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29
Chapter.9 스타 폴(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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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나온 김에 할 일이나 하자고 생각했다. 킹스랜드 지리야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것을 찾아 미리 외워뒀으니 대충 찾아가서 전령의 편지도 전해주고, 전황이 어떻게 돼가는지도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위세를 떨치고 있는 교단의 용사인데, 당장 지휘관급 대우는 어려워도 정보 공유 정도는 충분히 해줄 테니까.
킹스랜드는 튼튼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건물들이 빼곡히 늘어선 도시였다. 계획하고 만들었다는 것을 자랑하듯 곧고 넓게 뻗은 길에 이 시대의 거리와는 다르게 빈틈이 없으면서도 통행이 쉽게 구획으로 나누어진 건물들. 70년 전에 로드릭은 언데드의 습격에도 정면으로 맞섰고, 그때 수도의 건물과 왕성까지 개박살이 나며 복구하는 과정에서 계획도시로 거듭났다고 한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냐면, 그렇게 골목이 훤히 뚫려 시원시원하게 만들어졌던 이 도시에, 대로를 제외하고 모든 골목이 온갖 천막과 가건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나라가 쫄딱 망할 정도로 대차게 말아먹었으니까 피난민이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 문제는 그 피난민들은 물론 그들이 골목에 얼기설기 쌓아 만든 가건물들 또한 매우 범상치 않아 보인다는 것이었다.
[정보 업데이트 : 엘프의 실로 엮은 천막, 안달리아산 적 마호가니로 만든 재활용 의자, 벽, 세공이 아름다운 유기 빗물받이, 드워프제 은제 식기, 찢어진 실크 드레스, / 종합 정보 : 대단히 고가의 쓰레기 더미.]잠깐 피난민 소굴을 슥- 훑어봤는데 나온 정보가 이 정도였다.
‘엘프의 실로 엮은 천은 완전 천연 식물소재라 질기면서도 입은 것 같지 않은 가벼움으로 인기가 많지. 고급 드레스의 안감으로 조금 사용하는 소재를 천막으로 만들 정도면 도대체 얼마짜리인 거야? 그리고 그 천막 아래 있는 어설픈 목재 더미. 곳곳에 다른 부분보다 밝은 곳이 있는 걸 보니 원래 하나로 만들어진 물건을 부숴서 저 피난처를 만드는 데 사용했군. 가구? 아니, 마차였구나. 저기 마차 바퀴가 테이블 윗부분으로 사용되고 있는 걸 보면. 거기에 은제 식기에, 테이블에, 설마 저거 티 세트인가? 저 지랄을 해놓고 차를 마시고 있다고?’
자세히 보니 그 괴상한 피난처 안에는 천막의 재료가 된 것 말고도 온갖 값진 물건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 가치 있는 온갖 물건, 부서진 마차, 그리고 피난민 주제에 잘 씻고 관리했는지 조금 흐트러졌지만 희고 고운 피부를 가진 사람들.
놀랍게도 골목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귀족이었다. 영지가 뮤트에게 점령당해 헐레벌떡 값진 물건만 바리바리 챙겨서 수도로 도망친 귀족들은, 킹스랜드의 몇 개 없는 골목을 차지하고 노숙을 하고 있었다.
‘그럼 옆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건 호위기사…. 가 아니라 하인이나 경비병 정도겠네. 기사는 다 방위군으로 모집됐을 테니까. 가문의 문장도 기억에 있는 게 하나도 없군. 고위 귀족은 아니고…. 작은 영지를 가진 약소 귀족이나 가문의 방계 정도 되는 것 같다.’
이들이 이렇게 돈 많은 귀족에서 돈 많은 피난민 신세가 된 이유는 뻔했다. 지금 킹스랜드에 돈 많은 약소 귀족 따위보다 중요한 사람들이 훨씬 많이 들어와 있으니까. 어쩐지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나라의 수도치고는 긴장감만 가득할 뿐 혼란과 공포가 없다 했는데 도시 전체의 가옥을 징발해서 평민들을 다 내쫓아버리고 각지에서 몰려온 용사대와 그 일행들, 피난 온 고위 귀족들의 가솔이 머물 숙소로 이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킹스랜드는 원래 평민이 거의 없었고 귀족들의 사택이 대부분이었으니 손님맞이용으로 사용해도 부족하지 않았겠지. 여관에 방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광명 교단의 위세 덕분이었겠군.
정치적 뒷감당 따위는 일절 생각하지 않은 파격적인 방법. 정말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해있긴 한 모양이다. 왕성에 자리가 모자란다고 귀족을 거리로 내몰다니.
“쯧. 킹스랜드에 오면 피곤할 줄은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피곤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거리를 활보하며 곳곳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예기와 마나에, 교수는 목에 걸고 있던 성물을 셔츠 밖으로 슬그머니 꺼내놓으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빨리 새 임무를 받아 이 복잡한 도시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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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컹!
“멈추시오! 이곳은 로 하람의 이름을 섬기는 곳!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도 함부로 들여보내 줄 수 없소!”
수도 킹스랜드에 위치한, 광명 교단의 본단 정문.
교수가 접근하자 눈부시게 하얀 갑옷을 입은 두 성기사가 창을 교차하며 앞을 가로막았다. 목이 단단히 쉰 게, 어지간히 많은 사람들이 교단의 정문을 두드린 것 같았다.
“라투라, 로 하람. 형제님의 앞길에 광명이 깃드시길. 교단 소속 용사 교수라고 합니다. 일전에 받았던 임무와 관련된 보고와 복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교단의 용사님이라면 분명 보고받은 내용이 있습니다. 잠시,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두 기사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오자, 나는 두말하지 않고 넬피아의 빛을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오는 동안 충분히 빛을 쐬어 주었는지 한눈에 봐도 성스러운 빛을 은은하게 뿌려내는 성물.
그 모습을 본 성기사는 곧바로 창을 치우며, 가슴에 손을 대고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라투라, 로 하람. 무례를 용서하시길. 최근 온갖 이유를 들어가며 교단의 부지에 들어오려는 이들이 늘어 경계를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개의치 마십시오. 저도 오는 길에 골목을 보고 와서 이해합니다.”
“역시 용사님다운 통찰력이십니다. 안 그래도 도가 심한 몇몇은 지금 본보기로 교단의 지하감옥에 들어가 있습니다.”
허허 웃는 얼굴로 맞장구를 치던 교수의 얼굴이 뜨악해졌다. 막는 건 당연하지만, 죄도 없는 귀족을 지하감옥에?
– Jokass : 지하감옥? 그거 사실상 천천히 말려 죽이는 처형장 아냐?
– 하이웨이나초맨 : 천천히도 아니지. 민간인은 거기서 24시간 인간 소리굽쇠가 된지 5일도 안돼서 미치거나 죽잖아.
– 노루Drug해요 : 미친놈이 미친짓 하는거야 당연하지만, 그래도 본단 사람들 정도면 어느정도 이성이 있을텐데?
내 말이. 아무 귀족이나 잡아 죽였다가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
성기사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바이저 안의 눈꺼풀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말을 이었다.
“조금 의외라는 표정이군요. 교단은 지금 악신과 인류의 존망을 건 사투를 앞두고 있습니다. 교단이 성전에 임하고 있는 지금 속세의 모든 굴레는 광명의 이름 앞에 허울이 될 뿐이지요. 성전을 준비하기 위해 혹사당하는 사제님들을 귀찮게 하고 욕설을 퍼부은 자들이니 이단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단은 정화해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 takealook : 우린 그걸 ‘처형’이라고 부르기로 약속했어요. 그게 사회적 약속이랍니다?
– 노루Drug해요 : 쉿! 아무 말도 하지마! 저 새끼 눈 못봤어? 아주 훼까닥 돌아갔다고! 저건 살인자의 눈이야!
성기사는 정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이름없는 귀족의 끔찍한 최후가 그의 잘못이라 믿고 있는 눈치였다. 갑자기 등골이 좀 오싹해졌다.
‘생각해보니 광명 교단은 GG 공인 미친놈 집단 중 하나인데, 지금은 무려 [악신의 준동 + 그놈들한테 교단 본단이 날아갈 위기에 처해있음] 이라는 발작 버튼이 마구 연타당하는 상황에 처해있잖아? 모르긴 몰라도 평소보다 배는 더 미쳐있지 않을까?’
나는 평범한 용사가 아니라, 지금 하프 뮤트 비스무리한 것으로 알려져 일종의 사상 검증 중에 있는 몸. 반은 악신의 종자와 같은 몸을 한 내가 저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과연 저 많은 사제와 성기사들 중 이성을 잃고 나를 ‘정화’ 해버리려는 이가 한 명도 없을까? 흑마법사의 ‘흑ㅁ-’ 까지만 들어도 고아원을 운영하는 인자한 수녀님이 공포영화의 크리처로 변해버리는 이 광명 교단에서?
….꿀꺽.
“이런, 제가 바쁜 형제님의 시간을 빼앗고 있었군요. 어서 들어가시지요. 용사님!”
“아, 아니, 잠깐….”
“대주교님이 용사님으로 확인된 분들은 서둘러 안으로 모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두르시지요! 귀찮은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시라도 더 빨리 이단을 장작 위에 쌓아 올릴 수 있지 않습니까! 얼른! 한시라도 더 빨리!”
“어, 어어어어….”
머뭇거리던 교수는 성기사 둘의 희번뜩 거리는 눈빛에 밀려 안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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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누토 형제님! 북부의 대기에 관한 자료는 멀었습니까!”
“광명이시여! 파나셀 지역에 매복한 형제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다미아노 형제님! 다미아노 형제님 어디 계십니까!”
….꿀꺽
내 평생에 신전이 이렇게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운 건 처음 봤다. 수많은 사제들이 통신 마법을 사용해 각지에 흩어진 성기사들과 사제를 통해 정보를 받아 처리하고, 또 새로운 지시를 보내주고 있었다.
“어, 저기….”
“비키시오!”
“저기, 세나디스 주교님은 어디….”
“통신 마법 연결됐습니다. 전사자 명단…. 받아적겠…. 크흡!”
“아, 아닙니다….”
도대체 이 시장바닥에서 누구한테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몰라 교수가 얼쩡거리던 사이,
투욱!
와르르르!
양피지를 산더미처럼 들고가던 수도승 한 명이 나를 보지 못하고 부딪혀 양피지가 우르르 쏟아지고 말았다.
“이런, 서부지역에서 온 정보들이! 형제님! 성전사와 성기사는 안이 복잡하니 신전 밖에서 내빈들과 불쾌한 이단 놈들을 막아달라고 내 누누이-”
“아, 미안합니다. 교단에서 저를 찾는다기에….”
어깨가 부딪히자마자 부적처럼 성물을 꺼내 들었다.
“성물…. 용사님이십니까?”
“예. 일단은 그런데….”
“그럼 지금 예서 뭐 하시는 겁니까! 회의가 시작한 지가 언젠데!”
“예?”
“모르셨습니까? 오늘 정오에 저희 광명교단 본단에서 킹스랜드에 모인 용사들 및 로드릭 총사령관, 그 예하 사령관이 모여 앞으로 전략에 대한 회의를 하겠다고 분명히 전달하지 않았습니까!”
회의고 나발이고 금시초문이다.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킹스랜드에 모인 용사의 대부분이 참석하는 자리에 우리 광명 교단의 용사가 불참하다니, 그런 불명예가 있나! 서두르시지요! 이쪽입니다!”
수도승은 벌컥 성을 내더니 혼란스러운 사제들을 사이로 길을 내어가며 나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저…. 형제님?”
“말씀하시지요.”
“제가 회의 내용을 전달받지 못해서 그런데, 혹시 어떤 안건으로 모였는지 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거의 다 왔으니 짧게 말씀드리지요. 회의는 크게 두 가지 안건을 협의하기 위해 열렸습니다. 악신에 대한 정보의 공유와, 각국에서 모여든 병력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입니다.”
‘정보의 공유는 그렇다 치고…. 병력 배치를 회의로 결정한다고?’
아오 씨부럴. 된통 걸렸네.
대충 들어도 그리 조용히 끝날 내용의 회의가 아니었다. 애초에 전쟁을 앞두고 총사령관을 뽑는 이유가 무엇인가? 적어도 제일 중요한 일은 한 사람이 결정하게 만들어 명령에 통일된 맥락을 만들기 위함이 아닌가?
전쟁을 하다보면 다소 위험한 자리에 들어갈 수도 있고, 아군의 더 큰 이득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이들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그걸 회의로 결정한다고? 심지어 한 나라에서 모인 지원군도 아닌, 수많은 국가에서 지원군을 데리고 모여든 용사님들이랑? 아이고 머리야. 어떤 빡대가리가 그런 생각을 한 건지.
처억!
“정지. 신원을 밝혀라.”
벌써부터 난장판이 될 회의장을 생각하며 고심하던 중, 정문에서와 마찬가지로 성기사 둘이 나타나 창을 교차하며 앞을 가로막았다.
“라투라 로 하람. 널리 빛이 함께하시길. 광명의 종자 레오비노, 용사….”
“교수.”
“…교수. 교수님을 회의장으로 안내해 왔습니다.”
“….라투라 로 하람. 잠시 확인하겠다. 혹시 악신의 사특한 종자가 숨어들어올 수도 있는 노릇이니.”
절걱. 절그럭.
그를 향해 다가오는 성기사를 보며 교수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안한 것처럼, 묘한 기운이 가슴을 죄어오는 느낌.
“….죄송하지만 형제님의 존함을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교단의 용사라면 로하람께서 직접 선택하신 그분의 도구. 말씀을 낮춰주십시오. 평범한 성기사 그레고리오입니다.”
겸손한 어조와는 다르게 번뜩이는 눈빛. 그레고리오는 충분히 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 간장게이바 : 지랄하네. 그레고리오면 그 새끼 아냐. 정화자 그레고리오 가르니에르.
– Jokass : 정화자면…. 그 방화광?
– 간장게이바 : 그래! 3월드 흑마법사 사냥 시즌에 공적 강탈 1위로 유명한 놈! 광명교단 성기사단장이다! 조심해! 잘못 보이면 일단 불붙여놓고 질문하니까!
‘망할. 그런 놈이 왜 회의실 앞에서 도어맨이나 하고있는 거야?’
[우읍, 으음. 이게 뭐야? 전투야? 뭔 이상한 기분이…. 또 싸움났어?]‘….아냐. 아직은.’
위기를 감지한 하이드가 깨어나는 소리를 들으며, 교수는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비록 순수 기사가 아니라 성기사였지만, 그가 내뿜는 홀리 오러는 진짜였다. 마치 그의 근처에 있던 배경이 지워지면서 그레고리오만 눈에 가득 차는 것 같았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대가 진정으로 순수하다면 해가 없을 테니.”
“어, 순수라고 하긴 좀 그런데, 잠깐 설명을 좀….”
“미안하지만 거절할 권리는 없습니다.”
성기사는 기도문을 중얼거리더니, 일반 사제들의 주문과는 그 빛의 밀집도가 압도적으로 다른 빛무리를 손에 담고 말했다.
“작은 불씨 하나로도 어둠을 밝히는 데 부족함이 없으니. [라이트(Light)]!”
후아아악!
눈이 멀다 못해 두개골을 뚫고 뇌 속으로 파고드는 것만 같은 빛. 그 빛 속에서 교수는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꼈지만, 하이드는 아니었다.
[우아아악! 뭐야! 뭔데 이거! 안 싸운다며! 아직 아니라면서어어어!!!]스릉!
빛의 파도 속에 허우적거리는 하이드의 비명 저편에서 서늘한 검날이 빠져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후후후. 역시. 한 놈 정도는 반드시 올 줄 알았지. 악신의 하수인이여. 교단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이 아닌가.”
“뭐, 뭐요? 내가 뭘…!”
“시끄럽다! 이미 네 속에 숨은 또 다른 존재가 광명의 손길 아래 고통스럽게 허덕이는 것을 파악했으니! 필경 마법사들이 말하던 인섬니아 크랩이라는 존재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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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그러고 보니 얘들은 아이작이 그렇게 가버린 이후로, 마탑의 고위 마법사조차 조종할 수 있는 기생 뮤트를 엄청 경계하고 있었지!
후우우웅-
‘저, 저저저 새끼 오러 뽑았어! 진짜 날 죽일 생각이야! 지 혼자 결론 내놓고 사람부터 썰고 볼 생각이라고!’
말려야 한다. 적수가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광명 교단 본단에서 성기사단장이랑 싸우면 그냥 게임이 끝나버린다고!
“오, 오해다! 나는 매우 특별한 경우라-”
“레오비노 형제! 귀를 막으라! 신전의 수많은 형제들의 이목을 속일 만큼 악신의 사술에 능한 놈이니!”
젠장! 뭔 말을 해도 들어먹질 않으니 설득이 안 되잖아! 말이 통할 만할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교수의 눈이 불길이 일렁이는 성기사의 뒤쪽 커다란 문을 스쳤다. 문이라기보단 목재 조각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정교하고 웅장한 장식이 된 회의장 입구.
“….블러드 아머.”
촤아악!
교수의 팔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형태를 잡는 것을 보며 그레고리오는 비릿하게 웃었다.
“이 상황에서 회개가 아니라 저항을 선택한 것인가? 역시 악신의 하수인답게 폭력적이구나, 이단자. 네 아무리 사특한 재주를 선보인들, 로 하람께서 내게 내려주신 이 빛을 넘어서지 못하리라. 네놈의 사지를 태워 가장 높은 장대에 매달아 둔 다음, 악신의 종자를 용사로 추대한 그년도 함께 매달아 사악한 술수를 낱낱이 고하게 해주마!”
“씨발 니가 손에 들고있는 건 폭력의 정수가 아니고 뭔데! 말을 하면 쳐 들어먹으란 말이야 이 싸이코 새끼야!!!”
투확!
성기사와 교수의 몸이 서로를 향해 쏘아져 나가며, 붉은 건틀릿과 흰 불길이 일렁이는 검이 교차했다.
쩌거걱!
마치 교본과도 같은 깔끔한 가로베기. 일격에 건틀릿이 깨지고, 오러가 팔을 갈랐다. 연이어 이어지는 2격이 머리를 향해 섬전처럼 들어오고,
차자작!
떨어진 팔을 뒤덮고 있던 블러드 아머가 피로 돌아가며 그레고리오의 얼굴을 향해 쏟아졌다.
“잔재주를! 피를 이용한 사술이라니. 악신의 수하답구나!”
촤악!
교수의 머리 지척에 닿아있던 그레고리오의 검이 관성을 무시한 듯 되돌아오더니, 불길을 일으켜 피를 모두 증발시켰다.
여기까지가 첫 돌격 후 스쳐 지나가는 찰나에 일어난 교환이었다. 단 한번의 교차에 팔을 잃은 교수와, 제 실력조차 보여주지 않은 성기사.
‘여기까지 침투한 놈의 유창한 언어를 보아 그 유명한 [말하는 뮤트]가 틀림없으리라 여겼는데. 뭔가 다른 숨겨둔 수가….?’
차이가 명확했지만 그레고리우스는 방심하지 않았다. 팔을 잃고 발악할 이단을 끝장내기 위해 반전한 순간,
타다다닥-
“그거 너 가져라 병신아!”
교수는 그와 격돌한 그 방향으로 쭉 달려가고 있었다.
애초에 저놈은, 아니 교단의 대부분은 이성의 논리 따위는 들어먹지 않는 광신도. 미친놈이긴 했지만 아군이랑 피터지게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 저 유인원 같은 새끼 말고 말이 들어먹히는 사람을 찾아가야지!’
뒤늦게 교수의 의도를 눈치 챈 성기사가 따라붙었지만, 이미 교수의 남아있던 왼팔이 문을 향해 휘둘러진 뒤였다.
콰앙!
문이 날아가고, 달리던 기세 그대로 안으로 뛰쳐들어간 교수는 그대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수십 개의 날붙이를 향해 두 팔을 번쩍 들고 소리 질렀다.
“사람 살려!!!! 미친 살인마가 사람죽인다아아!!!!”
“오, 오해다! 저자는 분명 이단의….”
“으아아아아악! 내 팔! 팔이! 내 팔이이이!!! 신관! 신관 불러어어어!!!”
뒤 따라 들어온 그레고리오가 칼을 뽑아든 수많은 용사들 앞에서는 멈춰 서는 것을 보며, 교수는 더욱 힘껏 소리를 질렀다.
‘자고로 앞뒤 모를 때는 목소리 큰 놈이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다! 여기서 누가 자초지종을 설명해보라고 하는 순간, 넌 좆됐어 이 새끼야!’
각국에서 모인 용사들. 교단의 어두운 부분을 이해하고 정보단체까지 운영할 정도로 이성이 남아있는 주교급 사제들. 저들은 이 멍청이랑 다르게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교수는 성화가 일렁이는 검을 들고 어쩔 줄 몰라하는 그레고리오를 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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