.
‘뭐, 기술 늘었으면 됐지.’
이번 댄스 숙련도 상승의 효과는 조금 특별했다.
갑자기 엄청난 춤을 추게 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대신 같은 춤을 췄을 때의 체력 소모가 훨씬 줄었다.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가 줄어든 모양이었다.
스파크 녀석들도 7일 만에 무언가가 달라졌음을 느낀 것 같았다.
다들 평소보다 즐겁게 연습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 번 불기 시작한 순풍은 제법 여러 곳에 영향을 미쳤다.
‘형! 저 오늘 A&R 팀 다녀왔어요!’
‘거긴 왜?’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지금이라도 한 번 더 수정할 수 있는지 여쭤보려고!’
버프를 창의력에 받은 이청현이 타이틀 곡을 녹음 직전까지 개조하는가 하면.
‘이번에는 고음 파트에 화음을 최대한 넣어 보는 게 어떨까요? 구간마다 구성 요소가 많아지면 훨씬 풍성한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좋지. 그런데 성빈이 너랑 주우 부담이 너무 커지지 않을까?’
‘화음까지 고음으로 쌓는 거 아니면 나나 강기연이 붙지, 뭐. 아니면 김이월 네가 파트를 늘리면 되잖아.’
정성빈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며 멜로디 파트를 보완하기도 했다.
‘그럼 지금부터 5분간 이미지 체인지를 위한 키워드 모아 보겠습니다. 시작!’
‘염색, 컬러 렌즈, 페이스 스티커…….’
‘잠깐만요, 저 타이핑이 못 따라가요!’
‘외워. 이청현 넌 그게 빠르잖아.’
내가 비록 스파크를 아니꼽게 보는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이거 하난 확실하다.
멤버들 전원,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 능력이 전보다 월등히 좋아졌다.
덕분에 브레인스토밍 하는 맛이 났다. 그래서 어제는 논스톱으로 4시간쯤 회의를 달렸다.
그렇게 정리한 내용을 첨부해 기획 팀에 메일을 보내고 나자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때마침 샐러드 팩을 가지고 오신 매니저님에, 나는 노트북을 덮으며 물었다.
“매니저님! 저희 혹시 저번에 홀드됐던 자컨은 어떻게 됐나요?”
가정사를 건드리는 이슈나, 갑자기 튀어나온 OJT 때문에 손도 못 대고 있던 자컨을 이제는 찍어야 했다.
컴백 직전부터 직후까지는 무대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업무는 하기 힘들 테니까.
기획 팀에서 별말이 없는 걸 보아 마땅히 큰 문제는 없을 듯해 따로 챙기진 않았지만, 슬슬 굵직한 건들은 마무리가 되어야 할 때였다.
매니저님은 봉투에서 샐러드 팩을 꺼내며 환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 그거? 농장 간다더라!”
네?
농…… 어디요?
* * *
‘도심 속 주말농장이요?’
‘그런 게 애들 정서 발달에 좋대. 그래서 말인데, 김 대리가 그거 좀 찾아서 알려 줘 봐.’
주말농장과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주말농장 신청을 도맡아 진행해 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 부장네 밭에 심을 모종을 사러 다니는 것부터, 여름 주말엔 김매러 가는 일까지 해야 했다.
비가 많이 왔던 어느 여름날엔 한밤중에 이런 전화를 받기도 했다.
‘밭에 물길을 내 달라고요?’
‘― 어. 그 뭐냐, 고랑을 파 놨으면 괜찮을 거라던데. 김 대리 그거 파 놨었나?’
‘네, 씨 뿌리기 전에 다…….’
‘― 그런데 내가 보니까 비가 심상치 않아. 김 대리가 한 번만 가서 봐 줘. 우리 집사람이랑 애가 밭에 가 봐야 될 것 같다고 아주 성화야.’
사모님과 자녀분 손에 물 한 방울 묻힐 수 없었던 남 부장은 그렇게 나를 폭우 속으로 내몰았다.
‘부장님…… 물길 다 트고 복귀 중입니다.’
‘― 어어, 고생했어!’
‘― 여보, 우리 진짜 안 가 봐도 될까? 고추 다 쓰러지는 거 아니야?’
‘― 아냐, 됐어. 밭에 연락해 봤는데 거기 직원분이 다 둘러보셨다네.’
‘― 이 비에? 농장 운영도 힘들겠네…….’
멀리서 걱정하시는 사모님께 당신의 남편분께서 농장 직원 아니고 한평산업 직원인 나를 여기까지 내몰았다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내 손에 흙을 묻히는 건 그때가 마지막일 줄로만 알았는데.
“형, 이게 형 거래요.”
나는 체념하며 강기연이 내민 바지를 받아 들었다. 무늬가 아주 화려했다.
“이거 누가 고른 거랬지?”
“주우 형이요.”
우리 주우, 혼자서도 유니폼을 제법 잘 찾았구나. 이렇게 농활에 딱 어울리는 바지도 구해 오고.
기특함과 괴로움이 뒤섞인 시선을 느낀 건지, 박주우가 내 쪽을 힐끔거리다 물었다.
“형, ……마음에 안 드시면 제 거랑 바꿔 드릴까요?”
“아냐, 마음에 들어.”
카메라에 코스모스 무늬가 마음에 안 들어서 동생의 조팝꽃 바지를 빼앗아 입는 21세 성인 남성으로 비치고 싶진 않거든.
그때 옷을 다 갈아입은 최제호가 옆방에서 튀어나왔다.
“야, 기장이 이게 맞아?”
휑한 발목과 함께.
모란이 잔뜩 그려진 검은 바지의 밑단이 최제호의 발목 위에서 맥없이 하늘거리고 있었다.
“네 키에 맞는 냉장고 바지도 별로 없지 않을까?”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나는 혹시 몰라서 챙겨 온, 발목이 긴 양말 한 켤레를 가방에서 꺼내 최제호에게 건넸다.
“이거나 신어. 풀독 오르기 싫으면.”
“풀독?”
“있어, 그런 거.”
벌레 들어가는 게 싫으면 바짓단 위까지 양말을 끌어 올리라는 친절한 조언까지 해 주고 있는데 밖에서 스태프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파크 10분 후에 촬영 들어갈게요!”
“아, 네!”
이런, 정작 난 하나도 못 갈아입었는데.
카메라는 환복을 위해 전부 가려 둔 상태라, 나는 안심하고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젖혔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아까 전달받은 단체 티를 집어 들려는데.
“형!”
정성빈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데 정성빈이 한발 빨랐다.
정성빈은 내 등이 벽 쪽을 향하도록 내 몸을 돌려세우더니, 내게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형 등이 왜 그래요?”
“내 등? 등이 왜?”
나는 벌레라도 붙었냐고 물으며 등 쪽으로 손을 뻗었다. 등이 간지러운 느낌은 전혀 없었는데.
정작 정성빈은 사색이 되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아니, 그게…….”
뭐야.
나 갑자기 없던 용 문신 같은 거라도 생긴 거 아니야?
나중에 시스템이 ‘김 대리, 회사원한테 이런 문신이 가당키나 해? 자네는 근태 감점이야!’ 이딴 소리 하는 거야?
머리가 지끈거렸다.
잠시 고장 난 나를 정성빈이 옆방으로 데려갔다. 다들 옷을 갈아입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아무도 이쪽을 신경 쓰지 않았다.
정성빈은 등 뒤로 문을 닫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 등에 그, 엄청 큰 흉터가 있는데…….”
“흉터? 아, 난 또 뭐라고.”
흉터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오만 갈래로 뻗어나가던 생각이 일순에 멎었다.
있긴 있지, 흉터가.
어렸을 때 맞기 싫어서 도망가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생긴 거 말이다.
운 나쁘게도 식탁 모서리에 등이 찢기는 바람에 피부가 다 너덜너덜해졌었다.
‘그래도 엄청 크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확실히 처음엔 상처가 컸었다.
하지만 때마침 귀가한 누나가 응급실에 데려가 준 덕분에 상처는 바로 꿰맬 수 있었다.
건장한 남자 등에 너무 큰 흉이 있으면 사람들이 무서워한다며 누나가 닦달을 해 학생 때 흉터 제거 수술도 했고.
‘평소에 흉 질 일이 별로 없었으면 놀랄 수는 있겠네.’
같이 옷 갈아입은 적이 처음이라 더 당황했을 수도 있고.
나는 정성빈에게 최대한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어렸을 때 잘못 넘어져서 생긴 거야. 그래도 크면서 많이 작아졌어.”
“작아진 거라고요? 이게요?”
오버하긴. 그래 봤자 지금은 조금 굵은 실선 정도인데.
“응. 옷 입으면 안 보일 테니까 딱히 말한 적은 없는데, 혹시 흉터도 방송 나갈 땐 가려야 해? 문신처럼.”
“저도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 형……. 이 정도면 흰색 티엔 비칠 수도 있겠는데요?”
“그 정도는 아니야. 두께만 좀 있으면 흰색 옷도 충분히…….”
……까지 대답하는데 무언가 쎄했다.
아무리 정성빈이 동료를 아끼고 사랑하는 성정이 강하다지만 조금 과하지 않은가?
용 문신도 아닌 고작 흉터 하나 때문에?
나는 방 앞에 있는 거울 앞으로 가 거울을 등지고 섰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려 거울을 확인했다.
“어?”
잠시만.
내 등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