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07
Chapter.7 가면 무도회(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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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암반 지형을 통째로 깎아 만든 정육면체 형태의 공동과 그 한가운데 우뚝 선, 셀 수없이 많은 기계 부품으로 이루어진 탑.
교수가 있는 입구에서 한참 고개를 들어야 올려다볼 수 있는, 수많은 계단 위에 자리 잡은 탑은 구시대 최신기술의 집합체라는 본질과는 달리 신전과 같은 장엄함이 있었다.
건축미라고는 기능미 밖에 남지 않은 이 시대에 보기 힘든 아름다움.
감자 한 조각, 작은 철 쪼가리 하나에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이 시대에, 변변한 건설장비조차 없이 만들어진 이 거대한 예술품에 가까운 시설은 돔 사람들이 이 중앙 발전소를 얼마나 숭상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중앙 발전소 하나가 도시 전체의 생명을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어떤 면에서는 신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교수는 꿇어앉은 한쪽 무릎이 축축하게 젖어 드는 것을 느끼며,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피다. 계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어.’
[위에서 엄청 죽여댔나 보네. 서로.]콰직!
카가각!
계단 아래쪽에 있는 교수의 눈에 전투 장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크게 휘둘러지는 엑소슈트의 은빛 팔과 그 손에 들린 무기 정도는 눈에 들어왔다.
[방패랑…. 망치?]‘긁는 소리에 엔진음 같은 게 섞여 있는걸 보니까 전기톱 같은 걸 쓰는 놈도 있나 본데.’
[멀쩡한 무기 놔두고 왜 저런 걸 들고 싸우고 있는 거야? 뭔…. 의식 같은 거라도 되나?]‘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거겠지. 여기서는. 엑소 슈트의 주력 무기인 펄스 라이플이나, 실드를 뚫을만한 대구경 탄환이나. 한발이라도 중앙 발전소 탑에 잘못 박히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물론, 도시 전체가 그 폭발에 휘말리게 될 테니까.’
탑의 섬광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하이드가 인식한 엑소슈트의 무기를 확인하며, 교수는 인상을 찌푸렸다. 부스터 해머. 전투 차량 정도는 때려 부수는 게 아니라 때려서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파워풀한 무기. 방패 쪽은 에너지 실드. 화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현 상황에 있어서 공격 면에서나, 방어 면에서 대적할 게 없는 최상급 무기다. 심지어 이곳은 돔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 아무리 집행부라도 여기에 실드 앱소버를 설치한다고 공사를 할 수는 없었을 테니 엑소슈트는 아무런 방해 없이 실드의 보호를 받으며 집행부를 압살할 수 있었을 텐데.
카가가각!
‘왜 밀리는 거지?’
중간중간 무기가 맞부딪치며 튀는 불꽃과 탑의 섬광이 보여주는 순간의 이미지만으로도 엑소슈트가 한참 밀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터엉!
순간, 위에서 뭔가 묵직한 것이 날아와 교수의 곁에 떨어졌다.
팔이다. 엑소슈트의.
‘개입한다.’
적의 정체, 적의 무장, 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었지만 어차피 위에서 분전 중인 엑소슈트 두 대가 전투 불능이 되면 중앙 발전소를 탈환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지니까.
찰박 찰박 찰박!
교수는 핏물이 흥건한 계단을 밟고 위로 뛰어 올라갔다.
생각은 길었지만 멍하니 있었던 시간은 8, 9초 정도. 모든 상황을 다 따져가며 움직이기엔 너무 급박한 상황.
덕분에, 교수는 적을 향해 뛰어 올라가면서도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했다.
‘무슨 수로 엑소슈트를 상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중장비는 아니야.’
이곳까지 오는 동안 확인한 흔적에 엑소슈트 외의 다른 흔적은 없었다.
이 지하까지 전차를 몰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적이 장비를 갖추었다면 같은 엑소슈트거나, 사람이 들 수 있는 정도의 무장밖에 없을 터.
귀를 기울였을 때 들리는 구동음은 엑소슈트 두 대가 내는 소리뿐이었으니, 자연스럽게 상대가 특수화기 같은 것으로 감찰부를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틈을 노려서 저격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콰가가각!
투쾅!
특수화기가 맞긴 했다.
잔뜩 충혈된 눈으로 오른팔이 있어야 할 곳을 차지한 커다란 전기톱을 휘두르고,
한 손에 푸르스름한 실드를 두르고 유압 피스톤처럼 생긴 주먹으로 엑소슈트가 휘두르는 건 해머를 쳐내며 인간의 몸으로 엑소슈트와 비슷한 출력을 보여주는 사람들.
그런 반 기계인간이 다섯 명 정도 있었다.
[총 한 자루로는 씨알도 안 먹히게 생겼는데?]‘그건 해봐야 알지! 그래도 통짜 실드를 두른 엑소슈트에 비하면 살이 노출된 면적이 꽤 되잖아! 바닥에 시체도 제법 있고!’
타앙!
아직 적들이 그를 인식하기 전. 저격을 하기엔 최적의 상황이었다. 계단 끄트머리에 엎드린 교수가 노린 것은 다섯 명의 기계 인간 중에서도 뭔가 있어 보이는, 양날에 레이저 블레이드가 번뜩이는 대검을 휘두르는 남자였는데….
카아앙!
“어….”
[가끔은 안 해보고 아는 것도 있어야지 멍청아! 괜히 위치만 들통났잖아!]엑소슈트를 향해 휘두르던 검이 순식간에 반전하더니, 그의 뒤통수를 정확히 노리고 날아간 탄환을 막았다. 검이라기보단 커다란 노처럼 생긴, 누가 봐도 엑소슈트 같은 대형 장비에서나 사용할법한 검을 가벼운 나뭇가지 휘두르듯 하던 남자는, 노즐 플래시가 튀는 그 순간 교수를 인식하고 번개처럼 검을 들어 자신을 방어한 것이었다.
‘양쪽 날 부분에 철 대신 레이저 블레이드가 달렸다곤 해도 10kg은 가뿐히 넘어 보이는 물건을 저 속도로 휘둘렀다고? 그것도 저렇게 정밀하게?’
[뭐, 뭐야! 저딴 게 왜 여기 있어!]‘몰라 시발! 나도 처음 본다고!’
탄환이 틀어박힌 자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내려다본 남자는, 엑소슈트를 상대하던 대열에서 이탈해 그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한 붉은 렌즈는 정확히 교수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
“지원군인가.”
교수를 발견한 상대가 꺼낸 말은 딱 거기까지였다. 한가락 하는 칼잡이 대신 주먹을 휘두르는 놈 쪽으로 총구를 돌리는 순간, 순식간에 들이닥친 레이저 블레이드가 기겁한 교수가 휘두른 소총의 개머리판을 잘랐다. 검게 탄 단면이 대리석처럼 말끔한 게, 레이저 블레이드 중에서도 출력이 보통 좋은 놈이 아니었다.
[피, 피했다! 안 보일 정도는 아냐! 그냥 더럽게 빠를 뿐이라고!]‘보이면 뭐 해! 몸이 못 따라가는데!’
[너 말 잘하잖아! 어떻게 살려달라고 빌어봐!]촤아아악!
스웅-!
“으아악! 저 새끼 대화를 할 생각이 없다고!”
가파른 계단 아래로 몸을 날려서 머리를 수직으로 쪼개려 드는 대검을 피하긴 했는데,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내밀었던 총이 두 동강 나버렸다. 2040년형 구문명 합금 총기가 무슨 두부 썰리듯이 깔끔하게 잘렸단 말이다!
[껍데기! 개인적인 생각인데, 우리가 지금까지 괴물 같은 놈들을 참 많이 잡아 왔지만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염병할! 여기 있을 놈들이라곤 집행부 놈들밖에 없는데, 도대체 저 T-3000 같은 놈들은 어디서 기어 나온 거야!’
타앙!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쓸모없어진 소총을 집어던진 교수는 재빨리 품에 있던 권총을 꺼내 놈을 쐈다. 맞을 거라고 생각하고 쏜 게 아니다. 막겠지. 막아야겠지!
피잉!
‘역시!’
살짝 놈의 머리를 빗나간 사격을 막아낸 놈의 얼굴에 비웃음이 맺혔다. 그런 사격 따위는 평생 날려도 통하지 않는다는 듯.
물론, 교수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이! 믿는다! 이거 다~ 못 막으면! 우리 전부 죽는 거야!”
철컥!
교수는 양손에 늘어뜨린 권총을 천천히 위로 들어 올렸다. 기계인간의 발, 무릎, 허리, 가슴, 그리고 머리를 지나, 그 위. 엄청난 양의 저장된 전력이 꿈틀거리는 중앙 발전소의 탑을 향해.
그러자, 기계인간의 자신만만한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타 타앙!
피 피잉!
놈의 몸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을 향해 발사한 탄환을 막아내었다.
“이, 이 버러지 같은 새끼가!!!”
“오! 쿨가이 이미지는 버리셨나 봐? 내가 보통 사람 같으면 이런 자살행위 안 하는데, 특별히 아저씨 능력이 너무 출중해서 한번 해보는 거야! 자신 있지? 막아야 해! 무조건!”
뿌드드득!
살벌하게 이빨을 갈면서도 섣불리 자신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기계인간을 보며 교수는 낄낄거렸다.
“전략이란 항상 상대가 싫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법이지.”
[야, 그러다 저놈이 미친 척하고 안 막으면 어떡해!]‘괜찮아, 괜찮아. 도시의 심장을 그렇게 허술하게 만들었겠냐. 저 발전기 나름 튼튼해. 약한 부분에만 직격하지 않으면 막 터지고 그러진 않아.’
주기적으로 빛을 발하는 부분.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는 부분 말고 어두운 부분을 조준하고 있으니 정말 저놈이 빡돌아서 안 막는다 해도, 놈이 상상하는 것처럼 엄청난 대형사고가 날 확률은 적었다.
[확률이 적어?]‘아예 없을 순 없지. 알고 보니 어두운 부분이 더 약한 부분이라거나-’
[야!]‘리스크가 전혀 없을 순 없잖아!’
타탕! 타탕!
교수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놈을 막기 위해, 탑을 향해 사격을 이어나갔다.
***
일단 공격으로 상대를 묶어놓는 데 성공은 했다. 놈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도 끊임없이 눈으로 양쪽 총구의 사선을 쫓는 게 어지간히 죽기 싫은 모양이었다.
‘문제는, 나도 이 상황에 묶였다는 거지.’
교수가 탑을 겨냥하고 있는 동안은 놈은 공격할 수 없다. 하지만 잠깐의 틈, 탄이 걸린다거나, 실수로 양쪽 탄환을 전부 써버린다거나, 아니면 탄이 아예 바닥난다거나 하는 순간 지금의 일방적인 공격권은 다시 저쪽으로 돌아간다.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놈을 잡지 않으면 저 레이저 블레이드에 두 동강 나는 건 시간문제라는 소리다.
그러니,
“모험을 하는 수밖에!”
타앙!
왼쪽 상단을 노려 놈의 대검이 탄환을 막느라 가드가 크게 열린 순간, 교수는 전력을 다해 놈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
스웅-!
탄환이 남아있는 지금은 교수가 주도할 수 있는 상황. 상대의 움직임을 유도하고 움직였는데도 불구하고, 놈의 블레이드가 쫓아오는 속도가 교수의 움직임보다 더 빨랐다.
타앙!
좌상단에서 물 흐르듯 부드럽게 교수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리던 대검이, 오른손에서 발사된 탄환의 궤적을 따라가 탄환을 쳐낸다.
‘생각보다 더 빨라.’
오른손의 권총이 불을 뿜고, 왼손 검지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이미 놈의 대검이 아래로 쇄도하고 있었다.
‘장병기는 붙으면 오히려 공격하기 힘들어서 될 줄 알았는데….!’
잠깐의 틈, 팔을 움직일 필요도 없이, 손목을 돌려 탑을 향해있던 총구를 놈에게 돌리고 방아쇠를 당길 그 콤마 1초 정도의 시간만 있으면 되는데,
쐐에에엑!
가드가 열리는 것과 동시에 놈의 무릎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내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것 역시 하이드와 의식공유가 아니었다면 눈으로 쫓아가지도 못했을 정도의 엄청난 속도. 무릎을 피하면, 다시 대검이 날아든다. 그렇게 되면, 놈을 향하던 총구는 다시 바깥으로 향하고-
타앙!
‘제기랄! 틈이 안 생겨!’
살기 위한 사격이 이어진다.
타타타타타타탕!
이 모든 것이 탄환이 격발되고, 권총의 슬라이드가 왕복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일.
난사되는 탄환의 수만큼 공방이 이어지고, 교수의 코에서 붉은 선혈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기계장치가 연산하는 속도의 공방을 하이드의 감각을 이용해 따라가곤 있었지만,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7, 8…’
타앙-
철컥!
[타, 탄약이!]‘9!’
파고들기 전 새로 갈아둔 탄알집. 눈 깜작할 사이에도 이어지는 공방 속에서 재장전을 할 틈은 없었고, 기계인간의 품에 파고든 지 몇 초 만이 동이 난 탄환에 왼손에 들고 있던 권총이 공허한 울음을 토해냈다.
한계까지 가속된 의식이, 기계인간의 비릿한 미소를 비췄다.
다시는 반격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듯, 빈 총을 든 왼팔을 향해 내리찍어지는 거대한 레이저 블레이드.
[제발 나와라! 제발! 제발! 제발! 내 몸이잖아!]‘정신차려 하이드! 아직 안 끝났어!’
왼팔을 향해 떨어지는 대검을 보며, 교수는 기계인간을 향해 마주 웃어주었다.
“낚았-다아아!”
파바박!
대검이 왼팔을 세로로 갈라버리기 직전, 날카로운 파육음 대신 들려오는 실드 특유의 반발음.
“싸구려 대인실드라도, 빗겨내는 것 한 번 정도는 가능하다고!”
감찰부 병기창에서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얻어낸 볼트 라이플과, 휴대용 대인 실드.
미리 손에 쥐고 있던 실드를 켜서 대검을 빗겨낸 교수는 오른쪽, 마지막 한발이 남은 권총의 총구를 놈의 머리에 조준했다.
“냉병기를 들고 화약병기한테 깝친 네놈을 원망해라! 반쪽 터미네이터 새꺄!”
타앙!
퍼억!
모든 걸 쏟아부어 만들어낸 마지막 한 발은 정확히 기계인간의 머리에 틀어박혔다.
정확히 기계인간의 눈을 뚫고 들어간 탄환. 붉은 렌즈 파편과 함께 피가 튀어 오르며 놈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성공이다. 급조한 계획이 톱니바퀴처럼 들어맞았고,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그가 설계한 대로 흘러갔다.
다만,
끼긱, 끼기긱!
“그럼…. 터미네이..터가… 그런 작은 총알 한발로…. 죽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어야지!”
머리가 꿰뚫리고도 살 수 있을 만큼 터프한 적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교수의 패배였을 뿐.
철컥! 철컥!
빈 방아쇠를 당기는 공허한 소리 위로, 레이저 블레이드가 공기를 태우는 소리가 떨어졌다.
***
퍼억!
살아야 한다. 살겠다고 다짐했으니, 어떻게든 살아야 하는데.
가속된 의식 속에서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올리는 그의 모습과, 그 위로 단두대처럼 떨어져 내리는 레이저 블레이드의 빛나는 녹색 날이 보였다.
‘발전기를 켜지 못했는데…. 벡스, 이안…..’
기계인간의 번뜩이는 붉은 안구. 승리자의 미소가 담긴 입매. 교수는 눈을 감았다. 팔에 뜨거운 감각이 스친다. 불에 닿은 듯, 팔 전체를 활활 태우는 고통스러운, 묵직한….
‘….? 이게 아닌데.’
GG에서 팔이 잘린 것, 부러진 것을 합치면 세 자리에 달하는 교수는 팔이 잘려 나가는 감각을 세상의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묵직한 충격에 불에 달군 쇠로 지지는 느낌은 맞는데, 이렇게 전체적으로 막 불타는 그런 느낌은 아닌데?
퍼어억!
무엇보다, 칼날이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팔에 막히면서 놈의 끔찍한 힘에 몸이 땅속으로 박혀 들어가는 것 같았다.
[돼, 됐다! 됐다고!]‘하, 하이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끔찍한 두통에, 여전히 팔은 불에 지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일단 잘리진 않았다. 레이저 블레이드가 몸을 두동강냈다면 이렇게 놈의 힘을 그대로 받아 충격이 심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교수는 질끈 감았던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의 얼굴 바로 앞에 멈춰있는 레이저 블레이드 날의 무시무시한 녹색 빛. 그 뒤로 보이는 경악한 사이보그의 얼굴.
그리고….
손끝부터 어깨까지, 마치 괴물의 팔처럼 검은 갑피가 잔뜩 돋아난 상태의 왼팔. 레이저 블레이드는 그 왼손에 붙잡혀있었다.
하이드의 의식을 읽은 교수는, 녀석이 뭘 어떻게 했는지 순식간에 이해해버렸다.
“너….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아아!!”
[뭐긴 뭐야! 내 몸이다! 안에서부터 계속 염원하던, 진정한 내 몸을 만들어낸 거라고!]콰직!
하이드는 환호성을 지르며, 그 손아귀에 쥐어진 레이저 블레이드를 그대로 부숴버렸다.
몸 주인의 의식이 떠난 상태.
살아서 제 기능을 하는 육신.
그리고, 교수의 의식이 떠난 왼팔에, 또렷이 남아있는 하이드의 기억!
[말했잖아! 몸 쓰는 쪽은 내가 네 녀석보다 100배는 더 잘 안다고! 메커니즘만 알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지!]“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3형 변종이었다. 변종 바이러스는, 교수의 통제에서 벗어난 ‘왼팔’을 죽은 육신이라 인식하고, 거기에 남아있는 하이드의 기억에 따라 녀석이 가장 염원하던 모습으로 그의 왼팔을 3형 변종으로 변이시킨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