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94)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94화(94/193)
| 94화. 임직원 농장 체험 (2)
나는 아주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거울 너머의 내 등은 한눈에 봐도 사연이 많아 보였다.
날개 뼈 사이부터 허리 중반까지 사선으로 크게 찢어져 있는 데다, 깔끔하게 아물지 않아 벌어졌던 부분이 훤히 보였다.
‘이 정도면 징그러워하는 사람도 있겠는데?’
이러면 정성빈의 반응도 이해가 갔다. 티셔츠 너머로 비치기 충분해 보였으니까.
“진짜…… 크네.”
등판이 이 지경이 된 줄은 몰랐다.
씻으면서 흉터 쪽을 만지긴 했지만, 워낙 상처가 생기고 난 후 시간이 많이 흐른 탓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소 화장실이 워낙 좁아서 거울에 등을 비춰 볼 공간이 없기도 했고.
그보다 잘 갈무리해 뒀던 흉터가 지금 왜 이렇게 되었는지가 중요했다.
상처가 생겼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는데 상처의 모양만 변했다면…….
‘XX, 우리 누나 진짜 멀쩡히 살아 있는 거 맞아?’
아무리 봐도 이거, 중간에 사고를 수습해 준 누나가 없어진 게 아닌가.
나는 바로 복지 서비스에 등록된 누나의 상태를 확인했다.
+
[SYSTEM] ‘복지 서비스’ 이용 내역▷ 관계: 혈연
▷ 건강 상태: 좋음
▷ 심리 상태: 나쁨
▷ 기타: 근무 중
+
심리 상태가 나쁘다는 말에 시스템을 족칠 뻔했으나 근무 중을 보고 납득했다. 그래, 그건 불가항력이지.
그보다 이 시스템을 계속 믿어도 될지가 문제였다.
사람 등판을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은 주제에 글자 몇 개로 나 하나 못 속이겠느냔 말이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일단은 참겠지만 거짓말인 거 들키기만 해 봐라. 셀프로 대가리 깨고 저승 가서 시스템 네놈이랑 면담 필리버스터 할 거니까.
“형들, 아직 옷 갈아입는 중이에요? 저희 이제 나가야 된대요!”
방문 너머에서 이청현이 소리쳤다.
나는 정성빈에게 잘 숨겨서 나가 보겠다고 말한 뒤, 녀석을 내보내고 티셔츠를 두 겹으로 겹쳐 입었다.
* * *
예전의 스파크는 바깥 활동이 몹시 드물었다.
실내 스튜디오에서 떠드는 것도 잘 못하는 애들을 밖에 풀어 둬 봤자 뭐 하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나마 운동 프로그램에서는 종종 활약했지만,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활동하는 것이 녀석들에겐 너무나도 어색했던 모양이다.
‘그 여러 사람에 자기네 멤버들도 속한다는 게 문제라 그렇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동안 밤이고 낮이고 갈군 덕분에 이 녀석들은 카메라 앞에서 입 다물고 서 있는 것이 얼마나 중죄인지를 몸소 깨닫고 각성했다.
그 결과…….
“이런 말 어떨지 모르겠는데 우리 형들은 진짜……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그 말 무슨 뜻이냐, 이청현?”
“형님들 완전 밭일 잘하실 것 같다고요. 든든하다, 든든해!”
“그건 그래.”
“기연이 너도 든든해 보여……!”
“네?”
……다들 주둥이가 쉬지를 않더라.
그 와중에 오디오 물리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은 잊지 않은 듯 서로 끼어드는 타이밍이 완벽했다.
나는 녀석들이 한껏 떠드는 꼴을 보다가, 한쪽 구석으로 밀려난 우리의 MC 정성빈에게 넌지시 말했다.
“성빈아, 쟤네 너무 시끄러운데 밭에 허수아비 대용으로 세워 놓고 올까?”
“형은 진짜 세워 둘 것 같으니까 그러지 말아 주세요……!”
참나. 난 농담도 못 하나.
정성빈은 내가 진짜로 멤버들을 밭에 거꾸로 세워 놓을 거라 생각한 건지 금세 장내를 정리했다.
“농촌에 왔으니 첫 번째로 할 일! 바로 점심 준비하기입니다!”
정성빈의 말에 모두가 활기차게 박수를 쳤다.
점심 준비라.
이 녀석들을 데리고 이 대자연에서 말이지?
그렇다면야, 고민할 것도 없다.
“파전 부쳐 먹자.”
선택의 여지가 어딨어. 무조건 만들기 쉬운 걸로 해야지.
“파전 좋죠! 그리고 또 뭐 만들까요?”
“우리 실력으론 파전만 무사히 완성해도 성공이야, 청현아.”
나는 이청현의 어깨에 손을 얹고 웃으며 말했다.
눈은 웃고 있지만 진담이다.
당장 아무나 두 놈 골라 밭에 가서 파 뽑아 오라고 하면 필히 한 놈은 양파를, 한 놈은 미나리를 뽑아 올 것이다.
뻔히 예상되는 캄캄한 미래를 애써 외면하며, 나는 미소를 유지하고 물었다.
“저희 혹시…… 부침 가루나 소금 같은 건 받을 수 있나요?”
“필요한 물품은 제작진과의 게임을 통해 얼마든지! 받아 가실 수 있습니다!”
PD님이 대답하셨다.
그때 내 귀로 불길한 대화가 들려왔다.
“성빈이 형, 파전에 소금도 필요해요? 보통 간장 찍어 먹잖아요.”
“다른 데 쓰려고 그러시는 거 아닐까? 그쵸, 제호 형?”
“저번에 김치전 만들 때 넣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청현, 우리 그때 소금 넣었냐?”
“설탕 넣지 않았어요? 재료에 따라 소금 설탕이 갈리나?”
나는 은은히 미소 지으며 물었다.
“PD님.”
“네!”
“재료…… 얼마나 주실 수 있으세요?”
저희, 아무래도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 * *
파전 6인분 만들기는 몹시 소란스럽게 진행되었다.
“파 뿌리가 원래 이래? 친환경이라 그런가?”
“그건 양파가 아닐까, 제호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덜 자란 양파를 뽑아 온 단세포 최제호부터.
“우리 화덕 쌓아야 된다고 하지 않았어?”
“잠깐만, 기연쓰. 일 두 번 하지 않으려면 멤버들의 동선과 바람이 부는 곳을 생각해서 신중하게 위치를 잡아야 해.”
좋은 머리를 이런 데까지 풀로 쓰는 이청현과, 네 말이 옳다며 간신히 한 단 쌓은 벽돌을 죄다 허물고 있는 강기연까지.
이러다 점심은 오후에 먹겠지 싶다. 오후 한…… 5시쯤.
그나마 정성빈과 박주우 쪽이 조용한 게 위안이 되었다.
그래, 사람이 다섯인데 그중에 야외 취사 해 본 놈이 한 놈은 있어야 세상의 균형이 맞…….
“형, 파는 얼마나 벗겨야 다 다듬은 거예요?”
“이월이 형, 찬장에 간장이 세 종류나 되는데 뭘로 가져올까요……?”
“…….”
그 뭐냐…….
다음엔 제작진분들이 얘들을 농활 말고 보이 스카우트 같은 거에 데려가 주셨으면 좋겠다. 원데이 요리 클래스면 더 좋고.
나는 녀석들의 질문에 하나씩 대답해 준 다음 목장갑을 건넸다.
“장갑은 왜요?”
“요리는 내가 할 테니까 가서 장작만 좀 모아 와.”
그리고 산길 쪽으로 멀어지는 녀석들의 등을 보며 속으로 개탄했다.
이게 다 애들한테 너무 샐러드만 먹인 탓이다.
지들끼리 밥 몇 끼 해 먹게 뒀어 봐. 이렇게 되나.
‘나라고 대단한 요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뭐라고는 못 하지만.’
나는 마루 한쪽에 보란 듯이 놓여 있던 가마솥 뚜껑을 벅벅 닦으며 생각했다.
그러자 강기연이 다가와 물었다.
“뚜껑에 전 부치시게요?”
“응. 프라이팬에 부치는 것보단 여기에 부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럼 제가 닦을까요?”
“기름도 먹여야 하니까 내가 할게. 화덕은? 다 됐어?”
“이청현이 자기한테 맡기라고 하던데요?”
슬쩍 마당을 보자 이청현이 ‘이게 아니야!’라며 쌓았던 벽돌을 다 부수고 있었다.
“기연아.”
“네.”
“나한테 도망 오지 말고 빨리 돌아가서 화덕 쌓아.”
“……네.”
그렇게 한참 솥뚜껑을 닦고 있으니 한평산업에서의 워크숍이 떠올랐다.
‘워크숍엔 뭐니 뭐니 해도 바비큐지. 안 그래, 조 팀장?’
‘아휴, 그럼요. 숯 이런 것도 다 부장님께서 준비해 주신 것 아닙니까. 저희야 거저 온 거죠. 이런 걸 요새 말로 뭐라고 하지? 버스 탄다고 하나?’
예약도 내가 하고 장도 내가 보고 고기도 내가 굽고 술도 내가 따르는데 도대체 누가 버스를 태워 줬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던 눈물의 워크숍 말이다.
그때도 남 부장과 조 팀장이 드러누울 때까지 술을 마시는 동안 나는 이렇게 밖에서 철판을 닦았었다.
그 워크숍에서 언제가 제일 좋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철판 닦을 때라고.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자 수세미를 든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세척을 끝낸 솥뚜껑의 물기를 닦고 있는 와중, 이번에는 박주우가 내 쪽을 찾아왔다.
박주우는 반죽이 가득 든 거대한 양푼을 내밀며 물었다.
“형, 반죽은 이 정도면 될까요……?”
“응. 반죽 누가 했어? 잘했네.”
“제호 형이요.”
헤매긴 했어도 김치전 만들었던 경험이 어디 가지 않았나 보다. 장족의 발전이다.
박주우는 내 허락이 떨어진 후에도 바로 돌아가지 않고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이청현과 강기연이 왁왁 소리를 지르며 입으로 화덕을 쌓는 현장을 가리켰다.
“형, 저런 데 불붙일 줄 알아요?”
너도 애들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걱정이 안 들 수가 없지?
나는 박주우가 안심할 수 있도록 녀석의 어깨를 토닥였다.
“당연하지. 나만 믿어.”
불도 붙일 줄 알고 가마솥으로 밥도 지을 줄 아니까.
안심하고 가서 식용유나 가져오렴.
* * *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파전은 매우 훌륭했다.
방금 부쳐서 그런가 맛있더라고.
먹는 장면을 찍은 후엔 스태프분들께 한 장씩 부쳐서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시 전 부치려고 앉았더니 녀석들도 알아서 재료 가지고 오더라.
간혹 가다 이청현이 판도 넓은 김에 토끼 모양 전을 부쳐 보겠다며 설치는 일도 있었으나 방송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뒀다.
뒤집다 실패하는 바람에 토끼 귀가 한쪽만 짧아졌지만 그것도 맛은 있었다.
그 후로도 촬영은 바쁘게 진행되었다.
가위바위보 해서 진 최제호와 강기연이 사이좋게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와 정성빈은 제작진에게서 마트 이용권을 따내 장을 보고 왔다.
그 사이 박주우와 이청현은 뭘 하고 있었는지 셔틀콕과 배드민턴 채를 하나씩 나뭇가지에 헌납했고.
너무 대놓고 나무에 뺏겼길래 순간 깜짝 카메라인 줄 알았다.
텃밭에서 잡초 뽑기, 제작진과의 족구 내기, 롤링 페이퍼 쓰기까지 하고 나자 산골 마을에서의 하루도 금방 저물었다.
하지만 그게 촬영 온 연예인들의 하루가 끝났다는 걸 의미하진 않았다.
나는 낮에 최제호가 텃밭에서 따 온 오이를 얇게 썰어, 하루 종일 뙤약볕 밑에서 혹사당했을 스파크 녀석들의 얼굴에 야무지게 올려 주었다. 아무리 봐도 난 아이돌이 아니라 스태프를 했어야 한다.
“형, 형 얼굴엔 제가 붙여 드릴 테니까 형도 누우세요!”
“됐으니까 아무도 일어나지 마. 오이 하나 떨어질 때마다 내 노고가 떨어진다고 생각해.”
기껏 정성빈을 그대로 눕혔더니 이번에는 멀찍이서 이청현이 튀어 올랐다.
“형, 저 지금 꼭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요!”
그와 동시에 이청현의 백옥 같은 얼굴에서 오이가 후드득 떨어졌다.
저 이 씨, 내가 저거 써느라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데!
그러나 아직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분노를 참고 물었다.
“뭔데?”
“진실 게임이요! 이게 또 진부해질지 몰라도, 이런 데 와서 안 하면 서운하잖아요!”
지금 그 얘기 하려고 내 피 같은 오이를 다 바닥에 떨궜다 이 말이지. 그 정도는 충분히 누워서 건의할 수 있었을 텐데?
팬들은 좋아할 것 같기도 하다. 아이돌의 팬은 ‘이런 사소한 게 궁금하다고?’ 싶은 것들까지 알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었으니까.
남 부장의 따님도 그랬었다.
최제호의 키와 몸무게부터 좋아하는 신발 브랜드까진 그렇다 치는데, 그분께선 그걸로 만족하지 않으셨더랬지.
최제호가 5월 어느 봄날 중국집에서 짜장면 곱빼기에 크림 새우를 시킨 것의 어디가 그렇게 매력적인 정보인지 나는 모르겠으나, 따님께선 내가 찾아 드린 그 떡밥을 참 좋아하셨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진실 게임이면 저거보단 재밌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안 나오면 쥐어짜면 그만이고.
“난 좋아!”
웬일로 박주우까지 큰 소리를 내며 이청현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젊은 애들 사이에서 진실 게임이 유행이었던가 되짚어 보고 있는데, 박주우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 저 수학여행 같은 걸 안 가 봐서요. 이런 걸 할 기회가 별로 없었어서……!”
아니, 주우야.
그렇게 말하면 안 할 수가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