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39
Chapter.9 스타 폴(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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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균형이라…. 판타지 세계관에서 체공 중인 물체의 균형을 잡을만한 기술이라….”
“대장, 밥 먹으면서 뭘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소?”
“쯧쯧쯧. 정신 차리시게. 그러다 스프 다 흘리겠네.”
“응? 아, 어어. 수계마법으로 통째로 물 안에 넣어서, 아니 그럼 질량이 말도 안 되게 상승하니까…. 우왁 뜨거!”
“내 저럴 줄 알았지.”
오트만은 혀를 차며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붙잡은 스프를 다시 교수의 그릇으로 돌려보냈다.
“자네 레이 라인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영 이상하네! 조금 전에도 그렇고, 전투 중에 집중도 잘 못 하고! 오늘 낮에도 자네가 맡은 부분에서 구울 몇 마리가 안쪽으로 새는 바람에 큰 사고가 날 뻔하지 않았나!”
쩝. 할 말이 없군.
오트만의 말대로 요즘 나는 제대로 집중을 못 하고 있었다. 교단의 관리가 뜸해져서 그런지 성수에 푹 절어서 은은한 성광을 내뿜는 레이라인에도 주변에서 흘러든 언데드가 종종 돌아다녔으며, 그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방금 전처럼 딴생각이나 하고 있다가 큰 사고가 날 뻔한 것이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지만….
‘아쉬운 걸 어떡해!’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 했던가. 밤마다 모형 비공정을 위이잉- 띄워대는 로만을 보고 있으니 겉으로는 ‘에잉, 쓸모도 없는 거’ 하면서도 내심 ‘어떻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냥 잊어버리기엔, 비공정이라는 존재가 가져다줄 이득이 너무 컸다.
‘로만이 자기 입으로 균형 잡는 것 말고는 전부 다 해결됐다고 했어. 그 균형만 해결된다면, 이 전쟁의 판도 자체를 뒤집을 수도 있는 발명품이란 말이다! 보급? 날아서 해결하면 되지. 전투? 비공정에 기름만 잔뜩 실어 날라도 6급 이하 하급 뮤트는 죄다 몰살이니 물량전의 부담을 반토막 낼 수 있고. 아군의 이동속도도 대폭 늘어날 테니 지휘하는 입장에서 전략을 훨씬 유동적으로 짤 수 있을 거야. 제공권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관에서 비행 유닛의 존재는 사기라고 사기!’
다른 건 다 해놨고 균형 잡기 하나만 해결하면 된다는데, 그게 해결되면 게임 전반적으로 해결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가뜩이나 단조로운 레이라인 초입인데, 시도 때도 없이 모형 비공정을 날려대는 로만도 있으니 머릿속에 자꾸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다. 이렇게 해보면 될 것 같은데. 저런 방법도 가능할 것 같은데.
마침 대화방에 GG의 세계관 안에서 기술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한 사람 중 한 명인 골드만 아저씨가 있어서 어떻게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현실에서 가능한 기술이면 죄다 그 거지 같은 [기술의 악마] 설정에 걸린다고 봐라.’
‘예?’
‘GG의 설정! 플레이어가 들여온 현대의 기술은 죄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서 적의 손아귀에 넘어간다는 설정 말이다! 그거 들여온 방법이 아니라, 결론에 의한 판정이거든. 네가 아무리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해서 게임 속 NPC가 현대의 기술을 재현하게 만든다고 해도, 네가 관여한 인물의 손에서 현대의 기술이 탄생하는 순간 그대로 아웃이란 말이지. 내가 영지에 풍차 하나 도입하려고 온갖 수작을 다 부리다가 말아먹은 캐릭터가 다섯이다. 3개월에 걸쳐서 언급도 안 하고 그냥 [바람은 항상 부는 것인데…. 그 큰 힘을 어떻게 할 수 없으려나?] 이런 말이나 중얼거리고 싹수 있는 놈한테 단풍나무 씨앗 같은 걸 선물해서 겨우 풍차 개발에 성공하긴 했는데, 딱 한 달 뒤에 인접한 영지의 귀족이 무슨 바람 마법사를 섭외하더니 [풍력 돌진 충차] 같은 걸 개발해서 성문을 박살 내고 내 영지를 따먹더군.’
‘그럼…. 사실상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방법이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 없지. 방법이 있다면 아예 새로운 것, 그러니까 판타지에서는 가능해도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찾아내는 것 말고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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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더라. 요약하면 무슨 수를 써도 ‘아아, 이것은 현대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플레이는 불가능하니 세계관 내에서 쥐어짜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올린 게 마법이었다. 현실에는 없고 판타지에는 있는 기술. 그게 마법이잖아? 심지어 나는 마법사다. 그 희귀한 마법사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인 만큼, 나야말로 그동안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기대하고, 또 피눈물 흘리게 한 로망 가챠맨의 절기, 비공정을 완성할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하하하하! 나라고 그 생각을 안 해봤겠나! 나도 과거에는 수계 마법사였거늘!’
‘이, 이거 안돼? 균형이 문제라며! 배의 선창에 물을 채우는 것처럼 비공정의 아랫부분에 물을 채워서 균형을 유지하면….’
‘불가! 가만히 떠 있는 정도라면 그것만으로도 가능하겠지. 허나 비공정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네! 자네가 생각한 물을 이용한 균형추는 관성을 받는 순간 배를 뒤집는 족쇄로 변해버리겠지.’
‘그 부분은 마법으로 해결하면 되잖아? 물의 [조형]관련 깨달음을 얻은 마법사는 물을 푸딩처럼 잘라서 집도 만들고 가구도 만들고 한다던데!’
‘애석하게도, 비공정을 구성하는 온갖 마도공학 회로에는 깨알같이 작은 공마석이 잔뜩 들어가 있다네. 회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일부 방을 제외하면 비공정의 대부분이 얇은 마력 반발장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작은 마법은 유지시키는 게 가능하지만 비공정 전체에 영향을 미칠만한 규모의 마법은 사용할 수 없네. 그런 맥락에서 마법사를 여럿 태워서 마법보조로 비공정을 운행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내 발명품은 어디까지나 마도공학을 이용한 발명품이니까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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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서 손을 꼬옥 잡아주더라. 그래도 진지하게 고민해줘서 고맙다나.
‘이제 레이라인에 들어온 지 사흘째. 슬슬 헤어질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정말 단순히 실패한 랜덤뽑기인 건가?’
배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대 마법은 공마석 마력회로 특성상 사용 불가. 현대 기술 도입 불가. 방법이 있다면 오직 마도 공학을 이용한 방법뿐인데 현 시대에 저 정도 마도공학 지식을 가지고 있는 NPC는 로만 하나뿐이다. 플레이어가 개입하지 않으면 실패가 예정된 발명품인데 손댈 구석이 없다니. 사실상 외통수가 아닌가?
쿠웅!
콰드드득!
“으아아악!”
“습격이다! 이번에는 몬스터야!”
“코카트리스다! 석화 브레스를 조심해!”
“….쯧. 이젠 생각할 시간도 안 주네.”
산맥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올수록 언데드나 몬스터의 습격이 잦아지는 게 중심부에 제법 다가온 모양. 아무래도 오늘 안에 상단과 갈라서야 할 것 같았다.
‘상단 쪽이랑은 벌써 얘기해 뒀으니까. 아마추어도 아니고, 우리가 난리를 피우는 동안 전력으로 도주하는 정도는 가능하겠지. 능선 반대편은 제국이 관리하는 곳이기도 하고.’
“꾸에에에에에엑!!!”
“꼬고오옥! 끼이이익!”
“섣불리 접근하지 마라!”
“닭처럼 생겼다고 얕보지 마! 부리로 강철 방패를 찢는다!”
교수는 코카트리스를 쳐다보지 않기 위해 방패를 들고 접근하는 용병들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쉽지만, 비공정에 대한 미련은 털어내는 것으로 마음을 먹으면서.
“그러지 말고 야영지 천막 다 걷어와! 눈 쳐다보면 굳는 것도, 석화 브레스도 천막 하나 뒤집어씌우면 전부 해결되니까!”
“옛! 용사님!”
어느덧 손발이 제법 맞게 된 용병들 사이를 지나, 코카트리스의 머리를 향해 힘껏 도약하는 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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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 같은 소리하네! 유우우우-레카아아아아!!!!!”
그렇게 10여분 뒤, 교수는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코카트리스의 목에 매달려 힘껏 놈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꿔어어억! 끼이이이익! 꼬고옥! 꾸에에에에에엥!!!!”
“꽉 잡아!”
“단장님! 브레스 샙니다 브레스!”
“물 보호막 받은 놈이 기름 젖은 솜으로 더 틀어막고! 화살에 바르는 뱀독 들어있는 병 다 가져와! 코카트리스의 브레스는 뱀독에 튕겨나간다!”
“키, 킹스랜드에서 5천 실링이나 주고 산 독이 가득 들어있는뎁쇼?”
“싹 다 버려! 액화된 코카트리스의 브레스가 그것보다 20배는 더 비싸!”
“우아아악! 날개 묶은 밧줄이 풀렸어! 용사님! 용사니이이임!”
“꾸에에엑! 끄아아악!”
“버텨봐! 이놈만 묶어놓고 금방 갈 테니까!”
상단을 습격한 코카트리스 세 마리는 평범한 개체보다 훨씬 강력한 편이었다. 깃털인지 쇳덩어린지 모를 놈의 비늘 섞인 깃털은 때릴 때마다 금속음이 들리는 게, 광폭화 없이 타격으로 잡으려면 충격으로 팔 한두 개는 날려 먹거나 블러드 아머로 마나를 다 써버릴 각오를 해야 했는데, 이제 곧 산맥 안쪽으로 들어가 상단이 도주할 동안 온갖 난리를 피워 시선을 끌어야하는 입장으로서 그런 종류의 소모가 썩 불편했던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그냥 놈의 닭대가리에 달라붙어 힘으로 목을 비틀어버리는 것. 그렇게 용병들이 합심하여 천막을 뒤집어씌운 놈의 머리에 달라붙어 힘으로 닭 모가지를 비틀어대던 중,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꾸에에엑! 께겍! 케에엑! 께에에에엑!”
“아이고오오! 용사님! 도대체 이놈들을 생포해서 어디다 쓰신다고….”
“밧줄 단단히 당기고 있으쇼! 금방 다시 묶어놓을 테니까!”
처음 한 놈의 목을 꺾어버린 다음 브레스를 피하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던 용병들에게 남은 놈들을 생포하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다들 미친 사람 보듯 했지만, 결국 천막을 덮어씌우고 교단에서 가져온 축성 받은 밧줄까지 꺼내 들자 어떻게 놈들을 생포하는 데 성공하긴 했다.
“꼬에에에엑! 께에에엑!”
쿠웅! 쿠웅!
화다닥! 화닥!
“대장! 닭대가리 위에서 뭐 하는 거요!”
“으하하하! 보르카! 이것 좀 보라고! 안 흔들려! 흔들리지 않는다니까!”
“또 광증이 도져서는. 저렇게 날뛰는 몬스터 머리 위에서 무슨 소리를….?”
다들 죽을힘을 다해 생포한 코카트리스를 제압하고 있는데 장난질이라니. 하지만 놈의 머리 위에서 꼼지락거리던 교수를 한심하게 보던 보르카의 눈빛이 의문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의 예리한 시력에 교수가 코카트리스의 머리 위에 올려놓은, 물을 가득 따라놓은 컵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말뚝과 연결된 밧줄에 묶여서 뛰거나 달려들지는 못하지만, 필사적으로 홰를 치며 거대한 몸을 흔드는 코카트리스. 하지만 놀랍게도 놈의 머리 위에 올려둔 물컵은 약간 찰랑거리기만 할 뿐, 미친 황소처럼 날뛰는 코카트리스의 머리 위에서 쓰러지지 않고 당당히 서 있는 게 아닌가?
“어때! 겁나 신기하지!”
“그건 또 뭔…. 마법 장난 같은 거요?”
“마법은 무슨! 나 손 놓고 있는 거 안보이냐? 마법이 아니라 원래 이런 거야! 닭대가리는 다 이렇게 움직인다고!”
닭 머리는 균형을 잡기 위해 몸통과 분리되어 움직이는 독특한 습성을 지녔다고 한다. 몸통을 잡고 흔들어도 고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닭의 머리처럼, 닭대가리를 가진 코카트리스도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비공정의 균형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던 내게 이 자동 수평 유지 닭대가리는 놀라운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께게에에엑! 꾸에에엑!”
“노툼! 알드리치! 이놈 영혼 좀 봉인할 물건 없습니까! 되도록 작은 거!”
“코카트리스의 영혼을 담을 생각인가? 으음…. 나는 사람의 영혼만 다룰 수 있어서….”
“노툼! 저번에 보니까 뼈만 남은 들개 영혼 같은 거랑 놀고 있던데!”
“그웍. 큰 작은 인간. 영혼 담을 용기가 필요하다. 이빨이나 뼈. 신체의 일부 같은….”
콰직!
“옛다!”
“으아아악!”
“용사님! 손이이이이!”
“교단의 용사님이 자해를 하신다!”
“아냐 임마! 어차피 브레스 묻어서 버리려던 손이다!”
내 주변에서 코카트리스를 묶은 밧줄을 잡아당기던 용병들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는 동안, 노툼은 피부가 살짝 석화된 내 손을 만족스럽게 슬슬 쓰다듬더니 목에 걸고 있던 그녀의 토템을 들어올렸다.
“셋 하면 목을 비틀고 큰 작은인간, 밧줄 잡은 인간 모조리 도망쳐라. 휘말리면 죽는다! 하나!”
“자, 잠깐만! 이 닭대가리 무슨 럭비라도 하는지 목이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가….!”
“둘!”
자그라락, 자가가각! 자그락자그락자그락자그락!
“귀, 귀신이다! 트롤님 옆에 귀신이! 다, 단장님!”
“밧줄 놓고 뒤로 빠져! 휘말린다!”
“으아아악! 뒤져 이 닭대가리에! 목에 힘 빼! 빼라고오오오!!”
“께에에에에엑! 꾸아아아아악!”
“셋!”
우득!
“Mashar ga urca! Chirxen! HOMA!!!”
[끼이이이이이이익!!!!]내가 닭 모가지를 비틀고 몸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한 손에는 회색으로 물든 내 손을, 다른 손에는 그녀의 토템을 든 노툼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강하게 외치자 축 늘어진 코카트리스의 머리에서 희끄무레한 영혼이 비명을 지르며 끌려 나오는 것이 보였다.
“De Mato! HOMA! Chirxen DUKAaaaa!!!!”
[께에에에에엑! 끼아아아아악!]바람도 불지 않는데 노툼의 옷이 펄럭이며, 끌려나온 코카트리스의 영혼이 그녀의 말에 괴로워하더니 잘린 내 손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털푸덕!
목이 비틀린 코카트리스가 쓰러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주변에 몰아치던 서늘한 공기도, 구름 한 점 없이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던 공기도 언제 그랬냐는 듯 깔끔하게 되돌아갔다.
“크흥! 끝났다.”
“으, 으아아아….”
노툼이 콧김을 내뿜으며 말하자, 용병 중 한 명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스르륵 주저앉는 게 보였다. 그의 사타구니에서 점점 얼룩이 번지는 게 보였지만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나 빼고 노툼의 주문에 가장 가까웠던 녀석이었거든. 가뜩이나 미신에 약한 용병이 눈을 회까닥 뒤집고 구름 같은 영혼들을 휘두르며 알 수 없는 언어로 주문을 외우는 트롤 앞에 노출됐으니. 앞으로만 지린 걸 칭찬해줘도 될 수준이다.
“돼, 됐어?”
“확실하다. 큰 닭, 돌 손아귀 안에 갇혔다.”
지친 듯 그 자리에 주저앉은 노툼이 임시 영혼항아리가 된 내 손을 내려놓자 조금씩 움찔거리던 손이 점차 기운을 차리더니, 이내 중지 끝부분을 닭 머리처럼 굽혀서 높이 들더니 나머지 손가락으로 뒤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까딱, 까딱
뒤뚱, 뒤뚱
“그웍. 나는 여기까지 밖에 모른다.”
“여, 여기서부터는 내가 하지!”
상단 사람들과 함께 입을 헤 벌리고 구경하고 있던 알드리치는 퍼뜩 정신이 든 듯 혼란스러워 보이는 회색 손을 주워들어 품에서 꺼낸 시약을 뿌리며 마법적인 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놀라울 정도로 영혼이 안정되어있군. 보통 영혼술은 어느 정도 혼과 교감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종족의 영혼을 상대로 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웍. 애초에 인간도 나한테는 다른 종족이다. 어미와 헤어지고 나서 내가 만난 모든 생명체는 이종족이었다.”
“그런가! 흔히들 유아기는 영혼의 형상이 만들어지는 시기라고 하지. 노툼 이 친구의 영혼은…. 아무래도 스스로와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기에 대단히 적합한, 신축성이 넘치는 모습으로 형성된 모양이야. 그나저나, 방금 그 주문은 뭔가? 내가 알려주기는커녕 들어본 적도 없는 언어였네만. 아무리 네가 천재라고 해도 이건….”
알드리치의 의문에 노툼은 성가신 파리를 쫓아내듯 손을 휘두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며칠 전부터 조상인지 선조인지 하는 이상한 영혼들이 자꾸 찾아와서 이것저것 가르쳐댄다.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자꾸 귀찮게 해서 소리 질러서 쫓아냈는데,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타난다.”
“선조라니, 설마 트롤 선조령을 말하는 건가? 어, 어떻게 생겼더냐?”
“세 명. 재수 없고 늙은 트롤 얼굴이었다.”
“자세히!”
“그우우. 수염에 나무 뿌리가 잔뜩 붙은 트롤이랑….”
“또!”
“뭔가 실실 웃고 있는, 눈이 새빨간 암컷이랑….”
“또!”
“수염이 풍성하고, 멋들어진 어금니가 있는데 왼쪽이 부러진-”
와락!
“부러진 왼쪽 어금니! 얼굴을 사선으로 가로지른 깊은 흉터! 트롤 답지 않게 묶어서 정리한 머리칼과 수염! 맞나!”
“어…. 귀신 늙은이도 이놈들 보나? 빨간 눈이 절대 못 볼 거라고 자신하던데….”
“반쪽 어금니 마그나우카! 70년 전 프린세스 일가의 대영웅과 함께 언데드의 준동을 막아낸 트롤 대족장이로군! 다른 두 영혼도 그에 준하는 영혼이라면, 당연히 그들이 원치 않을 때는 볼 수 없겠지! 그들의 영혼은 나 같은 일개 술사보다 훨씬 드높은 경지에 이르렀으니 말이야!”
어느새 노툼에게 달려든 알드리치는 평소의 퉁명스러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한 모습이었다.
“어쩐지 네 재능이 말도 안 되게 출중하다 했더니! 너는 그들에게 선택받은 게야! 트롤이라는 종족 중에서도 아주 소수만 가지고 태어나는 재능, 태고의 신비에 가까운 그들의 주술! 그 정수를 이어받을 계승자로서 말이다!”
“….귀신 늙은이 스승? 이놈들이랑 짰나? 똑같은 말 한다.”
노툼의 긍정 아닌 긍정에, 알드리치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있었다.
“이, 이럴 게 아니지. 나랑 잠깐 가서 얘기 좀 하세. 전대 트롤 대족장의 선조령 들이라니! 내 그들과 영혼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아!”
휘익!
“저…. 알드리치?”
“방부처리, 영혼 밀봉, 영 암각화까지 모두 끝내놨네! 이제 그 틀에 큰 충격을 주지 않는 한 거기 담긴 영혼은 그 손을 자기 몸처럼 여기게 될 게야! 바쁘니까 말 걸지 마시게!”
내가 묻기도 전에 원하는 대답과 함께 코카트리스의 영혼이 담긴 손을 던져준 알드리치는 생일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눈을 빛내며 노툼과 함께 상단 구석으로 사라졌다.
까딱, 까딱? 콕 콕-
한바탕 난리에 굳어버린 사람들 사이로, 바닥에 떨어진 손가락이 모래를 쪼아대며 뒤뚱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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