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46
Chapter. 10 납과 은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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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빠져 가족에게 소홀해진 아버지와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밖으로 겉돌던 딸. 아버지는 어느 날 딸이 큰 사고를 쳤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늦게나마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부랴부랴 움직이는데….’ 캬아- 이렇게 보니까 껍데기 너 정말 쓰레기 같다.]‘내가 그렇게까지 절박하게 게임을 할 수밖에 없게 된 원인이 누구였더라?’
[음~~~ 너?]빠직!
교수는 목구멍 언저리까지 울컥 튀어나온 욕설을 가까스로 집어삼켰다. 조수석에 앉은 신시아가 불안한 표정으로 그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 우리 마을에 가는 거야?”
“그래. 어쨌든 그 사람들한테서 우리 이름으로 보호비를 받아냈으니, 그냥 방관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그 ‘마을’ 이라는 곳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확인해봐야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있겠어.”
“….미안해.”
“사과하지 말라니까.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아까도 말했지만,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야.”
부르릉!
나는 한 손으로 버기에 시동을 걸며, 신시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하이드의 말에 화가 난 것은, 그 장난스러운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신시아는…. 정신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어.’
내 생각에, 신시아의 도벽은 탐욕이라기보단 생존 본능에 가까운 몸부림이었다.
‘그 짧은 인생 속에서 겪은 인간군상이 늘상 아귀다툼을 벌이는 언더돔 사람들에, 세 번이나 자기를 버린 양부모뿐이었으니. 망가진 장난감처럼 빈손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면 자기 손에 남아있는 것에 집착하게 될 만도 하지.’
앞에 세 번의 양부모님도 나를 버렸으니, 이번에도 버려질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내 물건’을 잔뜩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럼 버려져도 남는 게 있을 테니까- 아마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름 필사적으로 독립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구나?]‘어린아이들에게는 엄밀히 말하면 100% 자기 물건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잖아. 다 부모가 내어준 물건들뿐이지. 그런 의미에서 친부모를 포함해 부모가 네 번이나 바뀐 신시아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4번이나 잃어버린 셈이라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한테 받은 물건이 아닌 순수한 내 물건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고.’
이 사태가 일어나게 된 것에는 내 책임도 어느 정도 있다. 그렇게 버려지기만 반복하던 아이를 집에 들여놓고 관심을 주지 않았으니. 애가 불안해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하지.
그러니까, 신시아는 봐 준다.
“사람 차별하지 마라! 네 말대로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다면 난 왜 안 봐주는데!”
“넌 맞아도 싸지 이 자식아. 네가 책임지고 가르친다며. 그런데 애가 저렇게 밖으로 도는데 그것도 모르고 뭐? 사격훈련? 시가지 전술이동? 제정신이냐?”
“애가 바깥으로 도니까 더욱 생존력을 길러줘야지! 나도 나름대로 커뮤니티에서 찾아봤는데, 중요한 교육일수록 어렸을 때 하는 게 더 효과가 좋다고 하더라! 열여섯부터 게릴라 훈련을 받은 내가 이 정도면, 열 살부터 훈련받은 신시아는 앞으로 황무지에 다시없을 엄청난 암살자가….”
빠악!
“으악!”
“자랑이다 이 자식아. 그렇게 해서 애가 람보 뺨치는 전투기계가 되면, 그게 애를 위한 길이냐? 이 사상이 불손한 새끼야. 넌 아침부터 어딜 그렇게 싸돌아 다니길래 애 하나 못 보고 있었냐?”
“몇 번 보고 왔어! 혼자 잘하길래 교보재 구하러 갔다 왔지! 자 봐! 내가 오늘 아침에 뭘 잡아 왔는지!”
벡스는 뒷좌석에 휘둘러지는 내 왼손을 요리조리 피하며 아침부터 들고 다니던 자루를 열어 보였다.
“찌이익!”
“찌직! 찌이익!”
쥐다. 그것도 3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이상한 체액에 축축하게 둘러싸인 커다란 쥐.
“쥐달팽이? 그건 또 어디서 구했어?”
“키히힛! 어때, 보니까 생각이 달라지지? 내가 이거 잡는다고 황무지에 좀 습하다 싶은 지역을 얼마나 들쑤시고 다녔는지…. 빠르고, 잘 죽지도 않고, 덤벼봤자 생채기 밖에 안 나는 이 녀석이야말로 움직이는 표적으로 제일 적합하지 않겠어?”
“그래, 생각이 달라지는구나…..”
자루에서 마구 발버둥 치는 쥐달팽이 한 마리를 꺼내 드는 벡스를 보며 확신했다. 얘한테 신시아의 교육을 맡기면 안 되겠다고.
‘돔에 가서 총장님이랑 얘기도 해봐야 하고, 병원도 들러야 하고…. 아, 스피드 웨건이랑 약속도 있었지.’
머릿속에 오늘 해야 할 일을 떠올리자 마음이 급해지며, 악셀을 밟은 발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저…. 교수? 어디로 가야 되는지 알아? 내가 알려줄까?”
“아냐. 대충 아는 사람 한 명 있어.”
거친 버기의 엔진소리에 주변 인기척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을 느끼며 지난 5년간 너무나도 익숙해진 거리에 차를 세웠다.
상점가 삼거리.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 2번 방에서 듣기로 여기 근처에 자리 잡은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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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필. 그는 인생에 있어 항상 빠른 선택을 한 것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일찍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에 가는 대신 기술을 배운 덕에 마흔 즈음에 ‘금필 철강’의 사장님이 되어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고, 전쟁이 발발하고 대피소 앞에 군인들이 몰려와 남자만 따로 줄을 세웠을 때도 다른 사람들처럼 설설 기는 대신 먼저 앞으로 나서서 자신이 기술자임을 밝혔다.
그가 금속 기술자로 에어컨이나 냉장고, 가스시설 등 중요한 시설을 고칠 줄 알며 적절한 도구와 재료만 있다면 뭐든 만들 수 있음을 어필한 덕에 그는 징병당하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아내, 아들과 함께 안전한 지하 피난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곳은 부자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피난처로, 아무런 생산 능력도 없는 그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몇 명 없는 전문 기술자로 남 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다.
수많은 선택 끝에 살아남은 그는, 이제 스스로의 판단력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새로 이사 와서 설치한 방범 장치의 알람과 함께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 사람이 나타났을 때, 떠나간 아내의 사진과 함께 넣어둔, 딱 하나 남은 그의 오래된 명함을 꺼내든 데는 그런 사정이 있었다.
“여, 영광입니다, 박교수님! ‘금필 철강’의 강금필 사장입니다!”
그런 그의 의도는 제법 잘 먹혀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일단, 교수가 당황하게 하는 데는 성공했으니까.
교수는 얼떨결에 받아든 그 금딱지 명함을 조심스레 살폈다. 귀퉁이가 좀 닳긴 했지만, 아직 금박이 곱게 남아있는 명함. 지금은 이렇게 탄력 있는 명함 종이를 만드는 것도, 그 위에 금박을 입히는 것도 불가능하니 이 명함 자체가 그가 전쟁 이전부터 이쪽 업계 일에 종사해왔음을 증명하는 일종의 자격증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디 보자…. 화이트스미스, 커뮤니티에서 그 이름으로 활동하시는 분 맞으시죠?”
“예, 예! 맞습니다! 기억하고 계셨군요! 설마 직접 찾아오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쪽이 대화방에서 주소를 불렀으니까. 마침 내려와서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고, 의도치 않았지만 이웃 사람이 되기도 했으니 얼굴이나 한번 볼까 해서 와본 겁니다.”
“제가…. 주소를 말씀 드렸다고요? 그런 위험한 짓은 한 기억이 없는데….”
“다 아는 수가 있습니다.”
내가 의자에 기대며 마치 ‘다 알고 왔다는’ 투로 얘기하자, 강금필이라는 남자와 그 옆에 앉아있던 아들이 긴장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무너진 상가 삼거리에 거주지로 삼을만한 곳은 여기밖에 없거든.’
무려 5년 동안 이 잡듯이 샅샅이 뒤지고 다닌 골목이다. 어느 골목이 엄폐하기 좋다, 이곳에 매복하면 되겠다, 여기라면 쉘터가 점령당했을 때 몸을 피하기 좋겠다 등 동네에 주요 거점이 될만한 곳은 전부 내 머릿속에 들어있단 말이다. 대화방에서 삼거리 주변에 자리 잡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딱 떠오른 곳이 바로 여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입구 근처에 발을 들이자마자 시끄러운 경보음이 울리며 이 남자가 튀어나온 것이다.
후루룩-
교수는 박금필이 차라고 내어온 버섯 달인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살짝 긴장한 표정의 벡스가 슬쩍 찍어 먹어보고 이상이 없음을 알린 뒤였다. 독특한 쓴맛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좋습니다, 금필 씨. 이렇게 명함까지 내어 보이며 말씀하신 것은…. 앞으로도 이쪽 일을 맡고 싶다는 뜻이겠죠?”
“그렇습니다! 급하게 이동하느라 휴대 가능한 장비만 들고 와서 그렇지, 전에 있던 곳에서 쓰던 장비만 다 들고 올 수 있으면 쇠로 된 물건이라면 뭐든 만들어 드릴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일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강한 자부심을 내비치는 남자. 교수는 그런 그의 행동에 의문이 생겼다.
기술자. 그것도 자재를 가공하는 1차적인 단계부터 수준 낮은 전자제품 등의 수리까지 가능한, 귀한 고급 인력.
전쟁이 끝나고 5년이나 지났으니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기반을 다진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기술자가 지난 5년간 쌓아온 안정된 기반을 버리고 특별한 실적도 없는, 소문만 무성한 BDSM이라는 집단에 몸을 투신한다는 게 말이 안 돼 보였던 것이다.
머릿속에 바로 떠오른 가설은 두 가지. 기술자라는 게 거짓말이거나, 전에 있던 집단에서 뭔가 문제가 생겨서 나온 사람이거나.
첫 번 째는 집에 발을 들이는 순간 확인할 수 있었다. 제법 깔끔하게 정리된 집의 한쪽 구석에 가득 쌓여있는 잡철과 석탄 더미. 이제 막 만들었는지 새것과 같이 반짝이는 삽과 곡괭이들. 휘발유 만큼은 아니지만 난방재로서 상당히 비싼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석탄을 저만큼이나 쌓아둔 것으로 보아 이쪽 일을 하는 사람은 확실해 보였다.
남자는 교수의 그런 의심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묻기도 전에 왜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해 입을 열었다.
“부자들을 위한 지하 벙커에 있다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서 탈출했다?”
“예에. 저는 온종일 시설 보수한다고 바빠서 별생각 없이 지냈는데, 생산적인 일이라곤 하나도 할 줄 모르는 부자들은 몇 년이고 그 좁은 공간에 갇혀 살다 보니 차례로 미쳐가더군요. 누가 의도적으로 외부 연락기기를 박살 낸 덕분에 밖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다 보니 전쟁이 끝난 것과 변종 바이러스에 대한 것도 다들 몰랐습니다. 지상의 건물이 무너져 출입구가 완전히 막혔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마지막 이성의 끈마저 놓아버렸지요.”
“혹시…. 그 벙커에 지상으로 통하는 다른 출구가 있지 않았습니까? 관리실 뒤쪽에 장비용 엘리베이터라든가….”
“서, 설마 그런 것까지 다 알고 계시는…. 아! 그러고 보니 최근 45구역 벙커 쟁탈전에 교수님도 계셨군요! 예! 커다란 차도 문제없이 오르내릴 만한 엘리베이터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깥 사정을 모르니 변종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휩쓴 것도 모르고 있던 벙커 관리진은, 이 끔찍한 바이러스가 세상에 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시설의 전원을 내리고, 공구로 엘리베이터 문을 우그러뜨려 버렸습니다. 시설 관리자였던 저는 같이 일하던 아직 미치지 않은 몇몇 지인과 함께 환풍구로 탈출했지만요.
미동도 없는 표정으로 차분하게 경청하는 교수와 벡스. 하지만 테이블 아래쪽으론 서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속사포처럼 군용 수신호를 나누고 있었다.
[전방, 전방, 전방, 지나온 목표물, 생존자!] [갑작스런 조우, 은신처, 민간인!]45구역 지하 벙커. 박금필은 그들이 갔을 때 이미 한참 전에 변종 소굴이 되어있던 45구역의 그 지하벙커의 생존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나와서,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폐허가 되어버린 것에 망연자실하고 있다가 스캐빈저들한테 끌려가서 최근까지 그들의 요구에 따라 갑옷이라든가, 도검 따위를 만들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벙커 쟁탈전에서 몰살당한 스캐빈저 중 제가 속해있던 놈들도 포함되어 있었지요.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되고,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등하던 중 BDSM에서 인근에 거주하는 것을 허락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이곳으로 오게 된 겁니다.”
“그럼, 그때 벙커에서 같이 탈출했던 사람들도….?”
“몇몇은 노예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가혹한 노동을 견디다 못해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저와 함께 이곳에 자리 잡았습니다.”
‘예스!’
교수는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돔에서 그렇게 애타게 찾는 기술자를 이렇게 날로 먹다니.
솔직히 보호비 받았다고 해도 얼마 되지도 않는 거 대충 먹튀 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이런 고급 인력이 제 발로 굴러들어 왔다면 얘기가 다르다. 심지어 전쟁 끝날 때까지 벙커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다가, 스캐빈저 사이에서 죽어라 구르던 중 갑자기 붕 떠버린 홀라당 삼켜도 뒤탈 하나 없는 인원들.
쿡쿡-
다시 한번 허벅지에 찌르는 느낌이 들어서 슬쩍 눈을 돌리니, 벡스가 테이블 아래로 군용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전방, 잘못됨, 정보] [확인. 인지하고 있음]어느 정도 거짓말이 섞여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진짜 노예처럼 굴렀다면 커뮤니티에서 자기 아이디로 활동을 했을 리가 없지. 휴식시간도 보장받고, 개인 소유 접속기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야.’
스캐빈저에게 잡혀간 것까지는 거짓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처음에는 거칠게 부려졌지만, 실력을 인정받고 성실하게 일하며 그곳의 일원으로 제법 대우를 받지 않았을까. 적극적으로 사람도 죽이고, 영역 분쟁에서 총도 휘두르고 하면서.
‘자기 입으로 선택했다고 했지. 커뮤니티를 했다면 돔에서 기술자를 그렇게 우대하는 것을 모를 리가 없는데 선택을 했다…. 이 양반, 선점하려고 했군.’
[선점? 뭐를?]‘새로 막 태동하는 집단에 공헌함으로써 얻는 개국공신 같은 위치 말이야. 용의 꼬리보단 뱀의 머리가 좋다는 거지.’
교수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자신감이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남자를 훑어보았다. 노동으로 다져진 몸에 제법 강압적인 상황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저 태도. 적당히 욕심도 있고, 이기적이기도 하고, 눈치도 빠르고 상황 판단력도 제법 있었다. 슥 찔렀다고 술술 불지 않고 거짓말을 한 게 마음에 들었다. 순하기만 한 노동자라면 그가 일일이 챙겨야 하지만 이런 사람이라면 적당히 자기 앞가림은 할 테니까.
“음, 좋아. 합격!”
교수가 명함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말하자, 박금필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던 그의 아들도 환한 얼굴이 되었다.
“하, 합격이라면….”
“지금까지 우리 애 말만 듣고 삥이나 뜯기셨는데,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BDSM의 일원으로서 일해보자는 뜻이지요.”
잠깐 불타오르고 사라질 팬덤이었다는 판단과 달리 ‘영웅 박교수’의 명성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고, 이미 집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가 형성되어버렸으니.
이 상황에서 외면해버리면 문제가 더 커질 뿐이었다. 기왕 사람이 모였으니 제대로 써볼 생각이었고, 마침 중간 관리자에 아주 적합한 인물도 눈앞에 있지 않은가?
“금필씨. 혹시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품앗이하듯 동네 정리하지 말고, 이 인근을 제대로 정리해볼 생각 없습니까?”
대답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이곳에 방문하기 전부터 혼자 쓰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양의 삽과 곡괭이를 만들고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거, 건축 쪽에 소양이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두 블럭 건너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해체업자 하다 왔다고 했고, 시켜만 주시면 만족하실 만한 결과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금필은 교수가 내민 오른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이번에도 그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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