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10
Chapter.7 가면 무도회(25)
***
내심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었다.
제우스라는 이름. 좀 웃기는 걱정이었지만, 안 그래도 불안정하게 빠직거리는 장비를 보며, 버튼을 누르는 순간 교수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저 이름이 굉장히 재수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3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전 세계가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병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되며 수많은 무기가 개발되었다.
그중 전쟁사를 뒤바꿀 정도라 기대되는 것들도 꽤 많았고, 국뽕에 가득 찬 과학자들은 그 무기에 신의 이름을 붙이는 것에 대단히 긍정적이었다.
클러스터 바이오하자드 미사일 하데스가 그랬고,
네이팜 레일 탄환 아그니,
조류 유도장치 호루스,
경량화 차량 도하 설비 모세 등이 그런 계보를 이었다.
하지만 그런 오만의 대가를 받은 것처럼 그 끝이 안 좋았다는 게 문제였다.
하데스는 오폭으로 국가 하나를 날려버렸고,
조류를 이용해 항공로에 버드스트라이크 벽을 쌓아 적을 막는다는 호루스는 연구원의 조작 실수로 프로토타입 장비가 있던 연구소를 히치콕 영화의 무대로 만들어버렸으며,
보병 휴대용 차량 도하 장비 모세는 튼튼하지만 횡압력에 매우 취약한, 그러니까 다리가 설치된 곳의 상류에서 적군이 탱크로리 두 대 분량의 물만 쏟아부어도 그 여파로 다리가 흔들려‘삼도천행 징검다리’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신의 이름을 딴 무기는 죄다 문제가 있거나,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결국 과학자들은 ‘신명 무기 징크스’를 믿게 되었고, 그 뒤로 개발된 무기에는 옛날처럼 R-7, MK-3 이런 이름들이 붙게 되었다는 얘기다.
“쿨럭! 크허억!”
[이익, 몸이, 몸이 안 움직여! 야 껍데기! 아직 정신 있지?]“아, 으으으으아….”
전신에 한 군데도 빠짐없이 근육주사라도 맞은 것처럼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과충전된 제우스는 한계까지 모여든 전력을 쏟아내며 미처 제어하지 못한 몇 가닥의 전류를 주변으로 방사해버렸다.
[버티지 말고 그냥 누워! 내가 움직여 볼 테니까!]“시끄러…. 그렇게 넘겼다가 이번엔 또 어디까지 변종이 될지 모르는데 내가 미쳤다고…. 쿨럭!”
하지만 의외로 내 몸은 멀쩡한 편이었다. 벼락 맞은 사람처럼 온몸에 거미줄 같은 붉은 흉터가 생기긴 했는데, 죽을 것처럼 온몸이 아프고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만 빼면 다른 부분은 꽤나 멀쩡했던 것이다.
[너무 기준이 하드한 거 아냐? 보통 사람은 그 정도 상처를 ‘죽을 뻔했다’ 라고 표현한다구.]“몸의 모든 부분에서 고통이 느껴진다는 것은 완전히 맛이 간 신경이 없다는 뜻이잖아.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 쿨럭! 전신마비 환자로 평생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살아남았다면 말이지.”
보통 죽을 만큼 다친 사람들이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하면서 만용을 부리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한번 죽을뻔하고 나니까 왜 다들 그렇게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심각한 부상이긴 한데, 이 정도면 쉬면 낫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없는데, 왠지 그냥 그렇다고.
‘거의 저승에 한발 담갔다 와서, 그 감각을 본능적으로 아는 건지도 모르지. 아직 갈 때가 아니구나, 하고 말이야.’
교수는 창밖으로 기어가려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대로 누워버렸다.
‘확인…. 결과를 확인 해야….’
[가만있어. 내가 옮겨줄게.]타각, 타각, 타각, 타각
온몸에 붉은색으로 모세혈관 터진 자국이 가득한 교수의 몸을, 왼팔의 손가락이 바닥을 기어 끌어당겼다.
터억.
발사의 여파로 뜨겁게 달궈진 유리가 등에 닿는 것을 느끼며 교수는 눈을 돌렸다.
“하, 하하…. 세상에….”
없다.
적의 피해 상황을 확인하려 했는데, 적이 없었다.
조종석에서 목표로 한 지점, 그리고 그 너머까지.
수십 대가 넘는 전차와 전투차량, 그리고 렙터의 보병들이 산재해있던 그 지역에는 고동색의 넓은 계곡이 하나 남아있을 뿐이었다. 수십 대의 전차, 그 배가 넘는 전투차량, 그리고 수많은 렙터의 보병과 모래, 암반이 하나로 녹아들어 형성된 기묘한 암반으로 둘러싸인 계곡이.
“허…. 이런 걸 가지고 있으니 버티면 무조건 이긴다고 떠들어대지.”
“이안 그녀석이 이걸 쏴 봤어야 하는데.”
[그놈이었으면 그 자리에서 무발기 사정하고 기절한다는데 내 의식을 통째로 걸 수도 있어.]교수는 왜 다른 신명 무기들이 사고로 없어
지거나, 징크스로 이름을 바꿨는데 이 제우스만 그 이름 그대로 살아남았는지 알 것 같았다.
“씨발 신이시여…. 버튼 하나로 이런 게 가능하니 세상이 멸망하는 거 아닙니까….”
사용한 사람조차 저도 모르게 신을 부르짖을 정도의 그 끔찍한 위력.
신의 눈으로 보시기에도, 이 인간이 만들어낸 푸른 낙뢰가 그 이름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만큼 흡족하셨으리라.
제우스는, 그 이름에 걸맞은 위력을 가진 무기였다.
***
쏴아아아아아-
비.
뿌연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사람과 금속이 녹아 붙은 그 무시무시한 계곡 위로 수증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천둥 다음에는 비라…. 이거, 게임도 한참 분발해야겠어. 마법이 있고 몬스터가 있으면 뭐하냐고. 현실 쪽이 이렇게 비현실적인데.”
해 질 무렵부터 밤까지 이어진 전투. 그 폭발의 여파로 재와 먼지들이 저 하늘 높은 곳까지 치솟아 올라갔겠지. 거기에다 제우스의 발사로 인해 급속도로 데워진 공기와 용암에 가까운 온도로 녹아 붙은 계곡에서 발생한 상승기류. 뭐, 이유를 찾아보면 이런저런 과학적인 해답이 나오겠지.
하지만,
교수에게는 어째서인지, 이제 이 정도면 됐으니 그만하라는 계시처럼 보였다.
[너…. 그런 거 믿니?]‘시끄러. 죽을뻔해서 그런가, 좀 감성적으로 변했나 봐.’
하이드도, 교수도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느끼고 있었다. 비록 적이었다고는 해도, 그의 손짓 한 번에 세 자리가 넘는 사람이 그대로 증발해버렸다.
‘….엄마 따라 천국 가서 살려고 나름 착하게 살았는데.’
[….니가?]‘황무지 기준으로 임마. 그것도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겠네.’
[글쎄…. 내가 신이면, 렙터 애들 죽인 건 가산점으로 넣어주지 않을까? 쟤들은 살아있는 인구 감소정책의 화신이라고.]‘죽인 게 문제가 아니야. 전투가 끝난 지금에도, 내 머릿속에는…. 아직 죽일 놈들에 대한 생각만 가득하다는 게 문제지.’
어머니를 죽인 집행부 놈들. 이 도시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다.
‘지금 잡아 죽여야 해. 패배한 이상, 렙터쪽으로 합류하거나 어딘가로 숨어들 거야. 지금 찾지 못하면 앞으로 영영 못 찾을 수도 있어.’
“후으으읍!”
다행히, 도대체 뭐로 만들어졌는지 왼팔은 다른 부분과 달리 아주 멀쩡했다.
[어디로 가려고?]“글쎄…. 목이 사막처럼 말라붙었는데, 일단 밖에 좀 나가볼까. 황무지에 가뭄에 콩 나듯 오는 비라고.”
까가각!
“수계 마법사는…. 물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남는다고 하잖아? 나름 물에 깊은 애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저걸 그냥 지나치겠어.”
교수는 자기 오른팔보다 한 배 반 정도 더 긴 왼팔을 지팡이 삼아, 절뚝이며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패배한 집행부가 갈만한 곳. 그냥 감이지만, 짐작 가는 곳이 있었다.
***
콰르르르르르르!
“밟아! 더 밟으라고! 놈을 떼어놓으란 말이다!”
“이게 장갑차가 낼 수 있는 한계속도입니다!”
“차를 흔들어서 떼어내든, 나가서 쏴버리든 어떻게든 하란 말이다!”
“이, 이미 운용에 필요한 인원을 제외하곤 전부 밖에 나가서….”
까아앙!
“크흐흐흐, 이봐, 솔. 왜 그러지? 조금 전에 통신으로 듣던 목소리랑은 한참···. 다르지 않나? 총사령관이 그렇게 겁에 질려있으면, 네놈이 그렇게나 사랑하는 렙터 소사이어티의 위신이 떨어져버릴지도 모른다고?”
솔은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다. 완벽하게 탈출했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빛과 함께 금속 증기가 휘몰아치는 반대편 전장을 바라보며, 살아남는 쪽을 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남자라면 줏대가 있어야지! 적어도 내 부하였던 녀석이라면! 강단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어디 한번 환하게 웃어보라고! 나를 처음 만난 날처럼, 좀 전에 통신할 때처럼!”
타앙!
까아앙!
“내 가족을 죽이고 모두 나를 위해서였다고 말했을 때처럼 말이다! 솔!”
“흐이이이익!”
웬 오토바이 한 대가 그들의 뒤로 따라붙더니, 그 위에 타고 있던 남자가 달리는 전차에 달라붙은 것이다. 차를 흔들어서 떼어내려 했지만 떨어지긴커녕 더 기어 올라오길래, 혹시나 주변 환경에 동화된 그들의 차량이 들통날까 봐 병사를 몇 명 내보내서 처리하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갑차 잠망경에 피가 흩뿌려지고, 안심한 솔이 마음을 놓으려던 찰나,
타앙!
까아앙!
거대한 충격이 장갑차를 뒤흔드는 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병사들이 모두 당하고, 손에 건틀릿 같은 포를 달고 온 괴인이 다시 장갑차를 쏘기 시작한 것이다.
카모플라쥬는 투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을 비춰 전차가 그곳에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 남자가 전차 위에 달라붙은 덕분에, 전차가 그의 영상을 따서 표면에 비추고 있었다.
장갑차 위에 증오와 살기를 가득 담은 얼굴을 도배시킨 남자의 입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때, 솔은 도저히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 말도 안돼! 어,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까지 변한단 말이야! 이성과 파괴의 화신, 렙터의 간판 역할을 하던 남자가 어떻게 하면 저런 모습이-”
“오. 솔. 한 번만 더 소리 질러주겠나? 유독 이 부분에서 네 두툼한 목소리가 잘 울리는 것이,”
타앙! 타앙! 타앙! 타앙!
꾸득, 꾸드득, 콰직!
“으, 으아아아아!”
피융!
“유난히 얇은 부분 같아서 말이야!! 쓰레기도 도움이 될 때가 있는 법이로군!”
결국, 외부 장갑을 덜어낸 장갑차의 틈을 찾아낸 이안의 핸드캐논에 연달아 적중된 부분에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구멍이 뚫린 곳으로 보이는, 안을 살피듯 데룩데룩 굴러가는 갈색의 섬뜩한 눈동자.
“히얼스, 죠니! 크흐흐흐흐흐!”
“저, 저리가! 저리 가란 말이다아아아!!!”
타앙! 타앙! 타앙!
“꺼흑!”
“억!”
손가락 두 개 크기로 뚫린 구멍으로 발사된 대구경 탄환이 장갑차 안에서 마구 튀며 하나씩 안에 있던 사람들의 몸에 박히기 시작했다.
“크아악!”
“팩리더! 모,목표지점의 정문이 닫혀 있습니다!”
“끄아아아악! 내, 내 발!”
“문이 막혀있습니다!”
“들어가아아아! 들이 받아서 저놈을 장갑차에서 떼어내란 말이다아아아!”
쿠우웅!
솔의 명령에 속도를 줄이지 않은 장갑차가 그들의 목표지점, 집행부 차고의 철문을 들이받아 날려버렸다.
***
콰르르륵!
“씨부럴…. 운전도 할 줄 모르는 놈이 핸들을 잡았나…. 쿨럭!”
이안은 자신의 몸을 덮은 나무 파편들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 잡고 버티려고 했지만 한 손으로 버티기엔 너무 큰 충격이었다.
“음? 이런 제기랄! 이거 헐거워졌잖아! 감찰부에서 받은 지 하루도 안 된 신품인데!”
이안은 자신의 왼팔에 부착된 핸드 캐논의 보조장치가 헐거워진 것을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가 머릿속으로 AS나 보상기변 같은 걸 생각할 무렵, 헐거워진 장치 사이로 검붉은 무언가가 잔뜩 묻어있었다.
끈적.
“피? 제기랄. 혹시 어디 잘못된 거 아냐?”
손끝에 묻어나는 끈적한 핏자국에 이안은 황급히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전투 중에는 아드레날린으로 다친 부위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 가능하면 꼼꼼하게 눈으로 살펴보는 게 좋았다. 다 괜찮았는데, 종아리에 박살 난 나무상자 파편이 깊숙이 박혀있는 게 보였다.
“지미. 재수가 없으려니….!”
푸확!
고민할 것도 없이 단숨에 뽑아버린 다음, 벡스에게 쓰고 남았던 지혈 스프레이로 상처를 막았다. 이 정도면 안 다쳤다고 봐도 무방하지. 암.
띵한 머리를 흔들어 털어낸 다음, 재빨리 왼손에 핸드 캐논을 들어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몸을 끌 듯 움직였다. 연기가 새어 나오는 장갑차. 해치가 열린 흔적이 없으니 안에 있던 놈들은 죽었거나, 나올 생각이 없는 것이고.
‘피가…. 내 피만 있는 게 아닌데?’
시체가 좀 있었다. 장갑차가 들어올 때 깔린 건가, 했는데 아무리 봐도 차에 치여 죽은 것과는 다른 흔적.
‘눈에 보이는 것만 다섯 구. 날카로운…. 창? 말뚝? 발리스타 같은 것에 맞았나? 베인 상처도 있고…. 이쪽은 중장비 같은 걸로 우그러뜨린 것 같은데?’
나이는 4~50대 사이. 그 외의 정보는 시체가 워낙 훼손되어 확인하기가 힘들었다. 폭발과도 다른 흔적. 마치 거대한 짐승에게 당한 듯한….
‘이건 설마….’
불현듯, 이안의 머릿속으로 정오에 있었던 괴물과의 전투가 스쳐 지나갔다. 변종. 2형 변종 정도로는 이 정도 파괴력을 낼 수 없지만, 만약 3형 변종이 발생했다면….
“하하! 살았다! 렙터의 지원군이야! 이제 네놈도 끝이다, 이 괴물! 제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설마 전차를 상대할 수는 없겠지!”
‘사람!’
철컥!
순간, 잔뜩 쌓인 나무상자 뒤에 몸을 숨긴 이안의 귀에 환희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이쪽이다! 우리가 집행부야! 렙터의 동맹! 아군이란 말이다! 이 괴물은 돔에서 보낸 암살자다! 놈을 죽여! 당장 쏴버리라고!”
그리고, 그런 그들 앞에 구부정하게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익숙한 뒷모습.
“음? 이안? 니가 왜 여기 있냐?”
“너…. 너….!”
이제는 눈에 익은 덥수룩한 검은 머리. 조금 힘이 빠졌지만, 여전히 능글맞은 목소리.
묵직한 핸드캐논이 손에서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이안이 비틀거리며 교수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이야,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반갑냐. 용케 멀쩡하다? 벡스는? 벡스는 어디 가고 혼자 왔어?”
찌이잉-
그 친근하고 반가운 목소리에, 세상에 둘도 없이 강인한 남자의 눈에서 폭포수처럼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으어어어어어어!! 안돼에에에에에!!!”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와락!
교수가 말릴 새도 없이, 이안은 적들의 앞이라는 것도 잊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교수의 몸을 끌어안았다.
몸의 드러난 모든 부분에 피어난, 감전의 흉터. 피가 흥건한 군복. 그리고,
인간의 것이 아닌, 괴물과 같은 모습이 된 왼팔.
그의 눈앞에 비참한 몰골이 되어 나타난 그의 벗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안은 오전 중에 있었던 올드픽처와의 교전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게 되었다.
“내 친구가 죽다니!!! 변종이 되다니!!! 으아아아아아!!!!”
“주, 죽어? 야, 잠깐만! 지금 무슨 소리 하는-”
이안은 비통한 마음으로 상처가 가득한 교수의 몸을 쓸었다. 그는 이 거미줄 같은 흉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감전에 의한 상처. 그래, 혼자서 시가전의 달인이 득실거리는 돔의 거리에 뛰어들었으니 붙잡히지 않으면 그게 이상하지. 전기고문···. 가장 간단하고 빠르게 설치할 수 있는 고문 장치. 죽을 정도였다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던 거야.’
이안의 눈에, 집행부의 갖은 고문 끝에 온몸에 전기 화상을 남긴 채 죽어가는 교수의 모습이 선했다.
강철같은 남자의 심장이 미어질 듯 아파왔다.
‘앞에 있던 시체들은 변종이 된 네녀석의 소행이었겠지. 박교수, 넌 내 인생에 만났던 그 어떤 남자보다 강한 남자였다. 고문 끝에 죽어가며, 그 마지막 남은 의지가 괴물이 되어서도 남아 임무를 수행할 만큼! 발전기를 켜고 집행부를 쫓아 이곳에 올 만큼 강인한 남자였어!’
이안은, 끌어안은 교수의 어깨 위에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그의 평생에 다시없을 위대한 친구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크흑! 존경한다, 내 친구여! 내 인생에 겪어본 그 어떤 사람보다도 강렬한 삶을 살다 갔구나! 넌 정말…. 끝내주는 녀석이었다!”
“어…. 이안? 메탈죠씨? 너 약 같은 거 했어? 렙터 애들이 도핑할 때 쓰는 거?”
이안은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으니까. 그래, 이런 목소리로 말하던 녀석이었지. 이제 이 녀석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마도, 여기 있는 놈들을 모두 죽여도 변종이 된 박교수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머리가 좋은 녀석이었으니까. 집행부가 다 죽어도, 이 사단이 발생한 원인은 따로 있었으니까. 그게 렙터라는 걸 모를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이안은 품안에 소중히 넣어두었던 아내의 유품을 다시 한번 꺼냈다.
“그렇게 두지 않아…. 내 친구가, 메마른 황무지를 홀로 헤매며 렙터를 쫓아다니다 비참하게 죽게 두지 않아!”
철컥!
이안은 이번에야말로, 그의 데린저가 올바른 쓰임새를 찾았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잘 가라, 내 영혼의 형제여. 만약 죽어서 내 아내, 몰리를 만나거든…. 내 친구라고 말하면 잘 해줄 거야. 널 영원히 잊지 않으마.”
“이, 이게 미쳤나! 총 안 치워! 이 새끼가 쳐돌아가지고!”
빠아악!
이안은 이마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고통에 다시 한번 눈물이 왈칵 솟았다. 이 박치기, 이것도 교수로부터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박치기겠지! 아아, 친구여!
“거부하지 마라! 적어도 친우의 장례는 이 손으로, 내가 직접!!!!”
“뒤지긴 누가 뒤져 이 미친 새끼야! 죽여버린다!”
“크으으윽! 죽어서도 고집은 드럽게 쎄가지고! 죽어! 내 손에 죽으라고!”
“안 죽었어! 안 죽었다고! 나 박교수라고! 살아서 발전기 켜고, 제우스 쏘고, 여기까지 멀쩡하게 살아서 왔단 말이다, 이 깡통대가리 새꺄아아아!!!”
새꺄아아-
새꺄아아-
새꺄아아—
점점 숨통을 조여오는 이안의 총놀림에, 살아남기 위한 교수의 필사적인 외침이 집행부 차고에서 메아리쳤다.
까드득-
교수의 왼손에서 살벌한 마찰음이 울렸다.
이번에도 안 멈추면, 힘 조절이고 뭐고 왼팔로 후려칠 생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