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05
Chapter.7 가면 무도회(20)
***
“사냥이란 건 말이야. 인류가 인류가 아니던, 짐승에 가까운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온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지.”
렙터의 진형 가장 안쪽, 수많은 장갑차와 병사들의 엄중한 경계로도 모자라 전차용 실드에 240mm 장갑을 두른 지휘관 전용 전차 안, 솔 아마르는 눈에서 쌍안경을 떼지 않은 체 부관에게 말했다.
“기념할만한 문화야. 하나의 종이 피식자가 아닌 포식자로서 우뚝 서기로 다짐했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서 고대 사람들은 사냥을 신성시하기도 했지. 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 인도의 루드라, 북유럽의 스카디, 파푸아뉴기니의 마사라이 등등…. 이보게. 듣고 있나?”
렙터 원정군의 총사령관, 팩 리더 솔 아마르의 질문이었지만 그의 부관은 대답이 없었다. 10여 분 전, 분개한 솔의 징 박힌 장갑에 곤죽이 될 때까지 두들겨 맞아 숨이 멎은 뒤였으니까.
물론, 솔은 그 부관의 상태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저 그의 말에 대답이 없는 부관이 몹시 불쾌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귀한 행사란 말일세. 사냥이라는 건. 그리고 오늘, 영광스럽게도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이 행사는 그냥 사냥도 아니고 렙터의 5개 군단이 주력을 이끌고 출진한, 역사에 남을 위대한 사냥이란 말이야. 그런데 왜,”
퍽!
“왜!”
퍼억!
“왜!!!”
철퍽!
“조금만 더 있으면 저 조각난 고철 덩어리들을 렙터의 깃발 아래 진상하게 될 이 순간에, 우리 진형 안쪽에서 쥐새끼들이 날뛰고 있냔 말이다, 이 불경하고 무능한 쓰레기들아!!”
솔은 한참을 씩씩거리며 그의 부관의 머리를 짓뭉개다 숨을 가다듬었다. 그의 주치의가 혈압을 조심하라고 했으니, 진정해야지. 이런 하찮은 놈들 때문에 자신의 수명이 줄어드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는 오래 살아야 했다. 위대한 렙터의 지상 과제가 완수되는 날까지. 그 영광을 눈에 담는 날에 이 솔 아마르가 빠져서야 될 일인가?
전차 위에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늘어진 부관의 시체를 걷어 차버린 솔은 눈을 부라리며 안쪽에서 계기판을 조작하는 노이지 팩 병사들을 닦달했다.
“절대로 저 장갑차가 움직일 일은 없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런. 거짓 보고였군?”
“지, 지금 최선을 다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자네, 절대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가? 그 정도 단어도 모를 정도로 지능이 떨어지는 병사가, 렙터의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나는 굉장히 회의적이네만….”
“제,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솔은 겁에 질린 병사의 얼굴을 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겁에 질리다니. 지금 저 병사가 느껴야 할 감정은 공포가 아니라 자괴감이 아니던가? 기회를 달라니. 이미 렙터를 위해 봉사한다는 지상 최대의 기회를 잡아놓고, 그걸 헌신짝처럼 던져버리고 나서 다시 기회를 달라니?
솔 아마르는 서글픈 마음으로 그의 애총, 루거를 들어올렸다. 아무리 선별을 하고 또 해도 이런 반동분자가 끝없이 나오니. 그의 어깨 위에 올려진 짐이 너무 무거웠다.
“으, 으아아악!”
그렇게 그가 방아쇠를 당기려던 찰나,
“찾았습니다! 원인을 찾았습니다!”
눈이 충혈될 정도로 화면을 쳐다보며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던 다른 병사 한 명이 번쩍 손을 들었다.
“오오, 그래. 무능한 자 중에서도 제 일을 하는 사람이 한 명은 있기 마련이지. 그래, 저 멍청이가 말한 `절대`가 깨진 이유가 뭔가?”
“그…. 최상위 명령권자의 접속이 있었습니다.”
“최상위…. 명령권자?”
“예. 노이지 팩 전체보다 더 높은 권한을 가진 코드가 락을 강제로 풀고 장갑차의 통제권을 가져갔습니다.”
“자네….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할 텐데?”
“예?”
철컥!
공포에 질린 병사를 향하던 총구가,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자네가 말한 최상위 명령권자는 이 거대한 렙터 소사이어티에서도 네 분 밖에 안 계시는 스웜 알파를 말한다네. 만약 네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분들 중 한 분이 친히 이곳에 친정을 하셔서, 수행원 하나 없이 우리에게 말도 하지 않고 애새끼들이 가득 들어찬 장갑차에 들어가 접속하셨다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분들께서 그러실 이유가 없지 않으냔 말이야. 혹, 나의 부족한 상상력을 채워줄 만한 설명이 남아있는가?”
“저,저, 정말입니다! 여기, 여기 분명히 최상위 명령권자의 인식 코드와 함께 접속 기록이….!”
솔은 벌벌 떠는 병사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댄 채, 병사가 필사적으로 가리키는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확실히 그렇게 쓰여 있긴 했다. 관리자 코드, 접속 불가. 최상위 명령권자의 요청. 코드….
“이안…. 데스몬트….”
그 순간, 숨도 쉬기 어려울 만큼 무거운 정적이 지휘 차량 안을 휘감았다. 솔은 감정표현이 매우 풍부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장내에 있던 모든 병사들은, 그때 그의 얼굴에 피어오른 감정이 무엇인지 설명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푸흐흐흐흐….”
하지만, 뭔가 꺼림칙하고 소름 끼치는 것을 본 느낌이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솔은 총을 쥐지 않은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부여잡은 채 숨이 가쁜 사람이 헐떡이는 것처럼 한바탕 웃어대기 시작했다.
“오, 이런. 세상에! 애쉬필드님이, 다시 전장에!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그래! 스웜 알파는 원래 다섯분이셨지! 하하하하하하하! 부관! 부과안!!! 내 호흡기 가져와! 웃겨서 숨이 넘어가겠어!!!”
마치 연극 하는 사람처럼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무릎을 두드리며 웃어대던 솔은 그의 앞에서 덜덜 떨고 있던, 접속 기록을 찾아낸 병사에게 와락 달려들어 어깨동무했다.
“축하하네! 자네 승진이야!”
“예? 예?”
“대단한 공로를 세웠군! 오늘부터 자네가 내 부관이라네! 그러니 그런 기계나 붙잡고 노닥거리는 대신, 서둘러 준비를 좀 해줬으면 하네만!”
“어떤…. 준비를 말씀이십니까?”
“이런 미련한 자를 보았나!”
타앙!
만면에 웃음을 짓고있던 솔은, 질문을 한 병사를 세상에서 가장 미련한 사람 보듯 하더니, 총을 들어 처음의 그 `절대 불가능`하다던 병사를 쏴버린 다음 자신의 새 부관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그야 당연히 영전이지! 렙터의 창립자, 사냥의 신께서 돌아오셨으니 어찌 이런 차림으로 맞이한단 말인가! 이안 데스몬트, 애쉬필드님께서 돌아오셨는데!“
광기가 소용돌이치는 그의 눈동자 안쪽에는, 분노와 증오, 애정이 뒤섞인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
삐빅-
[관리자 코드. 접근 거부됨]삐빅-
[관리자 코드. 접근 거부됨]삐빅-
[관리자 코드. 통신 요청 R-01.]`R-01? 지휘 차량에서? 반응 한번 빠르군.`
이안은 장갑차에 접속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쓰던 상대에게서 통신 요청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읽고 단박에 알았다. 상대가 그의 정체를 알았다는 것을.
`벡스 녀석이 안에서 흔들어준 덕분에 상대 전차부대는 포격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험상 이런 경우에는 위에서 누가 윽박질러주지 않는 한 교통정리에 꽤 시간이 걸렸는데…. 이 상황에서 상대 지휘관의 입을 내가 붙들고 있으면 탈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 노병도 준비를 마쳤는지, 장갑차 앞에 있는 전차에서도 털털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는 상태. 문제는 대열을 빠져나가면, 놈들에게 바로 후방을 내준다는 데 있었다.
물론 믿고 있는 구석이 하나 있긴 했다.
‘돔 친구들이 아주 병신은 아닐 테니까. 아까 스쳐 지나가면서 살짝 봤지만, 똘똘 뭉쳐 배터리 아끼면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어. 무차별 폭격 때문에 틈이 안 나서 웅크리고 있는 것 같은데….’
틈은 생긴다. 자신들이 포의 사각에서 나가는 순간, 상당수의 전차가 이쪽을 노릴 테니까.
`그 짧은 틈을 잘 이용해야 할 텐데. 그놈들이 가능하려나?’
이안은 에젤의 어벙한 얼굴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상대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면 뭐든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치직-
잠깐의 잡음이 끝나고 통신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음악 소리.
[빰! 빰빠밤! 빰빰빠바바밤! 빠밤!]“이게 뭔…. 군악대?”
다소 어설픈 감이 있지만, 분명히 그가 알고 있는 가락이었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가끔 나오던 렙터의 군가였으니까. 그런데 그게 왜 상대 지휘 차량 통신에서 나오는 거지? 소리가 라이브인데?
[두구두구두구두구- 채앵!]드럼과 심벌즈 소리로 마무리되는 군가와, 그 뒤에 이어지는 잔뜩 깔아서 힘을 준 목소리.
[받들어….. 총!] [척! 척!]“아니, 이게 다 뭔 지랄인지….”
[하하하하! 당황하셨겠지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렙터의 스웜 알파를 영접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보잘것없는 실력을 가진 이들이 연주하였으니! 어찌 참담한 심정이 아니시겠습니까! 에잇! 이런 무능한 놈들! 애쉬필드님의 귀를 더럽히다니!]타앙! 타앙! 타앙!
상당히 들뜬 목소리와, 뒤이어 이어지는 세 발의 총성.
잘 알고 있는 목소리다. 광대같이 우스꽝스러운 어조에, 성대까지 비계가 가득 찼는지 들을수록 답답해지는 음성.
“솔 아마르.”
으르렁 거리는 이안의 목소리에, 씩씩거리며 욕을 내뱉던 상대의 목소리가 돌연 밝아지며 찬사를 토해냈다.
[이럴 수가! 저를 기억해주신 겁니까?! 어찌 이런 영광이! 이, 이럴 때가 아니지. 부관! 부과아안! 당장 기록하도록! 무려 3년 7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안 데스몬트님께서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나 솔 아마르의 이름을 기억해주셨음을!]으드득!
어찌 잊을 수가. 저 광대 같은 놈은, 그의 명령이라면 불구덩이에라도 당장 뛰어들겠다고 말하던 저놈은! 지금과 똑같이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그의 아내와 딸을 그의 손으로 죽였다고 말했으니.
“…..많이 컸구나. 네놈이 팩 리더, 그것도 원정군 총사령관이라니.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왜. 분수에 맞지 않게 높은 자리에 앉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나?”
[하하하하. 제 막중한 책임을 상기하게 될 뿐 입지요. 애쉬필드께서는 그날 이후로 변함이 없으시군요. 아, 다른 부분에서는 많이 변하셨지만 말입니다. 외모가 많이 바뀌셔서 잘 알아보지 못한 저를 용서하시길. 트리케라톱스의 라인을 넘어온 그 남자가 애쉬필드님이 맞으시지요? 사뭇…. 남자다운 모습으로 바뀌셨더군요.]“사람이 마음을 고쳐먹으니 눈에 띄게 변하긴 하더군. 누구누구랑 달리 나름 개과천선을 한 몸이라서 말이야.”
‘역시 다 보고 있었나.’
저 돼지 녀석은 전장 구석구석을 제 눈에 담지 않으면 안 되는 병이라도 걸렸는지, 옛날부터 스토커마냥 눈을 희번덕거리며 쌍안경을 굴리던 녀석이었으니까. 나를 보고 있었다면 드러난 접속 기록과 나를 어렵지 않게 연결할 수 있으리라. 안에 들어간 게 나와 벡스, 애들 뿐인데 벡스는 아예 체격 자체가 다르니까.
[아아, 저 시니컬한 반응. 정말 그리웠습니다. 애쉬필드. 그 빌어먹을 창녀만 아니었다면 여전히 렙터에 남아 수 많은 전장을 불태우며 세계에 그 이름을 새기셨을 텐데.]이안은 놈의 여운 가득한 목소리를 들으며 분노를 곱씹었다. 저건 비아냥대는 게 아니다. 진심으로, 놈은 그의 아내로 인해 그가 타락했다고 믿고있었다.
“비계가 많아 뇌까지 기름에 가득 절여진 모양인데, 그렇게 꿱꿱 되지 않아도 찾아갈 테니 얌전히 구경이나 하고 있어라. 내 친히 그 비계를 썰어 네놈을 정상 체중으로 되돌려줄 테니.”
[이런, 화내시는 겁니까? 이안 데스몬트가, 화를? 아아아, 어쩌다 이다지도 망가지셨는지. 애쉬필드께서 제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습니까. 감정 같은 불합리한 판단기준을 배제하는 순간 전장이 눈에 들어온다고. 그 말씀을 하던 순간을 제 평생 잊을 수 없건만, 정작 본인은 이렇게 감정적인 사람이 되다니! 애석하게도, 그년을 죽이는 것만으로는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없었나 보군요. 가여운 나의 영웅.]뿌드드득!
장갑차의 조종실 안에 이안이 이빨 가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 퍼졌다.
[으음. 혹시, 아까 그 남자가 애쉬필드님이면 그 키 작은 남자는 지인분이십니까? 이런 세상에! 제가 잘 모르고 대충 쏴버렸는데 애쉬필드님의 지인인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붙잡아오는 것을! 이거 죄송하군요! 여흥 삼아 사냥을 좀 했는데, 표적이 워낙 작아서 빗나갔지 뭡니까. 바닥에 버르적대던 꼴이 참 보기 좋던데.]“이 개자식이….”
[그러니까 왜 그렇게 자꾸! 쓸데없는 감정적 장애물을 만드시는 겁니까!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이 머릿속에 잔뜩 들어차 있으니!]콰아앙!
[멍청하게 킬존으로 기어들어 가는 거 아닙니까!]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진동하는 장갑차. 근처에 포격이 떨어졌다는 뜻이고, 사각에서 벗어나 놈들의 공격 범위에 들어갔다는 뜻이다.
‘일부러 기어들어 간 거다, 이 돼지 새끼야.’
도망치는 것으로 보면 어색한 상황이지. 앞으로 나가는 순간 전차로 이루어진 십자포화에 노출되니까.
‘하지만, 여기 우리만 있는 건 아니잖아?’
T-7 전차와 장갑차 한 대가 촘촘하게 이어져 있던 진형에서 빠져나왔다. 강철의 성벽에 구멍이 났고, 돔의 엑소슈트 부대에 가해지던 포격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린 상황.
“….전선 뽑힌 돔 친구들이 조루라곤 해도, 대물 조루란 말이지. 한 방 제대로 맞으면 끝내줄 거다!”
철컹! 철컹!
그런 이안의 기대에 화답하듯, 그들이 빠져나온 구멍, 렙터의 전차 라인 한가운데 뻥 뚫린 구멍을 향해 방진을 풀고 일어난 엑소슈트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이안은 그중, 대열의 끄트머리에 허겁지겁 따라오고 있는 엑소슈트를 향해 장갑차의 방향을 틀었다.
“에젤! 에젤 레이든!!!”
쿠우웅!
아무것도 안 들리는 상태 같아 일단 들이받았더니, 잠깐 휘청거린 에젤은 사람 몸통만 한 엑소슈트용 펄스 라이플을 이쪽으로 겨냥했다.
벌컥!
“나라고 씨발놈아!”
[너…. 메탈죠?]“그래! 여기 와서 부상자 좀 데려가라!”
“내가 네놈보다 100배는 더 잘 싸우니까 여기 애들이랑 벡스 좀 안전한 곳으로 옮겨줘!”
에젤이 갈등하는 사이 이안은 장갑차에 고정해놓았던 벡스를 풀어서 해치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한눈에 봐도 심각한 모습에, 에젤은 더는 고민하지 않고 슈트의 두 손을 움직여 그를 조심히 감쌌다. 그동안 안에 있던 아이들이 장갑차 밖으로 뛰쳐나와 에젤의 엑소슈트 빈자리에 하나둘 매달리기 시작했다.
[우, 우왓! 이 애들은 또 뭐야? 한두 명이 아닌데?]“소모성 조종수다!”
[소모성…. 뭐?]“그런 게 있어! 아무튼 너는 애들이랑 벡스 데리고 병원으로 가! 대구경탄에 의한 좌 복부 파열! 신장이랑 소장이 좀 뜯겨나간 것 같았고, 스프레이로 출혈 막고 리바이벌 킷 박아둔 상태라고 전해!”
[그거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 ]“무조건 살려! 믿는다!”
먼저 앞서간 전차에 노인 하나, 아이 셋. 지금 에젤의 엑소슈트에 매달린 게 여덟. 녀석이 두 손으로 감싼 벡스까지.
녀석이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사람들도, 그 녀석도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겼다.
“숙제는 다 했다, 벡스.”
쿠과과가각!
이안의 조종에 따라 방향을 바꾼 장갑차가,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계기판을 보니 통신은 아직 대기 상태로 연결되어있는 상황.
통신 버튼을 누르자, 총성과 함께 거친 욕설이 수신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머저리 새끼들아! 막아! 막으라고! 전차를 고철 덩어리로 만들고, 아군 진형을 앞으로 밀면 구멍이 메꿔지잖아!] [그 침입자가 날뛰는 바람에 전차를 운용할 인원이 부족합니다!] [적기 6체 반파! 2체 완파! 나머지 18체, 라인을 넘어옵니다!] [측면으로 빠진 미니 슈터를 불러들여! 저놈들만 다 죽이면 끝이야! 끝이라고!]치직-
“솔 아마르. 렙터에 대한 충성심과 공포로 아랫사람을 다루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항상 실전 능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했었지.”
[흐읍!]놈이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항상 그런 놈이었지. 약자를 짓밟는 데는 언제나 제일 선두에 서지만, 정작 제 몸이 위험해지면 가장 먼저 꼬리를 말고 도망치던 버러지.
[도, 돌아오신 겁니까? 애쉬필드?]끼기이익!
쿠우웅!
렙터의 전차 라인 너머에서, 파고들어가는 데 성공한 엑소슈트들이 뒤쪽이 텅 빈 T-7에게 분풀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인사격은…. 없군.’
장갑차 뒤쪽에 벡스 녀석이 만들어놨던 셔츠 백기를 걸어놨지만 혼란한 전장 속에서 돔의 펄스 라이플 몇 발 맞을 각오는 했는데. 에젤 녀석이 통신으로 뭔가 얘기한 모양이다.
‘돌아왔다, 라….’
그런 기분이 들긴 했다. 렙터의 시가를 피우고, 렙터의 전차에 앉아, 렙터의 통신으로 떠들고 있으니 옛날 기분이 나긴 했다. 하지만….
치직-
“돌아오긴 누가. 이안 데스몬트는 3년 전에 죽었어. 오늘 널 죽이는 건 사이코패스 이안 데스몬트가 아니라, 황무지의 향신료상 메탈죠라는 남자다! 돼지 새끼야!”
이안은 냉막해졌던 얼굴 위로, 평소의 그 기괴한 미소를 피워올리며 페달을 밟았다.
콰직!
대구경 개틀링을 갈겨대는 미니 슈터들 사이로 파고든 장갑차가 놈들을 산채로 짓뭉개며 엔진을 울렸다.
상황은 난전으로, 최종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