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04
Chapter.7 가면 무도회(19)
***
“끄르르륵! 허윽, 으으으으!”
“이런 빌어 처먹을! 어이! 정신 차려! 아직 안 죽었어, 안 죽었으니까!”
이안은 벡스의 작은 몸을 끌어안고 황급히 장갑차 뒤쪽으로 몸을 굴렸다. 벡스는 그를 만나고 뭔가 놓아버린 듯, 그 눈에 힘을 잃고 허물어지는 중이었다.
‘늦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고,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이 그의 옆에서 죽어갔다. 살 사람과 죽을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간단했다. 목에 힘이 들어가 있는 사람. 고통을 참고,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발버둥 치는 사람은 아직 힘이 남아 버틸 수 있는 쪽. 반면 힘없이, 축 늘어져 유리알 같이 맑은 눈으로 지인에게 무언가 전하려고 하는 사람은….
“미, 미안…. 나, 나……”
“입 닥쳐! 좆 같은 소리 할 힘으로 숨을 쉬란 말이다!”
파박! 파바바박!
벡스를 안고 어떻게든 구멍 난 옆구리를 막아보려 애쓰는 동안, 그의 등 뒤로 적들의 탄환이 쏟아지고 있었다. 잠시 꾸물거리는 사이 사격이 닿는 위치로 이동한 모양.
“개 같은 새끼들이….!”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탄환이 날아올지 모르는 여기선 안 된다.
이안은 벡스를 안고 황급히 옆에 있던 장갑차 안으로 들어갔다. 전차, 장갑차 같은 물건은 일단 해치만 닫아걸면 외부에서 뚫고 들어오기 힘든 물건이니까.
‘실드를 무식하게 떡 장갑을 바르는 것으로 대체한 렙터의 장갑차이니 어느 정도 시간을 벌어줄 순 있겠지.’
치이이익-
돔에서 챙겨온 지혈 스프레이를 꺼내 벡스의 옆구리에 뿌리려는 찰나, 수많은 시선이 그와 벡스에게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적….아니, 애들이군. 여긴 소모성 조종수 대기실이니.’
치이이익!
부글부글!
지혈 스프레이. 수분과 만나면 급격히 부풀어오르는 단백질 같은 게 들어있는 물건이다. 일단 급한 대로 뿌리고 있긴 하지만, 내장이 너덜너덜해진 벡스의 응급처치로는 한참 부족한 물건.
“오오오. 이런 일이…. 안 돼, 결국….!”
그 아이들의 중심에 있던 노인 한 명이, 쓰러진 벡스의 곁으로 허물어지듯 달려왔다.
이안은 이를 악물고 외면하고 있던 사실이 노인의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절망으로 다가왔다. 벡스는 죽는다. 몇 분, 어쩌면 지금 당장.
“그러니 그냥 가라고 했잖나…. 의인은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거늘! 그만큼 했으면 됐다고 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될 때까지…!”
이안은 조용히 벡스의 곁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피와 땀에 젖은 그의 이마를 쓸어올렸다.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바깥의 거죽을 막았다고는 해도, 녀석은 내장을 당했다. 안쪽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으니 춥겠지. 피가 빠져나간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차가우니까.
‘추운 걸 싫어하던 녀석이었는데.’
———
‘아무튼 따뜻하겠지! 이번 겨울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짜리몽땅. 매년 겨울은 더 길고, 더 추워지고 있잖아.’
‘멍청아! 나는 45구역에 폐건물에서 살았다고! 너 얼어 죽기 싫어서 몸에 진흙 발라서 굳혀본 적 없지?’
‘너…. 그 정도로 거렁뱅이였냐?’
‘키히힛! 그땐 뭔가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죄책감이 들었으니까! 올겨울은 따뜻한 쉘터에서 보내게 되겠지! 올해 크리스마스엔 처음으로 산타한테 다른 선물을 빌어볼 거야!’
‘….작년엔 뭐 달라고 했는데.’
‘아침 해! 1분이라도 더 빨리 해가 뜨게 해달라고!’
———
결국 녀석은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지 못하고 먼 길을 떠나게 되어버렸다.
‘의인은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라.’
황무지 사람들이 버릇처럼 입에 담고 사는 말이다. 살아남기 위해 양심을 깎아내야 하는 순간, 주문처럼 외우는 말. 벡스가 왜 여기에 남아있는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이 장갑차에 가득한 작은 눈망울들은, 처음 그 순간을 제외하면 오로지 벡스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바르르르-
그의 손길을 느꼈는지, 감겼던 벡스의 눈꺼풀이 힘겹게 들어올려졌다.
“….죠.”
“벡스.”
소심하고, 멍청하고, 엉뚱한 그의 벗이, 마지막 숨을 토해내려 하고 있었다.
“차….. 너 차….. 뽑아놨는데….”
“그러니까 왜 말을 안 들었어. 전차를 타고 나오라고 했잖아.”
“전차는…. 좁아…. 다 태울 수가….”
이안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삶을 스쳐 간 수많은 죽음 중 하나일 뿐이다. 평생 잊어버리지 못할, 벼랑 끝을 내달리며 살지 않으면 그를 매몰시켜버릴 그런 죽음.
이 아이들을 살리려고 했던 것이다. 벡스는. 그게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되어서도, 포기하지 못하고 점점 거리를 좁혀오는 적들을 상대하다가, 결국 이 꼴이 날 때까지.
“….어쩐지. 운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포격이 많이 빗나갔지. 전차 수에 비해 떨어지는 숫자도 적었고.”
밖에 있던 시체들. 보병도 있겠지만, 전차 승무원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거다. 전차를 운용할 병력이 줄었으니 포격이 뜸해지는 게 당연한 수순.
‘빚을 졌군. 가뜩이나 받은 것도 많은데.’
이안은 한 손으로 벡스의 얼굴을 감싸고, 다른 손을 품 안으로 넣었다. 노병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한 노병은, 무릎걸음으로 달려와 이안의 옷에 매달렸다.
“이, 이보게! 지금 무슨….!”
“세상에 둘 밖에 남지 않은 친구이니. 장례는. 치러줘야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3형 변종의, 슬픔의 기억을 헤매는 그 모습을. 이안은 그의 친구가 그렇게 되도록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아직… 아직 살아있다네! 이 장갑차에 시동만 걸리면, 돔까지만 갈 수 있으면 의사가 있지 않나! 자네들 돔에서 나온 사람들이잖나!”
이안은 자신의 심장 바로 위에 바짝 붙여놓은 홀스터, 그가 24시간 차고 다니는 아내의 유품이 담긴 가죽 주머니의 버클을 풀었다. 그의 손바닥 보다도 작은 데린저. 언젠가 그가 버틸 수 없게 되는 날, 그녀의 온기가 남아있는 이 총으로 그 끝을 장식한다면 그녀의 곁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항상 지니고 다니던 총.
‘가서 내 친구라고 말해주면 잘 해줄 거다. 몰리는 착한 여자니까.’
거의 평생을 혼자 살았던 녀석이니, 죽어서도 혼자 있게 두고 싶진 않았다.
의사라. 만약 우진이 이곳에 있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얼굴이 반쯤 날아간 그를 살려준 그 의사라면, 어쩌면….
눈에서 불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고통 없이 보내주리라. 벡스를 보내주고, 이렇게 만든 모든 쓰레기들을 갈가리 찢어서 가장 실력 좋은 장의사도 맞출 수 없는 꼴로 만들어주리라!
이안의 체온과 같은 온기를 지닌 총이 품에서 빠져나왔다.
순간,
스르륵-
노쇠한 몸으로 필사적으로 매달린 노인 때문인지, 그의 홀스터 안에 들어있던 무언가가 밖으로 흘러내렸다.
손가락 두 개 만한 작은 앰플. 까맣게 잊고 있던.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깨질 수도 있는….
덥썩!
희망.
“신이시여….”
신이라.
평생 원망만 해온 존재. 놈이 영생을 하는 이유는 살아남은 모든 생존자의 욕을 받아먹기 때문이겠지. 욕먹으면 장수한다니까. 놈의 수명에 내 지분이 꽤나 될 텐데.
하지만 결국 존재하긴 하는 모양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이안은 저도 모르게 덜덜 떨리는 손으로 품 안의 홀스터를 더듬었다. 있다. 무침 주사기. 앰플과 함께 넣어두고, 까맣게 잊고 있던 우진 영감의 선물.
“씨발 신이시여!”
감사를 표하진 않으리라. 고맙다고 하기엔 그놈이 내게서 앗아간 것이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그러니, 이건 그 대가로 신이 그에게 보내준 선물이었을 것이다.
그의 손에 들려진 것은 오래전 43구역에서 우진이 교수를 부탁하며 두 사람에게 건넨, 저승의 문턱에 있는 사람도 끌어올린다고 알려진 귀물.
리바이벌 키트(Revival kit) 였다.
***
“세상에…. 그건….! 그게 아직도 세상에 남아있었다니!”
경악하는 노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안은 지체없이 그 불투명한 보라색 액체가 가득 든 앰플을 벡스의 심장 바로 위쪽에 주사했다.
푸슉!
무침 주사 특유의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벡스의 몸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정체불명의 약물.
‘살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전쟁터에서 기적의 약이니, 실로암의 샘물이니 하는 과장된 이름으로 불렸지만 결국 사람이 만든 약이다. 마약성 진통제와 조혈세포, 그 외 온갖 잡다한 최신 생명공학이 마구잡이로 포함된 녀석이지만 대구경탄에 내장이 찢겨나간 사람을 당장 벌떡 일으키면 그건 더 이상 과학의 영역이 아니지.
‘하지만 시간은 벌었어.’
써본 적은 없지만, 소문으로 들었다. 7.62mm 탄이 간인가, 신장인가를 관통하여 죽기 직전이었던 병사가, 이 리바이벌 킷 한 방 맞고 두 시간을 자력으로 걸어 부대로 복귀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헛소리로 치부하기엔 한 달 뒤 부대에 복귀한 그놈의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는 찬송가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었지.
효과는 눈에 보일 정도였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처럼 경련을 일으키던 몸이 진정되고, 호흡이 안정되며, 심장이 말처럼 뛰어서 몸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마약성 약물의 효과. 어떻게든 목숨은 붙여준다는 리바이벌 키트의 힘. 정확한 시간까진 알 수 없지만, 그때 그 병사처럼 두 시간 정도는 버텨줄 것이다.
“이럴 수가…. 이럴 수- 커윽!”
이안은 옆에서 머리를 흔들고 있는 노인의 멱살을 잡았다. 시간이 없다. 저 약의 효과가 남아있을 때, 1분이라도 더 빨리 벡스를 의사에게 데려가야 한다.
“상황 설명. 당장!”
노병은, 그런 그를 책망하는 대신 얼굴이 반쯤 금속으로 된 괴상한 남자에게 여기서 있었던 일을 짧게 요약해서 들려주었다.
“아이들을 구하려고 했지. 앞을 막은 전차는 로니가, 뒤쪽 장갑차는 내가 운전해서 빠져나가려고 했어. 하지만 전차와 달리 장갑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먹통이었어!”
그 말과 함께 그들 옆에 위치한, 장갑차 조종수석의 패널을 차례로 훑는 노인의 눈. 마구잡이로 시도한 게 아니라 상당히 알고 한 느낌이다.
“당신. 렙터의 전차병인가?”
“전차병이었지! 나도 안다네. 아무리 아날로그처럼 보인다고 해도, 생체인식 잠금장치가 있다는 것 정도는! 오래전 복무할 때 쓰던 내 인식코드도, 비상용 전차 승무원 공용 인식코드도 먹통이었어!”
노인의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말에 이안의 인상도 찌푸려졌다. 전차야 소모성 조종수가 계속 들락날락하니 락이 풀려있지만, 장갑차는 얘기가 다르다. 그래서 전차를 타고 도주하라고 얘기했던 것인데. 그렇다곤 해도 비상용 대응 코드마저 막혀있다는 것은….
“노이지 팩…. 전자전 부대가 따라온 만큼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는 소리겠지. 어떤 식으로든 너희들이 출발하기 전, 누군가에게 차량이 노획됐다는 것을 알고 접속을 차단해 놓은 거야.”
벡스 녀석. 장갑차 안에 애들이 탄 상태에서 적이 거리를 좁혀오자, 노인이 시동을 걸기 위해 애를 쓰는 동안 시간이라도 끌어보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러다 저 꼴이 된 것이고.
“….염병할. 어째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가 없냐.”
망설일 시간은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더는 후회할 거리를 남기고 사느니 그냥 뒈져버리기로 다짐했지 않은가.
“나와봐.”
“이럴 시간이 없네! 방금 저 청년에게 주사한 게 내가 아는 그 약물이 맞다면, 이런 움직이지도 않는 고물에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전차를 타고 이곳을 탈출하도록 하게!”
“나와보라고!”
이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벡스를 전차로 보내겠다는 듯, 조종수석을 막아서는 노인을 옆으로 밀쳤다.
조종수석 한쪽 구석. 녹색 커서가 깜빡이는 화면과 손목을 가져다 대면 인식하는 생체인식 장치.
이안은 주저 없이 그 장치에 자신의 손목을 가져다 댔다.
삐빅. 삐비빅-
생체인식 장치가 그의 코드를 읽고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된 코드들과 비교를 시작했다.
통상적인 방법으로 이 장갑차에 시동을 거는 것은 불가능했다. 노이지 팩에서 시스템을 아예 잠가 버렸으니, 그 너드 새끼들만 알고 있는 코드로 잠금을 풀지 않으면 누가 와도 전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을 테니까.
딱, 하나. 예외를 제외하고는.
삐빅!
붉은 조명을 반짝이며 그의 정체를 확인하던 생체인식 장치에, 녹색 불이 들어오며 굴곡 하나 없이 딱딱한 글자들이 그의 귀환을 반겨주었다.
[코드 확인. 환영합니다, 이안 데스몬트.]“그래. 나도 반갑다. 옛 연인을 다시 만나는 상황이 썩 달가운 건 아니지만 말이지.”
털털털털털털-
그르릉!
접속이 확인됨과 동시에 시동 버튼을 누르자 장갑차는 힘찬 소리와 함께 엔진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에서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노인은, 녹색 불빛을 확인하는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듯 깜짝 놀라더니, 화면에 나온 글자들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이, 이이이이, 이안, 데, 데스몬트라면 그 배신ㅈ…..”
“그쯤 하자고, 노인장. 늙은이들이야 눈만 뜨면 하는 얘기가 옛날 얘기라지만, 듣는 사람 입장도 좀 생각해줘야지.”
“지, 진짜 애쉬필드? 당신입니-”
콰앙!
“앞에 가서, 그 로닌지 콜먼인지 하는 꼬맹이랑 교대해. 나보다 빨리 튀어 나가려면 적어도 숙련병 정도는 돼야 하니까.”
난폭하게 노인의 말을 끊고 올려보낸 이안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레버를 당겨 RPM을 올리고,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카앙!
카가가각!
뭔가 날아와서 전차가 좀 흔들리긴 했지만 그뿐. 밖에서 대충 봐도 궤도까지 깔끔하게 덮은 단단한 장갑차였다. 전차급 화력이나 대전차 무기가 아니면 쉽게 데미지를 줄 수 없을 것이다.
‘널린 게 전차이니 대 전차급 화력을 그리 많이 챙기진 않았겠지. 엑소슈트는 질량 충격에 약하니 폭발물보다 대구경 탄을 많이 챙겨왔을 거고. 장갑차를 상대할만한 장비가 올 때까진 시간이 조금 있다는 뜻이다.’
대열에서 빠져 나간 다음에는 이곳에 들어올때처럼 포격이 쏟아지겠지만, 전투 차량으로도 했는데 장갑차 정도야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앞의 전차가 빠져나가길 기다리는 잠깐의 여유시간. 머리에 피가 조금 식은 이안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희미한 기억에 주변 패널을 더듬었다.
몇 년이 흘렀지만, 자주 써보진 않은 장갑차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기억했다. 핸들 아래쪽 무릎 어림에 작은 뚜껑을 열면 시거잭이 나오고, 그 옆을 열면 담배 케이스가 있다. 슬쩍 밀어보니 렙터의 비늘 무늬 상표로 마감된 시가 박스가 들어있다.
찰칵!
트드드득-
구성원의 80%가량이 군인인 렙터의 네스트는 니코틴에 중독된 거친 남자들의 도시였고, 그만큼 담배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만드는 곳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 특유의 거친 담배향.
“그래. 빌어먹을 과거가 결국 턱밑까지 쫓아왔군.”
쿠르르르르!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전차를 보며, 이안은 장갑차의 철판 같은 가속 패달을 힘껏 밟았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가쁜 숨을 내뱉고 있는 벡스를 돌아본 그의 눈에, 분노라고 해야할지, 슬픔이라 해야 할지, 광기라 해야 할지. 혹은 그 전부를 합친 것이라 표현할만한 무언가가 스멀스멀 들어차고 있었다.
“내게 오래된 이름을 되돌려주었으니, 그 이름값은 알아서 감당해야 할 거다! 파충류 새끼들아!”
광인처럼 눈을 빛내며 운전하는 이안의 옆으로, 평화롭게 깜박이는 녹색 화면에 새로운 글자들이 떠올랐다.
[노이지 팩. 관리자 접속 시도 확인. 거부됨. 상위 명령권자의 요청.]렙터의 모든, 얼마 되지 않는 전자식 장비를 총괄하는 노이지 팩.
전자 장비에 있어 그들보다 높은 권한을 가진 것은 렙터 안에서 딱 한 부류 뿐이었다.
노이지 팩이 배신했을 경우를 상정하여 전원의 동의가 이루어질 시, 노이지 팩의 전자 접근 권한 자체를 말소시킬 권한을 가진 렙터 최고위 간부 5인.
삐리릭-
[스웜 알파 접속중]이안 데스몬트, 재를 먹고사는 악마라고도 불렸던 렙터의 전설적인 창립 멤버 중 하나가, 오랜 도피 생활 끝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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