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02
Chapter.7 가면 무도회(17)
***
쿠우웅-
쿠우웅-
“어떻게, 들어간 것 같냐?”
“몰라. 어디로 사라졌는지 눈에 보여야 말이지. 차 터지고 나선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벡스가 렙터의 진형 안쪽으로 파고들 무렵,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전투 차량만 멈춰 세우고 합류한 교수와 이안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돔의 경계 너머의 레일건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며,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충돌음이 쉴 새 없이 대기를 울리고 있었다.
도시의 방어시설에 의한, 일방적인 공격. 전쟁터치고는 평화로울 지경이다.
3분, 도시에 예비 전력이 없는 시기였다고 해도 5분 정도만 더 있으면 이 전투는 승리로 끝난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후퇴는 멈췄다. T-7전차는 그 무게 때문에 궤도차량임에도 불구하고 장애물을 넘을 수 없으니, 렙터의 보병 전력이 피해를 감수하고 앞으로 나와 미니건을 갈겨댄다고 해도 이미 전력 중계기가 충분히 앞으로 전진했으니 엑소슈트의 실드가 꺼질 일도 없을 거야.’
“또 뭔 고민을 그렇게 하고 있냐? 다 이겼잖아?”
“그래. 다 이겼지. 이대로 몇 분만 지나면 그 SF영화에나 나올법한 주포(柱砲)가 깔끔하게 놈들을 날려버릴 테니까. 그런데…. 뭔가 드럽게 찜찜해.”
멀리 떨어진 시점으로 보면 전쟁은 체스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데, 지금 상황은, 잠시 한눈판 사이 상대가 어떤 말을 옮기고 내 차례가 돌아온 것과 같았다. 분명 뭔가 야료를 부렸는데 그걸 확인할 수는 없는 상황.
올드 픽처라는 상대의 수를 막았고,
렙터 군단의 후퇴를 막아 전자기 그물과 거리를 좁힘으로써, 엑소슈트 부대에 떨어지던 전차 포격을 무력화시키고 놈들에게 피해를 강요할 수 있는 상황, 포격에서 벗어난 데다 도시로부터 끝없이 전력을 보충받는, 사실상 무적에 가까운 엑소슈트 부대와 적의 보병 전력이 맞붙는 상황까지 끌어냈다.
다 이겼다. 체스로 치면 적의 룩과 나이트를 다 잡고 체크메이트를 외치기 직전의 상황.
그런데 상대가 실실 웃고 있다. 체크메이트까지 이어진 첫 번째 수, 후퇴의 목적을 확인하지 못한 것 하나로.
‘하이드. 아직 자냐? 하이드?’
[…..]‘꼭 필요할 때는 없어가지고.’
불안하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무언가가 마음에 걸린다는 것. 뭘까. 내가 그냥 지나친 사실이 뭘까?
“후퇴…. 너무 빠르지 않았냐?”
“응?”
“놈들은 선전포고를 끝낸 뒤, 놈들은 곧바로 후퇴를 시작했어. 전자기 그물이 가동되기 전부터. 저만한 수의 장비가 밀집한 상태로 이동하는데, 그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는 것은 사전에 얘기가 되어있었다는 소리야.”
렙터는 시간을 끌면 진다. 주포가 충전될 테니까.
후퇴는 시간을 끄는 행위다. 놈들은 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
결론. 렙터는, 주포를 신경 쓰지 않는다?
“….에이 설마.”
“왜. 뭐 좀 알겠어?”
“에이이이….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라고.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지. 암!”
교수가 말을 이어갈수록, 이안의 얼굴도 불안에 물들어갔다. 그도 그럴게, 말과는 달리 교수의 얼굴이 당황에서 경악으로, 경악에서 공포로 물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렙터의 입장이 되어 생각했을 때 이 불합리한 전장을 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는 방법, 저 후퇴가 렙터 군단에게 유리한 전술이 되는 상황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만약 이 가정이 맞다면, 주포가 충전되기 전에 이변이 일어날 것이었다.
***
전장의 변화는, 눈보다 귀로 먼저 다가왔다.
전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소음이 난무한다. 쏟아지는 포성과 폭발음, 비명, 악쓰는 소리….
하지만 그 전투가 돔의 도시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면, 소음은 극단적으로 줄어든다.
파아앙-
화약이 아닌 전류를 통한 가속을 이용한 레일건 탄환이 음속을 돌파하는 소리.
파바바박! 파바박! 파바바박!
엑소슈트에 장착된 전자기 소총의 파괴적이지만, 얌전한 격발음.
퍼억, 퍼어억!
그리고, 렙터의 전차탄이 스피드 범프의 전자기 그물에 막혀, 허공에서 멈춰서는 소리.
그렇게 돔의 최신화기가 내는 소음만 가득하던 전장에, 어느 순간부터 귀를 찢는 포격음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커다란 폭발과 솟구치는 파편, 그리고 그것에 직격으로 맞아 산산이 조각나 날아가는 엑소슈트.
으드득!
교수는 자신의 멍청함에 이빨을 갈았다.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떠올랐을 것을. 그저 바쁘다는 이유로, 정신이 없다는 이유로 대충 흘려넘기다니!
—–
[좋아. 3소대는 그거 그냥 놓고 바로 돔 내부로 투입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중앙 발전기는 사수해야 해! 집행부가 이 일의 중심이라면, 놈들이 벌써 움직이고 있을 수도 있어!] [출발하겠습니다!]—–
올드 픽처를 보내기 전, 감찰부 부장의 통신을 통해 들은 내용. 엑소슈트로 무장한 1개 소대가 투입됐다. 외부도 아니고 돔 내부에서, 배터리가 가득 찬 엑소슈트 부대가 당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랄프 형님도 그렇게 판단했으니 3소대를 투입하고 잊어버렸겠지만···.
‘만약…. 그들로 모자랐다면? 마침내 중앙 발전기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 집행부 놈들이, 도시의 주 전원을 차단해버렸다면···!’
돔의 막강한 전투력의 중심은 그 도시 주변이라면 무한히 공급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력이다. 그만큼 중앙 발전기에는 온갖 방어 시스템과 암호화된 차단장치로 가로막혀 있으며, 거기다 감찰부 엑소슈트 부대까지 방어에 가세한 상황. 정말 말도 안 되는 이변이 없다면 돔의 중앙 발전기가 당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만약 그 말도 안 되는 이변이 일어났다면,
“졌….다….”
“뭐? 크게 말해 박교수! 안 들린다! 갑자기 놈들의 포격이 거세져서···.”
“포격이 거세진 게 아니라, 방어 장치가 꺼지는 바람에 유효타가 급격히 늘어난 거야! 빌어먹을! 애초에 주 전장은 이쪽이 아니었어!”
교수는 거센 포격음 속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들의 등 뒤에 위치한 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느덧 지평선 너머로 해가 저무는 시간이건만, 돔의 도시는 불빛 하나 없이 고요히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발전기다! 집행부인지, 렙터인지! 둘 다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돔의 방어를 뚫고 들어가 주 발전 시설을 다운시키는 데 성공한 거야! 레일건도, 전자기 그물도, 엑소슈트 전력 공급장치도 죄다 꺼졌다고!”
콰아앙-
콰아아앙!
어느새, 공기를 찢는 레일건의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렙터의 포격이 개활지를 찢어발기는 소리만이 전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공격, 방어수단을 동시에 잃어버린 돔.
스피드 범프를 믿고 전장 깊숙이 돌출되듯 진출한 엑소슈트 부대.
그리고 그런 그들을 감싸듯, 좌우 양 끝부분부터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하는 T-7 전차.
강철의 벽이, 무적의 방어벽을 잃은 엑소슈트 부대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야, 잠깐만. 레일건의 포격이 멈췄으면….”
“전차 조종수를 교체할 일도 없겠지. 벡스 녀석, 아무리 깔끔하게 숨어들어 갔다곤 해도, 계속 거기 있으면 결국엔 들키고 말 거야.”
“계획대로라면 조종수로 교체되는 즉시 몰고 나왔어야 되는 건데…. 이렇게 되면 녀석이 거기에 갇혀있다는 거잖아!”
철컥!
그 말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이안은 바로 무장을 챙겨서 몸을 돌렸다.
“내가 구하러 간다! 넌 발전기로 가!”
“혼자 되겠어? 저 포격 속에서?”
“….퉤!”
이안은 교수의 물음에, 대답 대신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안되면 뒈져야지 뭐.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너도 최대한 빨리 움직여라. 발전기만 켜지면 상황 역전이야.”
이미 죽음을 각오했다는 뜻.
‘내 탓이다. 내 판단 미스가 벡스를, 우리 셋을 사지로 밀어 넣었어!’
그 모습에, 교수는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자책하지 마라. 넌 신이 아니야. 애초에 우린 이 전쟁에 있어 이레귤러일 뿐이라고. 지금 상황은 나태한 돔의 목덜미에 오래전부터 갈아온 렙터의 칼이 박힌 상황이야. 원래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 말이다.”
그런 교수에게, 이안은 가방에서 꺼낸 각종 수류탄 다발을 건네주며 말했다.
“인생은 매판 이기기만 하는 그런 시시한 게임이 아니니까. 그리고, 완전히 진 것도 아니잖아? 아직.”
툭 툭.
이안은 죄책감에 휩싸인 그의 친구에게 손을 내밀며, 반은 하얗고 반은 은색인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어 보였다.
“매번 그렇듯, 발버둥 치다 보면 또 모르는 거라고? 그렇잖아? ‘기적의 사나이’. 이번에도 뭔가 보여달라고.”
평소에는 그렇게 잘 나오던 말도 그 미소 앞에선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내민 손을 마주 잡을 뿐.
“유서가 어딨는지는 저번에 말해뒀으니 기억하겠지.”
“….”
“이따 보자고, 위에서든, 아래에서든.”
그 말을 끝으로, 이안은 포격이 빗발치는 전장을 향해 달렸다.
***
한편 돔의 전력이 차단되기 5분 전, 렙터의 진형에 침투하는 데 성공한 벡스는 대단히 불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네, 노병이로군?”
장교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T-7전차의 뒤쪽에 위치한 장갑차, 주기적으로 기절한 조종수들이 실려 들어오고, 끌려나가는 곳.
작전대로 조용히 자신의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벡스에게, 한쪽 구석에 있던 그처럼 키작은 병사가 말을 걸었다. 늙수그레한 목소리에, 가느다란 팔목.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늙어서 허리가 굽은 노인이었다.
“말할 기분이 아닌가? 하긴…. 젊은 시절을 렙터에 바친 것으로도 모자라, 다쳤다는 이유로 내팽개쳐져 허드렛일이나 하며 근근이 살아오다 도착한 종점이, 바로 이런 곳이라니.”
‘애들 뿐만 아니라 늙어서 쓸모가 없어진 노인들도 소모품으로 쓰고 있었군.’
벡스는 아무 말 없이 노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의 생김새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눈에 띄는 것도 있었지만, 별다른 정보 없이 잠입한 상황에서 섣불리 대화를 하다가는 침입자라는 게 들통날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 없는 벡스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노인은, 방금 실려 들어온 아이의 곁으로 다가가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넘겨 주었다.
“나도 옛날에는 저들과 같은, 전차병이었다네. 3차 세계대전에 지원병으로 참전했지. 그땐 그들과 같이 생각했었다네. 세상이 변했으니, 법도, 사람도, 도덕의 기준도 변해야 하는 거라고. 모든 것을 옛날처럼 올바르고 짊어지고 가기엔, 세상이 너무 무거워졌다고 생각하며 사람을 죽였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당연한 듯 렙터에 합류했어. 그들이 옳았다고 믿었네.”
주름이 가득한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노인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아이의 눈을 감겨주었다. 헐떡이던 숨소리가 들리지 않은 지 꽤 오래됐었다.
“이 아이는…. 조금 전에 다섯 번째 교대를 마치고 들어왔지. 아이들의 연약한 몸으로 견디기엔 저 레일건의 충격은 너무 끔찍해…. 내가 아이들을 대신해서 나가는 것도 이제 한계라네…. 다리도 움직이지 않고, 눈도 잘 보이지 않아. 다음번이 마지막이겠지. 나는 괜찮네. 이 모든 일들이, 내가 젊었을 적 했던 일의 업보이니까. 하지만 이 아이들은…. 도대체 이 어린 아이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벡스는 빨리 자기 차례가 돌아오길 바랐다. 더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안돼, 작전대로 행동해야지. 햅번의 작전을 내가 망쳐서는 안 돼. 나보다 100배는 머리가 좋으니까, 내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보다 햅번의 작전 쪽이 100배는 더 훌륭할 거야….
눈을 꾹 감고 고개를 돌렸지만, 어째서인지 감은 눈 안쪽에 늙고 노쇠한 몸으로 겁에 질린 아이들을 감싼 노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마른 피부가 스치는 소리, 칭얼거리는 소리, 떨리는 손이 다독이는 소리.
덜컹!
“다음! 빨리 나와라!”
전차의 해치가 열리는 소리에 벡스는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짜증이 가득한 렙터 병사의 얼굴이 천사처럼 보였다.
‘작전을 위해서다, 작전을….’
벡스는 노인과 어린 조종수들을 외면한 채, 곧바로 병사를 따라 장갑차 바로 앞에 위치한 전차의 조종수 석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전면 수직 장갑 왼쪽 아래에 위치한, 짐칸 같은 작은 구멍. 왜 그렇게 몸집이 작은 사람을 찾았는지 알 것 같았다.
치직-
[들어왔으면 빨리 움직이란 말이다! 이 굼벵이 같은 애새끼야!]퍼억!
“윽!”
생소한 조종수석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데, 좌석 뒤쪽에서 발길질이 날아왔다.
‘전차장, 포수, 탄약수가 타고 있는 곳이구나.’
잠입하기 전에 대충 들은 설명에 따르면, 조종수석 뒤에 위치한 사람은 포수였을 텐데, 말하는 것을 보니 전차장과 자리를 바꾼 것 같았다.
‘충격에 귀가 안 들린다고 했었지.’
아마 귀가 안 들리게 된 아이가 조종수로 왔을 때를 대비해서, 이렇게 발로 명령을 내리려고 안쪽으로 내려온 듯했다.
슬쩍 곁눈질로 보자, 옷도 간단한 군복을 입은 그와 달리 상당히 두터워 보이는 보호복 같은 것을 입고 있었다.
퍼억!
[네놈이 꾸물거리는 바람에 대열에서 돌출됐잖아! 배운 대로 해라! 아무것도 건드릴 필요 없으니, 천천히, 악셀을 밟아! 속도를 높여서 아군과 라인을 맞추는 거다!]다시금 등허리에 틀어박히는 군화와, 머리에 쓴 헤드셋을 통해 들려오는 전차장의 지시.
교수의 작전은, 전차 조종석에 들어간 다음 쭉 앞으로 나와 그대로 T-7 전차를 진형에서 탈출시키라는 것이었다. 이제 이들을 죽이고 탈출만 하면 되는-
퍼억!
[속도가 빠르잖아! 라인이 멈췄다고! 제기랄, 이런 정박아 애새끼들을 데리고 어떻게 전쟁을 하라는 건지!]으드득!
‘아이들 몸과 얼굴에 생긴 멍이 이거였구나.’
화낼 필요 없다. 어차피 다 죽일 놈들이었으니까. 몇 대 맞아주는 것 정도야 목숨값에 비하면 싼 것이다.
하지만 벡스는, 너무너무 화가 났다.
안 되는데. 이제 이놈들만 다 죽이고 앞으로 쭉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옷 갈아입을 때 병사의 땀내 나는 셔츠로 백기도 만들어 놨는데.
[쓰레기 같은 애새끼들! 한 살이라도 일찍 렙터의 병사로 봉사하는 것보다 좋은 일이 뭐가 있다고! 질질 짜지를 않나! 우는 소리를 내지를 않-]푸슉!
“….아니야.”
조종수 석의 뒤에 앉아, 충격 보호복의 답답한 열기와 전투의 긴장감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던 전차장은 처음 듣는 목소리와 함께 그의 다리가 갑자기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빈틈없이 다리를 감싼 보호복 안으로 바람이 들어오며 땀에 푹 절은 종아리가 서늘해졌지만,
“어어…. 어어어! 내 발! 내 발이!!”
반대로, 그의 발목은 불에 지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하였다.
[커헉!] [저, 적습-끄르륵!]잘린 발목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헤드셋을 통해 들려오는 단말마. 땀에 절은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언제 들어왔는지 이미 포수와 탄약수를 죽여버린 벡스가 그의 목에 칼을 대고 있었다.
“사, 살려-”
“아니라고.”
“어…으?”
“아이들한테는, 이런 좁은 공간에서 너 같은 놈에게 발길질 당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미래가 있어.”
“그, 그게 무슨-”
스걱!
지체 없이 전차장의 기도를 베어버린 벡스는, 죄책감에 한숨을 쉬었다. 이런 쓰레기들을 죽여버린 데 대한 죄책감이 아니라, 일이 틀어지면 또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릴 교수를 향한 죄책감이었다.
—–
‘기억해, 벡스! 무조건 속도전이다! 안에 들어간 다음, 조종수로 잠입해서, 최대한 빨리 조종석에 앉은 다음 차를 끌고 대열에서 이탈해야 해! 탈출이 1초 늦어지면 네 수명이 1% 줄어든다고 생각하라고!’
—–
“작전에 없던 행동을 하면…. 문제가 생길 텐데.”
하지만 벡스는 그 말과는 달리, 조종수석이 있는 곳의 반대편, 겁에 질린 아이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음? 어이, 조종수! 네 자리로 돌아가! 멀쩡하게 제 발로 걸을 수 있으면 아직 교대할 정도는- 커헉!”
새로 받은 칼은 날이 참 잘 들어서 좋았다. 어린아이와 노인만 들어있는 장갑차 주변을 지키는 녀석들 정도는 순식간에 참살할 정도로.
덜컹!
장갑차의 해치가 열리고, 벡스가 얼굴을 내미는 것과 동시에 한 아이가 그의 앞으로 튀어나왔다. 노인의 곁에서 울고 있던 아이 중 하나였다. 어두운 장갑차 내부에 있다 갑자기 비쳐 들어온 역광에 눈이 부신 듯, 얼굴을 가린 아이는 벡스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내가 가, 갈래요! 할아버지 거기 더 가면…. 죽는단 말이야!”
“로, 로니! 이리 오거라! 내가, 내가 갈…!”
“아무도 갈 필요 없어.”
읏샤!
해치를 통해 들어온 벡스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노인을 대신해 앞으로 나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해맑게 웃었다.
“네 인생은 아직 한참 남았으니까. 이런 좁고 어두운 장갑차 안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즐거운 일이 많을 테니까.”
“자, 자네는…. 아까 그….”
“할아버지. 전차병이라고 하셨죠?”
“그, 그렇네만….”
“눈도 잘 안 보이고, 다리도 안 움직이지만, 한 번만 더 운전을 해주실 순 없을까요?”
“전차 말인가?”
“이 장갑차요.”
“무, 무리야…. 근처에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고, 그게 아니라도 주변에 있는 다른 렙터들이 그냥 보고 있지 않을-”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장갑차라니…. 설마 자네….!”
침침한 눈으로 벡스를 살피던 노인의 눈에, 그제서야 벡스의 군복에 잔뜩 묻은 피가 들어왔다.
“네. 할아버지랑, 이 아이들을 데리고 여길 나갈 거예요.”
교수는 저 머리 큰 전차를 몰고 나오면 된다고 했다. 그럼, 뒤에 장갑차 한 대 정도 더 달고 나오는 정도는, 오차 범위 내에 들어가지 않을까?
‘햅번, 미안해! 몰래 차만 끌고 나오는 데는 실패했지만, 탈출하는데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이건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
비록, 벡스는 조금 어리숙하고 나이에 비해 어린 감이 있었지만, 그런 그에게도 절대 꺾을 수 없는 신념은 있었다.
‘14부대 아저씨가 그랬던 것처럼. 그때 내가 받았던 것만큼 만이라도!’
착한 어른은 아이들을 지켜줘야만 했다. 그게 전쟁터 한복판이라도, 자신의 목숨이 걸려있다 해도.
치지익-
[모든 전방 전차대원에게 알린다. 적의 전력이 차단되었다. 적의 전력이 차단되었다. 전 병력, 위치로. 레일건이 멈췄으니, 지금부터 소모성 조종수는 사용하지 않는다. 전력을 다해 적을 도살하라.]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꿈벅 거리는 노인과 벡스, 아이들 사이로 렙터의 명령이 흘러들어왔다.
벡스의 예민한 귀에, 느릿하게 움직이던 주변 전차들의 엔진이 굉음을 토해내는 소리가 들렸다.
“상황이 변했나 봐요.”
“그런 것…. 같군.”
“할아버지. 할 수 있으시죠?”
“물론이지. 물론이고 말고…!”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팔과 다리로, 가까스로 쓰러진 몸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 노병은 주름이 가득한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벡스의 앞에 섰다.
“인생에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해내고야 말겠네…!”
“부탁드릴게요, 그럼.”
벡스는 아이들의 부축을 받아 조종수석으로 향하는 노인을 뒤로하고, 장갑차의 해치 밖으로 나왔다. 주변 전차에서 하나 둘, 진짜 렙터의 조종수와 교대되어 실려 나오는 아이들이 보였다.
“너희들은, 나쁜 어른이야.”
잠시 후, 장갑차 주변에서 차례로 핏물이 솟구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