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27
Chapter.9 스타 폴(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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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고생하시고. 이따 봅시다~”
파스슥!
이른 새벽의 어둠을 밝히던 성광이 사그라지며 광명 교단의 수도사가 연결해준 통신마법의 이미지가 사라졌다.
“본단에서는 뭐라고 하고 있소?”
“쩝. 잘했대. 복귀 하랍신다.”
“그게 다요? 혹시 교단이나 로드릭 상층부가 챔버 메이드를 잡은 게 얼마나 대단한 성과인지 모르는 것 아니오?”
“여기서만 발견된 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발견됐다고 했으니 그건 아니겠지. 피곤에 절어 있는 목소리였지만 되게 좋아하는 게 느껴지긴 하더라고.”
지금이 새벽 3시다.
수도사가 있는 곳까지 온 다음 바로 통신 연결을 부탁했을 때는 날도 늦었고, 하니 일단 아무나 연락을 받으면 세나디스한테 좀 전해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웬걸. 성물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잠시 기다려달라는 수행사제의 말이 나온 지 몇 분 되지 않아 세나디스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도 피곤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주교라는 사람이 이 시간까지 철야를 하고 있다니. 안 봐도 킹스랜드가 어떤 상황인지 눈에 보이는군.”
“라투라 로 하람…. 전 세계의 용사대가 한 도시로 모여들고 있으니 행정과 관련된 인력이 바쁜 것은 당연지사이겠지요. 용사님도 서둘러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나올 때만 해도 나라에서 동원 가능한 모든 고급 숙소가 다 찼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으니, 더 늦으면 용사님의 위세에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여관에서 주무시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이고, 줘도 싫습니다. 전 세계에서 온 용사대라니. 차라리 밖에서 노숙을 하고 말지.”
“동의하네. 그 난리통 한가운데로 기어들어 가느니 도시 외곽에 물 좋은 개천에 자리잡고 야숙을 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나.”
교수의 말에 오트만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용사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용사는 ‘한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다!’ 수준의 업적을 세운 사람을 말한다. 8위계에 도전하던 중 폭주한 태양 마탑주의 목을 벤 전설적인 기사라거나, 오크로드의 대 북진이 시작되자 곧장 최전선으로 달려가 다른 어떠한 지원도 없이 3일간 그 공세를 막아내 대비할 시간을 벌어들인 캐슬 나이트 라거나, 갑자기 창궐하여 대 기근을 일으킨 검은 쥐떼를 몰아낸 바드 하멜른 이라거나. 하나하나가 기라성 같은 능력을 갖춘 사람, 혹은 집단이고, 나라를 구한 만큼 온갖 명예 작위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사람들이다.
“애초에 용사의 60% 정도는 왕의 부마(駙馬)니까. 국가 입장에서 용사급으로 뛰어난 인재가 있으면 어떻게든 붙잡아두고 싶겠지. 그 가장 좋은 방법이 공주와 결혼시켜 혈연으로 묶는 방법이고. 한 도시 안에 다른 나라에서 온 왕의 사위가 열 명, 스무 명씩 버글거린다고 생각해봐. 외교랑 관련된 직책을 가진 귀족들은 지금쯤 신을 이름을 부르짖으며 발바닥에 불나게 뛰어다니고 있을 걸?”
“그런 쓸데없는 일로 인력을 소모한단 말이오? 다른 것도 아니고 악신이 탄생해서 모여들었는데?”
“교단이야 당연히 화들짝 놀라서 지원 병력을 보냈겠지. 2월드…. 큼, 흠! 70년 전에 그 언데드 웨이브를 겪어봤으니까. 하지만 귀족들은 생각이 좀 다르지 않겠어? 교단에서 막 ‘악신이다! 이 일에 협조하지 않으면 파문시키고 이단으로 처우하겠다!’ 하면서 날뛰니까 일단 보내긴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 최고의 전략 병기를 공짜로 보내기는 싫단 말이야? 그것도 [망하기 직전의 타국에 보내는 지원군] 이라는 최고의 카드를 쥐고 있는데? 아마 겉으로는 아무 대가도 없이 도우러 왔다고는 하지만 장담하는데, 용사대 구성원 중에 외교관을 둘, 셋 정도는 딸려 보냈을 게 뻔해.”
기사단장이나 군사 전략에 밝은 귀족은 전 세계에서 배달된 핵폭탄들을 각각의 특성에 맞게 편제한다고 갈려나가고, 사교와 귀족 응대, 외교에 밝은 귀족들은 혹시나 타국의 용사님들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게, 혹은 저들끼리 싸우지 않게 관리한다고 갈려나가고. 추가로, 그렇게 바쁜 와중에 또 자기 연줄 만들어 보겠다고 막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놈도 있을 것이고. 으으으, 토 나온다, 토 나와.
그러니까, ‘금의환향’에서 ‘금의’ 쪽은 준비가 끝났는데 ‘환향’ 할 고향이 불타고 있단 말이다.
교수는 통신이 끝난 성물을 다시 목에 건 다음, 한숨을 푹 내쉬며 보르카의 다리를 두드렸다.
“아직 체력 좀 남았지?”
“사람 하나 업고 이동할 정도는 남았지.”
“그럼 이동하자.”
“지금 바로 말인가?”
알드리치의 뜨악한 얼굴에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피로가 역력한 얼굴이었지만 한시라도 더 빨리 수도에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수도까지 약 5일…. 이미 한참 늦은 것 같지만, 그래도 서두르는 편이 좋겠지.’
교수의 재촉에, 일행은 결국 수도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펠라스 인근에서 킹스랜드까지. 이미 오면서 한번 닦아놓은 길이니 별다른 위협은 없겠지. 적들이 이미 승리를 통해 확보한 서부 전선을 버리고 이쪽으로 돌아올 일도 없고.
띠링-!
[경고 : 비정상적인 로그아웃을 감지. 안전지대에서 로그아웃 하지 않을 시, 플레이어의 캐릭터는 게임의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정말 로그아웃 하시겠습니까?]‘….진짜 괜찮겠지? 9급 뮤트밖에 없는 동네에서 한번 왔던 길을 따라 되돌아가는 거니까?’
게임 타임으로 8일 정도 플레이했으니 벌써 밖에서는 24시간이 넘게 흐른 것이다. 바깥 상황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데 여기에만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
‘여기서 토브룬까지 5일, 킹스랜드까지 한 일주일 걸릴 테니까 딱 이동하는 동안만 자동 돌려놓고 나갔다 오자!’
교수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경고 메세지의 YES 버튼을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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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덜컥! 덜컥! 덜컥!
“음? 뭐야. 이거 왜 갑자기 안 열…..”
덜컥! 덜컥!
“아, 맞다.”
눈을 떴는데 접속기 뚜껑이 안 열려서 살펴보니, 억지로 구겨 넣은 왼손 끝에 문이 걸려있었다.
“….아무리 봐도 적응이 안 돼요, 적응이.”
교수는 혹시나 접속기가 박살이 날까 조심스럽게 빠져나온 다음,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왼팔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보았다.
따가각, 따각!
“….뭐, 적응해야지. 별 수 있나.”
누가 가져다 놨는지 낡은 소파 위에 알람시계 같은 게 놓여있었다. 오후 한 시.
“….코듀로!! 주인님 오셨다!!”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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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인스턴트 라면에 상추 다섯 장.
‘두들’ 이라는 상표가 선명한, 돔의 마켓 플레이스에서 출시한 라면이다.
옛날 그 봉지 라면처럼 비닐에 넣어 포장하는 대신 작고 얇은 나무 박스에 건면 따로, 조미료 통 따로, 말린 채소통 따로 넣어서 파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기호식품. 박스 단위로 파는 거라 한번 살 때 못해도 20인분은 사야 한다.
갑자기 나와서 ‘밥 줘!’ 했더니 나온 점심치고는 지나치게 호사스럽다는 뜻이다.
‘….이 자식은 근본적으로 프로그래밍이 잘못된 게 아닐까?’
빨간 국물에 먹음직스럽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라면을 보고 있자니, 과거 코듀로가 저지른 ‘버킷리스트 FLEX’가 떠올랐다.
“돈 많다고 너무 막 쓰는 것 아냐? 이번에 벌어들인 게 꽤 있다고는 해도, 또 언제 이만큼 벌지 모르는데.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아니라 앞으로 나갈 돈을 계산해야지.”
“어허, 모르는 소리 마십쇼. 제가 지난번 충동구매로 주인님을 황무지에 몰아넣게 된 다음부터 얼마나 절치부심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아끼려고 했는데, 벡스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애들은 골고루 먹어야 잘 큰다고. 그래서 큰맘 먹고 주문했습니다. 여기다 계란만 넣으면 완전식품인 것 아시죠? 아쉽게도 돔이 지금 가금류 개체 수 관리 기간이라 계란은 못 사왔지만.”
“닭 키운다고? 글쎄…. 키우면 돈이야 되겠다만. 돔 지금 식량문제가 엄청 심각하다며? 횡령에 사재기에…. 곡물 가격이 폭등해서 수지가 안 맞을 텐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병아리를 죄다 언더 돔으로 데려갔답니다. 의외로 닭은 동물성 사료도 잘 먹잖아요. 지렁이나 벌레도 먹으니까.”
“동물성이면….”
“어디까지나 루머긴 합니다만…. 설마 그 정도로 막장은 아니겠죠?”
후루룩!
감격스러울 만큼 통통한 면발을 빨아들이며, 교수는 거래소에 올라와 있는 ‘싼 고기’들을 떠올렸다. 최근에 돔 근처에서 사람이 꽤나 많이 죽긴 했는데.
“….설마. 혹시 모르니까 당분간 계란이랑 닭고기는 사지 말자. 총장이 그런 사람 같지는 않았지만, 외주 맡겼으면 가능성이 없지도 않지. 그런데 그런 루머는 어떻게 들었냐? 돔 내부소식은 밖으로 쉽게 안 나오는데?”
“지금 돔에 계신 이안님이 보내주셨어요. ‘이 씨부럴놈들이 맥주는 팔면서 치킨을 못 팔겠단다! 이거 시비 거는 거 맞지?’ 하시면서.”
피식.
“그 녀석 답네.”
그러고 보니 게임 들어가기 전에 이번에 라이프 앤 머더랑 뭐 계약하러 간다고 하더니. 얘기가 제법 길어졌는지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벡스는? 신시아는 어디 갔냐?”
교수의 말에 코듀로는 텅 빈 휠체어와 잘려나간 밧줄을 가리켰다.
“놀러 나가셨습니다.”
“뭐?”
“다 나았으니 휠체어 안 타도 된다고 그러셔서 이안님이 묶어놓고 나가셨는데, 차 나가는 소리 들리자마자 밧줄 끊어버리고 아가씨랑 나가셨어요. 애가 너무 집안에만 있으면 소극적으로 자란다고 하시면서, 황무지 생활도 가르쳐줄 겸 동네 구경 좀 하고 오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건…. 너무 안일한 거 아냐? 아무리 벡스라고 해도 회복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 녀석이 신시아까지 데리고 밖에 나가다니. 우리 집 근처에는 아직 2형 변종도 꽤 돌아다니잖아?”
“아, 그건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상황이 좀 변했거든요. 안 그래도 벡스님이 주인님 나오시면 좀 보고해 드리라고 했는데, 식사 다 하셨으면 잠시 시간 좀 내시죠?”
“뭐가 어떻게 됐길래? 나 게임 하러 들어갔다 나온지 하루 반나절밖에 안 됐거든?”
“그건, 직접 보시는 게 빠를 겁니다.”
치직-
식탁을 정리한 코듀로는 드론의 패널을 열고 화면을 띄워보였다. 뭔가 숫자가 잔뜩 어지럽게 움직이는데….
“이게 뭔데?”
“주인님 잔고요.”
“….뭐?”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마구 후벼팠다.
“뭐라고?”
“주인님 잔고 말입니다. 계좌. 돈통이요!”
잘 들리는데? 그럼 눈에 문제가 있구나!
이번에는 눈을 벅벅 비빈 다음 화면을 보았다.
잔액 : 304,237,650 sil
찰칵!
잔액 : 304,257,690 sil
“….버근가?”
이, 이상하다. 숫자가 왜 이렇게 많지? 왜 자꾸 올라가는거지?
2억 정도는, 그래. 그럴 수 있다고 치자고. 설마 진짜 총장님 에스프레소 투샷이 진짜 억 단위일 줄은 몰랐지만, 그럴 가능성 정도는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3억? 갑자기?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내게 코듀로는 발랄한 목소리로 말했다.
“돔에서 보내준 보수랑, 방송 후원금 정산한 겁니다.”
“후원금이 저렇게나 많이 왔다고?”
“옙! 사실 방송하는 동안에 나온 건 얼마 안 되고, 대부분 주인님 병원에 계실 때 들어온 거지만요. 대부분 쾌유를 빈다, 감사하다, 뭐 이런 메세지랑 함께 왔습니다. 마켓 플레이스에서 2500만 정도, 라이프 앤 머더에서 자사 제품 홍보에 감사한다며 4000만 정도. 그 외에도 큰손들이 여럿 다녀가셨죠.”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슬슬 자각하셔야죠. 제가 한 달 전에 말했잖습니까? 랭커라고! 이제 돈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올 거라니까요? 앞으로 아무것도 안 해도 주인님들 먹고살 걱정은 없을 겁니다.”
처음부터 크게 한 방 먹은 교수는 저도 모르게 마른 세수를 하려다 화들짝 놀라 손을 내려놓았다.
부자다 부자. 돈이 넘칠 만큼 생겨버렸다. 3억이면 평생 비싼 고기 사먹고 최고급 공기 정화기를 10대 돌려도 평생 다 못쓸 돈이다.
“으음…. 벌써 그렇게 놀라시면 곤란한데.”
“왜. 뭐가 또 남았어?”
“쫌 특이한 게 남았죠. 최근에 주인님 명성이 하늘을 찔러서 생긴 문제로 추정 중인데….”
덜컹- 드드드드득-
그때, 창문 너머로 쉘터를 둘러싼 벽의 정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좌우로 문이 열리고, 움직임을 감지한 터렛이 튀어나와 뭔가를 조준하는 게 보였다. 누더기 같은 복장에 온 몸의 주머니에 잡동사니가 주렁주렁 매달린, 전형적인 황무지 사람 복장. 처음 보는 사람이다.
“아이고! 저 인간이 또 왔네! 그거 그만하라고 써 붙여 놓기까지 했는데!”
철컥!
“뭐야. 아는 사람이야?”
“예? 아. 아는 정도는 아니고. 적은 아니니 총은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코듀로의 말에 일단 총은 손에 쥐고 창문에 붙어 슬쩍 내다 보았다. 갑자기 열린 문에 당황한 듯하던 방문객은, 쉘터 쪽을 향해 네 다섯번 정도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더니 문 앞에 쌓여있던 뭔가를 대문 안으로 황급히 밀어 넣고 사라졌다.
내가 의문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자 코듀로가 말을 이었다.
“며칠 전부터 찾아오던 외부인입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문밖에 세워두고 경고했죠. 오면 쏜다. 접근하지 마라. 신원을 밝혀라. 경고했는데도 자꾸 어슬렁거려서 경고 사격도 몇 발 갈겼습니다.”
“그랬더니?”
대답 대신, 코듀로는 다시 한번 화면을 꺼내 영상을 보여주었다.
——–
투투퉁!
[마지막 경고다. 본 AI에게는 허가받지 않은 침입자에 대한 살해 권한이 주어졌으-게엑!]“쏘, 쏘지 마십시오! 저는 그저, 인사를 드리러 온 것뿐입니다!”
[의복….을 재정비하라. 풍기문란 또한 테러 행위의 일환으로 간주한다.]“비무장입니다! 보십시오! 아무것도 없습니다!”
——–
치직!
중년 여성이 거적때기 같은 누런 속옷에 손을 대는 순간, 화면이 꺼졌다.
“더 보시렵니까? 미리 말하지만 저 여성, 자기 증명 한번 화끈하게 하더군요.”
“필요 없다. 적어도 무장을 안 했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히 보여줬군. 왜 왔대? 인사라니?”
“그날부터 계속 스크랩이나 잡동사니 같은 걸 조금씩 가져와서 이렇게 문 앞에 놓고 가고 있습니다. 저 여자 말고도 두 명 정도 있는데, 어디서 이상한 글 같은 걸 봤는지 똑같이 문앞에 와서 홀딱 벗은 다음 스크랩 쪼가리 같은 걸 놓고 가더라고요.”
“아이고 머리야….”
뭔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비무장에, 인사에, 값나가는 물건.
“보호비잖아, 저거.”
스캐빈저 중에 규모가 있는 녀석들은 작은 영역을 관리하기도 하는데, 그런 녀석들을 레이더라고 부른다.
돔이나 렙터같은 고래들이 날뛰는 우리 동네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42구역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그런 레이더들이 춘추 전국시대 뺨치게 영역 싸움을 하는데, 그 녀석들의 주 수입원이 바로 저 보호비다. 지들 말로는 자기네들이 피 흘려가며 변종과 싸운 대가로 그 영역 안의 생존자들이 안전하게 사는 것이니 당연한 대가를 받는 것인데, 그냥 깡패가 삥뜯는 거나 다름 없지 뭐.
그런 맥락으로 보면 저 외부인의 행동이 의미하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니까, 요 근처에 살고 싶은데 우리 보호를 받고 싶으시다?”
“그런 셈이죠. 뭐, 걱정하실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안님이 자기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주인님은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팔이나 어떻게 하는데 집중하랍니다.”
“그녀석이 그렇게 말했으면 뭐….. 죽이진 말라고 전해줘라. 그래도 살고 싶어서 찾아온 사람들인데 죽이는 건 좀 그렇네.”
외부인이 모여드는 것은 나름의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역시 주변이 변종으로부터 안전해진다는 것. 사람들이 자리를 잡으면 나름 먹고 살겠다고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닐 테고, 그러다 보면 변종도 좀 정리가 될 테니 인근 지역의 변종 밀도가 확 줄어든다.
단점은, 그 사람이 위험하다는 것.
저렇게 무해하게 보이는 사람도 누군가가 보낸 정찰병일 가능성도 있다. 영상이 퍼졌으니까. 끝내주는 돔의 무기를 휘두르는 우리 모습을 본 사람들 중에서는 ‘저놈들 다 죽여 버리고 내가 저거 쓸래! 사람도 셋밖에 없다며!’ 하는 병신도 분명 나올 거거든. 돈 많이 벌었다면 소문도 돌고 있으니 조만간 무조건 그런 음습한 놈들이 몇 명 찾아오겠지.
따각, 따각.
잠시 눈을 감고 손 마디를 긁어대던 교수가 코듀로에게 말했다.
“코듀로. 앞으로는 우리 쉘터 사람 아니면 문 열지마. 내부 구조만 알아도 습격자한테는 훨씬 편하니까. 누가 열라 그랬어?”
“신시아님이요. 차 들어오기 힘들다고 저 사람들 오면 문 열어서 안쪽으로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스크랩 정리도 하시던데요?”
“보나마나 스크랩 중에 자기 가지고 싶은 거 꿍치려고 그랬을 거다. 앞으론 열지마. 이따 벡스랑 신시아 돌아오면 내가 했던 얘기 그대로 전해주고. 변종보다 사람이 더 위험하다. 벡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만, 걔 요즘 신시아 땜에 좀 느슨해진 것 같으니까.”
“왜 직접 전해주시지 않고…. 지금 바로 들어가시게요?”
“이안이 돌아오면 좀 오래 나와 있어야 할 것 같으니까. 지금 여유 있을 때 최대한 진행해 놓으려고. 접속기에 식사 유지 분말 좀 좋은 거로 채워놓고.”
“알겠습니다! 더 필요한 것 있으면 부르시구요! 고생하십쇼~!”
휭 하고 날아가버리는 코듀로. 아마 집 앞에 쌓인 그 ‘공물’을 치우러 간 모양이다.
“….다들 바쁜데, 나만 쉴 수야 없지. 빨리 씻고 들어가자.”
교수는 그렇게 의지를 북돋우며 온실에 위치한 샤워실 안으로 들어가 아무 생각 없이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쏴아아아-
그리고, 두 시간 동안 잊고 살았던 온수 샤워의 쾌락을 찬미하며 샤워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가 접속기에 들어간 것은, 실컷 놀고 상기된 얼굴로 돌아온 신시아와 벡스에게 며칠 동안 펌프가 퍼올린 물을 다 썼다고 한껏 잔소리를 들은 뒤 저녁까지 먹은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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