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19
Chapter.9 스타 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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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게드로이츠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설정을 만들었는지는 알겠다. 디테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사람이니까. 아마도 게임이라기보단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싶었던 거겠지. 실제 사람의 행동,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윤리나 종교적인 측면에서 금기에 가까운 NPC들. 그들 하나하나에게 이 게임 속 세상에 대한 권리를 주고, 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것을 키우고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세계.
확실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이렇게까지 주관적이고 뚜렷한, 살아있는 세계를 만들어주면 몰입이 잘되긴 하지. 잘 되는 수준을 넘어서, 이게 진짜 게임이 맞나, 하고 생각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멀리서 찾을 것도 없지. 내가 바로 그 증거가 아니겠어?]‘한참 조용하더니. 자고 있었냐?’
[비슷하지. 진짜 몸이라고 부를만한 게 생겨서 그런가, 의식체 상태로 계속 있는 게 좀 어렵네. 흐아암. 지금 나 필요 없지?]‘아직은?’
[그럼 더 잔다. 또 멍청한 껍데기가 죽을 위기에 처해있을 때, 졸려서 못 나오면 안 되니까.]쩍쩍 거리는 하품소리와 함께 왼팔에서 사라지는 이질감. 최근 들어 좀 조용하다 했더니 저런 이유가 있었군.
‘일단 하이드만 봐도 현실과 연결점이 어느 정도 있는 건 확실해. 그냥 게임은 아냐. 뭔가 목적이 있어. 멸망 이전에 만들어진 게임이지만, 그런 것 치고는 거의 모든 인프라가 망가진 지금의 세상에서도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으니까.’
내 의문은, 그렇게 목적이 있었다면 왜 이렇게까지 자유롭게 만들었냐는 것이다. 도대체 왜. 왜 이 정도까지 게임의 권한을 플레이어와 NPC에게 넘겨줬을까. 목적이 있다면 당연히 그 방향으로 게임을 끌고나가야 할 텐데, 이건…. 아무리 봐도 방임에 가까웠다. 시드 안에서 NPC와 플레이어가 자기들 마음대로 세상을 만들어가도록 지켜만 보고있는 것. 도대체 그 어디에서 목적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내 추측이 맞다면…. 오러는 데이터 삭제 권한에 가까운 정신 나간 기술이야. 물론 NPC 개개인의 ’의지‘라고 표현되는 시스템 제어 권한, 용량이 세계의 사이즈에 비해 먼지만큼 작으니까 눈앞에 바위나 금속 따위를 분리하는 수준이 한계겠지.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 생명력 넘치는 세계에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영웅이 탄생해서 개인의 의지를 극한까지 갈고닦는다면, GG자체를 재단할 수 있는 거 아냐? 말 그대로 칼 한 자루로 세상을 두동강 낼 수도 있다고?’
단순 가능성으로 볼 일이 아니다. 보아하니 드래곤 같은 초월적인 의지 덩어리를 만들어 질서를 유지하려고 한 것 같은데, 내가 알기론 월드 3에만 해도 드래곤 정도는 목숨 걸고 달려들면 썰어버릴 수 있는 용자가 있긴 하거든?
‘천류제 클리어 영상에서였나? 갈라드리온 소드가 드래곤 쳐먹은 최종진화형 에데오르나랑 일기토 붙어서 동귀어진 했으니까. 용살자(龍殺者)의 오러 정도면 시스템 지우개라고 봐도 무방하잖아? 심지어 본인의 의지를 추출해서 시스템에서 분리된 개체가 되는 게 오러의 원리라면서? 생각해보니까 고위 기사들이 마법 방어력 높은 것도, 시스템에서 분리된 개인의 용량이 커져서 자기보다 낮은 권한의 명령어를 거부할 수 있게 돼서 그런 것 같은데? 사실상 시스템 외적 존재라고. NPC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게 무슨 게임이냐?’
모르겠다. 게드로이츠 그 양반이 왜 이런 게임을 만들었는지. 게임 클리어를 생각하고 움직일수록 이 게임의 수상한 점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알면 알수록 의문만 쌓여가는 느낌이다.
“….연구 지원으로 돔에 들렀을 때 한번 알아봐야겠다. 그놈들은 돔이라는 집단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GG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으니까. 랭커들한테 수십억 실링을 쏟아부으며 중요정보 독점권한을 받아 간 놈들이니 뭔가 아는 게 있겠지.”
교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념을 적당히 끊어냈다. 지금으로선 알 수 있는 사실이 한정되어있으니, 더 생각해봤자 추측에서 이어지는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오러가 뭔가 심상찮은 기술이라는 것, 그 원리를 마법에도 응용할 수 있다는 것. 이 두 가지만 기억하자고. ‘수상하게 디테일한 GG’ 항목은 어디, 저 구석에 처박아 놓으면 되겠지.
“으음…. 뭔가 깨달은 게 있나보군. 혹시 필요하면 말하게. 한번 더 보여줄 정도는 되니.”
“아닙니다. 보아하니 상당히 심력을 많이 소모하신 것 같은데, 적진에서 제가 무리한 부탁을 드렸던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마지막 네 번째 워터실드 이후, 오트만은 확실히 지쳐보였다. 효율이 나쁘다는 게 그냥 빈 말은 아니었나보다.
“허허허허! 괜찮네. 사실 수계 마법사는 주기적으로 마법을 좀 써주는 게 좋아. 물은 고이면 썩는 법이니. 그리고 자네 말에 따르면…. 당분간 전투에 들어갈 일은 없지 않은가? 그 이상한 뮤트들이 도시 안을 가득 메우고 있으니.”
“그러게요. 저도 웬만하면 적당히 뚫고 지나가보겠는데…. 혹시 여력이 남으면 원견(遠見)마법 한 번 더 가능하십니까?”
“이런…. 이 늙은이를 너무 부려 먹는군. 이건 그리 어렵지 않으니 다음에는 연습해서 직접 써보시게. [누마 아셀라이의, 푸른 눈동자]”
퐁!
주문과 함께 오트만의 손 위에 떠오른 두 개의 물로 만들어진 안구. 오트만은 그중 하나를 교수에게 내밀고, 하나를 하늘 위로 띄워올렸다.
– takealook : 저 할아버지는 못하는 게 없네. 워터 월에, 싱크홀, 물 방패, 원견 마법까지. 5위계 치고 지나치게 유용한 거 아님?
– Jokass : 대신 공격이 메인인 마법이 없잖음.
– 노루Drug해요 : 물법은 ‘중압’ 속성 못 박으면 딜이 안나온다고 ㅋㅋㅋㅋ
– 스피드 웨건 : 특수병 같은 포지션이라고 봄. 만능인데 전투의 주력은 되지 못하는 그런 역할.
대화방 사람들의 말에는 교수도 동의했다. 오트만이 지금까지 너무 잘해주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전면전을 앞두고 있을 때는 아무래도 광역 파괴마법이 아쉬우니까.
‘사실 수계 마법이 다 괜찮은데 공격력이 좀 부족한 면이 있긴 하지. 만약 오트만에게 ‘중압’의 깨달음이 있었다고 해도, 겁나 커다란 워터 월 같은 거에 중압 걸어서 몇 번 크게 쥐어짜고 나면 리타이어잖아? 광역 제압이나 유틸성으로 보면 몰라도, 살상력은 전차보다 못하다고.’
그에 비해 염계, 불마법사들은 살상 쪽이 압도적으로 우수했다.
5위계까지도 필요 없다. 4위계만 되도 발 빠른 아군 몇 명 불러다가 [블레이즈 스텝(Blaze step)] 걸고 도시 안에서 도망만 다니게 하면 지나간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번지는 불로 도시를 전소시켜버릴 수도 있고, 위계가 올라갈수록 온갖 기상천외한 효과가 추가되는 기본 마법 파이어볼 이라든가, 적절한 촉매만 있다면 융단 폭격을 쏟아부을 수 있는 파이어 레인 이라든가. 염계 마법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장의 마법사, 그 로망을 그대로 옮겨놓은 존재라는 말이다.
“어쩔 수 없지. 지금 수준으로는 정면 돌파는 힘드니까.”
“음? 자네, 누구랑 얘기하는 건가?”
“아, 혼잣말입니다, 혼잣말.”
교수는 가볍게 투덜거리며, 오트만이 건네준 안구를 눈앞에 가져다 대었다. 푸른색으로 찰랑이는 안구의 망막에 높은 하늘에서 비추는듯한 영상이 확대되어 떠올랐다.
펠라스의 자랑거리인 거대한 성벽은 군데군데 깨지고 무너져있었고, 도시 안쪽도 반쯤 폐허나 다름없게 변해있었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다. 아직 제대로 네임드가 나오기도 전에, 지성이 없는 8,7급 뮤트한테 홀라당 넘어가 버렸으니까. 하급 뮤트들이 시설을 파괴하지 않고 남겨서 방어하는 데 써야겠다는 생각 따위를 할 수 있었을 리가 없지. 다시 수복한다고 해도 전과 같은 방어력을 기대하긴 힘들 거야. 물론 그래도 맨땅에 세운 주둔지보다는 훨씬 낫겠지만.’
문제는, 예상과 달리 그 파괴된 거리를 가득 채운 고위 뮤트들의 향연이었다.
익숙한 트롤이나 오우거같은 대형 몬스터가 감염인자에 침식당해 만들어진 6급이 대부분이었지만, 단순 감염이 아니라 북부의 둥지에서 생산된, 온갖 생물의 특성을 섞어 만들어진 5급, 4급 뮤트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 Jokass : 저 정도면 주력군단 같은데? 6급 이하 감염체면 몰라도, 여왕이 있는 북부에서 생산된 5급 이상 개체는 생산 속도에 한계가 있으니까.
– 흥안만두 : 가뜩이나 엘리트 개체를 통한 소수정예 전략을 선택했으니 인공 자궁 숫자가 다른 시드의 1/4도 안 될걸? 저거, 하얀 애벌레 같은 거 그거 맞지? 땅굴 벌레? 저거로 굴 파서 넘어갈 생각 같은데??
– 스피드 웨건 : ㄴㄴ. NPC들은 병신이 아님. 투란 때야 쟤들은 땅굴 벌레를 처음 봤으니까 그냥 당한 거지, 지금은 정보가 있잖아. 굳이 준비할 필요도 없이 땅법 한명만 데리고 있으면 10km 밖에서도 오는 거 알 수 있음.
– 흥안만두 : 뮤트는 그걸 모를 거 아냐. 그냥 저대로 헤딩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 무카바 : 구원교단, 인섬니아 크랩. 여기저기서 정보 줄줄 새고 있을걸? 이번 시드 뮤트는 그쪽에 투자를 엄청나게 했다고. 정보전은 이길 수가 없음. 대지 마법사가 땅굴을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보다도 일찍 알았을걸.
– 화약과 피 : 전략적으로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대다. 물량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앞서고 있어. 첩보전 하니 생각나는건데, 그 흑마법사 집단도 대부분 수중에 쥐고있을거다. 적측 간부 머릿속에 상대를 수족으로 만드는 벌레를 심어대는데, 반항적인 아군의 머리에 그걸 사용하지 않을 리가 없으니.
“아오, 진짜 겜 뭣 같이 하네.”
교수 일행이 펠라스에서 하루 거리에 있는 이 숲에 틀어박혀 마법수련이나 하고 있는 것은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번 용사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왕 암살. 그게 어려우면 텅 빈 펠라스까지 길이라도 뚫어서 아군이 북쪽을 향해 진군할 때의 교두보를 만들어 로 하람 교단에 면피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사실상 목표로 하고있던 펠라스가 저 상태인 것이다.
‘….진짜 펠라스 우회해서 여왕 쪽으로 뛰어야 하나? 멀쩡한 전투형 네임드 하나만 있어도 썰릴 것 같은데? 아니, 생각해보니까 펠라스에 병력이 저만큼 있다면 여왕이 저걸 생산할 능력이 있다는 거 아냐? 당연히 둥지를 방어할 병력은 있겠지. 도박을 한다면 펠라스 쪽에 거는 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 텐데. 어디 파고들 구멍 하나 없…. 응?’
하다못해 적의 지원군이라도 방해할 생각으로 도시를 살펴보던 중, 교수의 눈에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가시 넝쿨?”
잘못 봤나 싶어서 눈을 비볐지만, 분명히 가시넝쿨이었다. 펠라스 성주가 식물형 몬스터를 키우는 취미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으니, 뮤트에게 점령당하고 생긴 변화가 분명할 터.
뮤트가 가득한 펠라스의 중심, 영주성의 가장 높은 탑에 녹색 기름같은 것이 뚝뚝 떨어지는 가시넝쿨.
그 뿌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던 교수는, 순간 눈에 스쳐지나간 잔상에 발끝부터 소름이 쫘악 돋는 게 느껴졌다.
“오, 오트만님. 카메라 옆으로!”
“카…메라?”
“눈알 말입니다! 조금만 더 가까이! 저 영주성 첨탑 쪽으로!”
“이미 한계까지 가까이 갔다네! 뮤트 중에는 눈이 좋은 녀석이나 마나 감응력이 좋은 녀석도 있어서 더 가까이 갔다간…..”
“무조건 확인해야 합니다! 걸려서 후퇴해도 좋으니까 접근해주세요!”
“으음…. 나는 분명 경고했네! 빨리 확인하고 마법을 취소하지 않으면 이쪽의 위치가 감지될 수도 있어!”
따각, 뚜두둑!
익숙한 수인 맺는 소리와 함께, 안구에 비친 화면이 한층 더 선명하게 보였다.
‘….보인다!’
잠깐이지만 분명히 보였다. 굵은 가시넝쿨에 휘감긴 첨탑, 그 가장 높은 방안에, 인간 여성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있었다. 저 가시넝쿨을 풍성한 드레스처럼 늘어뜨린 여인은 분명….
파삭!
실루엣 속의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 교수의 눈앞에 있던 투명한 안구가 터져버렸다.
“이런! 누군가 원견 마법의 매개체를 파괴했군. 이쪽을 감지했다는 소릴세. 어떻게 하겠나? 대충 방향 정도만 알아냈을 테니 정찰대를 먼저 보낼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이런 식으로 조금씩 빠져나오는 놈들을 사냥하는 것도….”
“아뇨, 철수합니다. 최소한 전력 이동으로 하루거리 이상.”
내가 본 게 맞다면, 절대 정찰대만 보낼 리가 없다. 저 뮤트들은 적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선불 맞은 황소처럼 떼로 몰려와 이 부근을 갈아엎을 것이다.
– Jokass : 무조건 잡아야 함.
– 흥안만두 : 여기 파티 다 죽는 한이 있어도 저건 잡아야 된다.
– 스피드 웨건 : 전적으로 동의함. 교환비가 10 : 1 아니 20 : 1도 넘을 것임. 물론 제대로 성장도 못한 히어로 유닛에 준 히어로급 NPC 셋을 잃어버리는 우리쪽이 1.
– takealook : 뭔가 잘못된 거 아냐? 변수를 다 따져봐도 저건 나올 리가 없는 유닛이잖아?
내가 보는 화면을 같이 보고있는 대화방 쪽에서도 난리가 났다. 그럴 수밖에. 이번 시드 여왕이 고급 유닛을 생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해도, 저건 절대 나올 리가 없는 개체니까.
“아니, 도대체 뭘 봤길래 그렇게 긴장하는 겐가? 하루거리 이상 후퇴한다니? 그 정도로 강한 놈인가?”
“아뇨. 강하기는커녕 저기 있는 뮤트들 중에서 제일 약할 겁니다.”
“그런데 왜?”
“전면전 중에도 뮤트가 저렇게 모아서 지킬 만큼 중요하니까.”
저게 있으면 저런 고위 뮤트들이 펠라스에 우글거리는 것이 설명이 됐다. 놈은, 여왕 다음으로 중요한 보호 대상이니까.
1급은 사실상 네임드에 준하는 위험도를 가졌지만, 고유개체가 아니라 양산이 가능한 개체라서 네임드와 구분이 된 것뿐이다. 단 세 종밖에 알려지지 않은 1급 뮤트. 그중에서도 발견 즉시 가진 모든 인력과 자원을 때려 박아서라도 사살해야하는, 한 마리만 잡아도 전세를 뒤엎을 수 있다는 최중요 목표물.
“오트만. 저희가 돌려보낸 마법사들은 토브룬에 도착했겠죠?”
“그렇지 않겠나? 토브룬에서 사흘 정도 거리였으니, 절차를 생각해도 지금쯤 교단에 소식이 닿았겠지.”
그렇다면 기다린다. 세나디스가 성직자를 보내줄 때까지. 마법사는 통신 마법을 사용하려면 특별한 깨달음이 필요하지만, 성직자는 신이라는 채널을 통해 거리에 상관없이 소식을 전할 수 있으니까.
‘함부로 덤벼들었다가 경각심을 심어줘서는 안 돼. 도망치게 놔둬도 안되고. 절대로, 필요하다면 서부 전선에 들어갈 지원군을 끌어와서라도 저걸 잡아야 된다!’
근처에서 쉬고 있던 일행은, 교수의 다급한 어조에 서둘러 짐을 챙겨 왔던 길을 향해 달렸다.
타닥!
“대장, 뭔가 중요한 걸 봤다고 들었는데. 뭘 봤길래 그렇게 털을 곤두세우고 있소?”
“챔버 메이드.”
“메이드면…. 시녀?”
“그래. 여왕의 하녀.”
“그게 그렇게나 무섭소? 이름만 들어서는 약해 보이는데….”
“무섭지. 죽이지 못하면 이 전쟁에서 졌다고 해도 좋을 만큼.”
“아니, 도대체 뭐 하는 놈이길래···.”
교수는 첨탑에서 봤던 실루엣을 떠올렸다.
‘1급 뮤트. 챔버 메이드(chambermaid : 시녀).’
전투력은 전무하지만 3월드를 플레이하거나, 클리어 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여왕 다음으로 중요한 암살 대상으로 꼽는, 사람들 사이에서 ‘멀티’ 라고도 불리는 개체.
“놈은, 뮤트를 낳아. 끝도 없이. 계속.”
1급 뮤트. 챔버 메이드는 뮤트의 형태로 태어난 여왕의 인공 자궁이었다. 자유롭게 움직이고, 뿌리를 내려, 인근 생명력을 빨아들이며 무수히 많은 뮤트를 생산하는 여왕의 분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개체는 소수 정예라는 지금까지의 뮤트 전략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놈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챔버 메이드가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는 해도 여왕이 직접 생산하는 둥지보다는 자원 효율이 떨어지는 편이야. 녀석은 일반적인 시드에서 뮤트가 물량으로 밀어붙일 때, 그것도 자원이 넘쳐서 여왕이 있는 북부에서 모두 처리하기 힘들 정도가 되면 밖으로 기어 나오는 개체일 텐데? 왜 지금 등장한 거지?’
챔버 메이드는 개체라기 보단 생산 기지에 가까운 뮤트다. 여왕이 직접 품어 낳아야 하고, 태어날 때까지 자원도 네임드 급으로 들어가며 생산하고 나서는 그 효용을 보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소모해야 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지금의 여왕으로서는 하등 쓸모없는 유닛.
찢어지게 가난해서 소수 정예를 선택했다. 온갖 특수개체를 뽑아 전략적으로 돌려막았다.
그리고 물량전의 최종단계, 챔버 메이드를 생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과 결과가 맞지 않는 모순적인 상황. 하지만 눈앞에 챔버 메이드가 자리잡은 것을 확인했고, 놈을 호위하는 군단의 존재도 확인했으니 결과를 부정할 수는 없는 법.
지금 상황에서, 챔버 메이드의 등장은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을 의미했다.
“어떤 자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셨구만 그래.”
바로, 뮤트 쪽에 물량전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생겼다는 것. 지금까지 생산된 네임드와 특수 개체들이 셀 수없이 많은 양산형 개체들의 보조를 받게 된다는 것.
‘항상 앞서있어. 우리 쪽보다 한 걸음 정도 앞서가면서 상황을 조종하고 있다.’
교수의 머릿속에 투란, 토브룬을 거쳐 지금까지 일련의 사태를 조종해온 흑막의 비웃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일단 후퇴해서 성직자를 기다린다. 안 보내줬을 리가 없어. 5위계 흑마법사를 잡았으니, 상황을 알기 위해서라도 통신병 삼아 한 명 보낼 테니까. 일단 상황을 듣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판단한다! 그 전에는 숨소리도 내면 안 돼!’
적을 추격대를 피해 후퇴하는 내내 한시라도 빨리 성직자가 도착해 교단과 통신을 연결해줬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정보가 부족했다. 서부전선의 상황, 적들의 움직임, 구원 교단, 혹은 아이작처럼 뮤트에게 교묘하게 조종당하는 아군의 중요 인사 등! 알아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큰 상황을 알기 전까지는 지금 판을 움직이고 있는 뮤트 쪽 책략가의 장기 말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판을 뒤집어엎기 위해서는 일단 상대와 같은 시선에서 판을 내려다 볼 정도는 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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