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95)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95화(95/193)
| 95화. 임직원 농장 체험 (3)
저녁 8시.
도시에선 한창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을 시간이지만, 해도 지고 인터넷도 없는 시골에선 딱 진실 게임 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이쯤 되면 일이 이렇게 돌아갈 줄 알고 시스템이 ‘멤버들과 비밀 이야기 나누기’ 같은 업무를 준 게 아닐까 싶다.
멤버들은 전원 오이를 떼고 좀 더 촉촉해진 상태로 거실에 모여 앉았다.
“아, 원래 이런 건 촛불 하나씩 들고 해야 제맛인데!”
“그건 수련회 감성 아니야?”
“분위기가 있잖아요!”
나는 분위기 타령을 하는 이청현을 위해, 작가님에게 핸드폰을 빌려 와 ‘[1시간/1 Hour] 불멍 시간’ 동영상을 켠 다음 놈에게 건넸다.
손안에 사이버 모닥불을 쥐게 된 이청현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순서는 어떻게 할래?”
내가 묻자 정성빈이 바로 대답했다.
“저희 이번 주 칭찬하기 아직 안 했으니까, 옆 사람 칭찬하다가 막히는 사람부터 할까요?”
“좋네.”
정성빈은 말이 나온 김에 자신부터 하겠다며 자신 있게 나섰다.
“나는 청현이 네 봉사 정신을 칭찬하고 싶어. 형들 손에 상처 나면 안 된다고 본인이 화덕 쌓기를 담당하는 모습이 아주 감동적이었어.”
“그거 그냥 본인이 하고 싶었던 것 같던데요.”
강기연이 중얼거리든 말든, 이청현은 정성빈의 칭찬을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다.
칭찬 릴레이는 쭉쭉 진행되었다. 숙소에서 몇 번 해 본 덕인지 다들 익숙하게 멤버를 칭찬했다.
순서는 돌고 돌아 최제호의 차례가 되었다.
칭찬을 들을 사람은 나였다. 나는 녀석에게 어서 말해 보라며 손짓했다.
그러자 최제호가 눈썹을 찌푸리더니 침음했다.
“어…….”
“지금 그 침묵 뭐야?”
최제호는 목에 떡이라도 걸린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다못해 정성빈처럼 오늘 일로라도 칭찬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이월아, 솥뚜껑을 열심히 닦아 줘서 고마워! 이렇게.
물론 정성빈은 진심을 담은 칭찬이었겠지만 말이다.
나는 두 손을 모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설마 없니?”
“아니, 너 엊그제 정성빈한테 혼났잖아.”
“그러니까, 난 혼날 짓만 해서 칭찬할 게 없다 이거네? 너부터 질문받아라.”
나는 최제호를 곧바로 진실 게임의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썩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아무도 녀석에게 섣불리 질문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긴, 너희도 이놈의 주둥이가 무슨 말을 할지 두렵겠지.
‘팬들이 얘네 무슨 얘기할 때 반응이 좋았더라?’
일단 이 자리에서 첫사랑 얘기 같은 걸 꺼내는 정신 나간 놈은 없을 거고.
학창 시절 관련 질문……도 얘 친구 별로 없었던 것 같으니까 빼고.
나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중에 지방이나 해외로 스케줄을 가게 된다면 누구랑 방 쓰고 싶어?”
딱히 오늘을 노리고 한 질문은 아니다. 어차피 오늘은 다 같이 한 방에 다닥다닥 붙어 자야 한다.
최제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박주우.”
“왜?”
“조용하잖아. 서로 터치가 적으면 좀 편하지 않나?”
“그건 주우 의견도 들어 봐야 할 듯.”
“저도 제호 형이랑 방 쓰는 거 좋아요……!”
착한 녀석 같으니. 박주우 넌 다음 빨래 개기 면제다.
최제호 네놈은 예쁘게 말하기 교육 100회고.
다음 주인공은 눈치 게임에서 진 정성빈이었다.
차례가 돌아가자마자 이청현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저 이 질문 한번 해 보고 싶었는데! 형은 이월이 형 다섯 명이 나아요, 다섯 살 이월이 형이 나아요?”
혹시 아까부터 내 벌칙 게임하고 있는 거니?
황당해하는 나를 두고 정성빈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는 제삼자끼리 열띤 토론의 장을 열었다.
“넌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 딱 봐도 다섯 살 이월이 형이지.”
“왜?”
“춤 조기 교육 시킬 수 있잖아.”
강기연이 한껏 과몰입해 무시무시한 말을 지껄였다.
스물아홉 살에서 스무 살로 돌아왔는데 다섯 살로 못 돌아가겠느냐마는. 이런 토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장장 5분이나 심사숙고한 정성빈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정했어.”
“오! 뭐 고를 거예요!”
“다섯 살 이월이 형으로 할게.”
박주우가 이유가 뭐냐고 묻자, 정성빈이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형이 다섯 명이면 우리가 한 명씩 지켜봐야 하지만, 형이 하나면 다섯이서 다 같이 보면 되잖아……!”
“미안한데 나 데리고 공동 육아할 생각이니?”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바보 같은 녀석들. 나였다면 이놈들을 죄다 다섯 명으로 불려서 행사를 다섯 배씩 뛰게 했을 거다.
한 번 물꼬가 트인 뒤로는 별의별 질문이 다 나왔다.
다년간의 술자리 게임으로 단련된 나는 한 번도 걸리지 않고 질문 지옥을 벗어날 수 있었다. 과거의 나, 칭찬해.
* * *
제작진분들의 기상 미션 전달을 끝으로 오늘분의 녹화는 끝이 났다.
팀 내 과반수가 미성년자인 상황을 고려해, 야간 녹화는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사전 협의한 덕이다.
카메라가 꺼지고 나서야 녀석들은 화장을 지우고 본연의 상태로 돌아왔다.
무대 화장이 아니어서 그런가, 민낯이어도 별 차이는 없었다. 아니면 아직 다들 어려서 그런 걸 수도.
내가 마지막으로 씻고 나오자 이미 방엔 이불이 인원수대로 깔끔하게 펴져 있었다.
숙소 생활을 한다고는 하지만 기껏해야 3인 1실이었던 것과 달리 오늘은 6인 1실이다. 지독하게 군대 생각이 났다.
‘그래도 이불은 화사하고 좋네.’
슬쩍 둘러보자 녀석들도 오색 이불을 하나씩 덮고 누운 후였다.
나도 내 몫의 이불을 덮으려는 찰나, 옆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정성빈이었다.
“형, 주무시려고요?”
“어어, 자야지.”
회사에서 컴백 앞두고 다크서클 늘리지 말라고 한 소리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거 조절하는 방법을 알았으면 내가 피부과에 취직했겠지.
“너도 얼른 자. 우리 내일 6시 기상이잖아.”
“네.”
정성빈은 순순히 대답하고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30초 만에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요, 형.”
“왜?”
“형 등은 왜 그런 건지 여쭤봐도 돼요?”
그러면서 정성빈은 힐끔 눈치를 봤다.
“왜. 어디서 헛짓거리라도 하고 다녔을까 봐 걱정돼?”
“아뇨! 저 그런 생각 절대 안 했어요……!”
정성빈이 파드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동시에 우리는 깬 사람이 없는지 잽싸게 주위를 확인했다. 낮의 농촌 활동이 고됐던 건지, 다른 녀석들은 미동도 없이 그대로였다.
의심하는 게 아니라곤 하지만 정성빈도 내심 걱정은 될 거다.
과거에 있었던 일로 인해 데뷔한 아이돌이 사라지는 게 어디 드문 일이던가.
하물며 나는 스무 살에 뒤늦게 합류한 연습생이었다.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도 모르는 애가 덜컥 등에 커다란 흉터를 달고 오면 경계할 만도 했다.
하지만 굳이 꿈도 희망도 없는 가정사를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거, 얘기해 봤자 서로 당황스럽기나 하지.
정성빈에게 뭐라고 둘러댈지 고민하던 와중, 불 꺼진 천장 위로 시스템이 나타났다.
+
[SYSTEM] ‘새 업무’가 재고지됩니다.▷ 멤버들과 비밀 이야기 나누기
▷ 보상: 안정적으로 컴백할 확률 상승
+
비밀 이야기?
그건 아까 진실 게임으로 다 나누지 않았나? 여기서 뭘 더 얘기하라고.
상당히 의아했다.
시스템 놈이 가끔 게으르게 굴 때가 있긴 하지만, 새 업무 관련 내용은 꼬박꼬박 확인해 주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시스템이 다시 튀어나왔다.
+
[SYSTEM] ‘책임자’ 님의 업무 지시가 도착했습니다.▶ 김 대리! 김 대리만 쓱 빠지려는 거 아니지? 그럼 나 서운해? 이런 자리는 함께해야 팀워크도 좋아지고 그러는 거지.
+
아.
나 혼자 진실 게임 안 걸렸다고 무효 처리된 거였어?
편집이 들어가는 이상 한 멤버쯤은 안 걸려도 화면상 티가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짧았다.
“말하기 싫으면 안 하셔도 돼요!”
“응?”
내 눈치를 보던 정성빈이 다급히 말했다.
“나 사고 치고 다녔을까 봐 걱정되는 거 아니었어?”
“전혀 아닌데요?!”
“아니야? 그럼 왜 물어본 거야?”
“그, 별건 아니고…….”
정성빈은 한참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말했다.
“형이 별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인 거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없을까 하고…….”
“어?”
“의상 컨셉 정할 때 회사에 미리 말씀드려 놓는다거나……. 아, 혼자 나서고 그러려는 건 절대 아니에요! 그냥, 저는…….”
똑 부러진 녀석답지 않게 사설이 길었다.
나는 정성빈이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하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자 정성빈은 우물쭈물하면서도, 본인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다.
“아까 제가 등 얘기 했을 때 형이 당황하셨던 것 같아서요. 형이 싫어하실 수 있는 부분을 함부로 건드려서 죄송하고…….”
“…….”
“대신이라기엔 뭣하지만, 앞으로 그런 일이 없길 바라시는 거면 저라도 도와드리고 싶어요.”
그제야 정성빈이 좀처럼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남의 역린을 건드린 줄 알고 여태 미안해했다니. 그렇게 양심이 살아 있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래?
실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런 거 아니야. 걱정 안 해도 돼.”
“……그럼 다행이지만요.”
“진짜야.”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옆에서 정성빈이 이불을 끌어당기는 듯한 소리가 났다.
“허튼짓하다 그런 것도 아니고.”
바깥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풀벌레 소리가 멎으면 잠든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리고, 그러다 다시 풀벌레가 울었다.
“……집안 분위기가 조금 거칠었는데, 가끔 정도가 심할 때가 있었어.”
과할 정도로 말을 고르고 잘라 냈지만 의미는 전달됐을 것이다. 정성빈은 똑똑한 녀석이니까.
멀리서 또 다른 벌레 소리가 들렸다.
시골 밤이 주는 분위기가 생경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마치 내 것이 아닌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니까 마치, 아주 오래된, 나와 관계없는 누군가의 빛바랜 일기를 읽는 듯한 착각을.
“그때 운이 없어서 생긴 거야. 내 등 볼 일이 별로 없어서 잊고 있었네.”
나는 피식 웃으며 정성빈 쪽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심경이 복잡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기 좋은 건 아니니까 잘 숨기고 다닐게. 너무 신경 쓰지 마.”
“형…….”
나는 피곤하니 이만 자자며 다시 정성빈에게서 시선을 뗐다.
시골 밤, 무섭다. 사람이 순식간에 과거 회상까지 하게 만드네.
그렇게 멋쩍은 마음을 숨기려 애써 돌아눕는데 정성빈의 반대쪽에서 누군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감기 걸렸나? 아니면 낯선 환경에서 생긴 알레르기성 비염? 그것도 아니면…….’
나는 오밤중에 훌쩍거리는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이불 몇 채가 뒤척거리다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거기.”
“…….”
“설마…… 안 자는 사람 있었어?”
내 질문에도 이불 속으로 숨은 머리통 세 개는 꼼짝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정성빈의 뒤쪽에서도 킁 소리가 들렸다.
설마.
너희 아무도 안 잤니?
나 좀…… 당황스럽다,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