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40
Chapter.9 스타 폴(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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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 자박
콕, 코곡!
파닥 파닥!
“어, 어때?”
“이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접근이로군. 놀라워…. 정말 놀라워!”
[비공정의 균형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는 내 말에 짐 더미 속에서 비호처럼 튀어나온 로만은, 지금 나와 같이 종종거리며 바닥을 돌아다니는 내 손이었던 영혼항아리를 관찰하고 있었다.머리로 흙을 쪼아대는 모습이나 새끼손가락과 엄지를 둥글게 말아 홰를 치는 모습이 누가 봐도 닭과 같은 영혼항아리.
“흑마법을 이용해 동물의 영혼을 추출하여 그 감각을 이용한다….”
“그래! 솔직히 흑마법이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코카트리스의 영혼이 머리 부분이 흔들리지 않게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잖아? 이 감각과 비공정을 마력회로로 동기화시키면 되지 않을까?”
자세한 원리나 과정 같은 것은 나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 당장 데스나이트만 해도 죽은 기사의 영혼을 다른 훌륭한, 흑마법사가 준비한 육체에 넣어 만들어진 몬스터인데 생전과 같은 방식으로 흑마력의 오러를 휘두르잖아? 저 코카트리스의 영혼이 내 ‘오른손이었던 것’ 안에 들어가서도 닭처럼 행동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영혼에 새겨진 행동 원리? 뭐 그런 것일 테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행동에 반응하는 마력회로…. 아냐. 지연시간 동안 균형을 잃고 추락하겠지. 감각의 동기화…. 영혼의 수명…. 지속성…. 탑에서 연구할 때 초청된 마법사가 영혼의 형태에 대한 강의를…. 데이터가. 더 명확한 데이터를 위한 연구가 필요해!”
벌떡!
“교수! 그러고 보니 아직 생포한 코카트리스가 한 마리 남았지!”
“어? 그, 그렇지?”
“그럼 험하게 써도 되겠군! 이것 좀 쓰겠네!
후다다닥!
내 말이 영혼항아리를 실험으로 날려 먹어도 된다는 허락으로 들렸는지, 로만은 말이 떨어지자마자 영혼항아리를 들고는 냅다 뛰기 시작했다.
툭!
“어이쿠! 이봐, 조심해! 여긴 비싼 사막국가의 공예품이-”
퍽!
“바빠 죽겠는데 뭐하는- 로만? 어이! 앞에 보고 다녀!”
잠시 뒤, 어린아이가 바닥에 쏟아놓은 장난감처럼 흩어진 부품들 사이에서 마력 인두가 회로를 연결하는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서 구경하려던 순간, 누군가 내 옷깃을 붙잡아 나를 멈춰 세웠다.
“쉬잇! 저 사람, 그냥 내버려 두세요. 저렇게 됐을 때 방해하면 불같이 화를 내거든요!”
“음? 넌 누구니?”
“아이 참, 일단 이쪽으로 오시라니까요!”
옷깃을 붙잡고 있던 것은 작달막한 소녀였다. 상단의 옷을 입고 작지 않은 등짐을 맨 소녀. 그녀는 내 옷깃을 잡고 짐수레 뒤쪽으로 끌고 가더니, 교역품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로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루실라 아에드란. 루실이라 부르세요.”
“그….렇구나. 루실? 혹시 상단에 부모님을 따라 온-”
“작아 보여도 일할 나이는 지났고, 어엿한 골드 가이저의 정식 상단원으로 상단주님께 인정받아 레이라인 상행에도 따라왔으며, 우리 막내, 로만 가치아 멘슨 수습상단원의 사수이기도 하답니다?”
“어….”
“놀라실 필요 없어요. 절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봐서 대답이 입에 밴 것뿐이니까.”
내가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대답을 해버리는 아이. 아니, 일할 나이가 지났다는 것은 이쪽 표현으로 성인이라는 말이니 저렇게 보여도 열아홉은 넘겼다는 말이겠지. 아무튼 루실은 대단히 똑 부러지는 느낌의 소녀였다. 내 전투 방식을 보고 나서는 어느 정도 거리감을 유지하던 상인들과 달리, 루실라는 날렵하게 짐더미를 타고 오르더니 내 얼굴 바로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용사님, 로만 친구라고 했죠?”
“그렇….지?”
딱콩!
“아얏!”
“그럼 힘들 때 좀 옆에 있어 주지, 사람이 저렇게 될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두면 어떻게 해요!”
“저렇게 될 때까지라니. 전에 봤을 때보다 더 밝아 보이는-”
딱콩!
“악! 이게…!”
“교단의 용사라는 사람이 친구 마음 하나 못 읽어서야! 저게 어떻게 밝은 거예요! 밝은 ‘척’ 하는 거지!”
혼났다.
소녀는 마력 회로를 가지고 씨름하다가 큰 소리로 노툼과 알드리치를 부르는 로만을 슬쩍 보더니, 매섭게 나를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로만 가치아 멘슨! 멘-슨! 이 이름이 뜻하는 것을 몰라요? 귀족이잖아 귀족! 그것도 로드릭에 하나밖에 없는 마법사 가문, 명문 멘슨 가(家)의 사람임을 뜻하는 이름이잖아요! 그런 사람이 돈이 없어서 도박장을 전전하고, 평생 해본 적도 없는 서툰 솜씨로 도둑질까지 하고! 당장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당연하잖아요? 친구라면 그 정도는 바로 알아봐야지!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면서!”
“아니, 저 녀석이랑 그렇게까지는-”
“텅 빈 동전주머니 같은 변명은 거울이나 보고 하시죠! 저렇게 외로운 사람이 혼자 거리를 전전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무슨 용사야! 쟤 가문에서 의절 당했다구요! 서자라고 온갖 수모를 당한 것도 모자라 마법에 재능이 없어 고블린들이나 손댈 멍청한 잡기술에 의지한다고, 가문의 수치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의절이라니? 멘슨이 가문에서 쫓겨났다고?”
그냥 귀여운 어린 상인의 투정이겠거니, 하고 듣고 있던 나로서는 금시초문인 얘기였다. 내 물음에 ‘지난 며칠간 뭐 한 거냐?’ 같은 한심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던 루실라는 두 영혼술사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는 로만을 가리키며 말했다.
“로만 가치아 멘슨. 멘슨 가문의 3남. 가주 길더 가치아 멘슨과 하녀 오데트 소일린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로, 가문 내에서 입지가 상당히 약했음. 일찍이 마력을 깨쳤으나 마법에 대한 재능이 부족해 2위계에 머무는 데 그쳤으며, 길더 가치아 멘슨은 그런 로만을 친분이 있던 마법사, 아이작 만달리우스에게 넘겼고 아이작은 다소 실험적인 방법을 이용한 ‘교육’으로 로만이 3위계처럼 보이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음.”
“그걸…. 다 조사한 거야?”
“상단주님의 허락이 있었다고는 해도, 아무나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술 먹이니까 술술 불던데.”
몰랐다. 로만에게 그런 백스토리가 있는 줄은. 사실 그런 부분이 중요하지 않은 히어로 유닛이기도 했다. 섬세하게 유대감을 관리하고 관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다른 히어로 유닛과 달리, 로만은 영입이 가장 쉬운, 연구비만 지원하면 되는 히어로 유닛이었으니까. 영입 이후에도 녀석은 연구실에 틀어박히고, 플레이어는 밖으로 나돌아다니다 결과만 보고받는 형태의 관계가 되니 녀석의 사정에 관심을 두는 플레이어가 없었던 것이다.
위이이잉-
그때, 지난 며칠 동안 밤마다 귓가에 울리던 마력 회로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떠, 떴다!”
“정말 흔들리지 않는군! 아주 안정적이야!”
“서, 성공이다! 마침내! 내가 성공했다!”
지난 며칠 동안 봤던 것과 다른 점은, 로만의 비공정이 대양을 가로지르는 알바트로스처럼 유유히, 부드럽게 상공을 선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입이 찢어질 듯 환하게 웃고 있던 로만은 두리번거리더니, 수레 뒤에 숨어있는 나와 루실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그의 품에 안긴 작은 상자를 조작했다.
위이잉-
상자와 은빛 실로 연결된 모형 비공정 3호는 부드럽게 하늘을 가로질러 내 손 위에 안착했다.
“교수! 보았는가! 내가 성공했어! 정말! 비공정을 만들어냈단 말이네!”
행복에 겨운 로만의 얼굴. 그러나 그런 그의 모습을 보는 루실라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깃들어 있었다.
“용사님, 그 비공정. 선수상 아래에 명패가 있을 거야. 거기 뭐라고 쓰여있는지 읽어볼래?”
루실라의 말에 따라 모형 비공정을 더듬어보니 과연 목재로 된 선체 한 부분에 금속 판의 촉감이 느껴졌다.
“모형 비공정…. 723호?”
“용사님, 머리 좋지? 아무리 서자라고 해도 귀족이 가문에서 쫓겨나는 것은 절대 흔한 일이 아니야. 왜 그런지 알겠어?”
스으윽-
교수는 손끝으로 모형 비공정의 명패를 쓸어보았다. 매끈한 테두리와는 달리 매우 거친 안쪽의 느낌. 테두리 부분에는 금박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모형 비공정 1호’ 였을 당시에는 아름다운 금박이 돋보이는 고급스러운 명패였을 것이다. 철필로 수백 번이 넘도록 지워지고 새로 새겨지며 금박이 다 벗겨지고 거칠어진 723호의 명패와는 다르게.
마탑의 붕괴. 혼자 붕 떠버린 로만. 그리고, 비공정 723호와 의절 당한 가문. 떠오른 정보들이 가리키는 것은 한 가지 사실이었다.
“가문으로 돌아가 연구비를 지원받았군. 작은 마정석과 공마석이 한주먹씩은 들어가는 값비싼 모형 비공정을 723개나 만들 동안. 아무리 마법사 가문에 재료가 많고, 또 돈이 많다고 해도 서자인 로만에게 그냥 그 정도 지원을 해줬을 리가 없지. 뭔가를 대가로…. 바쳤겠군. 그러고도 실패만 거듭하다가, 끝내 지원금이 떨어져 쫓겨난 거야.”
그래놓고서는 나와 오트만 앞에서는 이것을 ‘모형 비공정 3호’라고 소개했다.
수계 마법의 길을 저버린 마도 공학자가, 직접 수계 마법의 길에 입문시킨 친구와 마탑에서 은사님으로 여기던 늙은 수계마법사 앞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그의 연구 성과. 그 모든 것을 저버리고 달려든 끝에 그의 손에 남은 것이 723번의 실패와 1분도 날지 못하는 장난감이었을 때. 723의 앞 두 글자를 잘라 말할 때 로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격지심? 부끄러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로만은 그때도 변함없이 웃고 있었으니까.
“핫핫핫핫! 루실라랑 자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나 했더니! 겨우 그런 얘기나 하고 있었나?”
어느새 다가온 로만은, 착잡한 표정의 내 손에서 모형 비공정을 가져가며 환하게 웃었다.
“겨우 그런 얘기라고 하기엔….”
“나도 아네! 무거운 얘기지!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뿐이야. 평생 성의 구석진 방에 갇혀서, 돌아오지 않을 아버지를 기다리며 쓸쓸하게 사신 어머니. 나라도 잘 해드렸어야 하는데 말이지. 오히려 유산은 커녕 계승권까지 포기해버렸으니! 그 온화하고 연약하신 어머니도 이번만큼은 나를 혼내시더군!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 것이냐고 하면서 말이지! 핫핫핫핫! 형님들이 정말 좋아하시던데!”
계승권과 유산을 포기. 쓸모없는 가문의 서자로 살아온 그에게 있어 그것은 그가 멘슨 가(家)의 사람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던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로만은 지금 연구비를 지원 받는 대신 희미하게 남아있던 가족으로서 연결고리를 모두 저버려야 했다.
가문에서 쫓겨난 귀족은 두 번 다시 그 영지에 발을 들일 수 없다. 그리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활짝 웃고 있는 로만은 이제 그의 어머니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였나.’
루실라가 말한 ‘저렇게 될 때까지’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유난히 많아진 웃음, 이상할 정도로 밝아진 성격. 그것은 로만이 만들어낸 심리적 방어 기제였던 것이다. 심한 충격이나 상실을 겪은 사람이 ‘아무렇지 않아!’ 라며 스스로를 격려하는 것처럼.
모형 비공정 뒤에 붙은 숫자를 철필로 한번 긁어낼 때마다 가슴속에 내려앉는 좌절과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그는 웃었던 것이다. 그렇게 명패의 금박이 다 벗겨지도록, 홀로 723번의 실패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 짓던 웃음은, 이제는 피부처럼 그의 얼굴에 달라붙어 버렸다.
실패 끝에 모든 것을 잃고 쫓겨나 거리를 배회하고, 귀족으로 태어나 만나본 적 없는 거친 삶을 마주하고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실성한 듯 웃으며 도박사로, 좀도둑으로, 그리고 상단의 사람이 되어 마침내 여기까지.
“이봐, 로만….”
“핫핫핫핫! 그런 표정 짓지 말게! 이미 지나온 일이 아닌가! 해묵은 딱지를 뜯고 상처를 들여다봐야 덧나기나 더하지. 전혀 신경 쓸 필요 없네! 자, 보시게!”
끼긱, 끼기긱! 끄극!
로만은 허름한 옷에 달린 수십 개의 주머니 중 하나에서 철필을 꺼내더니, 그의 삶을 대변하듯 긁히고 닳아버린 명패 위를 마구 그어 지운 다음 새로운 이름을 새겼다.
[프로토타입 비공정 1호]“자, 여기 뭐라고 쓰여있지?”
“….”
“이 친구, 나만큼이나 말이 많더니 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나! 빨리! 읽어주게!”
“프로토타입, 비공정 1호.”
“하하하하하하하! 핫핫핫핫! 그래! 모형이 아니야! 작지만, 이 영혼 조향장치에 연결된 마력사의 영향권 내에서만 날 수 있지만! 이건 모형이 아니라 어엿한 비공정이란 말일세! 성공이야! 성공! 성공이란 말이야!!! 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 핫핫핫핫!”
끝내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지만 교수는 저 웃음소리가 그의 모든 감정을 대변한다고 느꼈다. 그의 옷 소매를 붙잡고 있는 루실라도, 오트만도. 옆에 서 있던 알드리치와 상단 사람들 마저도 그를 보며 코를 훌쩍이거나 괜히 하늘을 쳐다보며 고개를 돌리고 있었으니까.
“핫핫핫핫핫핫! 하하하하! 으하하하핫핫핫핫!”
한 시대가 만들어낸 천재에게만 붙는 클래스, 발명가.
로만은 천재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포기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세상의 누가 봐도 천재라고 불릴만한 성과를 이룩하기까지, 수없이 좌절을 마주하고도 절대 뜻을 굽히지 않는 자.
“핫핫핫핫핫! 성공이야! 결국, 성공했단 말이다! 내가! 하하하하하하하!!”
로만 가치아 멘슨은 그런 사람이었다.
****
자신의 탄생을 알리듯 하늘을 선회하는 비공정 아래에서 상단 사람들과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던 로만은, 대뜸 내게 다가와 이름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이름! 이름을 알려주게!”
“이름? 뭔 이름?”
“그야 당연히 이 위대한 기술, ‘흑마법을 이용한 영혼 균형제어 장치’의 이름이지! 부정하지 말게! 이건 자네가 탄생시킨 기술이니 자네가 이름 짓는 게 맞아! 자! 비록 임시로 만든 것이지만 최초의 발명은 언제나 가치를 가지는 법이지! 이 빈 공간 위에 장치의 이름을 새겨주게!”
“뭘 부담스럽게 이름씩이나…. 그냥 네가-”
“빨리!”
대충 떠넘길까 생각도 했지만, 로만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기대하고 있는 게 보여서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나름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로만이 내미는 마력 세공기를 받아든 교수가 마력회로로 가득한 함 위에 장치의 이름을 새겼다.
[치킨 센서]– 간장게이바 : 씹! 야!
– professor : 미안. 저게 최선이다.
– 간장게이바 : 아니, 심상으로 세상이 뒤바뀌는 세계에서 마도공학 장치 이름이 치킨센서라니! 다된 발명품에 재 뿌리는 거냐!
“치킨 센서…. 치킨 센서라! 직관적이고 좋은 이름이군! 고맙네 친구여! 자네의 치킨 센서 덕분에 내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어!”
– professor : 봐! 좋다잖아!
– 뉴트리아지나 : 좋기는 씨발. 내 감동 물어내라!
– 하이웨이나초맨 : 무슨 치킨을 찾아내는 센서냐? 굶주린 청소년이야?
– 간장게이바 : 저렇게 능력있는 친구가 왜 지금까지 연애를 못했나, 싶었는데. 망할 센스라는게 개 코딱지만큼도 없어서 그런 거였어!
– takealook : 우우우! 바꿔라! 지금 당장! 그냥 가챠맨한테 맡겨라!
제기랄. 꽤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쉽지만 나름 방송인이니만큼, 여론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바꾸면 될 거 아냐, 바꾸면! 어이, 로만! 그 치킨 센서 말인데, 그냥 그거….”
후아아악!
내가 투덜거리며 로만에게 이름 좀 알아서 지어달라고 말하려는 찰나, 갑자기 로만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은은한 빛무리 속에서, 로만은 한때 자신이 저버린 수계 마법의 마나가 손가락 사이에서 뛰어노는 것을 보며 활짝 웃었다.
“그래. 이제야 알겠군. 나는 마법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었던 것이야. 마법으로는 형님들을 따라갈 수 없으니, 전혀 다른 학문인 마도 공학을 통해 성공해서 나도 쓸모있는 사람이라고 가문에 보이고 싶었던 것이지. 왜 몰랐을까. 마도 공학 또한 마학의 한 갈래인 것을. 마법, 그리고 마도 공학…. 이 둘은 인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두 다리야. 서로 구분할 것 없이 둘 모두를 잘 활용하는 것. 그게 마도 공학이로군. 이제서야…. 조금 알겠어.”
띠링-! 띠링띠링띠링띠링!
[정보 업데이트 : 역사의 한 장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 시대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들 중 하나에 대단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어…. 어?”
로만의 몸에서 갑자기 빛이 확 솟구치더니, 시스템 알림음이 무슨 잭팟 맞은 슬롯머신처럼 마구 울리기 시작했다. 역사의 한 장면이라니. 그리고 저 빛. 저거….
“마법사의…. 깨달음?”
띠링-!
[정보 업데이트 : 히어로 유닛 ‘로만 가치아 멘슨’이 자신의 소명을 찾아, 그 본질을 습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월드에 새로운 마법 학파, ‘마도 공학자’가 출범합니다! 전혀 새로운 계통 마법사의 등장에 세계는 호기심을, 때로는 견제와 분노를 쏟아낼 것입니다! 만약 그들을 성장시키고 싶다면 주의하십시오! 현재 전 세계 진짜 마도 공학자는 단 1명, 로만 가치아 멘슨이 유일합니다!] [위대한 발명! ‘프로토타입 비공정’ with ‘치킨 센서’의 탄생을 목도하였습니다! – 역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던 비운의 천재는, 당신의 영감 ‘치킨 센서’를 이어받아 마침내 ‘프로토타입 비공정’을 제작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는 인류를 다음 단계로 성장시킬 수도 있는 중요한 기술적 발명이며, 그것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당신의 이름이 역사에 새겨집니다.’‘’‘’]“어어어, 어어! 어어어어어!!!”
설마. 소문으로만 듣던 메세지라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설마! 설마아아아!!!!
– 노루Drug해요 : 역배 터졌다! 쥐엔장! 믿고 있었다고, 가챠맨!
– Jokass : 야! 3월드에 비공정 떴다! 씨바 이제 GG에서 기계 뽕을 맛볼 수 있게 됐다고!
– 골드만SUCKS : 말도 안돼! 내가 그렇게 밀어줄 때는 실패만 거듭하던 놈이 왜!
– 홀리 : 아저씨한테는 치킨센서가 없었잖아요!
– 노루Drug해요 : 엌ㅋㅋㅋㅋㅋ여고생쟝이 황무지 최고 부자 쪼인트 깐다ㅋㅋㅋㅋㅋ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대화방을 확인했더니 1번도, 2번도 죄다 날뛰는 것으로 봐서는 내가 알고 있는 그 메세지가 맞는 것 같았다.
– 흥안만두 : 제발 무사히 클리어만 해라, 제발! 나 공군 에이스였다고! 4월드에 비행기, 하다못해 날틀 하나만 박아주면 나도 랭커 쌉가능이란 말이다!
– 스피드 웨건 : 이거 엠바고 좀 걸어줘라. 비공정 정보는 팔아도 될 듯.
몰라, 안 들려! 아무것도 안 들린다고!
와락!
“로만 이 빌어먹을 또라이가! 진짜 해냈구나아아아!!!”
“핫핫핫핫! 모두 자네 덕- 크허억! 놔, 놔주게! 숨이, 숨이!!!”
아니, 못 놔주겠다! 이번에 니가 한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넌 모를 거거든!
“으하하하! 네가 멸망을 막았어! 로만! 듣고 있냐! 네가 세상을 20%정도 구했다니까!”
“크으윽! 놓, 놔! 놔라! 이대로 죽을…..순…!”
“노, 놓으시오, 대장! 사람 죽겠소!”
“이 친구 조울증 있는 거 맞다니까! 노툼! 교수 좀 어떻게 해다오!”
“그워억. 웃는 인간 남자 터진다.”
내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 불친절한 시스템 메세지가 빡세게 강조할 정도로 중요한 알림.
‘’‘’‘당신의 이름이 역사에 새겨집니다.’‘’‘’
이 메세지는, 클리어 이후에 지금 벌어진 사건의 영향이 다음 월드로 이어진다는 시스템의 공식 선언이거든!
그거 가지고 그렇게 호들갑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메세지가 플레이 중에 최초로 등장했다는 것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시스템이 다음 월드로 이어질 내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은 곧 이 정신 나갈 정도로 소름 끼치게 정확한 GG의 시스템이, 어느 정도 내 클리어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온갖 악재를 뿌려가며 플레이어를 좌절에 빠트리는 GG의 시스템이 마침내 내가, [Player professor]가 ‘월드 3 클리어’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음을 인정했다고! 이 새끼 진짜 클리어 할 수도 있겠는데? 라고 호모사피엔스 탄생 이래 최고의 AI가 인정했다는 말이다!!!
“고맙다, 로망 가챠맨!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고맙다고!”
“하하- 쿨럭! 하….하! 당연한 말을 하는군! 나는 마도 공학자 로만 가치아 멘슨이다! 심상을 이용하는 마법과 달리 마도 공학은 마나를 이해한다면 누구나 이해하고, 계승할 수 있는 것! 마도 공학자의 실패는 그 뒤를 따라올 수많은 후학들을 위해 먼저 남긴 발자취에 불과하니! 공학자의 실패에 좌절 따위가 따라붙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 하하하하하하하!”
평소의 그로 완전히 돌아온 로만은, 그렇게 말하며 마력이 다 하여 내려앉은 비공정을 주워 들었다.
치지직-!
잠시 이 순간을 음미하듯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쉰 그는, 망설임 없이 인두를 내리그었다. 거침없이 인두가 지나간 자리 위로 ‘1’ 이라는 숫자 하나만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로만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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