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13
Chapter.8 오 블러디, 붐 블라다(1)
***
Ob-loo-dy boomb-la-da / 오 블러디, 붐 블라다.
***
위이잉-
철컥!!
철컥 철컥!
[경고. 인가되지 않은 접근. 무장을 해제하고 머리 위로 손을 올린 채-]“나야 임마! 문 열어!”
[새, 새 주인님?]“이야~ 코듀로! 일주일 좀 넘었는데 더럽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주인님까지! 웬 차를 또 바꾸셨어요!]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코듀로의 반가운 목소리. 역시 코듀로의 저 촐랑대는 목소리가 들려야 끝났다, 싶은 기분이 든다니까.
터렛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눈물 나게 그리운 우리의 낡고 먼지에 찌든 쉘터가 모습을 보였다.
“집이다아아아!”
“으아아아앙! 주인님! 연락도 없이 며칠이나 집을 비우신 줄 아십니까! 저는 주인님들한테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다ㄱ-”
삐비비빅-
신장. 176cm.
음성. 확인. 박교수.
홍채. 확인. 박교수.
체격. 불일치.
왼손 지문. 확인불가.
불일치. 불일치. 불일치. 불일치.
“아아아안좋은 일이이이이!!!”
“너까지 그거 세 번째다 임마.”
예상했던 반응해 고개를 저으며 교수가 내리고, 뒤에 타고 있던 에젤이 낄낄거리며 그 뒤를 따랐다.
드르륵- 덜컥!
“네 그 왼손을 처음 보고 놀라지 않으면 그게 비정상인 거야, 박교수. 벡스, 안 불편해?”
“투덜투덜…. 다들 유난은…. 휠체어 같은 거 없어도 내 발로 걸을 수….”
“쓰읍! 그 짧은 다리로 걷는 것보다 휠체어가 훨씬 빠르니까 닥치고 앉아있어 임마. 좋은 약을 잔뜩 쳐넣어서 시간만 지나면 다 낫는다지만, 결국 지금은 덜 나았다는 소리아냐. 뭔 병신같은 고집이 그렇게-”
“죠오오!!!! 말! 말 곱게!”
“아차!”
순간 길길이 날뛰는 벡스의 반응에, 이안은 답지 않게 하던 말을 멈추고 뒤의 눈치를 보았다.
타닥, 탁!
교수, 이안, 에젤, 벡스가 내린 차 안에서 한 명이 더 나왔기 때문이다.
돔에서 선물해준 고운 원피스에 새까만 구두를 신은, 10살짜리 여자아이가.
불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아이는 들고 있던 조잡한 인형을 꼭 껴안더니,
찰싹!
그대로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교수의 왼쪽 다리에 매달렸다.
“커흑!”
“어흐윽!”
그 황무지에서 보기 드문 순수한 광경에 뒤에 있던 세 아저씨들이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동안,
삐빅, 삐비비빅-
——-
인가되지 않은 생체코드.
성명 : 불명
성별 : 여
나이 : 9~10세
확인된 데이터 : 대단히 불안정한 상태. 두려움. 의존적. 의존 대상 – 박교수.
해당 연령 여아의 의존 대상 통계치를 확인. 가장 많이 확인되는 관계. 관계. 삐빅. 재확인. 관계. 어린 여아가 가장 많이 의존하는 남성.
——-
덜덜, 덜덜덜덜덜덜덜덜-
“주, 주인님에…. 새 주인님에….”
코듀로의 렌즈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며, 교수의 다리에 매달린 여자아이를 비추었다.
“새, 새 아가씨까지이이이이!!!!! 으아아아-아아아0011011010110100!!! 마님!!! 주인님이 해내셨습니다!!! 며칠 자리를 비우시더니 새 아가씨를 만들어오셨어요! 으아아아아아@#*(@&*(!@^9!!!!!”
의존 관계 : 아버지와 딸로 확인.
코듀로의 행복회로가 활활 타올라 먼지가 되어 승천하고 있었다.
“저 녀석은 무시해도 돼. 집안일 도와주는 녀석인데, 좀 많이 아파.”
“아파….요? 저 사람도?”
“사람은 아니고, 음…. 아무튼 좀 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해. 자, 들어가자. 퍼레이든지 뭔지 뚫고 나온다고 벌써 저녁인데, 밥부터 먹어야지.”
삐리릭!
“밥! 그, 금방 준비해오겠습니다! 안 그래도 3일쯤 전에 돔에서 택배가 잔뜩 왔거든요! 식료품이랑, 가재도구랑, 그래! 딱 이 정도 나이대 아이를 위한 옷가지나 물건도 잔뜩 왔어요! 주인님한테 특이한 취미가 생겼나 했더니, 이런 경사가 있을 줄이야!! 오늘은 일 년에 며칠 없는 맑은 날이니 밖에서 바비큐 파티라도 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씻고 쉬고 계세요! 제가 다 준비할 테니까!”
“여자아이 옷이라니…. 역시 그 너구리 같은 아저씨, 전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구만.”
“까페에서 총장님이 좀 노골적이긴 했지.”
에젤과 교수가 심각한 얼굴로 중얼거리거나 말거나,
밥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코듀로는 그 길로 곧장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녀석이 지나가며 열고 간 문틈으로 ‘새 아가씨~ 귀여운~’ 어쩌고 하는 이상한 노랫말이 들려왔다.
“교수. 너희 집은 항상 이래?”
“호, 혼자 살아서 그래. 우울증은 항상 조심해야지!”
“우울증은커녕 조증 걸리겠다 야.”
“일단 들어가! 들어가서 씻고 생각하자고!”
그렇게 8일 만에 시끌벅적해진 47구역의 한적한 쉘터 너머로,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
타닥, 타닥-
“애는?”
“피곤한지 먼저 잠들었어.”
“그래. 그 어린 게 하루 사이에 고생을 많이 했지.”
“아까 들었어? 태어나서 빵을 처음 먹어봤대.”
“어디 빵뿐이냐. 식전에 나온 매쉬드 포테이토를 보더니 울먹이더라. 엄마랑 감자를 받아오면 항상 자기한테 거의 다 줬다면서, 온전한 감자 두 개를 엄마랑 하나씩 나눠 먹는 게 꿈이었다고.”
이후에 나온 스테이크며, 부드러운 빵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던 소녀. 벡스는 그 모습을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서, 햅번.”
“음?”
“걔 누구야?”
그랬다. 사실 감찰총장과 커피 한 잔 하고 온다던 교수가 웬 소녀 한 명을 데려왔을 땐 다들 ‘이게 뭔 일인가’ 싶었지만, 혹시나 애가 들으면 안 될 내용일까 봐 꾹 참고 있었던 것이다.
벡스 – 아동 권리 보호에 미쳐있음.
이안 – 저만한 죽은 딸이 있었음.
두 사람은 저런 어린아이에게 매우 약했다.
“신시아. 신시아 바르토스. 내 전우의 딸이야.”
“전우면…. 14특작대 시절?”
“그래. 오래전에, 나 살리겠다고 집행부에서 휘파람쟁이(휘슬블로어 : 내부고발자)짓 하다가 밉보여서 죽은 친구야. 딸이 있었다고 했는데, 감찰총장이 오늘 낮에 대화하는 자리에 데려왔더라고. 혹시나 궁금해하실까 봐 데려왔다면서.”
철컥, 철그덕!
이안은 전선이 잔뜩 엉킨 기계와 배터리를 가지고 씨름하다가, 특작대라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애 엄마는?”
“집행부 놈들이 본보기로 삼는다고 살려뒀던 모양이야.”
“본보기로 삼는다고? 뭘? 남편 잃은 과부가 힘들게 사는 걸 보여주려고?”
“그것보다 조금 더 더러웠지. 아이 엄마에게 마약을 권했다더군. 하지 않으면 애를 죽이겠다고 협박해서.”
타닥, 타다닥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 아래, 쓰레기를 쌓아 만든 캠프파이어가 타들어 가는 소리만이 조용히 울렸다.
“집행부 놈들이 많이 쓰는 수법입니다. 그놈들은 예나 지금이나 약 쓰는 거 참 좋아했거든요.”
“그다음부터는 다들 알지? 억지로 시작한 마약이, 홀몸으로 언더돔을 전전하는 삶의 낙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 마약 공급이 끊기고, 약값을 벌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 하고….”
“….애가 어려서 다행이군.”
하아아아-
이안의 말에, 교수의 입에서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애가 알아.”
“….뭐?”
“신시아, 저 꼬맹이가 다 알고 있었다고. 지 엄마가 자기 때문에 마약을 시작하고, 점점 그거에 미쳐가는걸 매일 매일 지켜본 거야. 그러다 엄마가 약 때문에 죽을 때까지.”
“이런 빌어처먹을-!”
타악!
분을 이기지 못하고 테이블을 향해 휘둘러지는 이안의 손을 벡스가 가로막았다. 다른 손으로 쉘터를 가리키는 게, 자고 있는 신시아가 깰까 봐 그러는 것 같았다.
“너무, 놈들을, 으드득! 쉽게 죽여줬군….”
“동감이다. 불에 태우는 정도로는 한참 부족한 놈들이었는데.”
까드득!
습관처럼 왼손 손끝으로 손마디를 긁은 교수는, 앞에 놓여있는 물잔을 다 마셔버린 뒤 빈 잔을 내밀었다.
“그런 사정을 들려준 다음, 그냥 알고 싶어 할까 봐 들려줬다고 하더라고.”
“그건 그런 쪽에 무딘 내가 들어도 알겠군. 빚을 지우겠다는 거 아냐.”
“그렇지.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빚이 시간이 갈수록 더 마음에 걸리니까.”
“사실 저희 총장님은 선택하라고 하셨어요. 돔에는 제법 괜찮은 입양 시스템이 있거든요. 고아도, 자식 잃은 부모도 많은 세상이니까.”
“신시아 같은 경우에는…. 제법 여러 집에 맡겨졌는데, 적응을 못 했대. 애가 말도 잘 못 하고, 친해질 생각도 없어 보이고. 집 안에 있는 물건을 자꾸 부수기만 하고. 주로 상류층에서 입양이 이뤄지는 만큼, 그런 행동에 아이 어머니의 과거가 덮어 씌워지면서 ‘약쟁이 딸이라 어쩔 수 없네.’ 같은 프레임이 씌워진 거야.”
“그런 아이들이 마지막에 가는 고아원이 있긴 하지만…. 그건 제가 반대했어요. 저도 사실 좀 특출난. 아이였던지라 입양이 몇 번 반려돼서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지금도 그때 잘못 맞은 한쪽 귀가 안 들리거든요.”
“큭큭큭큭, 애가 들을까 봐 말은 못 하고, 총장 뒤쪽에서 온갖 손짓, 발짓으로 사인을 보내더라고. 옆에서 랄프형님이 말리는데도 막무가내로 말이지.”
참, 씁쓸한 세상이다. 어딜 가나. 뭘 하든. 쓴맛이 배어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술이 없는 게 아쉽구먼. 돔에서 그 난리만 아니었으면 파는 곳을 찾아볼 수도 있었는데.”
“그러게나 말이야. 교수 이름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내 이름을 외치는 사람도 있어서 놀랐어. 벡스! 너무 멋있었어요! 하는데, 내 평생 이 얼굴로 멋있다는 소리를 듣다니, 죽을 날이 다 됐나 싶더라고.”
“크흐흐흐! 커뮤니티도 난리더라. 무슨 ‘BDSM 예비 가입자’ 대화방 같은 것도 생겼던데. 교수 네가 방송하는 47구역 대화방에도 잔뜩 들어갔다가, 원래 거기 있던 사람들의 ‘격조 높은 대화’에 진저리치며 도망쳤다고 하더군. 미련한 놈들이지. BDSM이 뭐 하는 덴 줄 알고…. 음? 게이바, 너 구석에서 뭘 그렇게 뿌시럭거리고 있냐?”
“간장, 게이바! 아니면 에젤! 자꾸 이름 그따위로 부를 겁니까!”
“지가 그렇게 만들어놓고 따지긴.”
“후후후, 어디 그 뻣뻣한 태도가, 얼마나 갈지 보자고요!”
에젤은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등에 지고 온 작은 가방을 뒤지더니, 고급스러운 천에 포장된 길쭉한 상자를 두 개 꺼냈다.
“….권총?”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가 정신이 좀 없긴 해도, 남의 집에 놀러 오는데!”
펄럭!
“빈손으로 올만큼 개념이 없지는 않거든요!”
에젤이 포장을 풀어헤친 그것은, 캠프파이어의 불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폭이 넓은 병이었다.
“….술?”
“후후후후! 그냥 술이 아니고! 무려 달모어 62! 올해가 2057년이니, 지금으로부터 115년 전에 만들어진 1942년에 딱 12병만 만들어졌다는 위스키의 왕! 무려 예술가 연합에서도 구매 의사를 타진할 정도의 그런 물건이란 말입니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물건을 네가 어떻게….”
“아, 너네집에 놀러 간다니까 총장님이 주더라. 가서 잘 놀다 오라면서.”
“크흐으윽! 은혜를 아는 사람이구만, 그 총장이라는 사람! 전차도 준다고 하고, 그 노획 권린가 뭐시긴가도 인정해서 전투차량도 내어주고! 아주 사람이 됐어! 믿을만해!”
교수는 눈앞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예술품을 보며 심각하게 갈등하고 있었다.
‘으으으, 이것도 다 빚이야. 그 너구리 같은 아저씨, 분명 나중에 곱절로 받아낼 자신이 있으니까 저렇게 뿌리는 거라고. 눈뜨고 로비 당하는 거란 말이야….’
[그래서, 저거 안 마실 거야? 선물이라고 줬는데?]‘미쳤냐.’
갈등하는 그 마음과 달리, 손은 이미 뚜껑을 뽑아버린 지 오래였다.
퐁!
맑고 청아한 소리와 함께 열리며, 달모어는 그 명성에 아깝지 않은 단단하고 묵직한 향기로 좌중을 압도했다.
“고대의 향기로군….”
“1942년이면 2차 세계대전이 한참일 때잖아.”
“우리 네 사람 나이를 합쳐도 이 술보다 열 살이나 어리단 말이지….”
“이건 그냥 막 마셔버려도 될만한 술이 아니야. 딱 한 잔만, 살아남은 오늘을 기념하며 딱 한 잔만 하는 것으로 하자.”
말없이 동의한 그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잔을 들어 건배를 나눈 뒤, 천천히, 그 복잡하고 깊은 맛을 음미하며 잔을 비웠다.
.
.
.
.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딱 한 잔만 더 하는 것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
1시간 뒤.
“와하하하하하!”
“그래서 이 멍청한 새끼가 [교수야아아아악! 내친구 죽다니! 완전히 변종이 되기 전에 내 손으로 죽어라!] 하면서 막 코딱지만 한 총을 들고 달려드는데!”
“아핰핰핰핰, 배, 배 아파! 의사가 너무 웃으면 안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이이이익! 니가 웃을 일이냐! 벡스! 너도 병실에서 교수 보자마자 펑펑 울었잖아! 심지어 나는 한창 전투 중일 때 그 피투성이에 반 시체가 된 모습을 본 거라고!”
“크하하하하하하핰ㅋㅋㅋㅋㅋㅋ 이런 놈들이 영웅이라니, 돔의 구원자라닠ㅋㅋㅋㅋ”
쨍그랑!
“너 컵 깬 거 다 변상하고 가라 에젤!”
“똥 싸는 소리하네. 내가 가져온 술값이면 이 집 컵이고 그릇이고 전부 다 꺼내서 깨고 튀어도 무죄야 임마!”
“아아, 그건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 야, 더 없냐?”
“어디보자…. 두 번째 상자는 좀 평이한데. 뭔 브랜디라고 총장님이 말해주셨는데, 취해서 기억이 잘….”
“줘봐 임마. 오! 코냑이잖아. 총장님이 잘 사시나 봐?”
“이제 47구역 돔 대통령 하실 분인데, 당연히 잘살지. 원래 술 같은 걸 모으는 취미가 있으셨나 봐. 사무실로 데려가서 찬장 열어주시는데, 뭐가 엄청 많더라고.”
“끄윽- 돔에 큰 일이 한 번 더 났으면 좋겠군. 다음엔 무조건 그 찬장을 통째로 달라고 해야지.”
“큭큭큭, 이거 녹음했다가 나중에 문제 생기면 BDSM에 덮어씌워야지. 그나저나 메탈죠? 아까부터 만지작거리던 그 기계는 뭐야?”
“뭐? 메탈죠? 이 게이호모쉐끼가 말을 놨다 높였다 하기는. 이거 카오디오 뜯어온 거야. 교수랑 벡스 자고 있을 때 심심해서 감찰부 차고 한번 갔다왔는데, 노획물 확인하라면서 박살난 차 몇 대를 보여주더라고. 차는 완전 걸레짝이 됐는데, 오디오는 멀쩡해 보여서 이것만 떼서 주고 나머지는 고철값으로 달라고 했지. 테이프랑 다 같이 받아왔는데…. 이이익!”
콰앙!
이안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좀처럼 말을 들어먹지 않는 오디오를 던져버렸다.
“배터리랑 연결에 문제가 있는 건지, 이 까탈스러운 녀석이 도무지 노래할 생각이 없는 것-”
치직- 치지직-
[밤밤 밤밤! 밤밤 밤밤!]“….나오는데?”
“….시발?”
기적처럼, 사납게 내던져진 카오디오에서 경쾌한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흐흐흐! 이안, 원래 기계는 때리면 고쳐지는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아주 걸레짝이 되도록 패버릴 걸 그랬군. 스트레스도 풀리고 일석이조였을텐데.”
“그나저나…. 취향이 꽤나 고상하신데? 이거 엄청 옛날 노래 아냐? 비틀즈의 오블라디 오블라다, 맞지?”
교수의 질문에, 이안은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리듬을 귀에 담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혼자 몰래 들으려고 넣었는데, 저 멍청한 기계가 저 노래를 여기까지 끌고 왔군.”
“에이, 메탈죠! 좋은 노래 있으면 같이 들어야지, 왜 혼자 들어?”
“….저거, 우리 와이프가 좋아하던 노래였어.”
이안의 나지막한 말 한마디에, 왁자지껄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이런, 좋은 분위기 깨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꼴꼴꼴꼴-
이안은 자신의 잔에 향긋한 브랜디를 따르며, 가사 하나하나에 추억이 담겨있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ob-la-di ob-la-da. 인생은 계속되고,라….’
“그래. 언젠가 네 녀석들에는 한 번 얘기해주려고 했었지.”
독한 술이 담긴 잔을 단숨에 들이킨 이안은, 품안에 소중히 넣어뒀던 아내의 유품, 데린저를 책상 위에 꺼내 올리며 말했다.
“분위기를 깼으니, 대신 옛날 얘기를 하나 해주지. 재미는 없을지 몰라도, 술안주 정도로는 문제 없을 거야.”
이안은 손끝으로 그 낡고 작은 총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먼,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시작은,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암인의 낡은 주택.
이안은 가난하고 지저분한, 비쩍 마른 소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