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14
Chapter.8 오 블러디, 붐 블라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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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오블라디 오블라다를 틀어놓고 감상하면 더욱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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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아주 먼 옛날. 브라우나우암인이라는 쓸데없이 이름이 긴 도시에 이안이라는 소년이 살았어.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도시야. 공장 거리가 있고, 작은 개천이 흐르고, 특산물이라곤 유대인으로 비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콧수염쟁이가 전부인 그런 작은 마을.
그래, 우리 마을의 특산물은 미친놈이었어. 그리고 나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런 마을의 기풍에 아주 잘 적응한 사람이었지.
“이안! 이아안! 이 작은 그렘린 같은 쓰레기야! 당장 이리 내려오지 못해!”
짜아악!
“이게 뭐지? 네 눈에는 이게 무엇으로 보이나? 응?”
“….”
“여전히 아버지 말에 대답이 없구나? 그럼 내가 대신해주지. 이건,”
퍼억!
“바로!”
퍼어억!
“텅 빈 냉장고야! 내가 누차 말하지 않았나? 정말 죽을 때까지 맞기 싫으면, 항상! 냉장고에! 맥주를 가득 쌓아두라고!”
퍼어어억!
당연하지만, 아버지는 맥주를 살 돈을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 나가서 구걸을 하든, 훔치든 알아서 돈을 구해야만 했지. 거친 공장노동자들의 거리에서 말이야.
“이안! 오, 세상에! 괜찮니? 저 악독한 늙은 개 같은 인간이…!”
“괜….찮아.”
“세상에! 손가락이 부러졌잖아! 이리 오렴! 내가 치료해줄게!”
에밀리. 낡은 집의 다락방에 살던 우리 누님. 난 그렇게 매일 맞고, 도둑질하며 살았지만 세상에 천사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것도 우리 누님의 모습이 되어 내려왔다고 굳게 믿었지. 음? 장남인 줄 알았다고?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내 위로 형님 두 분과, 에밀리 누나까지.
“이리와 이년아!”
“아버지, 이러지 마세요! 제발!”
“흐흐흐흐, 이렇게 예쁘게 만들어줬으면, 그 보답을 하는 게 도리가 아니겠니? 자아, 아빠에게 오렴….”
“아아악! 이, 이안! 보면 안 돼, 보지마…. 제발!”
전부 죽었거든. 큰형은 앵벌이하다 거지패에게 밉보여서 맞아 죽고, 작은 형은 아버지의 버클 달린 허리띠에 잘못 맞아서 죽고. 누님. 천사 같은 에밀리 누님은….
“….”
“저리 가.”
“에밀리.”
“저리 가! 저리 가라고! 너도 날 동정하는 거지, 그렇지? 그렇게 측은한 눈으로 보는 것도 지금뿐, 결국 너도 남자야. 나이를 먹으면 저 개자식처럼, 그 수많은 남자들처럼 음흉한 눈으로 나를 훑어보겠지!”
“에밀리….”
“다 필요 없어! 그냥 날…. 내버려둬. 제발. 그만해주세요. 때리지 마세요! 잘할게요, 나, 나 잘해요! 아아아아!”
이제 가슴이 막 솟아오르는 그 어린 나이에 골방에 갇혀 하루에도 수십 명의 남자를 상대하다 미쳐버렸지. 아버지는 그 남자들 중 한 명이었고. 어머니? 수익성은 아들보다 딸이 훨씬 좋다고 하며 내 뺨을 때렸지. 왜 또 아들로 나왔냐고 하면서.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천사 같은 누님은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어. 집 뒤에 흐르는 인 강에 앞서간 두 형처럼 누님의 시체가 떠내려가던 날, 아홉 살의 이안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회에 가서 기도를 했단다.
“하느님.”
“…..”
“이제 그만하셔도 될 것 같아요. 사람들을 위해 애쓰는 것도, 누나 같은 천사들을 내려보내는 것도.”
“…..”
“세상은 천사들이 내려와 보살피기엔 너무 위험한 것 같아요.”
끼이익-
“허허허허. 올해는 포도주가…. 음? 아니 얘야. 문이 잠겨있는데 어떻게 들어왔니?”
“목사님. 저기, 창문이 깨진 것….맞지요?”
“이런 악마 같은 녀석! 성당 유리창을 깨다니!”
목사랑 대화를 해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어.
‘하느님.’
“이 아이, 그 녀석입니다, 목사님! 삼거리 노란 지붕집 아들이요!”
“그 집이라면…. 당장 쫓아버리세요! 보나 마나 헌금함을 뒤지러 왔겠지!”
“이녀석, 가만히 있어! 이 작은 도둑놈이!”
질질질질-
‘이건 제 얘기를, 알아들었다는 뜻이죠?’
촤아아악!
“아으윽!”
“퉤! 더러운 좀도둑 같으니라고.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마라!”
“…..”
“그나저나 아깝게 됐어.”
“아아, 노란 지붕집. 싸고 좋았는….”
쿠웅!
“목사의 행동을 보고 알았지. 이미 일찌감치 하느님은 포기를 하셨구나, 하고.”
소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맺혔다. 그의 천사 같은 누나는, 두 번 다시 지상에 내려올 일이 없을 테니까.
“….누나를 잘 부탁드려요, 하느님.”
“그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린 이후로, 나는 두 번 다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누님은 에이즈에 걸려 죽은 거였어. 아마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한 누님은 에이즈가 그저 전염병이라고만 알고, 내게 옮을까 봐 그렇게 나를 밀어낸 게 아닌가 싶더라…. 너 우냐?”
패애앵!
“아, 아냐! 이 캠프파이어…. 연기가 너무 매워서!”
“흐흐흐흐, 감찰부라는 놈이 그렇게 감성적이어서야 되겠어?”
“돼, 됐어! 그 다음은. 계속 그 집에 살았어? 훔친 돈으로 술을 사다 나르면서?”
칙, 칙!
후우우우-
이안은 잠시 말을 멈추고 시가를 입에 물었다. 독한 연기와 함께 오랜 기억에 묶여있던 회한이 흘러나왔다.
“그럴 생각이었지. 사실 그 시점에서 나는 목각인형 같은 꼬맹이가 되어버렸거든.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고. 그저 맞으면 아프니까 도둑질하고, 그냥 이렇게 살다가, 언젠가 운이 좋은 날이면 아버지 허리띠의 쇠 버클이 내 머리를 내리쳐서 누님 따라 인 강에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어.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그날?”
“그래. 하느님은 생각보다 에프터케어가 괜찮은 분이더라고.”
콰아아앙!
“꺄아아악!”
“불이야! 불!”
“사람이 죽었다!”
“떠, 떨어져! 언제 또 터질지 몰라! 가스에 불이 붙었다고!”
“….와.”
“Boa. 그건 내가 누님이 죽고 나서 3개월 만에 처음 입 밖에 내놓은 말이었다. 내 목에서 소리가 나오는 게 생소할 정도였지.”
“집이…. 폭발한 거야?”
“그래. 그 노란 지붕 집은 안전, 평화 이런 것과 거리가 멀었으니까. 가스 폭발이라고 하더군. 담뱃불이 옮겨붙었다거나, 뭐 그런 시답잖은 이유였겠지.”
이안이 입에 물고있던 시가를 탁, 튕기자 작은 불꽃 거스러미가 떨어졌다.
“겨우 이 정도 였던거야. 우리 4남매를 모두 잡아먹을 것 같던 집도, 그 부모라 부르기 힘들 정도의 쓰레기들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는데 필요한 것은.”
흩날리는 재와, 완전히 무너진 건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집을 보며 어린 이안이 느낀 것은 희미한 당황과 알 수 없는 기묘한 감정이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그 감정은, 어린 이안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신선하더군. ‘세상에 저런 방법이 있다니’ 하는 생각과 ‘이젠 누가 날 죽여주지’ 하는 생각이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았어.”
타닥, 타닥-
서늘한 밤공기에 흔들리는 불꽃을 보며, 이안은 아련한 눈으로 말했다.
“에밀리…. 조금만 더 버텼으면, 어쩌면 누님은 꿈에 그리던 평범한 삶을 조금이나마 만끽했을 수도 있었을 거야.”
크흥!
이안은 밤하늘과 모닥불이라는 멋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에젤에 이어, 고개를 뒤로 돌린 벡스가 콧물을 훔치는 게 보였다.
“그만할까?”
“무,무슨 소리야! 아직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
“푸흐, 아직 애기들이구먼, 다들. 아무튼…. 그렇게 말수도 적고, 음침하고 무감각한 이안은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졌지. 뭘 하고 싶은 생각도, 할 능력도 없던 이안은 무너진 집터 앞에 쪼그려 꼬박 이틀을 샜고, 인근 주민의 신고를 받아 경찰서를 거쳐 보육원으로 넘어갔어. Traumhaus, 우리말로 꿈의 집. 혼자 멍- 하니 지내며 따돌림 당하던 말라깽이 소년의 인생의 전환점이었지.”
전환점이라는 말에 울먹이던 벡스의 얼굴이 환해졌다.
“은사님을 만났구나! 마음씨 좋은 따뜻하고 푸근한 수녀님이 그 어린 이안의 상처받은 마음을….”
따아악!
“아얏!”
“뭔 개떡 같은 스토리야? 수녀님이 있긴 했는데, 그냥 밥 먹고 살려고 애들 돌보는 그런 사람이었어. 물론 아버지보다는 훨씬 좋았지. 그렇게 많이 때리지도 않았고…. 음, 아예 안 때렸다는 건 아냐. 하지만 꼬박꼬박 밥을 줬지. 나는 그게 마음에 들었어. 특별히 바라는 게 없는 나였지만, 여기 남아있으면 이렇게 멍하니 살다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수녀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
그 무렵, 이안은 입을 열지 않고 생활하는데 완전히 익숙해져 있었다.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서 젖은 걸레로 복도를 닦고, 보육원 뒤의 작은 축사를 청소하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면 아침 식사로 거친 빵과 묽은 수프가 나왔다. 다 먹고 나면 근처 화학공장에서 받아온 부업거리를 할 시간이었다. 할당량을 마치면, 그냥 손에 닿는 대로 계속 일을 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점심. 오후의 청소, 빨래. 저녁. 잠. 그리고 기상. 조용하고 평화로운, 고요한 만족이 있는 삶.
“나는 그저 그 누구와도 연관되고 싶지 않아 그렇게 했을 뿐인데, 시스터 마가렛의 눈에는 군말 없이 할 일만 하는 내가 기특해 보였나 보더라고. 내 나이도 모르던 내게, 이곳에 들어온 날을 생일로 하자며 10살 생일파티를 해줬으니까.”
그날, 밖에 멍하니 앉아있던 이안은 갑자기 눈을 가리고 따라오라는 수녀의 말에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버지가 종종 그 눈깔이 보기 싫다며 이불을 뒤집어씌우고 마구 때리곤 했으니까.
하지만 수녀의 손에 이끌려간 곳은, 체벌방이 아닌 공동 식당이었다.
팡! 파방!
“”“Happy birthday! 와아아아!””“”
짝짝짝짝!
“생일 축하해! 이안!“
“생일 축하한다!”
“우와아! 쿠키다 쿠키!”
“얘들아, 오늘은 이안이 생일이라서 맛있는 걸 먹으니까, 고맙다고 해야지?”
“고마워 이안!”
“쟤 이름이 이안이에요?”
“고마워 이안! 잘 먹을 게!”
“….모두들 웃고 있었지. 그런 건 처음이었어. 날 보고 웃는 사람은 지금까지 누님이 유일했는데, 평소에 날 벌레처럼 보던 녀석들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으니까.”
어린 이안에게 그것은 거대한 충격이었다.
어딜 가나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던 아이들이 모두 웃는 얼굴로 ‘이안’을 부르며 축하하고 있었으니까.
팡! 파방!
짝짝짝짝짝!
싸구려 화약이 든 폭죽소리와, 날카로운 박수소리, 그리고 웃는 얼굴.
“아아….”
팡!
[콰아아앙!]파방!
[콰아아앙!]터지는 소리와 함께 색색의 종잇조각이 흩날릴 때마다, 이안의 머릿속에는 폭발과 함께 불티를 날리던 그의 옛집이 떠올랐다.
“아아….하하, 하하하하….”
“어? 이안이 웃었어!”
“나 얘 웃는 거 처음 봐!”
“너 말할 줄 아는 아이였구나!”
“….그래. 나도 내가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 이미 내가 웃어본 적이 있다는 것도.”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팡! 팡! 하고 터지는 폭죽 소리와, 거대한 폭음과 함께 무너져내리는 집의 모습만 반복적으로 떠오를 뿐.
그 모습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작고 말라비틀어진 꼬마 이안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선천적으로 감정이 미약했던 이안이 몰랐던 그 날의 감각. 그건 당황이 아니라 거대한 환희였다. 마침내 되찾은 자유와 복수의 환희. 회색밖에 없던 어린 이안의 세계는 가스 폭발의 굉음과 불꽃의 색으로 이미 화려하게 물들어버렸던 것이다. 조금은 부서지고, 조금은 뒤틀린 채로.
“집을 날려버린 사고는 내 족쇄를 부수고 나를 세상으로 보냈고, 그 작은 폭죽은 나에게도 기쁨이라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지. 그 비쩍 마른 꼬마 이안에게, 폭발은 세상과 그의 감정을 나누는 유일한 수단으로 자리 잡아버린 거야.”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듣는 사람이 거북할 정도로 잔혹한 이야기였다. 화자가 본인이라면 더욱.
“….그래서, 그렇게 폭발에 환장하게 된 거야?”
이안은 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소시오패스나 다름없던 소년이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으니. 그날부터 이안은 변했어. 여전히 말수가 적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과 얘기 정도는 하게 됐지. 여전히 감정 같은 것은 그다지 느끼지 못했지만 이렇게 하면 덜 귀찮다, 더 효율적이다. 정도는 생각하게 됐고.”
“그리고 그렇게 효율적인 행동으로 벌어들인 시간은, 그에게 행복을 선사한 놀라운 존재, 폭발에 대한 공부를 하는데 사용했어. 흑색 화약부터 해서 무연 화약, 과염소산염, 산화납, 크롬산납을 주로 하는 화약, 질산암모늄을 추출하는 방법, 파괴공학…. 폭발과 관련된 것이라면 뭐든 닥치는 대로 배웠지. 소싯적 기술을 살려 소매치기한 돈으로 책을 사고, 그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노망난 퇴역군인을 찾아가 옛 전쟁사를 듣고, 듣고, 또 듣고…. 정신을 차려보니 파괴공학과 화학을 전공으로 대학에까지 들어가 있더군. 열효율, 뭐 이런 것들을 알게 된 이후로 매사에 칼같이 효율을 따지는 기계 같은 놈이 되어서는 말이야.”
벌떡!
“대하악? 무식함과 무지성의 화신 같은 네놈이 대학을 나왔다고?”
“크흐흐흐, 지금의 쿨한 모습이랑은 완전 딴판이지? 그때 당시에도 나름 다른 사람들이 좋다는 건 다 해봤지만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더군. 술? 비효율적인 희석 알콜액이었어. 독주는 그나마 좀 나았지. 불이 붙었으니까. 담배? 쓸데없이 맵기만 했어. 화약냄새를 좀 넣으면 괜찮을까, 해서 화약가루를 첨가한 담배에 불을 붙였다가 입술을 날릴뻔했지. 여자? 정말 귀찮을 만큼 많이 달라붙더군. 나름 최선을 다해 즐겨봤지만, 화약 만큼의 폭발력은 느껴지지 않았어.
딱 잘라서 ‘나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어, 꺼져.’ 라고 말했더니 그런 모습이 매력적이다, 하면서 더 따라다니더군. 내 말을 오해한 남자들까지 들러붙어서 굉장히 고역이었지.”
이안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눈빛을 나누는 세 사람. 그 사이에서 에젤은 가방을 뒤적거려 연필과 종이를 꺼내 들었다.
사각사각사각사각
“에젤, 뭘 또 그리고 있냐?”
“음…. 지금 얼굴형을 토대로, 턱이 멀쩡하고 근육이 좀 덜 붙은 이안을 그려보고 있어. 도무지 믿을 수가 있어야지.”
에젤은 상당히 술에 취한 상태였지만 거침없이 손을 놀려 나갔다.
“이야, 제법인데?”
“크크크크. 내가 이 재주로 감찰부 시험에서 가산점을 제법 얻었지. 자, 완성!”
“오!”
“우와아!”
“정말 젊었을 적의 나랑 꼭 닮았군.”
에젤이 그린 그림 속에는, 남녀 구분 없이 죄다 홀려버릴 것 같은 냉막한 눈매의 미남이 있었다.
“닮았어? 이 냉미남이랑 네가?”
“사진처럼 닮았는데? 게이바, 그림 좀 그리는구만?”
칭찬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 있는 에젤의 표정은 대단히 복잡했다.
“정말 이걸 닮았단 말이지. 역시 이안 당신은….”
“음? 내가 뭐?”
“아, 아무것도 아니야! 잘생겼다고! 이 기만자!”
“어쩐지. 이 얼굴로 쓱 내려다보면서 [관심 없어, 꺼져]라고 말했으니 여자가 더 달라붙지.”
“그 여자 심장 두어번쯤 터졌다는 것에 한표.”
“말도 안 되는 소리. 이게 뭐가 좋다고. 비실비실하고 기분 나쁘게 생겼구먼. 아무튼, 내 관심사는 폭발과 화약 말고는 없었지. 졸업하고 건설회사라도 취직해서 폐건물 철거하는 일이나 할까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하더라고. 나는 좀 더 눈앞에서 터지고, 불타는 그런 게 보고 싶었거든.”
이안은 그립다는 듯, 히죽거리면서 과거의 자신이 느낀 감정을 입에 담았다. 물론, 아무도 공감해주지 못했다.
“저게 테러범이야 대학생이야….”
“빙고! 테러범도 고려 대상 중 하나였어. 사람이 몇 명이 죽든 나는 터트리는 것만 볼 수 있으면 됐으니까. 중동행 비행기표를 항상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그런 쪽으로 계속 알아보고 있으니…. 결국 대학을 휴학하고 PMC에 들어가게 되더군.”
“PMC면….”
“민간군사기업(民間軍事企業, private military company). 내 충동을 해소하면서, 범죄자가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이었거든.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는 건 효율적이지 못하잖아? 감옥 가면 폭탄 못 만지니까. 그렇게 2년 정도 폭탄 전문가로 용병밥 먹고 살던 중에, 그게 터져버린 거야.”
이야기를 듣던 누구도 ‘그게’ 뭔지 묻지 않았다. 감으로 다들 눈치챘으니까.
3차 세계대전. 대 전쟁. 인류 멸망의 시작.
“당장 지원했지. 전쟁의 시발점 바로 옆, 가장 격전지인 한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내 목숨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어. 오직 더 큰 폭발, 화약의 에너지를 온전히 받아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탄환과 포탄들, 그 불꽃과 파편을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을 뿐.
용병이었지만 언제나 가장 위험한 전장에 뛰어들어서, 가장 사람이 많은 곳에 폭발을 일으켰어. 단 한 번의 폭발로 죽은 사람의 숫자, 터져나간 적의 장비를 헤아리면서 뿌듯해했지. 내가 다른 누구보다 더 아름다운 폭발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으니까.”
꿀꺽- 꿀꺽-
타아악.
그 시절을 떠올리면 기억나는 것은 재와 불꽃뿐이었다. 더 잘, 더 많이 터트리고 싶었다. 효율에 대한 집착은 많은 도움이 됐다. 언젠가부터 이안이 가는 전장에 함께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안은 그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했으며, 가장 격렬한 전장의 선두에서 온갖 폭발물이 가득한 차를 타고 달렸다.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이안은 그 누구보다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지휘관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죽을 자리에 달려드는 그를 대신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정도가 되어있었다.
“짐, 카터, 켄이치. 각자 맡은 소대를 이끌고 고지를 점령해라. 적이 대비하고 있는 곳이니 희생이 필요할 것이다. 질문은?”
“애쉬필드께서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요.”
“늘 그렇듯, 시간 맞춰서 구해주러 오실 거 다~압니다! 흐흐흐흐.”
“불확실한 예측은 금물이다. 난 언제나 작전대로만 행동한다.”
“예, 예. 지휘관이 선두에서 날뛰는 것도 작전이라고 해보시지 그럽디까?”
“….그저 사소한 취미일 뿐이다.”
“푸하하하! 취미! 하이고 세상에! 취미라고!”
“켄! 상급자에게 불경하다! 죄송합니다, 애쉬필드님. 이녀석은 제가….”
“됐다. 켄이치의 작전 수행능력은 그의 언행과 아무 상관 없으니. 7, 8 중대는 나와 함께 적의 방어 라인을 돌파한다. 고지의 화력이 마비된 틈을 이용한다.”
“”“옛!”“”
“15분내로 준비를 마치고 출발한다. 오늘도, 적을 찢고 불태운다.”
“아아아, 들을 때마다 싸버리겠군, 저 대사. 제기랄, 전쟁 끝나면 나랑 결혼해주쇼, 애쉬필드!”
“케에엔!!!”
전쟁이 끝날 무렵, 이안은 공식적으로는 한국군 제7 기갑연대의 연대장이었으며, 비공식적으로는 그 배에 달하는 용병과 의용군을 이끄는 지휘관이 되어있었다. 항상 가장 앞에서 전투를 이끌며 먼지와 재를 뒤집어쓰고 귀환하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존경을 담아 ‘애쉬필드’라는 별칭으로 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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