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academy, I became the only magician RAW novel - Chapter 134
Chapter 134 – 사냥?(6)
-너의 이름은 김서현이란다.
천의 마도사.
그녀를 거둬 준, 스승이자 부모가 되는 이의 첫 말이었다.
지금은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한 조각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것은 일찍이 자신을 가르치던 이들이 남기고 간 조각이다.
그것은 그녀의 수치이고.
절망이며.
이정표이기도 했다.
-이건 상정 외의 재능이야. 이 아이는 훗날 우리들은 보지 못할 아득한 경지에 이를 거다.
-당연한 소릴. 누가 만들었는데? 이것은 우리 무림의 혼 그 자체야. 천년이나 이어져 내려왔던, 우리들의 집합체나 다름이 없지.
무림이 배신당하고 외적에게 맞서던 때.
무림에 있던 이들은 무림의 종말을 생각했다.
무림맹, 사도천, 마교, 신비 문파.
절대로 힘을 합칠 거라 생각지 못한 이들이, 생존이라는 가장 원시적인 욕망 앞에 단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힘을 합치고는 싸움을 이어 나갔다. 피가 강을 이루고 시신이 산을 쌓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종말을 유예하는 것에 그쳤다
김서현은,
그들의 지식을 후대에 온전히 내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다. 무림은 이 세계에서 흔적을 지울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내었던 무공은 편린이 되어 세계 각지로 흩어지리라.
그건 무림의 종말을 뜻했다.
무림을 독보하는 자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김서현을 만들었다.
천년무림(千年武林)의 집대성.
그녀의 존재 자체가 무림이라는 차원이 이 세계에 새긴 증거이며, 존재 이유였다.
김서현은 막대한 재능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너무 과했다.
과유불급. 그녀의 재능은 너무 과한 나머지 그녀의 목숨에 위해를 가했다.
신비 문파와 제갈세가가 주술로 그녀의 힘을 봉인했다.
훗날 그녀가 감당할 수 있을 때 풀리게끔.
용의 심장을 박아 넣은 무진장에 가까운 내공은 봉인했지만, 그녀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한 번 본 무공은 따라 할 수 있는 눈과 재능. 무림을 오시한 이들의 피를 섞어 만들어낸 폭력적이기까지 한 재능의 힘이었다.
몇 가지의 무공을 제외한다면, 타인의 무공을 자신의 무공처럼 쓸 수 있다.
이서하을 제외한다면.
‘진짜 신기해.’
육체를 바라본다.
저것을 불가해한 육체다. 보통은 무로 육체를 단련한다. 그러나 저것은 육체를 연성하는 것에 가깝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김서현은 알고 있다. 이서하의 육체를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으니까.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저 육체를 연성하는 것을 연구해보고 싶다는 것에서 시작된 호기심.
‘진짜 별생각 없었는데.’
어쩌면 또래의 아이 중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존재를 만난 것이 컸을지도 모른다.
에르실이나 김아라를 먼저 만났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성격이 아닌데.’
자신은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인과의 싸움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은 이 세계의 지옥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법도 질서도 없는 지옥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기에 마인이라면 김서현은 망설임 없이 싸운다.
그러나 싸움을 싫어했다.
누군가와 다투고, 무언가를 쟁취하는 행위를 싫어했지만.
이서하랑 같이 있으면 있을수록 김서현은 자신이 달라짐을 느끼고 있었다.
-네가 싫어하잖아. 네가 싫어하는 걸 하기는 싫거든.
‘이러면 안 되는데.’
김서현은 선의 존재다.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녀에게 있어 투쟁이란,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 세계에서는 힘이 없으면, 모든 것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꾸자꾸 나쁜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는데. 내가 쟤보다 나은 것 같은데. 좀만 하면 넘어오지 않을까? 그러다가 다른 애들이 상처를 입으면 어쩌지? 그럼 무력으로 해결하면 되지.
그런 생각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에는 자책했지만.
지금은 점점 더 마음에 드는 자신의 심정이 당혹스러웠다.
‘진짜 위험한데.’
어쩌면, 조만간 일 날지도 모르겠다.
*
김서현과 거리를 거닐었다.
이곳은 뭐랄까……서울과 비교하자면 50년 정도는 덜 발전한 곳을 보는 것 같았다.
길거리 시장이 드문드문 보이고, 여관 같은 곳은 낡아 빠졌다. 홍등가가 낮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서 새참을 만든다던가, 농사를 지으러 돌아다닌다던가.
‘콘크리트로 된 건물도 거의 존재하지 않고.’
당연하다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외치면서 60개의 나라가 서로 독립하거나, 서로를 집어삼키려고 혈안이 되어있는 곳이니까.
“뭐야? 남자 둘이서 여행 다니는 거냐?”
“게이 새끼들이야? 그런데 두놈 다 예쁘장한데……”
그리고 건달 같은 놈들이 대낮에 대놓고 다니는 것도 웃기다. 이것이 한 두 번 정도가 아니라는 것도 웃기고.
“이 근처에 있는 가장 큰 문파가 흑사방이라고 했나?”
“왜? 털어버릴 거야?”
“귀찮으면 그래야지.”
무엇보다 중성적인 외모를 자랑하는 김서현을 기분 나쁜 눈으로 힐끔거리는 것이 거슬렸다.
차라리 남장을 안 하고 본 모습을 보이면 그것보다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여기는 뭔가 좀 낡아 보이네.”
“그러게. 진짜 몇 십년 전의 도시 같아.”
“핸드폰도 잘 들고 다니지 않는 것 같은데. 혹시 여기서 본 모습을 보일 생각은 없어?”
“……내 모습?”
“응. 가끔 꾸며보고 싶지 않아?”
“가끔씩 그런 생각은 들지.”
뭔가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김서현.
솔직히 말해서 그녀가 왜 남장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몇 가지 의심이 가는 것들이 있기는 하다.
‘대부분 추측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녀가 남장하고 있다지만, 김서현은 이 세계를 구원할 존재. 그녀의 전력은 꼭 필요하다.
‘이런 식의 스트레스는 별로 좋지 않으니까.’
스트레스를 풀 구석이 필요하다.
김서현은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 클럽이고, 유흥이지만, 아무리 그녀라도 스트레스를 아예 안 받을 수 없다. 게임에서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가장 좋은 것은 자기를 꾸미는 것인데.’
뭐라고 해야 할까.
사람들의 시선을 즐긴다고 해야 하나. 그런 식으로 푸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중에야 익숙해지겠지만, 처음에는 그것만큼 기분 좋은 것도 없으니까.
‘관심이 독이 든 성배이긴 한데.’
그래도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거라면 괜찮지 않을까.
“내 본모습을 보고 싶어?”
묘한 표정으로 말하는 김서현.
뭔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 게 에르실에게 옮았나.
“보고 싶지.”
진짜로 보고 싶다.
게임 내에서 절대 보지 못했던 김서현의 본 모습. 일러스트에서 가끔 여자들이 김서현으로 여장시킨 모습은 봐 왔지만, 불쾌한 골짜기 같은 게 있어서 별로였다.
진지한 눈으로 김서현을 빤히 바라보니, 김서현이 얼굴을 붉혔다.
“뭐, 뭐야. 그, 그렇게 궁금했어? 그럼 조금만 기다려봐.”
김서현이 나를 끌고 근처 옷 가게로 같이 갔다.
“어서 오세요.”
여직원이 반겨줬다.
김서현이 나를 바라봤다.
“어떤 옷을 입을지 추천해줘 봐……”
말끝을 흐리며 김서현이 말했다.
그러고 보면 김서현은 여자 옷은 잘 몰랐지.
나는 옷들을 슬쩍 보면서 김서현에게 어울릴 옷들을 찾았다.
“너, 너무 익숙한 거 아니야?”
“……아니야. 그냥 평소에 네가 어떤 옷들이 어울릴까 생각하면서 고른 거야.”
이렇게 말하니까 너무 변태 같은데.
근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김서현이 홍조를 살짝 드러내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변태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넘어가는 걸지도 모른다.
김서현은 어쨌든 간에 옷을 받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슥슥, 옷 갈아입는 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들렸다. 듣고 싶지 않아도 검귀의 날카로운 감각은 주변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 김서현이 지금 바지를 벗고 치마를 갈아입는다는 사실마저도.
‘흑염휘성신 탓도 있기는 한데.’
전체적으로 내가 너무 강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너무 기분이 묘해져서 잠깐 감각을 껐다.
“……다 됐어.”
탈의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끄러움이 가득한 자그마한 목소리.
“어때?”
“……이거 노출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아닐걸?”
솔직히 말해서 사심이 좀 많이 들어갔다.
김서현이 탈의실의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검은색의 쵸커를 목에 차고, 배꼽이 드러나는 반소매 셔츠에 하이웨스트 미니스커트.
“어, 어때?”
“……엄청 잘 어울리는데.”
머리를 조금만 더 길면 완벽한데.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다. 옷감이 너무 싸구려라 색이 잘 안 산다는 것.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좀 입혀주고 싶었다.
“그럼 같이 갈까요, 공주님?”
“……그래.”
다행히도 김서현은 마음에 들었는지, 내 장난에 어울려 주었다.
*
한 편, 패왕은 뚱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다.
‘당신, 아라의 친구가 온다는 데, 마중도 안 나가요?’
‘걔는 난 놈이야. 알아서 오겠지.’
패왕은 그들이 전용기에서 테러당하고 비행 괴수들이 날뛰어서 잠시 어딘가에 머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걱정하지는 않는다. 김서현은 자신이 눈여겨보는 이였고, 이서하는 자신이 제자로 들이고 싶어질 정도로 난놈이었으니까.
‘거기다가 기생자 칼리아를 쓰러트렸으니까.’
무슨 수단으로 쓰러트렸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패왕은 그 싸움터에서 느꼈다. 칼리아의 심상이 세계를 침식했을 때, 칼리아가 죽었음을. 그보다 더한 무언가 부정한 힘으로 말이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 사건으로 투쟁은 자신의 힘을 일부 그에게 넘겼고, 황제는 그를 더욱 싸고 감쌌다.
천견은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포기했다.
-그 아이가 다루는 힘은 너무나도 위험하다. 다만, 그는 마인과 외계를 적대하니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겠다.
천견은 그 힘을 다루면서 무언가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요즘 주작인지 뭔지 하는 것이 돌아다니니까, 마중 좀 나가봐요.’
‘알아서 오겠지.’
‘이제부터 파파라고 안 부를 거야.’
‘……으득. 그래, 마중 나가자, 아라야.’
어쨌든, 패왕은 툴툴거리면서도 김아라를 데리고 이서하를 마중하러 나갔다. 딸과 아내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리고 이 정도면 그도 꽤 감격해하지 않을까-하는 계산도 섰다.
무려 자신이 직접 움직여서 맞이하는 일은 없다시피 했다.
그 황제조차도 말이다.
“파파, 빨리 가요.”
“그러자꾸나.”
김아라와 둘이 오붓하게 데이트한다는 생각에 패왕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후, 패왕은 이서하를 찾았다.
‘저기 있군.’
이서하는 찾기 쉽다.
그 특출난 외모도 외모지만, 그는 부정한 힘을 품고 있다. 모든 것을 부정하는 듯한 그 힘은, 그의 기감마저도 일그러트린다.
‘그래서 오히려 더 찾기가 쉽지.’
기감을 넓게 가지면, 그 기감에서 텅 빈 공간이 하나 생긴다.
그리고 그곳을 찾으면 이서하가 있다.
그리고 패왕은 보았다.
남장을 한 소녀가, 본연의 모습으로 그의 옆에서 있는 모습을.
“아. 앗. 서. 하. 야.”
김서현은 어색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우연을 가장했다.
이서하에게 안기다가 그의 다리를 걸어서 움직임을 흔들었다.
고수의 수법이었다. 이서하가 방심했고, 김서현은 그 틈을 잘 노렸다.
그녀에게 살의가 있었다면, 이서하가 바로 반응했겠지만, 그것에는 살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이서하의 육신은 반응 헀다. 김서현의 의도가 그에게 잠깐 안기는 것이었다면, 흑신무의 육체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안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극악한 공격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서하의 다리가 슬라이딩하듯이 움직였다.
그 결과.
이서하는 아래쪽으로 넘어지면서 김서현이 그의 얼굴 위에 넘어졌다. 김서현의 허벅지가 이서하의 얼굴 양옆에 있었다.
‘요즘 것들은 진도가 빠르군.’
패왕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뭐, 남자가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것은 나쁘게 보지 않는다. 훌륭한 혈통을 가져야 후대의 좋은 영웅이 나오는 것이니까. 그러나 지금도 저런데 훗날에도 저렇게 행동한다면, 자신의 사랑스러운 딸한테 관심을 가지지 않겠지.
이건 제지해야 함이 옳았다.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아라를 보며 패왕은 조용히 다짐했다.
“……어쩐지. 그렇게 유혹해도 넘어오지 않은 이유가…….”
김아라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초점 없는 눈으로 김서현을 바라봤다. 초월적인 동체시력과 근원으로부터 이어진 힘이 그녀에게 머물렀다.
그리고 이내 이글거리는 눈으로 김서현을 바라보았다.
두근.
어디선가 들려오는 거대한 소리. 패왕은 잠깐 눈을 깜빡거렸다.
[거대한 감정의 폭풍이 사용자의 잠재력을 끌어올립니다. 거신족의 피가 완전히 개화합니다.]순간적으로 거대한 존재감이 주변을 짓눌렀다.
그리고 김아라는 깨달았다. 저건 연적이라는 것을. 자신의 현실회피는 틀렸다. 저건 처음부터 암컷이었다. 자신이 점찍은 남자를 탈환하기 위한 암컷.
김아라는 서늘하게 웃으면서 김서현을 바라봤다.
“……”
그리고 패왕은 자신도 모르게 김아라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