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0
Chapter.1 오, 해피데이! (9)
***
– professor : 당연히 놓고 가야지.
– 간장게이바 : ??? 너 미쳤음?
– 노루Drug해요 : 농담에도 정도가 있단다, 교수야.
– Jokass : 잔말 말고 네 모든 헌신을 다해 트롤 누님한테 앵겨라. 빨리.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저돌적인 트롤을 떼어놓을 방법이 생각이 나지 않아 커뮤니티 대화창에 좀 상담이나 하려고 했더니, 그 뒤로 이 난리가 났다.
‘아니, 이놈들은 제정신인가?
그럼 이 4미터짜리 평원트롤을 도시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가라고?’
놀랍게도 이 질문에 대한 대부분의 대답은 ‘YES’ 였다.
– professor : 친구들, 늬들이 아무리 대가리가 아니라 ㅈ대가리로 생각하는데 익숙해진 제 3의 인류 같은 거라지만, 이성적으로 좀 생각해보자고.
저거 트롤이야 트롤! 조금 교화됐다고는 해도 아직 사람만 보면 입맛을 쩍쩍 다시는 트롤!
그런놈을 내 동료입네, 하면서 도시에 끌고 들어가자고?
혹시 고어물 좋아하냐? 막 내 몸이 경비대 한테 4등분, 5등분으로 토막나는걸 보면 쾌락을 느낄것 같아?
– Jokass : 교수야, 왜 그렇게 사고가 편협하냐?
몬스터가 아니라 동료라고! 그것도 지금 너한테 가장 필요한 전위를 맡아줄 탱커 포지션의!
야, 지금 네 상태를 봐라. 전력으로 뛰는 것도 위태로운 다리, 나뭇가지에 스치기만 해도 분수처럼 피를 뿜어내는 팔, 자기 근력도 못 버티는 관절!
너 지금 ㅈ밥도 아주 그냥 ㅈ밥이 아냐! 세계관 최약체 수준이라고!
그런 네놈이 이렇게 굴러들어온 전력을 쳐낸다고? 단지 트롤이라는 이유로?
교수야, 레이시즘(racism : 인종차별주의)은 악이에요 악!
– 스피드 웨건 : 글쎄. 나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는데.
노툼이 전력으로 편입될 가능성은 낮음. 일단 도시에 가는 순간 거짓말이 다 들통 날것 아님? 원래 노툼을 가르치고 먹이던 집단도 도시에 있을거고.
상황이 어떻게 돼서 노툼이 교수에게 호감을 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쓸만한 전력으로 남을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도시에 처음부터 부정적인 인상을 남기는 건 너무 밑지는 장사라고 봄.
하나 더, 니들이 기대하는 발정기 같은 거 아님. 평원트롤은 발정기에 등과 배가 붉어지거든. 보통 자기 새끼를 어께위에 태우고 다니는 걸로 앎.
– 노루Drug해요 : 선생, 선생의 말이 다 옳습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입니다! 니가 다 맞아!
그런데, 우리가 뭐 학술적인 연구 차원에서라던가, 어떤 거대하고 훌륭한 목적을 위해 이걸 보고 있나?
아니지! 우린 놀러온거라고!
야 시발 저걸 좀 봐라! 저 거대한 흉부! 애정 넘치는 눈빛! 강인한 육체! 그야말로 강한 여성의 상징이라고!
노툼은 정확하게! 문자 그대로 널 ‘어깨 위에 태우고 다닐 수 있는 여자’ 란 말이다!
세상이 이 꼬락서니가 되고 나서 남녀 차이 없이 기관단총 정도는 다 연발로 갈길줄 알게 됐거든?
강한 여성은 더 이상 왜곡된 성욕이 아니란 말이다! 이쪽이 주류라고!
뭐, 새끼? 오히려 좋아! 원래 친구가 오빠가 되는거고, 오빠가 아빠가 되는거지! 모성애면 정석적인 스타트라고 할 수 있지!! 밀어붙여라 교수! 그녀를 사로잡아!
– 화약과 피 : 전력의 증강이라고 하니 나도 한마디 하겠네. 본디 전투력이란 당장의 위력도 중요하지만 그 위력을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가 더 중요하지. 보급의 관점에서 본다면 노툼은 실격일세. 하루에 말 한 마리, 혹은 그에 준하는 고기? 당장 무일푼의 교수가 그걸 어떻게 제공한단 말인가?
– 홀리 : 저기….. 이 사람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에요?
– takealook : 냅둬. 원래 인터넷에서 쓸데없는 거로 불붙으면 ‘니 엄마-’ 로 시작하는 문장 나오기 전까지는 안 멈춰.
워메, 살벌해라. 대화창에는 이제 온갖 전문용어가 난무하며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 아니, 나는 그냥 방송이고 하니까 어떤 방향으로 진행하면 좋을지 물어보고 싶었던 것 뿐인데…..
대화창에 양립하는 의견은 둘 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지금 내 전투력 부족은 심각을 넘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니까. 아마 탑에 갇혀살던 공주님이 뒷골목 암흑가로 쭐래쭐래 걸어들어가도 나보단 오래 버티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노툼을 동료로 들이는 것은 대단히 훌륭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저 덩치에, 저 인상에, 번쩍거리는 엄니를 봐라. 저건 그냥 걸어 다니는 폭력이라고. 도시에 들어서는 소매치기, 뒷골목 양아치, 덤탱이 씌우는 상인들 까지 전부 노툼선에서 해결 가능할걸?
단점이야 뭐, 앞에서 말했다시피 거짓말로 점철된 노툼과의 우정이 언제 파탄날지 모른다는 거고. 들통나는 순간 노툼의 든든한 팔뚝이 내 머리통을 날려버릴 것이다.
여기까지는 저울추가 팽팽하니, 마지막으로 하나 더. 정말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지만, 정말로 노툼이 내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느끼게 될 가능성.
이것도 없다고는 못하지.
애초에 GG가 3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뭔데.
고소 피해서 지구 어딘가 깊숙한 곳에 서버를 통째로 옮겨서라고. 법망을 피해 잠수타고 열어놓은 불법게임이라 이 말이다.
그런게임에 브레이크 따위가 있을 리가 있나.
동료 캐릭터 스테이터스에 호감도 같은 매우 수상쩍은 수치가 있는 것만 봐도 딱 각이 보이지 않나?
결론부터 말하면, 노툼이 정말로 발정하는 순간, 나는 당한다.
흥분한 트롤의 영역으로 질질 끌려가 게임오버보다 더한 일을 당한다고.
그건 절대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다. 시청자들 중에는 그걸 기대하는 부류도 상당한 것 같은데, 참….. 아포칼립스에 충실한 녀석들이지 싶다. 타락한 자식들.
***
아무튼 결론은 났다. 노툼을 데려가기엔 너무 리스크가 커서 떼어놓기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노툼에게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는데,
의외로 노툼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저, 저기….’
‘그우?’
‘이제 그만…. 혼자 갔으면 하는데….’
‘그뤄. 돌 둥지, 얼마 안남았다. 말 받는다. 작은 큰 인간 데려간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그건 쇠인간이 나를 믿고 맡긴 일이란 말이지?
만약 쇠인간이 네가 성, 그러니까 돌 둥지에 말을 받으러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가 일을 실패했다고 생각할 거야. 그치? 우리 무리에서 내가 실패자가 된다는 거야!’
‘그우…. 무리에서 떨어진 늑대…. 슬프게 죽는다. 인간, 무리 지어 산다…..’
‘그래! 그렇지! 그러니까 이제 그만 날 내려주고, 숲에서 얌전히 기다리는 게 어때?’
‘우…. 홀로서기…. 방해하면, 약한 생물로 자란다…..’
마지막에 한 말의 뜻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어쨌든 노툼을 나를 놓아 보내줬다. 문제는, 노툼이 등을 돌림과 동시에 보라색 연기가 터지는 이펙트와 함께 나온 시스템 메시지였다.
콰광-
[정보 업데이트 : 히어로 유닛 / 노툼 / 의 동료 영입에 실패하였습니다.]“히어로 유닛이었다고? 쟤가?”
저 보라색 이펙트는 크게 부정적인 상황, 퀘스트를 실패했다거나, 부정적인 분기에 들어섰다거나, 아무튼 뭔가 잘못됐을때 나타나는 효과다.
– Jokass : 엄마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진다고 했지? 엄마가 뭐랬니?
– 간장게이바 : 하, 진짜. 겜 빡쎄보여서 팁을 물어다 줘도 발로 차버리네.
– takealook : 나 히어로유닛 대부분 알고 있는데 저런 놈도 있었나? 혹시 따로 알고있는 사람 있어?
– 스피드 웨건 : 방금 찾아봄. 커뮤니티에 노툼에 대한 글이 있긴 함.
– takealook : 오, 유명해?
– 스피드 웨건 : 나름. 히어로 유닛이 아니라 공짜 돈벌이로. 로드릭 북부 숲에서 가끔씩 발견되는 말하는 트롤인데, 잡아서 곡마단이나 투기장에 팔면 초반 돈벌이로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음. 히어로 유닛이라는 정보는 어디에도 없는거 보니까 일정 수준 이상의 호감도를 달성해서 동료 선택지까지 나와야 열리는 정보인 듯.
– 간장게이바 : 리얼? 그럼 지금 노툼이 히어로 유닛이라는 정보는 교수가 최초로 찾은 거네?
– takealook : 그리고 최초로 발견된 히어로 유닛을 방금 뻥 차버린거고.
– 노루Drug해요 : 아이고, 똥차인줄 알고 차버린 내 님이 포르쉐였네~
– 스피드 웨건 : 하나 더 찾음. 노툼 공략 글인데, 전투력은 일반 평원 트롤이랑 다를 바가 없다고 함. 도시 노예시장에 팔면 금방 팔린 대. 퀄리티가 그렇게 높은 히어로는 아닌 듯.
난세는 영웅을 만든다. GG의 일곱 세계는 모두 멸망을 목전에 둔 세계이며, 그만큼 수 많은 영웅들이 그 세계를 주유하고 있다.
그들을 ‘히어로 유닛’ 이라고 부르는데, 게임 난이도가 워낙 어렵다 보니 플레이어 혼자 아무리 열심히 성장해도 클리어하는게 불가능한 이벤트가 많아서 되도록 많은 히어로 유닛을 동료로 끌어들이는게 이 게임 클리어의 주요 포인트로 여겨지고 있다.
방금 동료 이벤트 분기에서 내가 떠나보내기로 선택한 노툼은 그런 별처럼 많은 영웅들 중 하나였다는 소리다.
“쩝. 아쉽네. 별나다고는 생각했는데. 설마 히어로 유닛일 줄이야.”
– Jokass : 잊어삐리. 떠나간 님 생각에 질척거리는 건 남자가 할 짓이 아니여라.
– 화약과 피 : 히어로 유닛이라고 해도 현실적인 조건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 받아들일 생각이었다고 해도 지금으로선 역량 부족이다.
“….어쩔 수 없지. 빨리 성장을 하든가 해야지. 눈앞에 기회가 지나가도 다 놓치니 원.”
세삼 이 캐릭터의 쓸모없음을 가슴속으로 곱씹으며, 나는 길 끝에 높인 성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띠링-!
욱씬!
띠링-!띠링-!
지끈! 지끈!
“아오 썅! 어이! 잠깐 대화창 끈다! 시스템! 대화창 off!”
노툼과 헤어지고 약 20분 뒤, 나는 성문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성벽에 가까워지는 만큼 아무것도 없던 평원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둘 늘어났는데, 이놈의 눈깔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기저기를 미친 듯이 훑으며 시도 때도 없이 정신쇠약을 발동시키는 것이다!
[정보 업데이트 – 호기심 : 당신은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넘쳐납니다. 인식 +1 / 반짝이는 시선 :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당신! 당신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자세히 살피고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고자 노력합니다. 인식 +1]“뭐냐고….. 이게 왜 이렇게 이어지는 건데!”
좋다고 생각했던 특성마저 이 모양이다. 물론 인식은 관찰력도 올라가고, 숨겨진 물건이나 위험 같은 것도 잘 찾아내는 정말 좋은 스텟이긴 한데, 이게 정신쇠약이랑 맞물리니까….
-찌릿!
“으아아악! 짜증 나! 불쾌해! 진짜 돌아버리겠다!”
주변에 모든 것들이 눈에 확확 들어와서 순식간에 정신쇠약 게이지를 파바박 채워버리게 된다! 집중은커녕 눈을 뜨고 있으면 생각도 못 할 지경이라고!
“후우, 후우. 일단 신경에 거슬리는 거 다 치워버리자. 상태창? 정보 업데이트 빼고 나머지 전부 수동확인으로. 대화창도 꺼버려. 중간중간 확인하지 뭐.”
그렇게 하고 난 다음, 눈까지 꾹 감아버린 다음에야 겨우 정신쇠약으로 인한 짜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하드코어 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정말 상상 이상이야. 이 캐릭터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조차 모르겠어.’
그래도 나름 랭커였던지라, 시작하면서 어느정도 세워놓은 계획이 있었다.
처음 생각했던 성장 방향은 ‘메모라이즈 특화 마법사’쪽 성장이었다. 마법사는 가뜩이나 키우기도 어려운 데다 멍한 상태에서 심상을 잡아내는 캐스팅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신경쇠약에 집중력이 -3이나 붙어서 일반적인 마법사는 힘들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캐스팅 과정이 아예 없는 메모라이즈 계열 마법사로 키워볼 계획이었다.
이거라면 정신쇠약의 영향에서도 자유롭고, 마력적성이라는 특성을 활용하면서 실드로 유리몸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로드릭 북부 근처에는 썩 괜찮은 마탑이 없지. 그나마 있는 것도 메모라이즈랑은 거리가 먼 수계 마탑 하나뿐이고.’
“쓰으읍- 으…. 아파라. 개 거지 같은 캐릭터….”
머리가 끊임없이 욱씬거리는 와중에, 몸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신발을 벗어보니 발바닥이 홀랑 벗겨져 안에 피가 고여서 질척할 정도였다. 커뮤니티에서 유리몸이 최악의 특성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정말 끔찍하게 아프고 쓰라리다. 이런 몸으로 괜찮은 마탑이 몰려있는 블루라인 동부까지 이동한다? 무조건 죽는다. 따로 강도나 들개 같은 거 만나지 않아도 그냥 걷다가 과다출혈로 죽어버릴껄?
“….일단 도시에 들어가고 보자. 이 몸뚱아리를 어떻게 보수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못 해. 급한대로 F급 용병으로라도 등록하고, 허드렛일이라도 하면서 몸을 하나씩 개선해 나가는 거야. 아이언 스킨 마법서가 얼마였지? 4천 실링 정도 했나? 여관 입주 접시닦이가 하루 식비, 숙박비 제외하고 5실링. 이건 안 되겠고. 지금의 투란시에 괜찮은 무도관이 남아있으려나? 월드 2 때는 제법 있었던 것 같은데. 여차하면 무도관에 주차하고 몇 년 긁어버려도 되겠지. ‘말라카의 길’처럼 추가 내구도가 붙는 전투 호흡이나 정혈문(貞血門)의 강혈(鋼血)같은 스킬만 익혀도 민간인 수준의 내구도는 확보할 수 있을거야. 좋아, 희망이 보인다. 어떻게든 도시에 들어가면 쓸만한 해법이 나올거야!
눈을 감고 생각을 뒤지다 보니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그래,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이 게임, 확실히 재밌다. 어려운 만큼 그 어려움을 극복하면 받을 수 있는 성취감이 장난이 아니야. 내가 뭔가 해내고 있다는 느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오른다고.
‘그래, 지금까지는 액땜한 셈 치자고. 원래 진짜 시작은 도시에 들어서면서부터니까!’
그렇게 의지를 북돋은 뒤, 천천히 눈을 뜨며 꺼놓은 시스템을 전부 원래대로 되돌리자,
지—-끈!
– 간장게이바 : 방자아아앙!!! 문 열어!!! 쾅쾅쾅!! 쾅!
– 홀리 : 이거…. 대화창 꺼버린 거 맞죠?
– 스피드 웨건 : ㅇㅇ. 플레이어 이름에 회색 표시되면 대화창 안보고 있는 거.
– 하이웨이나초맨 : 소통의 부재! 방송 개혁! 교수는 각성하라! 사퇴하라!
찌릿! 욱-씬!
“옘병 ㅈ같은 게임.”
정신쇠약의 효과와 함께 순식간에 시니컬해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제정신을 유지하면서 한 달을 버틸 수 있을거라는 기대는 버리는게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