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17
Chapter.9 스타 폴(1)
***
다음 날 아침, 숙취와 두통에 신음하며 일어난 교수는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친구들을 발견했다.
“으어어어, 죽겠다. 코듀로, 물….. 물 좀 줘봐···.”
뭔가 부산스럽게 날아다니던 코듀로는,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난 교수를 발견하고 미리 준비해둔 물컵을 대령하다가-
“여기, 다른 분들이 마시던 게…. 헉! 주인님!”
챙그랑!
“머리에 웬 피가!!!”
떨어트리고 말았다.
“으으음…. 생각 없이 머리에 손댔다가 손톱에 긁혔어.”
황무지에서 좀 궁하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침 6시가 되면 눈이 딱! 떠졌다. 눈 뜨자마자 숙취에 절어 있는 사람이 하는 행동은? ‘으으으, 머리야….’ 하면서 머리를 감싸 쥐는 거지. 문제는 내 손이 지금 그런 식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간 정말 머리통을 토마토처럼 으깨버릴 수 있는 흉기라는 점이다.
[적어도 두통은 해결됐겠네. 뇌를 쥬스로 만들어버리면 두통을 느낄 수도 없을 테니까, 멍청아.]‘….고맙다곤 안 할 거다. 빨리 돌려놓기나 해.’
하이드가 기겁해서 손을 멈추지 않았으면 정말 크게 다칠뻔했다.
이 왼팔. 머리에 긁힌 상처에서 새어 나오는 피와 함께 정신이 번쩍 들어서 하이드에게 당장 되돌려놓으라고 따졌는데,
‘니 몸이라며! 가져갔으면 쓸 줄 알아야 할 거 아냐!’
[허허허허. 이게 몸의 90% 가까이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쓸 줄도 모르는 허접한 비전공자 박 교수 씨는 좀 알기 힘든 건데, 신체를 변환시킨다는 것은 기술이라기보단 예술에 가까운, 영감에 의지해야 하는 영역으로서….]‘각설하고, 결론은?’
[ㅎㅎ 못함. ㅈㅅ!]…. 그렇단다. 앞으로 하이드나 내가 방법을 알아낼 때까지 한참, 어쩌면 평생 이 징그럽고 시꺼먼 팔을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분간 의식적으로 왼팔을 움직이는 일은 좀 자제해야지. 자칫하면 쉘터에 구멍이 날 수도 있으니까.’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나름 편리한 점도 있었다. 이렇게 깨진 유리를 맨손으로 슥 쓸어 담을 수 있다거나. 앞으로 차근차근 알아봐야 할 일이다.
“그런데 늬들은 여기 모여서 뭐하고 있었냐?”
교수는 깨진 컵을 대충 쓸어버린 다음 코듀로가 새로 떠준 냉수를 마시며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평소 같았으면 팔이 어쩌고, 상처가 어쩌고 할 녀석이 피가 흐르는 교수의 이마는 슥, 한번 쳐다보더니 헤벌쭉, 한 얼굴을 해서는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왜, 주방에 뭐라도 있-우와아악!”
“쉬이이이! 방해하지 마!”
어젯밤에 들었던 비극의 주인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뭔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의 이안은 주방으로 들어가려던 교수의 어깨를 붙잡아 그들이 숨어있는 소파 뒤쪽으로 내리눌렀다.
“아니, 잠, 벡스 너도? 넌 아픈 애가 왜 나와서-”
“신시아, 저 아이가 주방을 쓰고 있어! 우리 아침 해주려나 봐!”
“뭐? 걔가 왜? 코듀로, 아침에 바빴어?”
“아뇨! 주인님들 챙기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죠! 남은 재료로 맑은국이라도 좀 끓이려고 갔는데, 새 아가씨가 벌써 주방에 계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지이잉-
교수의 질문에 코듀로는 렌즈를 마구 흔들며 아침에 기록된 영상을 꺼내 보였다.
‘시, 신시아 아가씨? 안 주무셨습니까?’
‘원래 이 시간에 일어나.’
‘그렇군요. 그런데 왜…. 아이고! 그런 거 만지시면 안 됩니다! 그게 반짝반짝 예쁜 건 맞지만 그건 장난감이 아니라 칼이에요! 칼! 손대면 아야! 하는 위험한 물건이니까….!’
‘너, 바보야?’
‘예?’
‘주방에 요리재료랑 도마랑,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뭐 하는 사람이야?’
‘그, 그야…. 요리하는 사람?’
‘그래. 엄마가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은 나쁜 짓이라고 했지만, 음식은 정말 귀한 거야. 너처럼 멍청한 사람한테 맡기는 건 소중한 음식을 낭비하는 거니까, 여긴 이제부터 내꺼 하는 거다. 알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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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이잉- 탁!
“이렇게 됐습지요.”
“크흐윽! 너무 기특하지 않냐? 애가 아주 똑 부러져!”
“저 규칙적인 칼질 소리 들려? 손이 아주 야무진 거야! 소리만 들어도 칼을 잡는 자세가 제대로라는 게 느껴진다구!”
“….그래서 이렇게 소파 뒤에 틀어박혀서 셋 다 아저씨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구먼?”
어쩐지. 나 만큼이나 술 먹고 떡이 된 녀석들이 묘하게 흥분해있다 했더니. 저 아이가 아침부터 재롱을 피운 덕분이었다.
[그런데 코듀로가 하는 게 훨씬 맛있지 않아? 저 녀석 말하는 게 드론이라 그렇지 사실 이 쉘터 전체가 녀석의 몸이잖아? 주방에 자동 조리 시스템 같은 거 있다고 알고 있는데?]‘냅둬. 여러 집에 입양 다니면서 전전한 아이라고 하잖아. 저 어린애가 부모님을 잃고 다른 집에 얹혀살면서 몇 번이나 쫓겨놨다고 생각해봐라. 눈치가 얼마나 보였겠냐?’
아직 부모님에게 칭얼거리고 떼쓸 나이에 이미 부모를 모두 잃어버린 녀석은,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크흠! 저건 좋은 소식이군. 나도 어렸을 때, 꿈의 집이 마음에 들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허드렛일을 했었거든. 저 아이가 이곳이 마음에 든 모양이야.”
“멍청아! 그때의 죠랑 비슷한 상태라는 건, 저 아이가 소시오패스가 될 정도로 상처를 입었다는 뜻이잖아!”
“이런 썅 망할 제기랄! 내가 그 생각을 못 하다니! 지금 당장 가서….”
콰악!
이번에는 교수가 달려나가는 이안의 뒷덜미를 잡아 소파 뒤쪽으로 쑤셔 넣었다.
“그냥 식탁에 가서 기다리기나 해라. 우리가 할 일은 저 아이가 뭘 해오든 세상에 둘도 없는 진미인 것처럼 허겁지겁 먹는 거야. 그럼 저 녀석 마음도 좀 편해지겠지. 쓸모를 증명하는 건 조직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가장 쉬운 방법이니까.”
“햅번! 우리는 신시아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지-!”
“우리가 아니라 저 아이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그런 거지. 하루 이틀 안에 해결될 일이 아니야. 애라고 애. 10살짜리. 억지로 ‘이제 앞으로 여기서 행복하게 살 거야’ 하고 말해주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이곳에 익숙해지게 해주는 게 더 편할 거다. 말하는 것 보니까 그렇게 어려 보이지도 않고. 황무지의 아이들은 빨리 크는 법이지.”
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소파 너머를 훔쳐보았다. 등 뒤에 대문짝만하게 KILL! 이라고 쓰여 있는 발목까지 오는 커다란 티셔츠를 입고, 나무 의자 위에 올라서서 열심히 꼼지락거리는 소녀. 그 귀엽게 찌푸려진 미간을 보니 어느새 교수도 지끈거리던 숙취가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녀석. 귀엽긴 되게 귀엽군.
“나중에 애 옷이나 좀 갈아 입혀줘야겠다. 돔에서 보낸 예쁜 옷 많은데 왜 저런 걸 입고 있는 거야? 저거 이안 네 옷 아니냐? 건조대에 걸려있던 거.”
“아가씨가 몰래 가져간 것 같습니다. 사실…. 저것 말고도 이것저것 가져다 숨겨놓으신 게 많아요. 주인님들 주무시는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챙겨다 침대 밑에 숨겨놓으셨습니다. 입고 오신 예쁜 옷은, 당연히 잘 싸서 같이 넣어 놓으셨고요.”
코듀로가 보여주는 영상 속에 나타난 것은 이 집에서 유일하게 침실 비스무리한 접속기 방의 소파 아래에 가지런히 정리된 온갖 잡동사니였다.
“도벽이라…. 고아원에도 이런 녀석이 제법 많았지.”
“여길 떠날 생각인 걸까? 혹시 우리가 신시아에게 밉보일 만한 짓은….”
“쉿! 신시아 온다!”
네 사람은 심각한 얼굴로 코듀로의 화면을 쳐다보다, 에젤의 신호에 거짓말처럼 환하게 웃으며 소파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문제가 있긴 했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저 아이가 새벽부터 만들어온 아침을 먹는 일이었으니까.
***
아이가 만들어온 것은, 놀랍게도 요리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감자, 당근, 양파 등 각종 채소를 동글동글하게 썰어 넣고, 고기와 함께 푹 끓인 스튜.
“후아아! 맛있다! 속이 확 풀리는데! 그렇지 않냐, 벡스!”
“그, 그러게! 내용물이 다 잘 익었네!”
“돔에서는 아픈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내용물이 부슬부슬하게 될 때까지 끓인 스튜를 해주곤 하지!”
미리 말을 맞춰놨던 덕분에 정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양 그릇에서 고개를 들지도 않는 세 사람. 신시아는 몸을 배배 꼬며 그런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이렇게 푹 끓여 먹으면 그 안에 들어있는 모든 영양소를 하나도 빼먹지 않고 다 먹을 수 있다고 했어…”
“음음! 그렇지! 아주 잘 배웠구나!”
“와! 벌써 몸에 힘이 나는걸!”
일단 형태는 스튜였다. 그 어떤 조미료도 들어가지 않고, 정말 재료를 다듬어서 전부 쏟아 넣고 끓인 것으로 보이긴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하게 깎인 작은 채소 조각이 많이 들어있었다. 서툰 칼질에 뭉텅이로 잘려나간 재료를 다시 주워 담아서 손질한 것으로 보였다.
그릇에 머리를 처박고 돼지 비린내와 풀냄새가 빠지지 않은 스튜를 마구 퍼먹고 있는 벡스와 이안, 에젤. 그리고 그런 셋을 보며 배시시 웃고있는 신시아.
[여운데?]‘그러게. 여우가 따로 없군.’
어눌한 말투. 힘없고 자신 없는 연약한 생물 같은 움직임. 코듀로가 보여준 영상 속의 똑 부러지는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자기 물건 챙기는 것도 그렇고, 어린 소녀라는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도 그렇고. 생각보다 더 많은 집을 전전했나 보군. 아주 약았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순수한 녀석은 아니었나 봐. 그런데…. 어째 즐거워 보인다, 너?]‘흐흐흐흐, 그러냐?’
그럴 수밖에. 지금까지 신시아를 입양한 돔의 양부모들은 새 가정에서 행복을 되찾은 순수한 어린 소녀의 이미지를 원했겠지만, 나는 다르거든.
톡톡.
왼손에 작은 새가 부리로 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내려보니, 어느새 저 아이가 내 옆으로 다가와 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빠는…. 안 먹어?”
“먹을 만큼 먹었어. 그리고 아빠 아니라 아저씨라고 해라. 박교수. 내 이름이야. 원하는 대로 불러도 좋지만, 아빠는 안된다.”
입만 열어도 열정적으로 반응하는 나머지 셋과 달리 차분한 대꾸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신시아를 보며, 교수는 낄낄거렸다.
‘14특작대에서도 암살, 첩보를 담당하던 루윌의 딸이야. 애 아빠가 보면 아주 자랑스러워하겠어.’
나 때문에 죽게 된 동료의 자식이지만, 그렇다고 막 귀하게만 키울 생각도 없었다. 일단 황무지에 나왔으면 황무지의 룰에 따라야지. 저 어린 나이에 벌써 속내를 감추고 어른을 등쳐먹을 생각을 하다니, 음! 아주 바람직하군! 키울 맛 나겠어!
[….고아원에 가는 게 나았을 수도 있겠다, 신시아.]그렇게 교수는 서로에게 눈치를 주며 삶은 오이를 퍼먹고 있는 세 친구와 살짝 뾰로통해진 신시아를 보며 그릇에 남아있던 국물을 마셨다. 비리긴 했지만, 따듯한 국물이 속을 덥혀주는 느낌이 좋았다.
***
아침 식사 후. 네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거실의 소파에 나란히 모여들었다.
“에젤, 너 복귀 안 하냐?”
“총장님이 술이랑 같이 휴가도 주시더라고.”
“크흐흐흐, 팔자 죽이는군.”
“그만큼 감찰부에서 BDSM과의 친교를 중요시한다는 뜻이지. 여기 봐, 지금 커뮤니티에도 난리가 났잖아.”
이제는 넷이 함께하게 된 교수의 아침 일과. 그것은 커뮤니티에 새로 나온 정보 없나 확인하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에 확인할 때마다 20~30개 정도는 꾸준히 올라왔는데, 사소한 정보라도 그렇게 차곡차곡 모으다 보면 제법 큰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이번에는 평소와 좀 많이 달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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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게시글 1위] – 돔과 렙터의 대규모 교전으로 인한 47구역 참고점, 안전지대 변화. 새로운 세력, BDSM의 정체는? by 팀 헤르메스 (1058)—
* 3형 변종, 지금까지 공개된 모든 특징과 주의점. 모든 인류가 감염된 지금 우리는 어디까지가 사람이고 어디까지가 변종인가.(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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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인 필수! 렙터의 패전과 그로 인해 변경된 황무지 주요 세력의 세력권(추측)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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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삭제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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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가왔다! 인류는 다음 단계로! 한 단계 더 진화된 인간 박교수! 그 실체를 파헤치다!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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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박 뭐시기가 누구임? 이거 다 구라 아님? (1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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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관이지?”
“지랄났네.”
스크롤을 아무리 내려도 온통 돔, 렙터, BDSM, 박교수로 도배가 되어있는 커뮤니티를 보며, 교수는 머리가 아파왔다.
“코듀로, 요약 가능하냐?”
“일단 처리 중이긴 합니다만…. 실시간으로 계속 갱신돼서 뭐라 딱 부러지게 말씀드릴 수는 없겠는데요?”
“대충이라도 요약하면?”
“음…. 이번 전쟁에 관한 자료가 685개, 추측성 찌라시가 7320개, BDSM 전원의 신상정보와 밝혀진 행적에 대한 자료 2개, 마찬가지로 부정확한 찌라시가 2400개 정도요.”
“워메….”
“근 2년간 이렇게까지 커뮤니티에 글이 많이 올라왔던 건 처음입니다. 이 속도라면 53구역 돔이 무너졌을 때 올라왔던 게시글 숫자도 추월할걸요?”
“야야, 이것 봐라. 너 이름으로 종교단체도 생겼어. 박교주님이라는데? 모든 변종과 소통이 가능한 하프 변종인간 박교수가 변종으로 된 군단을 이끌고 세상을 정화할 거라는데.”
“뭐야 그 메타휴먼은. 마블 쪽이냐?”
“햅번! 네 팬클럽도 생겼어!”
“으으, 그런 거 들이밀지 마. 토 나와.”
결국, 수많은 헛소리와 과장 속에서 네 사람은 정보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지금도 한참 불어나고 있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교수가 건진 것은,
그들의 얼굴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는 것.
이 모든 글에 교수와 그의 왼팔 사진이 들어갈 만큼, 현재 교수의 상태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쑥쑥 자라나고 있는 온갖 허위정보들을 바로잡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만들어질 게 뻔하다는 것.
다른 것보다 세 번째가 중요했다. 새로 올라오는 글을 보니 벌써 BDSM의 세력이 47구역을 집어삼켰다는 둥, 신규 가입자가 3만 명을 돌파해 조립식 쉘터 수천 개를 주문해 돔의 공장이 풀가동 중이라는 둥 온갖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었다.
“야, 나 지금 당장 접속해봐야겠다. 혹시 나 필요한 일 있어? 어디 위험한 곳 가야 된다든가?”
“신경 끄고 네 할 일이나 해. 이렇게 뒀다간 내일쯤에는 우리가 신세계의 신이랑 그 사도 취급받을 것 같으니까. 멀리 안 나가고 돔에 좀 들렀다가 47구역 좀 돌아보고 올 거다. 어쨌든 이렇게 유명세를 탔는데 그걸 이용하지 않는 것도 멍청하지. 내 계정으로도 메시지가 잔뜩 도착해 있더라고. 영상 잘 봤다면서, 전쟁 때 사용했던 총기를 구매할 수 없겠냐고. 라이프 앤 머더 사(社)에서 연락이 오기도 해서, 어떻게 유통이 가능할 지 좀 알아볼 생각이야.”
커뮤니티를 확인하고 나니 오늘 무엇을 할지 대강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아직 안정할 필요가 있는 벡스는 집에서 쉬면서 신시아에게 황무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것(뛸 듯이 기뻐했다.)으로.
이안은 장사 관련 미팅하러 돔으로.
나는, BDSM 오피셜 성명문 발표하러 47구역 대화방으로.
“언제 나올 거냐?”
“저녁때쯤? 입 좀 털고, 게임 하다 나올 거니까.”
끼긱- 끼기긱!
“아오, 제발 쫌!”
교수는 걸리적거리며 접속기에 잘 들어가지 않는 왼팔을 억지로 구겨 넣으며 말했다. 프리사이즈라 어떻게 다 들어가긴 했는데, 영 불편한 게 나중에 따로 돔에 말해서 개조를 받던가 어떻게 수단을 마련해야 할 것 같았다.
“게임 그거…. 해결은 가능한 거냐? 하이드 쪽?”
“지금으로선 유일한 희망이니까. 매달려봐야지.”
지금은 팔까지만 변했으니 좀 불편하지만 쓸만한 도구가 생겼다고 얼버무릴 수 있겠지.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하이드가 차지한 부분이 넓어진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저 머릿속 또 다른 의식에게 몸을 빼앗긴다는 막연한 두려움이었는데, 이젠 그 변화를 체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괴물이 되어가는 두려움.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마음이 급했다. 한시라도 더 빨리 방법을 찾아야 했다. 원래 몸으로 돌아갈, 하다못해 하이드와 나를 분리해 더는 통제권을 넘겨주지 않을 방법을.
끄그그극- 탁!
날카로운 손톱 끝에 뚜껑이 긁히는 소리와 함께 접속기가 닫혔다. 목덜미에 연결된 뉴로 센서가 정보를 전달하고, 익숙한 화면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47구역 대화방 : 3245]“염병할. 벼락 출세했군.”
최근에 방송이 좀 흥하면서 500명 정도까지 모여들었던 대화방에 갑자기 3천명이 넘게 눌러앉았다. 지역 대화방은 신호가 약하면 들어오지도 못하니 사실상 47구역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 접속기가 있는 사람들의 절반은 지금 이곳에 접속해있다는 것.
간 튼튼하기로는 별주부전 토끼 뺨칠 정도의 교수였지만, 이번에는 긴장을 안 할 수 없었다.
신중하게 대화방 입장을 누르자,
“세상에….”
채팅창이, 무슨 미사일 발사하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위로 밀려 올라가고 있었다.
– 파푸아뉴타입 : 몇 번을 말해야 알아 처먹겠냐! 장비형이라니까 장비형! 탈착식! 공생관계! 그런 거 몰라! 그게 아니면 저렇게 자유롭게 사용이 불가능하다니까!
– arms5275 : 넌 씨발 변종의 ㅂ자도 모르면서 왜 그렇게 당당한거임? 변종은 바이러스라고! 내가 니놈 배때지에 납탄을 한주먹 선물해주면, 변종은 그걸 치료해주지 않아요! 죽은 몸을 차지하고 움직일 뿐이지! 공생같이 고차원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니까!
– 세금의부름 : 그렇습니다. 박교수님이 ‘변종화’라는 새로운 진화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기적, 하늘의 부르심에 가까운 일이니. 모두 고개숙여 경배하십시오.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구원의 문이 닫히기전에, 서둘러 박교주님을-
+ 세금의부름 님이 대화방에서 추방되었습니다.
– D.Asset3315 : 과도한 도배 및 선동은 제재대상입니다. 본 47구역 대화방은 저희 돔 방송인 지원부서의 관할아래 있으며, 차후 박교수님과 논의하에 정확한 방침이 공지될 예정입니다.
– 흥안만두 : 이게 꿈이여 생시여….
– takealook : 야가 사람이 참 크게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쩔어주실 줄은 몰랐네. 이름도 박교수라니. ‘professor`가 본명이었다는 소리잖아?
– 화이트스미스 : 놈? 이런 미친자식이 손가락을 싹다 잘라버릴까보다! 교수님이 니 친구야! 어! 존칭을 붙여라! 교수 님! 구원자님!
– takealook : 뭐 새꺄! 니놈들이 박교수씨 마르고 닳도록 빨아대기 몇 년 전부터 교수랑 농담따먹기 했는데 님은 뭔 쳐 얼어죽을 님이야! 조까!
– 홀리 : 나 병원에서 professor님 봤어요! 막 소리지르면서 뛰어다니시던데 불러도 모르시더라구요! 레빗 언니는 만나서 얘기도 했다고 하던데!
– 화이트스미스 : 오오오! 그분의 존안을 뵀다니!
– aiosye2222 : 정말 팔이 그렇게 검고 우람했습니까?
– 생즉통 : 소문대로 눈에서 광채가 나오던가요?
– soeor732 : 구원자님의 성수(聖手)는 그분이 주무시는 동안에도 사고를 한다는데, 정말입니까!
– 인세인트 : 병원! 많이 다치셨습니까! 혹여,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는 게….
– 홀리 : 저, 저는 몰라요오오!!! 그냥 코스프레 좋아하는 아는 언니한테 들은 얘기라구요!
– 노루Drug해요 : 스본좌. 혹시 뭐 아시는 것 좀 없수? 필요하면 입금 해줄게.
– 스피드 웨건 : 바쁨. 존나. 개. 씹. 말걸지마심.
+ Player `professor`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멈췄다. 범람하는 강물처럼 대화창의 위쪽을 향해 흘러가던 활자들이 정말 화면이 멈춘 것처럼 뚝! 하고 멈춰버렸다.
‘아오, 씨발! 긴장돼 죽겠네! 그냥 평소처럼하자, 평소처럼….
– professor : 안녕하세요, 박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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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조금 전까지 불타올랐던 대화방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채팅하나 없는 대화방에,
– 노루Drug해요 : 아, 교수 어서오고.
– professor : 어, 음… 그래. 간만이다.
– 노루Drug해요 : 벌금 내라. 기억하지? 대화방에 외부인물 끌어들였다가 물 흐리면 500실링.
마치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듯 평소와 같은 대화가, 수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이어지고-
– asdklj223 : 와아아아아아!!!!
– upoxui : 와아아아아!!!!
– 핵산알콜함유 : 오셨다! 진짜 그분이다!
– 인세인트 : 구세주! 구세주! 구세주! 구세주!구세주! 구세주! 구세주! 구세주!구세주! 구세주! 구세주! 구세주!구세주! 구세주! 구세주! 구세주!구세주! 구세주! 구세주! 구세주!
– 생즉통 : 박교수님! 3형 변종의 비밀에 대해 가르쳐주십쇼!
– aiosye2222 : 내 남편! 내 죽은 남편이 2형 변종이 됐어요! 쉘터에 가둬놨는데 아직 살릴수 있을까요!
– 고릴로 : 단신으로 렙터의 주력 전차부대를 쓸어버렸다는게 사실입니까!
– ubabababa : BDSM에 넣어주십시오! 힘 하나는 자신있습니다! 44구역입니다!
– 재야의병신 : 렙터 네스트를 향한 공격이 예정되어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 omniman : 한말씀 해주시죠!
– eir213 : 박교수님!
– 78784343 : professor님! 한마디만!
– 쟈니스t99 : 박교수님!!!
말 그대로, 채팅창이 폭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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