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18
Chapter.9 스타 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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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아악-!
잠시나마 눈이 멀 정도로 환한 빛무리. 몸이 붕 뜨는 감각. 그리고…
퍼어억!
“그우어. 큰작은인간. 잘잔다.”
“노툼….”
“싸울 때는 그렇게 예민하던 사람이 잘 때는 업어가도 모르겠더군. 이 난리 통에 잠이 오던가? 감각이 늑대인간 수준으로 날카로운 사람이?”
“보르카….”
“안전해 보여도 뮤트의 영역이라는 소리겠지. 원래 9급 뮤트는 대부분 슬라임을 기반으로 하고 있잖나. 급이 낮은 슬라임은 몸의 대부분이 수분이라 낮에는 땅속에 숨어 사는 주제에 그 핵은 24시간 저체온증에 시달리는, 아주 쓰레기같이!”
퍼억!
“설계된 생물이란 말이지!”
“좋은 아침일세, 교수. 피곤할 텐데 깨운 것 같아서 미안하군. 밤새 슬라임형 9급 뮤트들이 어슬렁거려서 자네 빼고 불침번을 좀 서고 있었다네. 약해 보여도 일단은 뮤트라 몸에 닿으면 감염된단 말이지. 개중에는 산성이라던가 암석 슬라임처럼 물리적으로 위험한 녀석들도 있고.”
“알드리치님, 오트만 마법사님….!”
“음? 교수 자네 왜 그러나?”
“흠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침 공기가 참 상쾌하네요! 아 좋다!”
한참 잊고 있었던 GG의 동료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코끝이 시큰거렸다. 밖에서 하도 난리를 피우고 와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쪽도 상당히 난감한 상황 중에 로그아웃 했었지.
야영지에서 일어날 때 들렸던 저 타격음은 우리 ‘박교수 용사파티’ 일행이 밤새 꾸역꾸역 몰려든 슬라임들을 걷어차는 소리였다. 뮤트 측에서 자원 수집용으로 뿌려둔 9급 슬라임형 뮤트는 반쯤 액체 같은 상태로 땅속이나 지하수를 타고 움직이다 열을 감지하면 접근하는 습성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저렇게 야영지 주변으로 모여든 것 같았다.
“….흑마력이 머리에 좀 남았나? 이 친구 아까부터 왜 이래?”
“그냥…. 사지 멀쩡한 몸의 소중함을 깨달았달까? 아, 편하다! 역시 손은 두 개가 있어야 제맛이지!”
교수는 모닥불 위에서 끓고있는 수프를 한 그릇 뜬 다음, 한 손으로 마시며 일행들 옆에서 슬라임을 발로 차고 짓이겼다. 한 손에는 어포를, 다른 손에는 수프를 들고 마시면서 공기 좋은 숲에서 슬라임을 걷어차고 있노라니, 뭔가 휴양을 나온 것처럼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 takealook : 꿀팁 / 최악의 유리몸 캐릭터를 즐기고 싶다면? 현실의 몸에 3형 변종을 섞어보자. 유리몸이 선녀처럼 보인다.
– professor : 쌰랍.
– 노루Drug해요 : 꿀팁 / 밖에서 단신으로 돔의 집행부를 정리하고 랩터의 전차들을 박살내며 올드 픽처같은 네임드 3형변종을 때려잡을 정도면 GG 리얼리스틱 랜덤 캐릭도 즐길 수 있다.
– professor : 확마. 까불면 방 다시 합쳐버리는 수가 있다.
– takealook : ㅈㅅ
– 노루Drug해요 : 죽을죄를 지었음.
– 남바쓰리 : 평화로운 대화방을 인질로 시청자를 압박하다니. 방송인으로서도 성장하셨습니다, 형님!
게임에 들어오기 전에 어떻게 교통정리를 해보려다, 그냥 방을 두 개로 나눠버렸다. 오늘부터 약 14일 안에 새로 들어온 유입 전용 방이랑, 원래 47구역 대화방에 거주하던 원주민 전용 대화방. 당연히 GG에서 보고있는 쪽은 원주민 방 쪽이다. 저어기 시야 한쪽 구석에 다른 쪽도 틀어놓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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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바사악 : 여기좀 봐주세요! 여기!
– novemv : 농담인줄 알았는데 진짜 게임 방송하는 사람이었네.
– 티코리타 : 그러게. BDSM 수장 정도 되면 돈 졸라 많을거 아님? 뭐하러 방송하냐?
– D.Asset3315 : 박교수 방송인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GG를 사용하고있습니다. 정식으로 돔과 계약된 방송인이며, 도배, 비방, 공격적인 채팅은 제재를, 심할 경우 돔에서 해당 사용자를 추적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티코리타 : 엌ㅋㅋㅋㅋㅋ 추적한댘ㅋㅋㅋㅋㅋ 어케할거임? 돔에서 게드로이츠 컴퍼니 해킹이라도 할거임? 누굴 병신으로 아냨ㅋㅋㅋㅋ 찾아봐 병신아! 찾아봐!
– D.Asset3315 : Player ‘티코리타’. 7일전 게시글[존나 벼락이 거꾸로 떨어질 수도 있나봄. 돔 개쩐다.] / 34일 전 게시글[딴데는 모래폭풍이라는데 우리집은 존나 맑음. 밖에 빨래 널고왔음] / 68일 전 게시글[우리집 주변에는 왜 쓸만한 사이코 갱은 없냐. 죄다 살인광 뿐임] /을 통해 확인한 결과, 46구역 우범지대 중 안정적으로 쉘터의 설치가 가능한 15개의 분지를 티코리타님의 거주지로 추정하였습니다. 계속 하시겠습니까?
+ player ‘티코리타’ 님이 퇴장하셨습니다.
– 율리시스모아 : 엌ㅋㅋㅋㅋㅋㅋ튀었엌ㅋㅋㅋㅋㅋㅋ
– 느개비우스 : 박교수가 보통사람은 아닌가보다. 돔에서 저렇게 사적으로 정보팀도 돌려주고. 저거 랭커급만 해주는거 아니냐?
– aiosi32 : 애초에 랭커급이 맞지. 지금 가장 핫한 방송중 하나잖음. 망한게 기정사실이된 4월드 랭커들이 3월드 제대로 깨겠다고 다시 복귀하고 있으니까. 플레이 방향도 개성넘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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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혼돈 그 자체다. 다행히 시기적절하게 돔에서 뭐, ‘방송인 지원팀’인가 뭔가를 보내줘서 관리를 해준 덕분에 이렇게 나눠놓고 원래 있던 애들이랑 대화하면서 할 수 있었던 거지, 그거 아니었으면 종일 질문세례에 시달리다 하루 날렸을 거다.
어찌 됐건, 다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게 중요하지.
“으음…. 도저히 안 되겠군. [콜드 샬로우(Cold Sallow)!]”
촤아악!
내가 대충 아침 먹으면서 게임 외적인 일을 정리하는 동안, 오트만이 참다못해 결국 마법을 써버렸다. 오트만이 밟고 있는 곳을 중심으로 땅이 촉촉하게 물들더니, 곧 모닥불이 꺼지는 소리와 함께 야영지 주변이 찰박거릴 만큼 찬물이 흥건해졌다.
“이렇게 정리하다간 끝도 없겠군. 놈들은 찬물을 싫어하니, 이 틈에 야영지를 정리하고 가지.”
“좋은 생각입니다. 이동하시죠!”
차가운 물에 뮤트 슬라임들이 주춤하는 동안, 일행은 재빨리 짐을 챙겼다.
“자네, 오늘따라 유난히 즐거워 보이는데?”
“흐흐흐흐, 기분 탓입니다, 기분 탓!”
커다란 가방을 둘러맨 교수는, 히죽 웃으며 일행의 선두로 나섰다.
솔직히, 밖에서 그 지랄을 하고 왔더니 게임 쪽이 너무 평화롭고 즐겁긴 했다.
***
퐁- 퐁- 퐁- 퐁!
“그래! 그 감각을 기억해야 하네! 물은 비정형에 약해 보이지만 거대한 함선을 들어 올릴 정도로 강한 반발력을 가지고 있지! 그걸 이용하는 거야!”
흑마법사를 잡은 마을을 떠난 지 5일째.
잔뜩 긴장했던 것이 무색하게 5일 동안 만난 거라곤 뮤트 슬라임과 감염된 들개, 오소리 같은 8급 뮤트들 뿐이었다.
“이건…. 너무 평화롭군. 대장, 이상하지 않소? 입구에서부터 그런 무시무시한 흑마법사가 나왔던 것 치고는 지난 5일간 제대로 된 뮤트는커녕 흑마법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야 그렇지.”
“적의 함정일 가능성은….”
“흐읍! 없다고 본다. 100%는 아니지만, 95%정도는 없을 거야. 그러니 쉴 수 있을 때 쉬어두라고, 보르카.”
교수는 오트만 마법사의 지도에 따라 맨땅에 물수제비를 띄우며 중얼거렸다.
“가뜩이나 숫자도 적은 데다, 뮤트와 마찰도 있어서 세력을 크게 키우지도 못한 흑마법사다. 당연히 고위 마법사도 적겠지. 그리고 대부분의 전투형 뮤트가 서부 전선으로 빠져나간 지금, 흑마법사들이 제물을 모으기 좋은 땅은 대충 정해져 있단 말이야.”
“제물을 모으기…. 좋은 땅?”
“그래. 전쟁터에 나가지도 못하고 남겨진 억울한 흑마법사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어? 로드릭의 주력군이라는 고급 시체와 원혼을 손에 넣지 못한 대신, 싸구려 피난민들이라도 잔뜩 끌어모으자, 이런 생각을 할 게 뻔하지.”
교수는 여섯 번 정도 튀어 오르고 흩어지는 물덩어리에 인상을 쓰며, 그간 훈련으로 축축하게 젖은 땅 위에 막대기로 로드릭 북부를 대충 그렸다.
“상식적으로 동부 대사막을 건널 생각은 안 할 테니까 그쪽은 꽝이고. 피난민들은 서부로 뮤트가 몰리는 것을 모르니 몇몇은 서쪽 블루라인을 넘어 타국으로 도망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네가 피난민이라고 생각해봐. 생판 모르는 타국이 좋을까, 아니면 무려 ‘기사의 나라’라는 타이틀이 달린 우리나라 수도로 튀는 걸 더 편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할까?”
“그야 당연히…. 후자가 아니겠소?”
“그래. 그래서 대부분의 피난민은 북에서 몰려오는 뮤트를 피해 남쪽으로, 수도 킹스랜드를 향해 몰려갔겠지. 그리고 킹스랜드로 가는 길에는 토브룬이 있고, 토브룬으로 가는 길목을 틀어막고 있던 게- 바로 그 흑마법사라는 거야. 아마 직접 도시를 습격한 흑마법사들 제외하고는 가장 좋은 자리였을걸?”
추측이지만, 흑마법사들끼리 논공행상을 하듯 좋은 자리를 나눠 가졌을 것이다. 누구는 투란을 직접 습격해서 많이 처먹었으니 이번에 쉬고. 누구는 위계가 가장 높으니 목 좋은 여기, 누구는 여기…. 우리가 상대한 녀석도 데몬리치가 될 정도로 수준 높은 흑마법사였으니 토브룬으로 가는 길목의 마을 같은 좋은 자리를 꿰차고 있었던 것이겠지.
요점은, 고위 흑마법사들은 그런 피난민들이 몰려드는 좋은 자리에 있을 거라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 향하는, 이미 뮤트에게 점령된 도시에서는 멀찍이 떨어진 그런 자리. 첫 마을을 떠나 뮤트 슬라임이 가득한 길에 들어서는 순간 ‘이거, 가면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래서 이렇게 여유 부릴 수 있는 거야. 뮤트는 서부 전선으로. 흑마법사는 인근 도시의 입구 막자 하러. 적의 점령지 내부에는 알맹이가 없다는 뜻이지.”
물론 다른 시드였다면 지금 우리가 지나온 곳에 9급 뮤트가 아니라 7급, 6급 뮤트가 출근길 지하철처럼 아주 꽉꽉 들어차 있었겠지만, 내 시드에서 뮤트는 GG역사상 유례없을 정도의 가난뱅이니까.
퐁- 퐁- 퐁- 퐁- 퐁- 파박!
보르카에게 설명하며 손 위에 물방울을 만들어낸 교수는, 땅 위를 내달리다 다시 한 번 터져나가는 물덩어리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수계 마법 – 제 2위계 : 반발]은 이틀 전에 얻었다. 그때 데몬 리치와의 전투에서 오트만이 띄워준 물의 원반을 밟고 다닐 때의 감각이 아직 살아있어서 그런가, 깨달음 자체는 그 익사체 훈련에 비하면 너무나도 손쉽게 얻었다.
오트만은 교수의 땅수제비가 튀어나간 거리를 재며, 교수처럼 한숨을 쉬었다.
“원래 수계 학파가 1위계가 어려워서 그렇지, 2, 3위계 까지는 쉽게 넘어간다네. 그래서 리드 플로우 학파는 마법사의 숫자는 적을지언정 4위계 정도의 중위 마법사는 다른 학파에 비해 훨씬 많은 편이지. 그 위쪽부터는 또 얘기가 다르지만.”
“그럼 깨달음을 얻었는데 왜 마법이 안되는 겁니까?”
교수는 자신의 손 위에서 얌체 공처럼 통통 튀기는 물덩어리를 보며 물었다. 어떻게든 펠라스에 도착하기 전에 전력을 강화하고 싶었는데, 깨달음을 얻은 것과는 달리 마법을 시전하기만 하면 어느 정도 완성되다가 팍! 하고 흩어져버리는 것이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네. 우선 자네가 목표로 하고있는 그 ‘워터 실드’는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마법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교수 자네는 죽어도 영창을 안하니까.”
“수인식(手印式)으로 영창은 생략이 가능하잖습니까?”
“기지도 못하는데 날 생각부터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네. 영창은 그 마법을 만들어낸 사람의 심상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네. 일종의 시구(詩句)나 마찬가지지. 자네가 그렇게나 심각하게 거부감을 느낀다니 더는 권유하지 않겠네만…. 아무래도 영창으로 심상을 끌어내면서 해당 마법에 익숙해지는 쪽이 훨씬 편할 거라네.”
오트만의 아쉬움 가득한 말투에 교수는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좀 미안하긴 했다. 저렇게 성심성의껏 가르쳐주는 사람 앞에서 정석이 싫다고 땡깡 부리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 노루Drug해요 : 아아, 이쪽은 신경 쓰지 말고 해. 우린 교수 네가 뭘 하든 전~혀 관심이 없으니까.
– takealook : 사실 나는 귀머거리란다. 한 30초쯤 전부터 아무 소리도 안들렸어.
– 흥안만두 : 너두? 야, 나두!
‘…. 이 새끼들을 뒤에 달고 어떻게 그런 쪽팔린 주문 영창을 해!’
단순히 쪽팔린 게 문제가 아니었다. 마법은 세상의 법칙을 바꿀 정도로 단단한 심상을 바탕으로 실현되는 건데, 영창을 입에 담는 순간 그 부끄러움 때문에 마법 자체에 거부감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혼자서 방구석에서 게임하는 거였으면 그냥 쪽팔린 영창이라도 게임이니까, 하고 넘길 수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우습게도 47구역의 ‘영웅’ 이라고 불리는 슈퍼스타다. 원하지 않았지만, 인기인이 되어버렸다고. 여기서 내가 ‘내 마음은 호수요, 파도 앞에 잔잔한 거울과 같으니 거대한 창칼도 그 고요함을 이겨내지 못하리라!’ 같은 영창을 했다간 그날 바로 커뮤니티에
‘마법사 박교수’의 멋진 모습이 담긴 영상이 원혼처럼 떠돌아다닐 것이다. 그걸 상상하는 순간 마법이 팍 식어버린단 말이지.
오트만과 내가 끙끙거리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영창을 못하는 마법사. 임시방편이나 다름없는 수인식과 심상만으로 마법을 자아내기에는 아직 내 깨달음이 너무나도 일천했다.
“흠…. 영창이 안된다면, 주문에는 거부감이 없는가?”
“아, 예, 뭐. 그정도야….”
“그렇단 말이지. 그럼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떤가?”
“이렇게라면 어떤….”
“조금 편법이지만, 기사들이 쓰는 방식을 이용해보자고.”
오트만이 말하며 손을 휘두르자, 그의 앞에 찰랑이는 작은 원형방패가 생성되었다.
“이게 뭐지?”
“그야…. 워터 실드죠.”
“그래. 워터 실드지. 자 그럼…. [워터 실드(water shield)]”
촤아악!
작은 원형방패 옆에, 조금 더 크고 단단해보이는 방패가 나타났다.
“미리 말하는데, 정확히 동일한 양의 마나를 사용했다네. 심상에 특별히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수인이나 영창을 섞지도 않았지. 그리고…..”
따각, 딱, 뚜둑!
[갈라지고 부서진들, 너희는 결국 대양을 잘라내지 못하리라. 오트만 보들레르의, 워터실드]치잉!
이번에 나타난 것은 내 키의 두 배는 될법한 크기에 푸른 수정으로 만들어낸 것처럼 매끈하고 단단하며, 그럼에도 부드러워 보이는 방패였다. 정말 ‘물의 방패’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상감이 가득한 푸른 방패. 새삼 오트만이 고위 마법사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이게, 내 식대로 해석한 워터실드지. 수인과 영창, 주문. 이 모든 것은 마법사의 심상을 강화하기 위한 도구라네. 영창을 빼도 나머지가 충분히 디테일하다면 괜찮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수계 마법사는 잘 쓰지 않는 방식이라 나도 좀 익숙하지 않지만…. 으음. 좀 시끄러울 테니 놀라지 말게.”
후으으읍-
오트만은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온 숲이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주문을 외쳤다.
“워-! 터-! 실-! 드!!!!”
푸화아아아악!
그 순간, 이전의 깔끔했던 마법 시전과는 정 반대에 가까운 거대하고 난폭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앞선 오트만의 정식 마법보다 두 배에 가까운 크기를 가진 그것은 아무리 봐도 방어 마법보다는 공격 마법에 가까워 보였다.
“콜록, 콜록! 으으음, 이 방식은 쓸 때 마다 힘에 부친단 말이야. 마지막에 보여준 것은 보통은 기사들이나 염계 마법사들이 애용하는 방식이지.”
“어…. 소리 지르는 거요?”
“부정하고 싶지만, 딱히 그것 말고는 다르게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 맞는 말이로군. 의지를 쥐어짜 내서 심상에 불어넣는 거니까. 보다시피 심상은 다소 흐트러지지만, 어쨌든 위력은 확실하다네. 혹시 기사들의 전투를 본 적이 있나? 목숨을 건 전투, 혹은 그에 준하는 수준의 전투를?”
“예.”
오트만의 말에 교수는 투란 공방전을 떠올렸다.
“고위 기사의 전투는 찰나의 순간에 수십 번의 공방이 오간다고 하지. 검을 휘두르기 전 상대의 어깨 움직임, 눈이 보고 있는 곳을 확인하고, 그 눈빛으로 상대의 오판을 유도하는 것, 한 걸음 내딛었을 때의 지형을 계산하는 등…. 검을 맞대기 전에도 생각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 같다고 하더군. 하지만 기사들은 그렇게 본능의 속도에 가까운 공방 중에도, 귀한 호흡을 낭비하며 기술명을 외쳐대지.”
오트만은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정식 워터실드와 마지막에 만들어낸 크고 불안정한 워터실드에 던졌다. 하나는 딱, 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나가고, 하나는….
콰가가가각!
허공에 떠있는 소용돌이에 그대로 갈려나가 버렸다.
“그들이 바보라서 그러는 게 아니네. 아니, 바보는 맞지. 기사가 세상에 힘을 행사하는 방식은 마법사와는 정 반대거든. 그들은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고립….이요?”
“그래. 마법사는 강한 의지로 자기 주변의 법칙을 뒤바꾼다면, 기사는 아예 세계와 동떨어진 존재가 되어버리는 거야. 끊임없는 단련과 자아성찰과 도야. 그것을 통해 ‘나’라는 존재의 개념을 확장해 나가며, 세계의 법칙에서 벗어난 별개의 존재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지.”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그 ‘오러’라는 것이지. 마법사와 똑같은 마나를 사용했지만, 기사가 만들어낸 것은 무엇이든 파괴, 절삭하는 세상을 배척하는 형태의 힘이지. 그에 비해 마법사는 섭리를 뒤틀지언정, 결국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을 만들어내지 않나?”
“오러….”
샬롯의 검에 어린 노을빛 기운. 수준에 따라 세상의 모든 것을 잘라낸다는 기술. 자연세계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질적인 물질.
“기사들이 말하기로 오러를 키워나가는 것은 ‘가슴 속의 검을 벼려내는 행위’ 라고 하더군. 검과 하나가 된다, 뭐 이런 소리를 하던데 솔직히 나는 무슨 소린지….”
“개인의 의지를…. 추출해서 휘두르는 것이군요.”
오트만이 기사들에게 들었던 오러의 발현. 그것은, 이 GG라는 세계의 가장 근본적인 원료인 NPC개인의 의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나의 생명체에게는 그 1인분의 의지만큼 이 GG를 컨트롤할 힘이 주어지지. 드래곤은 그 거대한 영혼의 용량으로 수십만명분의 의지를 휘두르며 용언(龍言)을 사용하는 것이고. 이 세계의 기사, 전사들은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GG의 컨트롤 권한, 의지, 또는 영혼이라 불리는 것을 ’고립‘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추출해서 검이나 몸에 담아 쓰는 거야! 이런 세상에!’
오트만의 설명을 듣고 나니 왜 오러가 그따위로 파괴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그 검 위에 넘실거리는 것은 단순히 에너지나 힘 같은 게 아니라 이 GG라는 세계의 주춧돌 그 자체니까! 오러를 휘두르는 것은 자르거나 파괴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 사이를 스윽 비집고 들어가 분리시켜버리는 것이다! 세상의 법칙에서 분리한 자신의 의지를 밀어 넣어서!
교수가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자, 오트만은 깜박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마법사지만 몸을 쓰는 경우가 더 많았지. 나보다 그쪽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고 있겠구먼. 아무튼 마지막에 보여준 마법은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네. 말에는 힘이 담겨있지. 허상으로 떠돌던 생각을 실체화시키는 힘. 단어에 강한 의지를 담을수록 그러한 경향은 더욱 도드라지지. 기사들은 자신이 수십년 동안 수련해왔던 기억과 경험, 움직임을 한마디 단어로 토해내며 검을 휘두르는 걸세. 입 밖에 내는 순간, 수없이 그 행위를 갈고닦아왔던 과거의 자신이 그 단어를 매개로 그 검에 깃들게 되는 것이지. 기술, 혹은 ‘스킬’이라고 불리는 공격기술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다네.”
촤아악!
오트만은 자신의 등 뒤에서 무너져내리는 물의 방패들을 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이 방식에는 편법도, 정석도 없어. 마법사가 아니라 생사의 기로 속에서도 앞으로 달려나가는 전사처럼 생각하게. 이 마법에 모든 것을 건다! 정말 이게 아니면 죽는다! 그런 의지를 마법사의 수인과 심상에 담아 발현하는 거지. 미리 말하지만, 효율은 꽝이라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