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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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 Boiled Lif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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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신병?”
“그래, 신병을 보내준다는군.”
“신병을 또?”
늦은 저녁. 임시로 만든 초소에서 눈알이 빠지게 경계를 서다 온 존은 우리 중령님이 끝내 열병에 걸려 헛소리를 하나 했다.
“저기, 중령님. 내 말 오해하지 말고 잘 들으쇼. 내가 누누이 말했지만, 우리한테 필요한 건 더 많은 폐급이 아니란 말이지. 다 큰 성인이,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남들 두 세배에 가까운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데 일일 섭취 권장 칼로리도 다 못 채운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왜 위에서는 그렇게 보급을 달라, 탄약과 물자가 부족하다고 하면 신병을 내려보내는 겁니까? 아, 그놈이 보급인가? 이제 그놈을 뜯어먹으면 되는 거지? 건장하고 배가 투실투실하게 나온 녀석이면 좋겠군. 고기는 뜯어 먹고 기름은 국 끓여 먹게.”
“진정해라 존. 저쪽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다들 전쟁 중이지 않나.”
“그 전쟁 중에 가장 치열한 곳에 있는 우리가 이 꼴이니 하는 말 아뇨!”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날 것과 같은 태도와 달리 존의 움직임은 신중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손에는 막 따끈하게 데워진 콩 통조림이 들려 있었으니까. 설치다 쏟아버리기라도 하면 정말 그 길로 탈영을 하든 자살을 하든 둘 중에 하나였다.
“지난번에 왔던 녀석이 언제 왔었지? 이봐 월리, 그 녀석 너네 분대 아니었냐? 그 싸가지없는 중국계.”
“중국계? 아아, 원 웨이(one way)?”
“그래 왕 웨이. 새꺄. 분대원 이름 정도는 외워라 좀.”
“암기는 내 총번이랑 저녁 식단 외우는 걸로 이미 한계다. 그리고 그놈은 외울 가치도 없는 놈이었어. 탈영하다 붙잡혀서 14로 끌려왔는데, 누가 이름이 원웨이 아니랄까 봐 여기 와서도 탈영하다 죽었거든. 빠꾸 없이 한 길만 파다 죽었으니 이름값은 했지.”
“탈영? 언제?”
“일주일 전에. 왜 그, 새벽에 지뢰 터지는 소리에 비상 걸렸을 때 있잖아. 어쩐지 쁘락치 같더라니. 적군의 중추가 북한군이랑 중국군인데 중국계가 여기 있는 게 말이 되냐고.”
“너 다른 부대에서 그런 얘기했으면 징계감이다. 세상에 화교가 없는 데가 없는 거 알지? 중국계 미국인부터 중국계 네팔인, 중국계 아프리카인 까지. 아마 중국계 네안데르탈인도 있을걸?”
존 에이브럼스, 친한 동료들 사이에서는 ‘셰퍼드’라고 불리는 남자는 루윌과 낄낄거리며 죽은 신병에 대해 떠들어대는 월리의 말에 숟가락을 놓았다.
“지뢰 터진 대면 C-2 초소?! 그럼 내가 늪에서 나온 괴물처럼 보일 때까지 진창을 기어 다니며 깔아놓은 인계철선 다 끊어먹은 놈이 아군이었다고?”
“오우, 검고 지저분하고 거대하고 번들거리는 존이라니. 정말 무시무시한 장면인걸?”
“닥쳐 루윌! 같이 설치해야 될 네놈이 사라져서 나 혼자 했잖아! 어디 구석에 틀어박혀서 아침에 마실 쾌락의 우유라도 한잔 짜고 있었냐!”
“왜. 너도 한 잔 줄까? 커피에 넣어 마시면 아침이 든든하지.”
“그만해라 존 에이브럼스, 루윌 바르토스. 훌륭한 디너를 앞두고 그딴 에피타이저를 첨가하다니. 내 권총에 항상 네놈들을 위한 탄환을 남겨뒀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
존은 막 입으로 가져가려던 스푼을 내려놓은 채 점점 열기를 더해가는 둘의 더티 토크에 제동을 걸었다. 경험상 이대로 두고 보면 둘 사이에 싸움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탄환, 내 것보다 저 놈 게 더 위에 들어있으면 난 웃으면서 맞아줄 수 있수다.”
“….소대에 쓸만한 분대장 감이 한 명만 더 있었으면 네놈 둘을 진즉에 쏴버렸을 텐데.”
“뭐요, 그럼 우리가 반쪽짜리 밖에 안 된다는 소리요?”
“실력은 각각 1.5인분. 둘이 같이 있으면 -4. 도합 마이너스 1인분이다.”
후루룩-
14특작대의 소대장, 체스터 킹 중령은 보리를 태워 만든 커피를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며 적당히 끓어오른 콩 통조림의 뚜껑을 열었다. 중령 소대장이라니, 이런 개족보가 있을 수 있나 싶었지만 원래 중대 규모였던 14특작대가 최근에 결원이 많이 생기기도 했고, 달라는 보급은 안 주고 죄다 특진으로 때우는 정신 나간 상부의 덕분이기도 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병장이었던 존이 지금은 대위를 달았으니 말 다한 셈이다.
‘죽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훈장이랑 특진 죄다 반납할 테니 제발 빵 좀 먹어보자고 그렇게 부탁했건만.’
개밥 같은, 그마저도 매우 수상쩍을 정도로 부풀어 오른 콩 통조림도 이제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어쩌면. 불합리한 명령에 이성을 잃고 만든 ‘아군 사령부 탈환 계획’이 빛을 볼 날이 머지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럼 적어도 고기방패가 하나라도 더 있는 편이 좋겠지.’
중령은 머릿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쿠데타의 욕망을 억누르며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그의 ‘믿음직’ 스러운 분대장들에게 말했다.
“3개월 만의 신병이다. 혹시 받고 싶은 사람 있나?”
킹 중령이 살짝 쉰내가 나는 베이크드 빈을 꾸역꾸역 입에 끌어넣는 동안, 그와 함께 앉아있는 세 분대장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월리. 지난번에 받은 왕 웨이가 죽어서 분대 구성에 공백이 좀 있을 텐데?”
“싫습니다. 지금 들어와서 똥 싸고 간 놈이 몇 명째인 줄 아십니까? 그나마 탈영하다 알아서 죽어준 원웨이 그놈은 양반이지, 어르고 달래서 작전 대려다 놨더니 패닉에 빠져서 난사하던 치킨 새끼에 마피아 출신이라고 꺼드럭대서 좀 두들겨 줬더니 아군한테 총구를 돌리는 놈에! 난 이만하면 신병받이 실험체 역할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챙겨야 될 애들이 있으니 이번 신병은 섀퍼드한테 넘기십쇼.”
“그렇다는군. 존?”
“그 맨날 가지고 다니는 권총 좀 빌려주쇼. 우리 국왕폐하 대신 내가 쏴줄 테니까.”
“오, 굿. 내가 죽으면 그 신병은 네가 받는 거다?”
“자살용이다 짜식아. 아무리 봐도 중령님은 나보다 널 더 좋아하는 것 같으니, 내 총알이 분명히 더 위쪽에 있을 게 틀림없거든.”
“둘 다 쏴버리기 전에 닥치게. 그럼…. 루윌?”
“섀퍼드는 저보다 분대원이 셋이나 적습니다.”
“야 임마!”
중령은 분대장들의 말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인원 부족인 동시에 인원 과다. 14 특수 섬멸 작전대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내려오는 명령은 대부분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위험도를 자랑했고, 작전 위험도가 높은 만큼 매작전 마다 결원이 발생해 14 특작대에는 늘 사람이 부족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부족해진 인원을 충원하기 위해 위에서 내려보내는 인원들이 하나같이 문제가 있는 녀석들이라는 것이었다.
탈영병이라거나, 작전에 따르지 않거나, 성 군기를 위반하거나, 지나치게 폭력적이거나 한 ‘폐급’ 병사들.
당장 존 에이브람스. 셰퍼드 저 녀석만 해도 그를 깜둥이라고 놀린 부대원의 눈을 숟가락으로 파내서 이곳으로 쫓겨난 녀석이었다.
섀퍼드 분대 11명. 월리 분대 13명. 루윌 분대 14명. 도합 38명.
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부족한 인원이지만, 끈 떨어진 중령 혼자 관리하기엔 너무 많은 미치광이들이었다.
그래서 중령은 매번 신병이 올 때마다 기도하는 느낌이었다. 멀쩡한 놈은 기대하지도 않으니 대화가 가능한 놈으로만 내려주십사, 하고.
“뭐하는 놈인지나 들어봅시다. 이번엔 뭘 저지른 놈이 들어온답니까?”
폭탄 돌리기라도 하듯 죄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여는 셰퍼드를 중령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잘 생각했네 존. 지난번처럼 너무 다그치지 말고….”
“아니, 한번 들어나 보자니까!”
존은 그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벌써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하는 중령의 모습에 투덜거리며 그의 서류철 맨 위에 올려져 있는 신병의 기록을 집어 들었다.
“어디보자…. 빨간줄, 빨간줄…. 여기 있구만. [하극상, 명령 불복종, 상관 공격]. 뭐? 상관의 집무실에 화학탄을 깠다고?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냐?”
“우음, 쩝. 나도 보여 줘봐. 오…. 섀퍼드, 축하한다? 이번 신병은 제법 뚝심이 있어 보이는데? 재판 전 사전 조사에 범행 동기를 딱 ‘Give and take’라고만 말했대. 우음, 그런데 재판 기록은 없군. 킹, 이거 혹시 어떻게 된 건지 아십니까?”
“아버지랑 같이 입대했는데, 부자가 적의 화학 공격지대에 투입되었다고 하는군. 둘 중 하나만 살아 돌아왔고.”
중령의 고저 없는 목소리에, 루윌은 벌써 바닥을 드러낸 통조림을 아쉽게 쳐다보며 탄식했다.
“하이고, 알 만하군. 쩝. 그 작전 입안한 놈, 그놈이지? 장군급은 일주일에 한 번씩 전세기로 집에 가서 휴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던 그놈. 뻔히 죽을 자리에 무의미하게 사람 밀어놓는 게 딱 그놈인데?”
“메디치 중령. 맞다.”
“오, 죽었어?”
“병원에서 치료 중이라는 군.”
“아까워라! 파울이 아니라 스트라이크였으면 우리 신병 내가 많이 칭찬해 줬을 텐데!”
루윌은 낄낄거리며 읽고 있던 신병의 기록을 다시 존에게 돌려주었다. 루윌이 통조림을 퍼먹다 흘린 국물이 잔뜩 묻은 서류를 받아든 존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다시 중령에게 서류를 넘겼다.
“쯧. 이번에는 며칠이나 버티려나.”
얼룩이 잔뜩 묻은 기록에는 순진한 눈빛의 청소년과 [박교수(17) : 한국계] 라는 글씨가 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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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그렇게 스러지고, 그 차가운 시체 곁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뒤늦게 도착한 아군에게 구출 당한 이후로 오직 이 순간만을 꿈꿔왔다.
“충성. 병장 박교수. 지통실에 용무 있어 찾아왔습니다.”
“음? 계급장이…. 아, 자네가 그 친구로군. 이번에 무려 2계급이나 특진한….”
“서전트! 여긴 자네 고민 상담이나 하는 곳이 아니야! 뭣들 하나? 당장 끌어내지 않고. 도대체 경계를 어떻게 하길래 병사가 여기까지….”
픽!
핀을 뽑을 때까지는 후회도, 망설임도 없었다.
치이익!
“뭐, 뭐야! 상황병!”
“가스!”
“가스! CS탄이다!”
“당황하지 말고 걷어내! 창문 다 열고! 박병장이 도주하면 사살해도 좋다!”
“그냥 쏴버려! 저 미친 자식이…. 지휘관을 공격했잖아!”
“쏘지 마라! 포승줄로 묶어놔!”
핀을 뽑고 힘껏 던진 화학탄이 나와 아버지가 겪었던 끔찍한 독극물이 아닌 최루탄이라는 것을 알고, 그마저도 지통실을 순식간에 채울 정도가 아니라 눈물을 좀 흘리고 밖으로 걷어낼 정도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후회했다. 군대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3년 후에 내게도 영장이 날아올 것이라는 것과 무거운 총을 견착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날아간다는 사실이 전부였던 나는 화학탄이 전부 다 같은 것인 줄 알았다. 상황은 그런 학생들마저 참호에 쑤셔 넣을 정도로 절박했다.
생각해보면 멍청했지. 까딱 잘못하면 그 지역 병사들을 몰살시킬 수도 있는 진짜 화학탄을 중대 창고에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할 리가 없는데. 실탄도 2중으로 시건해서 보관하는데 화학탄을 그렇게 치장물자 창고의 새파란 단프라박스에 넣어 뒀을 리가 없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거기 있던 최루탄들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공항과 부대 철조망에 매달리는 민간인들 때문에 수시로 출동하는 병사들을 위해 미리 꺼내둔 것이었다.
그렇게 화학탄 소동을 벌여 감금된 그 날 밤. 임시로 나를 구금해 놓은 창고로 지통실에 있던 백인 남자가 찾아왔다.
야전 생활 따위는 해본 적 없다는 듯 하얀 얼굴에 마른 몸. 톡 튀어나온 배. 커다란 안경을 쓴 신경질적인 외국인.
문이 열리는 순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놈이다.’
아버지가 죽고 복귀한 나는 곧바로 중대장실에 들어가 난동을 피웠다. 누구냐고. 이따위 병신같은 명령을 내린 게 도대체 누구냐고.
끝내 명령서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근신 중 친하게 지내던 행정병 하나가 조용히 찾아와 귀띔해준 이름이 있었다. 이탈리아 군벌 가문 출신. 무능한 주제에 출세욕이 넘치는 것으로 유명한 장군.
로렌초 메디치 중령.
잔뜩 술에 취한 얼굴로 찾아온 그는, 묶여있는 나를 다짜고짜 폭행하기 시작했다.
퍼억! 퍼어억!
“빌어먹을 아시안 원숭이 새끼가 감히 지휘관을 공격하다니! 네놈 때문에 회의가 지연되고, 명령이 늦어져서 아군이 떼로 몰살당하게 되면, 네 하찮은 목숨 따위로 갚을 수 있을 것 같아? 어!”
단단한 군홧발이 머리를 걷어찰 때마다 의식이 휘청거렸다. 기회는 온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저놈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볼 수 있다면….
“메디치 중령님. 박병장은 군사 재판에 회부될 테니, 사적 제재는 여기까지만 하시는 것이-”
“허억, 허억! 뭐? 사적 제재? 여기까지만…. 하라고?”
이를 악물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집요하게 머리만 노리며 날아들던 발길질을 누군가 막아섰다. 잠시 멈춰선 군홧발은 그 목표를 바꿔 옆에 서 있던 남자의 정강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빠아악!
“이봐.”
“….중사 조병일.”
“내가 잘못 들었나? 방금 나한테 누가 명령을 했던 것 같은데. 그럼 계급이,”
빠아악!
“중사일 리가!”
빠아악!
“없는 것 같은데!”
“으으윽!”
털썩!
퉁퉁 부어오른 눈의 좁은 시야에 다리를 붙잡고 쓰러지는 남자가 보였다. 씩씩거리던 숨소리 끝에 지퍼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뜨뜻미지근한 액체가 내 얼굴 위에 떨어졌다.
“빌어먹을, 이놈이고 저놈이고 상관 보기를 아주 물로 보고 있어. 이 빌어먹을 미개한 아시안 군인들…. 아니, 군인도 아니지. 이 메디치가 이따위 민병대 같은 군인들이나 관리하라고 좌천당하다니. 무능하고 멍청한 자식들! 전쟁에 있어 희생은 필수 불가결한 것을! 겨우 필리핀에서 온 벼룩 같은 군인 몇 천 명 좀 잃은 것 가지고 나를 이렇게 대해? 두고 보자, 내가 이 한국군 놈들을 죄다 갈아 넣어서라도 실적을 올려서 돌아가 줄 테니! 돌아가서, 이 두 벌레들처럼 내 발아래 놓고 전부 자근자근 밟아버리겠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 주먹을 휘둘러가며 다짐하던 메디치는, 인상을 찌푸리며 방금 전까지 내가 앉아있던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기랄, 벌레들을 교육시키다 물집이 생겼잖아. 저 멍청한 놈이 내 몽둥이를 가져오지 못하게 해서는….”
퉁퉁 부은 시야 사이로 군홧줄이 풀리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메디치의 발이 눈에 들어왔다. 오줌을 싸느라 추어올린 바지 때문에 드러난, 고생한 흔적 하나 없는 발목도.
화학탄의 실패에서 하나 배운 게 있다면, 무기는 내가 알고 있는, 신뢰할 수 있는 것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 내게는 배운 지 기껏 한 달이나 된 K-2 소총보다 더 익숙한 무기가 있었다.
평생을 사용해온, 뭔가 질긴 것을 찢어 분쇄하는데 사용하는 무기가.
콰아악!
“아아아악! 놔, 놔아아!!!”
비릿한 피 맛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메디치의 뒤쪽 발목을 문 이빨에 더욱 힘을 줬다. 툭, 하고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으아아악! 사, 살려줘! 의무병! 의무벼어어엉!!!!”
한참을 버둥거리던 메디치는 오른발로 내 머리를 걷어차 떨어트린 뒤, 발을 질질 끌며 엉금엉금 기어나갔다. 그것이 정신을 잃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이었다.
이후 구타로 인해 찐빵처럼 부푼 얼굴로 재판장에 설 수 없었던 나는 메디치 중령의 강력한 추천으로 14 특수 섬멸 작전대로 징계성 발령을 받게 되었다.
병사들 사이에 ‘손이 깨끗한 사형장’으로 유명한 14특작대. 그들의 작전 지역에 내리는 수송기도 없어 인근 작전 지역으로 가는 수송기에서 5분간의 교육과 행운을 빈다는 말과 함께 3000미터 상공에서 굴러떨어졌다.
‘아들아, 네 삶을 사랑하거라.’
귓가를 찢어발기는 공기 소리 속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폐기물 버리듯 떨어지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아버지. 이걸 정말 삶이라 부를 수 있는 겁니까.’
포기하는 심정으로 대충 손에 잡히는 것을 잡아당겼다.
불행히도, 공수부대의 5분짜리 고공낙하 특강은 너무나도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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