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stant Manager Kim Hates Idols RAW novel - Chapter (96)
김 대리는 아이돌이 싫어-96화(96/193)
| 96화. 이벤트 홍보 (1)
다음 날 스파크는 조금 더 돈독해진 모습으로 훈훈하게 촬영을 마쳤다.
나만 조금 더 쪽팔려진 상태였다는 걸 빼면.
임직원 건의함에 장문의 메시지를 적었는데 작성자 이름까지 같이 출력해서 걸린 기분이다.
안 그래도 덥석덥석 업히던 이청현이 좀처럼 등에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길래, ‘비밀 유지 필요 없고 내가 오늘 상체 깐다!’라며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아침으로 라면까지 야무지게 먹고 돌아오자―사람은 여섯인데 라면은 다섯 봉지만 끓여도 되겠냐는 PD님의 말씀에 놈들이 조금 침울해하긴 했다―반가운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얘들아, 다음 앨범 기획안 최종 승인 났다!”
“아싸!”
우리가 산속에서 지지고 볶으며 자컨 2화 분량 찍는 동안, UA에서 컴백을 위한 제반 작업을 모두 끝낸 것이다.
스파크가 전전긍긍하는 꼴을 보다 못한 내부에서 빠듯하다 싶은 마감 일자를 훌륭히 맞춰 주신 듯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성공으로 갚겠습니다. 저 말고 스파크 놈들이요.
나의 귀환을 열렬히 반기는 건 잘 마무리된 업무만이 아니었다.
[니가.업계종사자 눈밖에나고.. 무사할거같아? 오만한.놈들치고 성공하는놈.못봤다. 그게 니미래야] [실력이없으니 불안하지? 아무것도모르는 사람들뒤에 숨어서 수작질이나.하는 널 보고있으니.애잔하다.. 불쌍한인생..그렇게 살지마라] [너.이미지관리 열심히하는게.. 좋을거야.. 여기바닥이.얼마나좁은지.너같은애는 상상도못하겠지만.. 벌써 다소문나고 있다. 기성가수랑. 연출자의 지위가 어느정도인지는.. 아냐?] [회사에 보는눈이 많다는 것을.기억해라. 장준후후배들이나 내지인들.. 모두가 지켜보고있다.]유한수가 고작 이틀 사이에 문자를 많이도 보냈더라고.
맞춤법이 개판이라 읽기도 힘들었다. 문자도 꼭 남 부장처럼 보내던데, 이렇게 문자 보내라고 어디서 교육이라도 하나 보다.
그보다 이 인간, 이렇게까지 멍청했었나?
적어도 내 얼굴 쳤을 땐 CCTV 없는 곳으로 부르는 지능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 인간은 살면서 본인보다 가진 게 없는 사람에게 고발당한 적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이렇게 대놓고 증거가 될 기록을 당당히 남기는 걸 보면.
그 한심함에 보답하고자 유한수가 보내 준 문자들은 잘 캡처해서 백업해 뒀다.
유한수의 스팸 문자 이슈만 빼면 모든 준비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딱 하나, 녹음만 빼고.
OJT 이후 랩 스킬이 미친 듯이 올라간 이청현 녀석은 본인의 올라간 기준치만큼 혹독하게 디렉을 봤다.
‘이월이 형, 저희 여기에 화음 한 번만 쌓아 볼까요?! 라이브에서도 한다고 생각하고! 완전 신나게!’
‘성빈이 형, 혹시 지금보다 고음 조금만 더 안정적으로 낼 수는 없을까요? 형은 충분히 할 수 있잖아요!’
보컬 천재 박주우 씨를 제외한 네 명은 이청현에게 흠씬 두들겨 맞으며 녹음을 해야 했다.
그토록 친밀하던 막내들은 한 마디 부르고 3분씩 싸워 댔다.
옛말에 싸우면서 큰다던데. 그 말대로라면 이놈들은 이번 주 중으로 190cm까진 클 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이제는 이청현과 함께 디렉을 봐야 하는 처지가 되어, 감히 대 스파크 친구들의 녹음을 하나씩 지적해야 했다.
‘제가 디렉을요?’
‘『Flowering』 때도 A&R 팀 통해서 피드백 다 전달했었잖아? 건너 건너 얘기하는 건 효율이 떨어지니까, 이월이 너도 직접 디렉 보면서 애들하고 호흡 맞추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됐다.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음정 검사기 역할 좀 하고 왔다. 새로운 음악 지식도 산더미처럼 전수받고.
그래도 음악의 거장 이청현 선생의 진두지휘 아래서 두 번째 곡, 『With List』는 완벽하게 완성되었다.
‘이청현, 노래를 그렇게 만들 땐 춤추면서 라이브할 각오도 함께 한 거지?’
‘당연히 그렇겠죠. 설마 당장 노래만 생각하느라 안무도 고려 안 하고 박자를 쪼갰을까요.’
이어서 몰아치는 최제호와 강기연의 피의 복수까지.
더할 나위 없이 알찬 기간이었다. 덕분에 이젠 내가 정말 직장인이었던 적이 있었는지 가물가물하다.
나는 뉴리 씨가 감사의 뜻으로 연습실에 넣어 주신 이온 음료를 마시며 오늘의 핸드폰 확인을 모두 끝냈다.
이제 평소처럼 매니저님에게 반납만 하면 그만이었다.
폴로 씨와의 대화만 끝나면 말이다.
헬라스 폴로 선배님
[이월 씨] [스파크 컴백해요??] [달밤대에 컨택 왔다는데]나
[안녕하세요, 선배님!자세한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으나
곧 보도자료 나갈 예정입니다!]
헬라스 폴로 선배님
[오] [열일하네요] [하긴 데뷔 초가 진짜 정신없죠ㅋㅋㅋㅋ]머리가 ‘이 사람이 나에게 왜 연락을 했지?’라고 생각하는 동안 손가락은 이미 과찬에 대한 감사 인사와 지난 라디오 참여가 얼마나 영광이었는지를 전송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마디를 더 주고받는 와중 폴로 씨가 말했다.
헬라스 폴로 선배님
[다음에도 머리띠하고 올 거예요?] [머리띠 쓸 거면 나도 마음의 준비 좀 하게]역시 한때 정상을 찍었던 아이돌답다. 한 번 이슈가 된 건은 놓치질 않는군.
게스트에게 라디오 출연이야 특별한 일이겠지만 메인 DJ에겐 그렇지 않다. 매번 반복되는 일이니까.
자연히 본연의 업무만으로는 이슈 몰이를 하기 쉽지 않은 법인데.
어디서 ‘생방 중 수제 머리띠에 영업당하는 현장’ 같은 짤이라도 본 모양이다.
실제로 본인 SNS에도 녹화 후에 홀린 듯이 구매(?)해 버렸다며 팬에게 선물 받은 인형에 황금 머리띠를 씌운 사진을 올렸었지.
존경스럽다. 이런 거 하나를 놓치지 않는 아이돌력이.
나
[상상하시는 그 이상으로 가겠습니다!]하지만 어림도 없지.
가뜩이나 유명한 DJ한테 한 줌짜리 기삿거리마저 뺏기게 둘까 보냐.
그러자 폴로 씨에게서 빠르게 답신이 왔다.
헬라스 폴로 선배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대하겠습니닼ㅋㅋㅋㅋㅋㅋㅋ] [파르테 나왔을 때 엄청난 패션으로 온 거 기억하고 있으니까요^^]동시에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오버한 건가, 하고.
그냥 이 사람…… 날 놀리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 * *
“하.”
하교한 백해원은 침대에 치즈처럼 눌어붙었다.
“인생이 노잼이다.”
백해원은 탄식했다.
주말에 공부 좀 해 보겠다고 독서실에 갔던 백해원은 식곤증에 처참히 패해, 결국 백기를 들고 백주 대낮에 집에 오고야 만 것이다.
어디서 누가 재밌는 거 안 가져다주나.
꿀맛이 보장된 콘텐츠를 들이밀며 몇 분 몇 초가 딜리셔스하다고 말해 줄 사람 어디 없나…….
그렇게 생각하며 백해원은 하염없이 SNS의 피드를 새로 고침 했다.
하지만 좀처럼 새 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지구가 망해도 한 개의 떡밥을 풀겠다던 열정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피드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백해원이 딱 3분만 더 놀다가 씻겠다고 다짐한 그때.
스물일곱 번째 새로 고침 직후 못 보던 글이 나타났다.
업로드 시각 3초 전. 스파크 입덕을 스스로 인정하며 얼마 전 팔로우한 오피셜 계정명과 그 옆에 붙은 파란 딱지까지.
‘떡밥 떴다!’
백해원은 입을 틀어막고 활어처럼 튀어 올랐다.
당장 지난주까지만 해도 멤버들의 개인 콘텐츠가 꼬박꼬박 올라왔지만 백해원은 언제나 새 떡밥에 목말랐다. 팬의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제발 컴백, 제발 신곡…….’
백해원은 간절히 기도했다.
소속사가 평범한 아이돌 소속사만 되었어도 이런 걱정은 안 했을 테지만, 하필이면 스파크가 회사의 첫 아이돌이다 보니 걱정되는 게 한둘이 아니었다.
≫ @spArk_official
얘들아, 보여?
그리고 땅속에서 하늘을 향해 찍은 구도의 사진 한 장.
아직 4월임에도 불구하고 사진 구석에 박아 놓은 5월 초의 날짜까지.
이 영문 모를 문구와 멤버의 머리카락 한 올 나오지 않은 사진을 보고 백해원은 확신했다.
떡밥이구나.
컴백이구나!
우리 엄마 아빠도 이젠 안 주는 어린이날 선물을 UA가 주는구나. 시커멓게 빛바랜 동심으로 백해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젠 늙어서 SNS할 기운도 없다던 백해원의 지인들의 피드도 리젠되기 시작했다.
그럼 그렇지. 백해원은 참 한결같은 지인들을 보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 @minamhunter
아니 아무것도 안 보여
대신 흙냄새는 좀 난다
└ 아니 님 언제 묻혔냐고욬ㅋㅋㅋㅋㅋ
└ 그치만 너무 생매장 구도였는걸
“이게 삶이지…… 이게 삶이야…….”
백해원은 흡족하게 웃었다.
언제 씻을 거냐며 시끄럽게도 구는 제 혈육에게 ‘닥치고 너 먼저 씻든지 처자든지 하라고!’라고 할 만큼 백해원에겐 집중의 시간이 필요했다.
떡밥의 축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 @spArk_official
이때 뭐라고 썼는지 기억나는 사람?
멘트의 추억 보정이 아주 끝내줬다.
기억 안 나지만 기억나. 중얼거리면서 백해원은 게시글 아래에 첨부된 사진을 확인했다.
낡고 꼬깃꼬깃한 종이 위에 여섯 가지 색깔로 쓴 삐뚤빼뚤한 글씨들이 적혀 있었다.
글씨들이 전부 겹쳐 있는 데다, 왼손으로 쓰기라도 한 건지 필체가 정갈하지 못해 바로 알아보긴 어려웠다.
백해원은 떡밥 해석이 취미인 팬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행복을 만끽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티저가 떴다.
쿵 하는 드럼 소리를 시작으로, 데뷔곡 『Flowering』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의 신나는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세상에서 제일 신나게 놀기 대작전!’이 적힌 화이트보드 앞에 선 정성빈.
그리고 회의실용 탁자 앞에 서로 마주 보게 앉은 멤버들을 위에서 내려 보고 찍은 구도의 화면이 차례로 나타났다.
카메라 각도 때문에 멤버 전원이 한 화면에 잡히진 않았으나, 앵글이 곧 다른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화면은 색색의 놀이기구 앞에서 찍은 군무와 각자 자신의 집을 털며 준비물을 챙기는 멤버들이 빠르게 교차되다 꺼졌다.
암전 후에 나타난 멤버들은 광활한 놀이공원 입구에 일렬로 서 있었다.
아주 비장한 표정으로, 박주우가 챙겼던 세상 요란한 머리띠를 쓴 채.
그 위로, 떡밥 사진의 종이처럼 삐뚤빼뚤한 글씨가 흰색 크레파스로 적은 듯 타이틀을 써 내려갔다.
『With List』
그리고 티저를 세 번쯤 반복해서 본 백해원은 박수를 쳤다.
애들 미모 100점.
손목에 하나씩 감고 나온 헬륨 풍선 귀여움 100점.
여기에 케이팝 고인물들이라면 누구나 들썩거릴 것 같은 흥겨운 멜로디 가산점까지.
도합 100점 만점에 300점짜리 티저였다. 백해원은 감격했다.
미남헌터의 동료들도 ‘미헌님 총알 충분하심?’이라며 안부를 물었다. 앨범에 돈 쓸 가치가 있다는 최고의 찬사였다.
하지만 백해원은 이에 안주하지 않았다.
덕후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콩깍지인 법. 그래서 백해원은 한동안 들어가지 않았던 연예 커뮤니티의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