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22
Chapter.9 스타 폴(6)
****
깊은 밤.
펠라스의 성문 위를 배회하던 뮤트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이 인근의 생명체는 모두 잘게 찢어 여왕의 분신에게 먹였는데, 묘하게 생긴 오크 같은 것이 그의 눈에 스친 것이다.
“크와악! 카악!”
고양이를 닮은 그것의 눈동자에 저 성벽 너머, 살짝 일렁이는 무언가가 다시 비쳤을 때 뮤트는 주저없이 성벽에서 뛰어내렸다. 이곳은 어머니의 수족이 자리를 잡은 곳. 가장 작은 손톱 조각만큼의 위협도 저 성벽을 넘게 해서는 안 된다.
목청껏 위협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형제들이 따라붙지 않는 것이 이상했지만, 뮤트는 점점 더 멀어져가는 일렁임을 보며 힘차게 땅을 박찼다. 여러 동물의 형태가 섞인 다리는 탄력 있게 대지를 달릴 수 있게 해주었고, 힘껏 달릴 때마다 뮤트는 그런 몸을 만들어주신 어머니에 대한 감사와 존경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의 적. 죽인다!’
성벽이 순식간에 멀어지고 그의 몸에 부딪힌 나뭇가지가 우수수 부러져나갔지만, 어째서인지 이상하게 일렁이는 오크는 손에 닿을 듯, 말듯 애매하게 그의 손톱에서 빠져나가며 그를 희롱하고 있었다.
‘크르륵! 조금만 더. 저 이상한 것을 한 손에 잡아, 갈기갈기 찢어 한입에 털어 넣고야 말겠-’
서걱!
그것이, 뮤트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나무 뒤에서 그를 기다리던 은빛 손톱이 소리 없이 뮤트의 목을 떨어뜨렸으니까.
달빛을 받아 은빛 털을 드러낸 보르카가 손톱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여덟. 생각보다 재미있는 재주를 가지고 있군, 트롤.”
“그웍. 낚시 재밌다.”
“일단 인식 저해 마법의 범위 내에서 시력이 좋은 녀석은 저놈이 마지막일 게야. 지금까지 교수의 말을 듣고도 믿기 힘들었다만…. 정말로 단순한 몬스터 무리는 아닌 것 같군. 감시가 상당히 체계적인 것을 보니. 노툼과 자네가 처리한 눈이 밝은, 성벽 위를 배회하던 놈이 여덟. 그리고….”
알드리치의 손짓과 함께, 수풀 한쪽 구석에서 넋이 나간 듯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뮤트 한 무리가 나타났다.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한 놈씩 죽을 때마다 부르르 떨더니 도망치던 놈이 여덟. 혹시나 해서 보내둔 넬이 잡아 오지 않았다면 시작부터 일이 틀어졌을 수도 있었겠어.”
“우우우. 귀신 늙은이. 그거 꺼내지 마라. 무섭다.”
“음? 아아, 걱정하지 말라니까. 넬은 이렇게 보여도 아주 착하고 순한……”
와작!
우두둑, 까드득! 까드드득!
그때, 멍하니 서 있던 뮤트 중 한 마리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으로 딸려 올라가더니 마치 과일을 베어먹는 것처럼 한입씩 뜯겨나가며 사라졌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시체가, 아니 이제는 시체라고 부르기도 힘들 정도로 나머지 몸이 다 사라져버린 뮤트의 두 발이 허공에서 툭, 떨어졌다.
“….아이니까.”
“그우우우. 구라친다.”
“….영감은 말을 다시 배우는 게 좋겠군.”
“아, 아직 일곱이나 남았으니 작전에는 문제가 없을 게야! 넬도 오랜만에 나와서 마음이 급한 듯 하니, 슬슬 시작하지!”
알드리치의 목에 걸려있던 영혼항아리가 흔들리며, 방울이 울리는듯한 소리가 조용히 울려퍼졌다.
육신을 잃은 영들이, 영을 잃은 육신으로 하나둘 파고들기 시작하며 멍하게 늘어져 있던 일곱 뮤트들이 천천히 도시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
“보르카는 달이 가장 높이 떴을 때 움직이기로 했지. 뮤트가 이쪽으로 모여드는 시간도 있을 테니 슬슬 시작해야겠네요. 오트만 마법사님, 준비됐습니까?”
“나야 진즉에 준비가 됐네만…. 정말 그게 자네 생각대로 될까 하는 게 문제 아니겠나? 만약 실패하면 손쓸 도리도 없이 죽어버릴 텐데?”
“거 재수없게 그런 소리 마시죠. 확신이 없으면 마법이 발현되지 않잖아요? 무조건 된다고 생각하고 들어가자고요.”
보르카와 노툼, 알드리치가 있는 북문의 정 반대편에 있는 남문 앞에서, 교수는 슬슬 몸을 풀고 있었다.
[껍데기,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네가 다치는 만큼 네 몸의 근력은 꾸준히 성장해왔어. 옛날처럼 에라 모르겠다, 진심펀치! 이런 식으로 날려버리면 이제는 팔 뿐만이 아니라 어깨랑 갈비뼈, 쇄골 언저리까지 다 날아갈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감염인자로 가득 차 몸이 완전히 치유되면 침식에 시달리는 몸. 이곳까지 이동하는 동안에도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질 정도의 운동을 강행하며 왔다. 그럴 여유가 없는 날은 보르카에게 등을 좍좍 찢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
‘고통을 참는데 익숙하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았지. 결국 바위 하나 뽑아서 내 손으로 허벅지를 찧기 시작하니까 도와주긴 했다만.’
솔직히 게임 처음 들어왔을 때 좀 걱정했다. 꾸준히 플레이할 때야 이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격통에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밖에 꽤 오래 있다 왔으니 이제 다시 처음부터 적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하지만 웬걸? 나가기 전보다 고통을 견디는 게 더 수월해져 있었다.
‘[고통감소(중)]의 효과라곤 해도 개방성 골절이 그냥 손목 삔 수준으로 느껴진다는 건 말이 안 되는데…. 혹시 돔에서의 경험이 게임 속에 영향을 미친 걸까?’
짐작이 가는 부분은 있었다. 현실에서의 왼팔. 손가락에 그치던 이질감과는 차원이 다른, 내 몸에 다른 것이 섞여들어 분리된 듯한 그 감각. 다친 부위를 그런 식으로 분리해서 느끼려고 애써봤는데, 정말 고통이 절반 정도로 줄어드는 것 같았다.
[말했잖아. 너는 네 몸을 너무 ‘인간’의 것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그 감각을 잘 기억해. 분명 몸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따가각! 우득! 뚜득! 따각!
잡념은 여기까지. 뒤에서 오트만이 수인을 맺는 소리가 들렸다.
‘가장 크고 눈에 띄는 것으로, 여기까지만 하고 리타이어 해도 좋으니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했지. 어디, 공격마법을 포기한 5위계 마법사의 진가를 보여주실까!’
“[오라, 연인이여.]”
오트만의 입에서 주문이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숨쉬는 게 답답할 만큼 주변에 습기가 가득해졌다.
“[대저, 누군가는 그대에게서 광활함을 느낄 것이다. 누군가는 겸손을, 누군가는 용기를. 허나 나는 사랑을 느꼈으니. 아무리 멀리 떠밀리더라도, 해안가에 입 맞추기를 멈추지 않는. 세상에 비견될 바 없는 가장 오래된 사랑에 그만 마음을 빼앗겼으니.]”
쏴아아아-
소리가 들린다. 북부의 설산과 서쪽의 블루라인에 둘러싸인, 온통 평원으로 가득한 로드릭에서 들릴 리 없는 파도소리가, 소금기 섞인 바람이.
오트만의 마법은, 주문이라기보단 그의 진심을 담은 세레나데에 가까웠다.
“[대지의 품에 안긴 연인이여. 이 상사에 빠진 늙은이를 위해, 작은 연민을. 무덤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영혼에서 빛날, 단 한번의 입맞춤을 위해, 발걸음을 옮겨주오, 그 이름도 찬란한, 바다여]”
쏴아아아-
깊은 밤. 어둑한 하늘 아래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이 도시와 숲. 그 한가운데 솟아난 거대한 파도를 비췄다.
“[오트만 보들레르의, 라이프 오브 워터 메이지 (Life of watermage).]”
그 파도의 품에 안기려는 듯, 떨리는 팔을 하늘 높이 치켜든 오트만은 교수를 향해 말했다.
“분명…. 적들의 시선을 끌어달라 말했지?”
넋이 나간 듯, 끝도 없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물의 장벽을 바라보는 그 눈에는 존경에 가까운 애정이 담겨있었다.
“젊은 날, 처음으로 바다를 눈에 담던 날 나는 깨달았네. 앞으로 나는 평생을, 이 순간의 환희에 매여 홀몸으로 살게 된다는 것을. 내 그날의 경험을 저들에게 나눠주도록 하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조우하던, 그 경이로운 순간을 말이야.
오트만의 몸에서 잔잔한 실개천처럼 흘러나오던 마나가, 격류가 되어 하늘을 향해 퍼져나갔다.
해일이, 도시 위로 부서져 내렸다.
****
“아, 아니…. 제일 큰 거로 한 방 날려 달라고는 했는데….”
진짜 저렇게 클 줄은 몰랐지.
해일을 밀어내고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기절한 오트만을 받아낸 교수는, 눈 앞에 펼쳐진 비현실적인 광경에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어둑한 밤. 달빛을 받아 요요롭게 빛나는 해일이 땅 위를 달려 성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모습.
GG라는 게임 속 세상의 상식으로도 이건 지극히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저 멀리 점처럼 바글거리던 뮤트들이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간다. 성벽을 삼키고, 마을을 휩쓸어버리고도 여력이 남아 영주성을 넘어 저 평원까지 내달릴듯 하던 파도는,
“끄워어어어억!!”
파아앙!
촤아아악!
순식간에 뛰쳐나온 뮤트 몇마리에 의해 멈춰섰다.
파도가 가는 길에 집채만 한 바위가 떨어지고, 영주성 귀퉁이의 첨탑이 통째로 쓰러지며 방파제가 만들어진다.
양 끝에 긴 날이 달린 창을 휘두르는 검은색 뮤트 세 마리가 창을 휘두를 때마다 파도의 첨단이 조각나고, 흩어지며, 점차 그 힘을 잃고 가라앉더니,
쏴아아아-
결국 힘을 잃고 바리케이드 앞에 가라앉으며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거대한 위용에도 불구하고 챔버 메이드가 있는 영주 성에는 물 한방을 묻지 않은 모습.
‘3급…. 역시 만만하게 볼 녀석들이 아니야.’
근력이나 기술은 물론, 전투지능도 우수한 고위 개체. 그동안 끌어모은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빈틈없이 짜여진 특성을 가진 뮤트.
건물 파편과 파도가 쓸어내 마구잡이로 엉켜 꿈틀거리는 뮤트 더미 위로, 이곳을 지키는 진짜 병력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 Jokass : 스피드에몽! 저게 뭔지 가르쳐주세요!
+ Player ‘스피드 웨건’ 님은 지금 부재중 입니다.
– Jokass : 아니, 커뮤 지박령이 갑자기 왜?
– takealook : 아까 교수랑 몇 마디 하더니 나가던데.
+ Player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 남바쓰리 : 그 ‘추종자’ 방에 뭔가 아는 놈이 있어서 초대해 왔슴다!
–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 오, 오오오! 본방이다! 정말로 내가 박교수님이 직접 시찰하시는 본방에 들어왔어! 내가, 내가 해냈다!
– 노루Drug해요 : 아이디 원초적인 것 보소.
– 간장게이바 : 말세야 말세…. 세상에 교수빠가 이렇게 넘쳐나다니….
– Jokass : 만나서 반갑고, 저거 뭔지 알면 정보 좀.
–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 넵! 그럼 본방 선배님들 앞에서, 미력한 지식이나마 최선을 다해 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까만색 헬창 개미랑 인간을 섞은 것처럼 생긴놈! 창 쓰는 놈은 워낙 유명한 놈이죠! 3급에서 제일 유명한 놈입니다! 통칭 ‘조자룡 3배’, 슈발리에 라고 부르는 놈입니다!
– 간장게이바 : 아, 얘가 걔임? 생긴 게 좀 달라서 다른 놈 인줄.
–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 시드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죠. 팔 다리가 얇은, 진짜 개미 닮은 버전도 있고. 흰 개미 버전도 있고. 창 대신 도끼 쓰는 버전도 있고. 하지만 곤충 특유의 키틴질과 인간의 육체가 섞인 저 광채가 흐르는 날렵한 근육질 몸은 잊어버리기 힘든 매력을 가지고 있지요! 별명처럼 손에 든 무기를 귀신 같이 잘 다룹니다. 전투형 히어로 유닛이라도 저게 다섯마리 정도 되면 제법 손을 섞어야 하지요. 요인 암살보다는 일반 병사를 학살하는걸로 더 유명합니다. 최고 기사급 아니면 저놈들 못 막아요.
– takealook : 그런게 여덟 마리나 있다니. 그 옆에는 그럼?
–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 내성 문짝 뜯어서 휘두르는 놈 말이죠? 에….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저 엄니와 들창코, 수염을 보니 오크쪽을 베이스로 만들어낸 완력계 뮤트가 아닐까 합니다. 네임드 말고는 시드마다 새로운 뮤트가 나오는 법이죠. 남부에 짱박혀있는 오크를 어떻게 얻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 오크 확실합니다. 같은 엄니를 가졌다고 해도 트롤이랑 오우거는 수염이 없죠. 일단 3급은 확실합니다. 뮤트는 서열도 확실해서 급수 낮은 놈들은 높은 놈들 옆에서 저렇게 나란히 못 걸어요. 일단 무기 들고 있으면 최소 4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간장게이바 : 야, 저거 시체 아니었어? 파도에 쓸렸던 놈들 일어나는데?
– Jokass : 횃불 움직이는 거 보이냐? 남문 근처 횃불은 다 꺼졌으니까, 저거 들고 있는 놈은 북문에 있던 놈들이야. 전부 이쪽으로 몰려오는군.
–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 감염체인 7급까지는 죄다 수수깡이지만, 뮤트가 생산해낸 6급부터는 기본적으로 상당히 튼튼하게 만들어지니까요. 파도에 휩쓸려서 여기저기 부러지긴 했어도 목이나 허리 부러지지 않은 놈들은 조만간 회복할 겁니다.
– 노루Drug해요 : 오. 진짜 많이 아는데? 아주 유용했음.
–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 감사합니다! 전쟁 끝나고 벙커 밖으로 한 번도 안 나가고 저장 식량만 까먹으면서 커뮤질만 했습니다!
– 간장게이바 : 아, 으응….
– Jokass : 어…. 힘내….
“그런 놈들이란 말이지….”
기절한 오트만을 숲 속에 잘 파묻어둔(제일 안전해보였다.) 교수는, 맹수처럼 눈을 빛내며 남문을 향해 다가오는 뮤트를 향해 걸어나갔다.
“애초에 우리 쪽은 시선끌기가 목표였으니까. 적어도 목표 하나는 확실하게 달성한 셈이지.”
오트만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었다. 강력한 개체들은 대부분 건재하지만, 그래도 5,6급 중에서 운이 나쁘게 목이 부러진 녀석들이 몇 죽기도 했고, 그 이하 개체들은 대부분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었으니까.
성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북문에서 온 횃불을 든 저급 개체들이 성문 앞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침입….끼긱, 자로구나….”
말인지, 쇠 긁는 소리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무너진 첨탑 파편에 있던 창을 든 놈 중 하나가 교수를 보고 입을 놀리고 있었다.
– professor : 거기, 음…. 대표님?
–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 흐어어억! p, professor! 지, 진짜다! 진짜 박교수님 아이디야!
– professor : 그래요. 내가 맞는데, 대표님 저거 말도 합니까?
–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 아아아아#@*(&!&*^!#(* 그분이 이곳에 계셔! 나와 같은 대화방에! 의사소통이 가능한 곳에!
– takealook : 님. 님 부르잖음.
–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 예?
– takealook : 대표님. 그거 당신이라고.
–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 흐어어어어얃ㅈ벼게ㅜㅏ무키ㅕㅑㅗ먀!!!! 마, 말씀하싮쇼!
–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 아니, 십쇼! 오타였스빈다!
– professor : 시간없으니 빨리좀. 그 조자룡인가 슈발리에인가 하는 뮤트, 원래 말도 합니까?
–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 못합니다. 전투지능은 발군이지만 사람 말은 못해요. 뮤트들 끼리는 뇌파로 대화하는 걸로 알려져있습니다! 사람말 못해요?
– professor : 그럼 저건 뭔데.
“당신….끄극! 가 왜….끼익! 여기있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다시없-끼긱! 을…. 행운….”
교수가 대화방에서 놈의 정체를 유추하는 동안, 마치 억지로 성대를 비틀어대는 듯한 놈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 아, 저것 같습니다! 저 말하는 놈 머리위에! 약간 울퉁불퉁해서는 살짝 녹색빛이 나는거!
– professor : 아, 그러고보니 좀 다르네.
–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 틀림 없습니다! 슈발리에는 하위 개체들에게 뇌파로 간단한 명령을 내리고 상황을 보고받을 수 있는 지휘-전투형 뮤트! 뇌파를 사용하는 기능이 열려있으니 머리에 특수형 뮤트 같은걸 파츠처럼 심어놓으면, 저렇게 뇌파를 놈의 머리로 심어서 직접 말할수도 있겠지요! 같은 사례는 없지만, 랭킹 27위 폭주기관차님 방송에서 비슷한 종류의 뮤트가 나온적이….
“그럼, 뮤트 쪽에서 뇌파를 이용해 이쪽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얘기네?”
촉이 왔다. 시력이 밝은 개체를 성벽에 세우고 횃불마저 사용하게 한, 인간적일 정도로 체계적인 감시체계. 네임드도 아닌 3급 뮤트가 설계했다고 하기엔 너무 잘 돼 있어서 의아하긴 했는데, 누가 멀리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고위 뮤트의 머리에 송신기를 심어 조종하며, 뒤에서 판을 조종하는,
나 엿먹인 놈.
“….여러모로 고생이 참 많으십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끼긱…. 끼그극…. 크긱, 끼긱 키극….!”
교수의 말투에서 묻어나는 묘한 어조를 알아들었는지, 놈은 몸을 꺾어가며 웃었다.
“그쪽이야… 말로 고생이 많으….끼긱! 시지요. 쓸모없는 인간들 사-끼익! 이에서 분투….하시다 못해, 이렇, 게 직접 움직이셔야 하니.”
‘되게…. 우호적인데?’
거슬리는 목소리만 빼면, 연민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 정도로 이쪽을 생각하는 말투였다.
화악!
머리에 벌레가 심어진 슈발리에가, 파티의 시작을 알리듯 양 팔을 펼쳐들었다.
“전장에….서 만나고 싶었지만. 이것도….끄극! 인연. 꼭, 한번….끼익! 뵙고 싶었….습니다.”
“오냐, 나도 너 새끼 한번 꼬옥, 만나서 아주 죽창을 돌려주고 싶었-”
“아버지.”
.
.
.
.
.
.
“….왓?”
– takealook : 뭬?
– 흥안만두 : Father?
– 뉴트리아지나 : 뭔…. 다스베이더 되받아치기 같은거냐? I’m your son?
– 노루Drug해요 : 여왕! 인간의 아이를 낳아라!
– BDSM3기공채합격자대표 : 그아아앗
말 한마디로 교수를 패닉에 빠트린 뮤트는, 귀족처럼 가슴에 손을 올리고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지금부터…. 미욱하지만 이-끄극! 샛별의 팔카투스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아버-”
“으아아악! 닥쳐! [블러드 샷]![블러드 샷]![블러드 샷]!”
타앙! 탕! 타아앙!
“….나중에 얘기….할 시간은 많으니.”
창을 휘둘러 탄환을 쳐낸 검은 뮤트는, 교수를 둘러싼 군단에게 명령했다.
[되도록, 다치지 않게 정중히 제압하도록.]쿠우웅!
“구워어어어억!”
그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인간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던 뮤트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교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염병할! 기분 나빠! 시간 끌기는 취소다! 전부, 못해도 거기 벌레 붙은 놈은 죽여버릴 거야!”
– 노루Drug해요 : 아시죠? 강한 부정은….
“지랄하지마! 안 했어! 안 했다고!”
촤아악!
눈앞을 가득 메운 뮤트 무리를 보며 교수는 손톱으로 팔뚝을 쫘악 내리그었다. 연약한 가죽이 찢어지고, 깊게 베인 팔뚝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그 피를 한껏 머금은 손이 수인을 맺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나타내는 엄지. 한마디만 꺾어 본능을.
지시를 나타내는 검지로 그 엄지를 감싸, 본능을 명령함을 나타내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곧게 펴 가로막은 방패의 형상을. 가장 원초적인 욕구, 생존 본능을 토대로 만들어진 마법.
‘수인은 어디까지나 뼈대일 뿐. 마법의 발현은 결국 술자의 깨달음과 심상에 기반한다고 했으니!’
처음이지만, 분명히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포용력의 깨달음은, 그의 마법에 피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피. 그 자신의 삶에서 가장 강하게 남은 기억. 마법은 마법사의 심상의 발현이니,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겠지.
촤아아악!
교수의 의지에 따라 팔뚝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아 나왔다.
반발의 깨달음이 포함된 피가 안개처럼 흩어지더니, 오른팔 위에 천천히 내려앉아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오리진 스펠. [블러드 아머]”
지금 그가 가진 마법적 역량을 최대한 끌어모아 만든, 오른팔의 팔꿈치까지 덮는 핏빛 건틀릿.
자그락.
오른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한 교수는, 그대로 허리를 돌려 그의 목을 향해 이빨을 들이미는 뮤트의 얼굴을 그대로 전력을 다해 오른팔을 휘둘러 땅에 처박아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