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45
Chapter. 10 납과 은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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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아- 저거 보통 년이 아니네!]‘야. 아무리 그래도 애한테 년이 뭐냐 년이.’
[뭐래. 10살이면 나보다 10배는 더 산 누님인데.]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군.
신시아 바르바토스. 14 특작대 시절 동료였던 루윌 바르바토스의 딸. 마카오 사기꾼 같이 생긴 아버지와는 다르게 피부도 하얗고 이목구비도 오밀조밀한 게, 크면 남자 여럿 울릴 것처럼 생겼음.
특이사항으로는, 도벽이 있음. 음식부터 작은 볼트 쪼가리까지 종류와 가격을 가리지 않고 침대 밑에 숨겨두는 습관을 확인. 이 부분은 내가 없는 동안 벡스가 확실하게 조치를 취한다고 했었는데….
“히히히. 고마워요 건영 아저씨!”
“아이고, 고맙기는! 지난번에 네가 여기 자리를 봐준 덕분에 우리 가족이 얼마나 편하게 살고 있는데! 그러니까 우리 아가씨, 부담 가지지 말고 언제든지 편하게 부탁해라, 응?”
“네! 아내분한테 안부 전해주시고요!”
“그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교수님한테 아이 이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거!”
“나중에 이상해도 딴말하기 없기에요!”
‘도대체 무슨 조치를 어떻게 취했다는 거냐, 벡스!’
근 한 달 사이에, 귀여운 여우 같던 소녀가 꼬리를 한두 개쯤 더 달고 나타났다.
지금도 보라고. 벌써 이 인근에서만 사람을 20명 정도 만났는데, 전부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스크랩 쪼가리를 적게는 한 줌, 많게는 한 아름씩 카트에 쏟아 부어줬는데, 자기는 힘 하나 안들이고 듬직하게 생긴 아저씨가 카트를 밀고 있잖아.
처음에는 장사를 하는 줄 알았다. 방사능 전갈 껍질튀김이 별미긴 해도 특별히 칼로리가 높은 것도 아니고, 튀길 기름이 없어서 그렇지 껍질 자체는 조금 고생하면 얻을 수 있는 물건이니까. 사람마다 내는 가격이 다른 것은 신시아가 아직 어려서 거래의 개념을 잘 몰라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따라가면서 지켜보니, 그거랑은 좀 다른 것 같았다.
“어이구, 아가씨. 잘 좀 부탁하겠습니다. 여기, 이번 주 분량입니다.”
“신시아님, 죄송하지만 어제 파밍이 영 시원찮아서 가진 게 이것밖에….”
“그러게 좀 정돈이 안 된 지역에 자리 잡으시라고 했잖아요. 사는 건 불편해도 그런데 파먹을게 많이 남았으니까.”
“어머니와 집 없이 몇 년을 떠돌다 보니, 이번에 제대로 정착해서는 좀 편히 모시고 싶어서….”
“휴우. 알았어요. 일단 오늘은 받지 않을 테니까, 마을에 일 있을 때 언제 한 번 나와서 손 좀 거들어주세요.”
“하이고! 이를 말입니까! 당연히 그러겠습니다! 교수님에게 잘 좀 말씀해주십쇼!”
껍질 튀김이 다 떨어졌음에도 스크랩을 건네는 사람들.
쉘터 근처의 사람들을 전부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신시아.
멍청한 생존자는 이미 다 죽어 없어진 지 오래고, 욕심 없는 생존자는 전부 뒤통수 맞아 죽었다.
황무지 사람들이 아무 대가 없이 돈이 될 만한 물건을 건넬 리는 없으니, 저 카트에 쌓인 스크랩들은 무언가의 ‘대가’라는 의미다.
마치 순시하듯, 우리 쉘터 주변 ‘미개발 지대’ 외곽을 빙 돌며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신시아의 행동에 입각해서 보면 이건….
[영주님?]‘비슷한 느낌이지. 보호비, 세금, 공물. 집 앞에 쌓아두지 말라고 했더니, 이런 식으로 변형된 건가?’
벡스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어려서부터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벡스는 이런 식의 일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전무하다. 벡스가 가르친 것은 아니다.
내가 접속기에 들어가던 날부터 큰 거래가 있다고 돔으로 떠나있는 이안이 가르쳤을 리도 없으니, 이건 신시아가 혼자 생각해낸 일이라는 말이다.
그래도 혼자 뭐라도 해보겠다고 하는 게 귀여워서 적당히 볼기나 좀 두들겨 혼내고 끝낼 생각이었는데, 볼기짝이 아니라 뺨을 후려갈겨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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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드르륵!
“음…. 혼자 밀고 갈 수 있겠니? 박교수님이 허락만 해주신다면 내가 쉘터 앞까지는 끌어다 줄-”
“아, 아니에요! 아빠는 좀 예민하신 분이라! 집 근처에 외부인이 있는 걸 싫어하셔요!”
“역시 그렇구나. 그러면서도 그렇게 딱 범위를 정해 사람들을 받아주시다니. 참 훌륭하신 분이라니까. 그럼 조심해서 가고, 내일 보자!”
“내일 봐요!”
그렇게 쉘터 주변으로 두둑한 카트를 끌고 온 신시아. 녀석은 여기까지 카트를 밀어준 남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더니, 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표정을 싹 바꾸고 고글을 푹 눌러썼다.
익숙한 듯 건물 구석에서 나무판자 몇 개를 가져온 신시아는 건물 파편이 떨어져 울퉁불퉁한 골목 위에 판자를 깔고 그 위로 카트를 밀기 시작했다.
드르륵, 덜컥! 드륵, 드르륵!
“후우우. 할 수 있어. 할 수….이익! 있어!”
우리 쉘터는 주변에서 접근하는 변종이나 사람을 관찰하기 쉽게 주변보다 살짝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신시아는 카트를 조금 밀다가, 힘이 빠지면 바퀴 아래쪽에 돌을 끼워놓고 잠시 쉬었다가 하며 힘겹게 카트를 쉘터쪽으로 밀어올렸다.
[슬슬 나가서 도와줄까? 애 저러다 몸살 나겠는데.]‘있어 봐. 마지막까지 어떻게 하는지 좀 보고.’
그그그긍-
“하악, 하악! 다 왔다. 다왔- 끄응- 다!”
결국 혼자 힘으로 쉘터까지 카트를 끌고 오는 데 성공한 신시아. 하지만 녀석이 마지막으로 스크랩이 든 카트를 끌고 향한 것은 이번에 새로 지어서 창고로 쓰고 있는 쉘터가 아니라, 우리 넷이 살고 있는 나의 오래된 쉘터 창고였다.
‘내 저럴 줄 알았지.’
지난 7년간 내가 모아온 잡동사니가 가득한 창고. 사실 값나가는 것은 대부분 팔거나 교환했고, 여기 남아있는 것은 써먹기 애매한, 문자 그대로 상품 가치가 없는 ‘잡동사니’ 뿐이었다. 어차피 이제 이 정도 스크랩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돈을 벌기도 했고, 같이 살고 있지만 여기 있는 게 내 물건이라고 하니 벡스가 정리하지 않기도 해서 온갖 쓰레기가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곳이다.
와르르!
신시아는 그 잡동사니들 한가운데에 오늘 걷어온 ‘세금’을 모조리 쏟아붓더니, 고글을 벗고 작은 손으로 열심히 그것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왜 굳이 여기서 하는 거지? 새로 지은 쉘터 그거 통째로 창고로 쓴다면서. 아직 캐러밴 제대로 운용하지도 않아서 자리가 남아돌 텐데?]‘거긴 벡스도 정리하고, 코듀로도 정리하잖아. 여긴 일종의…. 아지트라고 해야 하나? 내가 직접 정리한다고 해서 코듀로도 살펴보지 않는 곳이거든.’
[다른 사람들 눈을 피한다고? 그럼 설마 저거?]‘그래. 저게 다- 자기 거라고. 숨겨놓으려고 여기로 온 거다.’
참.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하는 짓은 영악하기 짝이 없는데, 또 이럴 때 보면 10살짜리답게 허술하기 짝이 없다. 애들이랑 숨바꼭질하면 꼭 커튼 뒤에 숨어서 ‘나 안 보이지!’ 하고 물어보던데 꼭 그 느낌이다. 하우징 AI 코듀로가 관리하는 쉘터에서 대문을 열고 나갔다 들어오면서 안 걸릴 생각을 하다니.
[어디 보자. 그럼 우리 이름을 팔아서 주변 생존자들에게 보호비를 걷고, 그걸로 자기 뒷주머니를 채우고 있었다…. 상당히 죄질이 나쁜걸? 이건 친구 딸이라고 해도 그냥 넘어갈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할 생각이야?]‘어떻게 하긴.’
교수는 잡동사니의 그림자 속에서 일어나, 소리 없이 신시아의 뒤로 다가갔다.
‘아주 곡소리가 날 때까지 탈탈 털어줘야지.’
거대한 왼팔의 그림자가 소녀의 머리 위로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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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못은 금속이니까 왼쪽. 반쪽짜리 플라스틱 접시는…. 일단 녹는 쪽으로 둘까?’
벡스 삼촌이 챙겨준 외부 활동복은 튼튼하고 먼지도 잘 안 들어왔지만, 그만큼 공기가 통하지 않아 조금만 입고 있어도 온몸에 땀이 흥건해졌다.
“휴우. 끝났다!”
신시아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뿌듯한 표정으로 작은 스크랩 더미들과 시계를 번갈아 보았다. 새벽 5시 48분. 아슬아슬하지만 지금 올라가서 씻으면 벡스 삼촌이 돌아오기 전에 침대에 누울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보람찬 아침을-
덥썩!
“거기, 습기 차서 금속 넣어두면 금방 녹슬어.”
“꺄아아악! 누, 누구-!”
옷깃에 강한 압력과 함께 두 다리가 허공에 뜨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신시아는 배운 대로 품에서 작은 단검을 꺼내 그녀의 뒷덜미를 잡은 손아귀를 힘껏 찍었다.
카가각!
‘카각? 사람이…. 아니야?’
손이 저릴 만큼 강하게 칼을 휘둘렀는데 금속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벡스가 귀가 닳도록 얘기해줬던 황무지의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마구 떠올랐다. 겁에 질린 그녀가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는 순간,
휘릭-
“나다, 이 녀석아. 그런 건 또 언제 배웠어?”
“박….교수?”
“지난번엔 곧잘 아빠라고 부르더니?”
“그렇게 부르지 말라면서요!”
“어이구 잘했다. 아주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아이구나? 그럼 우리 착한 딸래미, 이게 다 뭔지 설명 좀 해줄래?”
비꼬는 듯, 이죽거리는 목소리.
대롱대롱 매달린 몸이 돌아가며 그녀를 들어 올린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박교수. 지금 그녀가 머물고 있는 이 쉘터의 주인이자, BDSM의 리더. 돔의 구원자. 그녀의 ‘47구역 외곽 마을’의 실질적인 지배자.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세 번의 입양과 파양을 거쳐, 최근 다섯 번째 아빠가 된 사람이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자, 신시아는 지금이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것’을 빼앗길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상황.
그 위기감이, 당황으로 굳어버린 그녀의 몸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이것 놔요! 내려 줘요!”
“가만있어봐. 어휴, 뭐 이런 걸…. 아니, 유리는 또 왜 플라스틱이랑 같이 분류했어? 이건 또 뭐야. 보리? 조?”
“버리지 말아요! 그거 귀한 종자라고, 밀튼 아저씨가 어렵게 구한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
“도정 다 끝난 백미가 무슨 종자야. 그것도 알곡으로 네다섯 개밖에 없는 게. 너 눈탱이 맞았어. 바보야.”
“이이익! 아무튼, 내거니까 손대지 말란 말이에요!”
마구 발버둥 치며 그녀의 뒷덜미를 잡은 손가락을 내리쳤지만, 바위를 내리친 것처럼 그녀의 손아귀만 아파질 뿐이었다.
제풀에 지친 신시아가 씩씩거리며 늘어지자, 교수는 그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어디 보자…. 이게 네 거라고?”
“그래요! 내가 노력해서 벌어들인, 정당한 내 물건!”
괴물 같은 커다란 손은 그녀가 꼭꼭 숨겨놓은 보물들을 순식간에 찾아내더니 작은 자루에 모조리 쓸어 담았다. 자루에 담긴 스크랩은 딱 그녀의 키가 닿지 않는 높이에서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꼬맹아. 이건 벌었다기보단 강탈했다거나, 무상으로 받아왔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넌 그냥 이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한테 다가가서, 여기 살고 싶으면 보호비를 내라고 협박한 것뿐이잖아. 혹시 ‘정당한’ 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르나?”
“무상 아니야! 난 그 사람들에게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마음’을 주고 그걸 사온 거란 말이야!”
금방이라도 자루를 가지고 나갈듯한 교수의 모습에 신시아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교수한테는 어차피 필요 없는 거잖아! 사람들이 모여들 때도 그냥 우리집 주변에만 오지 마라, 사람들이 인사라고 물건 가져왔을 때도 그러지 마라, 대충 거리만 벌리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불안해했었는지 알아? 저 사람들은! 박교수 당신 이름 세 글자만 보고 살인마와 괴물이 들끓는 저 바깥세상을 건너서 여기까지 왔단 말이야!”
벡스 삼촌과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던 날이었다. 삼촌이 물을 가지러 간 사이, 땀에 흠뻑 젖은 그녀는 담장 위쪽에는 바람이 좀 불까 싶어서 낑낑거리며 담을 타고 그 위에 올라앉았다.
문 앞에 사람이 있었다. 키가 작은 것인지, 허리가 굽은 건지 지팡이를 짚고 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은 뭔가 안절부절못한 느낌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거기서 뭐 해요?”
담장 위로 살짝 눈만 내밀고있던 그녀의 목소리에 이방인은 기절할 듯 놀라며 들고 있던 바구니를 쏟고 말았다.
“호호호, 혹시 BDSM관계자 분이십니까?”
늙은 여자의 목소리. 신시아가 아무 말도 없이 흘겨보자, 노파는 몸을 감싸고 있던 넝마를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
“보, 보시는 것처럼 무장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 이걸. 이걸 좀 전해드리려고….”
“아빠가 그거 하지 말랬잖아요. 안 받는다고. 거기 두고 가면 치우기도 귀찮으니까 아예 가지고 오지 말랬는데.”
신시아가 얼핏 교수에게 들었던 얘기를 그대로 전하자, 노파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서 말했다.
“아, 알고 있습니다. 박교수님에게 이런 잡동사니는 별 가치도 없는 물건이라는 것을. 그래도…. 그래도 받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제 우리 모자는 이곳 말고는 정말 갈 곳이 없어서, 뭐라도, 뭐라도 해드리지 않으면…. 다음에는 더 값진 것을 가져올 테니….”
아무 생각 없이 교수가 한 말을 되뇌던 신시아는, 노파의 주름진 얼굴에 물기가 어리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담장을 넘어왔다.
“바, 받을게요! 그냥 받기만 하면 되는 거죠!”
“예에. 버리셔도 좋으니 그냥 받아만 주시면 이 늙은이의 마음이 좀 편할 것 같아서….”
노파는 그렇게 가져온 잡동사니를 신시아의 품에 한아름 안겨준 다음,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는 신시아를 향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언덕 아래로 사라졌다.
자그락.
노파가 내민 바구니 속에 작은 유리구슬을 집어든 신시아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 그것을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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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때부터 사람들이 고민하지 않도록, 일부러 그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매주 수금하러 다녔다, 이건가?”
“아무도 손해 보지 않았잖아요! 어차피 교수는 여기 모여든 사람들한테 관심 없고! 사람들은 그런 교수의 반응에 안절부절못하고! 당신이 버린 사람들이잖아! 버려지지 않게 내가 주워서 보살필 거야! 어제는 자리 때문에 싸우는 사람들도 화해시켰고! 며칠 전에는 다 같이 힘 합쳐서 저기, 갈림길에 파편 때문에 매일 불편하게 넘어 다녀야 했던 길도 치웠어!”
어쩐지. 사람 좀 모였다곤 해도 돈 되는 물건도 없는 길이 깔끔해졌다 했더니.
“사람은 모이면 불안해진단 말이야! 저 옆 사람이 날 때리진 않을까! 혹시 내 물건을 가져가진 않을까! 그래서 내가 도와준 것뿐이야! 사나운 아저씨도, 악을 쓰는 아줌마도 ‘교수가 우리 아빠예요’ 한마디면 착해지니까! 교수는 어차피 그 이름 안 쓸 거잖아! 그래서 내가 썼어! 버릴 거면 나 줘! 당신 같은 부자보다 내가 훨씬 잘 쓸 수 있어!”
씨익, 씨익!
교수는 울먹거리면서도, 눈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보는 신시아를 마주 보았다.
[야, 이거….]‘쉿. 생각 좀 하자.’
그냥 어린아이의 치기라고,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내 것이라….’
그러고 보면 신시아의 침대 밑에서 나온 물건은 하나같이 자질구레한 물건들 뿐이었다. 고장 난 시계, 창고에서 먼지나 먹고 있던 반쪽짜리 나무 빗, 녹여서 쓰기 애매한 알록달록한 유리 조각들…. 없어졌는지도 모를 만큼 사소한 것들. 신시아는 그런 버려진 물건들을 귀신같이 찾아내서는 그녀의 것이라 못 박아놓고 보물처럼 소중히 여겼다.
아마 양친을 잃고 돔의 상류층 부모들에게 귀여운 아이니까 입양됐다가, 성격이 나쁘고 손버릇이 좋지 않아 버려지기를 반복하며 스스로를 물건처럼 여기게 된 것이 아닐까. 그 과정에서 조금 많이 뒤틀린 소유욕이 자리 잡아 버린 것은 아닐까.
뭔가 ‘내 것’에 저렇게까지 집착하는 신시아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콰악!
찌이이익!
필사적으로 내가 들고 있던 자루에 손을 뻗더니 기어코 자루에 매달린 신시아. 낡은 자루가 찢어지며 먼지와 쇳가루가 가득한 잡동사니가 우르르 쏟아졌다.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며 찧은 엉덩이가 아플 만도 하건만 신시아는 매캐한 먼지 속에서 잡동사니를 끌어안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내 거야, 훌쩍! 내 거니까…. 버리지마. 응? 앞으로 안 그럴게. 안 그럴 테니까, 훌쩍! 제발 버리지마…. 내가 잘 쓸게….”
먼지에 뒤덮인 얼굴에 눈물, 콧물이 흘러내린 자국이 흥건한 신시아는 쏟아진 잡동사니 더미를 그녀의 몸으로 가리며 한 손으로는 잡동사니를, 다른 손으로는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한 번 넘어가 주자고. 나도 저거 어떤 느낌인지 아는데, 악의는 없었을 거야. 네 말대로 애잖아. 응?]‘하아아. 사정은 이해하는데, 그냥 넘어가긴 좀 그렇지. 어쨌든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아온 거니까. 젠장. 나도 애들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모른다고. 애 키우는 건 처음이란 말이다.’
[그런 소리하면 나 상처받아, 아빠.]‘엿이나 처먹어 하이드.’
“끄으윽, 히끅, 가져가지 마, 교수. 미안해, 나 잘못했어. 그래도 가져가지마….”
사정은 이해했지만, 이대로 둘 수는 없는 법.
교수는 그의 바지를 붙잡은 신시아의 손을 떼어내고, 물건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버둥거리는 그녀를 옆으로 밀어낸 다음 왼손으로 잡동사니를 긁어모았다.
“자. 신시아?”
“으이익, 훌쩍! 으윽….”
“그만, 뚝! 안 가져가. 가져가는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안절부절못하지 말고 와서 자세히 봐. 여기, 네가 받아온 그 ‘종자’ 주머니랑, 네 의견에 따르면 그 ‘안심비’로 받아온 나사들 보여?”
….끄덕.
가져가지 않는다는 말에 좀 진정이 됐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신시아에게 잡동사니에서 몇 개 눈에 띄는 물건을 골라서 보여주었다.
“누가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종자라고, 엄청 귀한 물건이라고 그 사람이 네게 준 물건은 이미 싹을 틔울 수 없게 된,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곡물 부스러기야. 이 볼트랑 너트는 나사 산이 다 닳아버려서 일반 볼트보다 가치가 훨씬 떨어지는 물건이고.”
“나, 난 액수 같은 거 몰라. 그냥 사람들이 뭔가를 주고 안심하기만 하면 그걸로….”
“그래, 그래. 넌 그렇겠지. 하지만 이 물건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야.”
“히끅, 딸꾹?”
“네게 비싼 물건이라고 거짓말을 했잖아. 그건 이 ‘안심비’로 뭔가 가치 있는 물건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주기 싫어서 그런 거잖아? 넌 얼마를 달라, 많이 달라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없겠지만 네가 주기적으로 그 ‘안심비’를 걷으러 다니게 되면서 사람들 사이에 ‘안심비’를 주지 않으면 보호받을 수 없다는 관념이 생겨 버린 거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헤아려보던 신시아는, 그 뜻을 알아챘는지 아까보다 더 겁에 질린 얼굴이 되어 울먹거렸다.
“난 그럴 생각은 없었, 히끅! 그냥 사람들이 불안하지 않게, 행복하게 같이 살았으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갔으면 루윌은 여전히 네 아버지였고, 난 네 앞에 그저 장난 많은 삼촌으로 나타날 수 있었겠지.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단다.”
“히끅! 히윽! 으윽, 읍!”
‘어…. 분위기 좀 풀어보려고 한 소리였는데.’
[잘하는 짓이다. 애 앞에서 죽은 아버지 얘기나 꺼내고. 병신이야?]‘아니, 그것보다 뭔가…. 애가 겁을 먹었는데?’
[힌트. 우진 영감님네 놀러갔을 때. 기억나?]‘아.’
갈수록 얼굴이 새파래져서는 울음소리를 억지로 참는 신시아.
그제서야, 이 녀석이 뭘 걱정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안아주려고 했는데, 녀석이 잡동사니가 가득한 왼손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왼손으로 덮어 내 품으로 끌어당겼다.
“괜찮아.”
“끄으읍, 히끅?”
“이제 겨우 10살짜리가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뭐. 너 여기 계속 살아도 되고, 날 아빠라고 부르든 삼촌이라 부르든 교수라 부르든 상관없으니까.”
“나…. 안 버려?”
“그래.”
“다른 애들처럼 귀엽게 달라붙지도 못하는데?”
“하지 마. 안 그러던 애가 억지로 그러면 징그러워.”
“부모 없이 자란 후레자식이라, 손버릇도 나쁘고 나쁜 짓도 많이 하는데?”
“몇 번째 부모님이 그딴 소리를 지껄였냐? 말만 해. 이번에 돔에 가서, 그놈들 조동아리를 아주 오바로크를 쳐버릴 테니까.”
처음 나를 보고 새파랗게 질렸던 신시아의 표정. 그건 단순히 몰래 하던 일을 걸려서 그런 게 아니라 걸려서 다시 버려질까 봐 그랬던 것이다. 이어진 필사적인 변명도, 버리지 말라는 말도.
[그만큼 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겠지.]‘오. 그렇게 보면 기분이 꽤 괜찮은데?’
[자,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힘내서 달래줘야지! 빨리! 애가 뭘 듣고 싶은지는 알고 있잖아! ‘사랑한다~’ 라던가, ‘영원히 함께야~’ 같은 거.]‘윽, 그건 좀.’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해져서 어떡하지, 하고 있던 중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끅끅거리는 신시아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10살짜리가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 울지 말라고 한 건 몇 번째냐?”
“….히끅! 두 번째 아빠…. 시끄럽다고, 울면 버릴 거라고….”
“참. 세상에 씨발놈이 많기도 하지. 10살짜리가 제대로 울 줄도 모르게 만들어놓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난 너무 많은 것을 받았고, 그것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평범한 아이가 이렇게 숨도 못 쉬게 울음을 참으면 안 되는 것은 알고 있다.
신시아를 끌어안은 상태로, 오른손으로 녀석의 등을 두드리듯 쓸어내었다.
“자, 따라 해봐. 으아아아~”
“흑, 히끅, 어?”
“빨리. 따라 하라니까. 으아아아~ 안 하면 이거 다 버린다?”
“아, 아아, 으아아, 흐윽, 아아아.”
“그래. 우리 집에서는 울어도 되니까, 마음껏 울고 털어버려.”
“으아아, 으아아아…”
“옳지. 한 번 더.”
꽈아악.
옷깃을 잡은 신시아의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흐아아, 으으으, 으아아앙!”
“어휴, 속 시원해.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막혀있던 보가 터진 것처럼 대성통곡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앙! 히끅, 미아내에에, 다시는, 안 그럴, 히끅!”
“그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흐으윽, 끄흑, 흐으으응-”
그동안 못 운 것에 한이라도 맺혔는지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아내는 신시아.
“큰일 났네. 우는 아이한테는 산타가 선물 안 준다는데.”
“흐으윽, 선물, 내꺼야. 이제 안 울어…. 흐윽! 교수가 한번은 봐준댔어. 봐주고 선물 줘….흐윽!”
“그래, 그러니까 이제 그만 울고, 밥 먹으러 가야지?”
“흐으윽, 이이잉.”
이런 각고의 노력에도 신시아의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고, 결국 밖에서 돌아온 벡스가 신시아가 우는 소리에 귀신같은 얼굴로 달려올 때까지 교수는 그의 품에 매달려 우는 신시아를 달래기 위해 온갖 되도 않는 농담을 주워 삼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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