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54
Chapter. 10 납과 은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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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식품이 보존식보다 싸다니, 돔은 정말 미쳤군.”
“그만큼 공급이 안정됐다는 뜻이겠지.”
“우리 마을에서도 이렇게 하는 게 가능할까?”
“밥이라…. 확실히 나도 식단부터 좀 사람처럼 바뀌니까 사나운 맛이 떨어지긴 했지. 우리 집 근처에 농경지로 쓸 만한 땅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날 저녁.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사온 음식을 숙소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먹으며 낮에 다녀온 일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설치류로 추정되는 것을 양념한 꼬치를 든 이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부터 시작하지. 우선, 캐러밴에 대한 수요는 넘쳐나. 돔의 준 최신형 무기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엠바고가 걸려있어서 그렇게 화제가 되진 않았지만, 그것 말고도 40구역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은 넘치더군. 역시 제일 요청이 많은 건 스킨 마스크야. 최근 방사능 오염구역이 넓어져서 그런가, 인접한 40, 41번 구역에서는 스킨 마스크가 부르는 게 값이라더군. 그것 말고도 30번대 구역에서만 서식하는 돌연변이 중 진미라 여겨지는 생물을 구하는 부호, 아직 탐사가 안 된 지역에서 구세대 형 난방 장비 전체나 핵심 부품을 구해달라는 사람, 헤어진 가족의 소식을 찾아 달라는 사람까지…. 돈 되는 일이 아주 수두룩하더군. 반대로 30번대에서는 깨끗하고 비옥한 토양, 심층 시추 장비, 신선 식품 및 실드 발생기 등에 대한 요청이 많고.”
스킨 마스크. 심층 시추 장비. 토양. 모두 30번대 구역의 특징에 기인한 요청이다. 방사능 오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구역인 39번~30번 구역은 비오염 생존 중심지인 40번대 구역과는 여러 가지로 생존 양상이 다르니까.
“어차피 무기 판매 건은 라이프 앤 머더 측에서 정보상 쪽에 슬쩍 얘기를 흘려 놓는다 했으니 그쪽은 알아서 접근하는 사이즈 있는 놈들만 상대하고, 우린 교역에 집중하면 될 것 같아. 업계 사람들한테 알아보니까 마스크 장사만 해도 랭커 부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더군.”
“마스크라…. 그거 그 32구역에 사는 그놈들이지? 기술혐오에 빠진 사이비 종교인 집단.”
“맞아. 해피 블라인드. 거기서 30번대 구역에만 서식하는 특수한 변종을 가공해서 만드는 마스크야. 징그러운 외견과 달리 먼지, 방사능, 독성 및 화학 대기도 죄다 걸러주는 끝내주는 물건이지. 자기들 말로는 ‘주께서 우리가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약속하신 증거’라고 하더군. 세상을 잿더미로 만든 옛 기술 따위가 없어도 우린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말이지.”
30번대 구역은 간단히 설명하면 ‘위험을 동반한 고수익성 파밍 지역’이다.
핵미사일의 폭심지는 아니지만, 그 영향권에 들어있어 지상에 드러난 거의 모든 것들이 방사능에 오염된 구역.
덕분에 특별한 보호장비가 없는 사람은 쉽게 접근할 수 없고, 사람이 접근할 수 없으니 구시대의 자재란 자재는 이미 모두 뜯어서 활용된 40번대 구역과 달리 아직 남아있는 쓸 만한 물건이 엄청나게 많은 곳이었다. 간간이 GG 거래소에 올라오는 발전기는 대부분 죽을 각오를 하고 30번대 구역에 들어간 스캐빈저들이 가져온 물건이었으니, 그야말로 구시대 보물창고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변종도 많다. 방사능 중독으로 외상없이 죽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 2형으로 남아있는 변종이 대부분이고, 알려지지 않았지만 3형도 40번대 구역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개중에는 방사능 돌연변이를 일으켜 상상도 못할 모습으로 변한 변종이나 토종 생물들도 있다고 하니…. 사실상 40번대 구역과 30번대 구역은 별개의 세계라고 봐도 좋은 것이다.
‘30번대 구역은 돔에서 일할 때 한번 순찰 지원으로 갔다 온 게 전부라…. 살아있는 지식이 없는 게 좀 문제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오래전 스쳐 지나듯 본 39번 구역의 모습과 그때 교육 삼아 들었던 지식이 전부. 몇 년이 지난 지금 어떤 세력이 얼마만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재수 없게 돔과 적대적인 세력이 있는 곳에 발을 들였다간 돔의 실종자 명단에 우리 이름을 올리게 될 테니까.
30번대 구역의 생리에 대해 생각하며, 버섯 샐러드를 한입 가득 삼킨 다음 빵처럼 부드럽게 가공한 칼로리 스틱 세끼 분을 입에 털어 넣은 내가 말을 이었다.
“으움, 쩝. 토양은…. 농업용이니 수요는 많은데 아무래도 부피가 좀 그러니까 제외하고. 시추 장비도 좀 그렇지 않나? 그거 덜 오염된 심층 지하수 파내려고 구하는 것 같은데, 집단 단위로 한두 개 정도밖에 못 팔 것 아냐.”
“그러니까 무조건 챙겨야지. 그쪽은 진짜 필수품이니까, 새로 트는 거래처에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가장 좋은 선물이 될 거야. 한 두 세트 정도만 챙기고, 판매는 보존 기간이 긴 신선 식품이랑 기존에 팔던 황무지 급 무기를 주력으로 하자고.”
“황무지급?”
“황무지 기술 수준에 맞는 거. 라이프 앤 머더에서 받은 준 최신형 무기 말고 원래 팔던 거 말이야. 그것도 라이프 앤 머더에서 동업자라고 도매가에 팔아주더라고. 변종이나 방사능 돌연변이와 교전이 많은 30번대 구역에서는 대구경 탄을 쓰는 무기가 인기라고 하더군. 그런 무기는 정비 소요도 많고 금방 고장 나는 법이니 수요는 넘칠 게 뻔해. 바렛이나 내가 쓰는 핸드 캐논 같은 걸 보여주면 속옷 바람으로 튀어나올 거다.”
역시. 원래 본업으로 장사를 하던 녀석이라 그런가. 이쪽에선 나보다 확실히 앞서있다. 마음 놓고 맡겨도 되겠군.
“그럼, 다음은 내가 얘기할까?”
대충 이안의 이야기가 정리되자 번쩍 손을 든 벡스가 말했다.
“난 감찰부에 갔다 왔어. 너희도 알다시피 30번대는…. 신시아까지 따라가기엔 좀 많이 벅찬 곳이니까. 그렇다고 집에 혼자 둘 수도 없지. 마을 사람들과 친하다고 해도 아직 그들을 신뢰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햅번 말대로 우리 거처를 노리는 놈들도 있을 테니까. 그거에 대해 얘기를 하니까 감찰부에서 나온 사람이 우리가 30번대 구역에 가 있는 동안 우리 집 근처까지 순찰 범위를 넓혀주겠데. 그 사람 말로는 ‘흔쾌히 임무 수행을 허락해준 데 대한 서비스’ 같은 거라고 하더라고. 신시아는 학교에 가기로 했어.”
“학교?”
“그래, 학교. 난 학교는 안 가봐서 모르겠는데, 아이들을 모아놓고 교육하는 기관이래. 과거의 성세를 되찾고 싶다면 무엇보다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나. 저번에 렙터에서 소모성 조종수로 끌고 왔다가 구출된 아이들도 대부분 다니고 있고, 신시아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많아서 적응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래.”
“그건 그 사람들 말이고. 신시아, 너는 어때. 가고 싶어?”
“….내가 먼저 가고 싶다고 했어.”
옆에서 깨작거리며 밥을 먹던 신시아가 말했다.
“여기 와서 폐만 끼쳤잖아. 난 뭐든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친했다고 생각한 마을 사람들은 교수 말대로 날 속였고, 뭔진 모르지만 내가 벡스 삼촌의 계획도 방해했다고 하고….”
“아, 그건!”
“교수도, 이안도, 벡스도 다들 굉장한 사람이야. 막 사람들이 떠받들어 주는, 나 같은 아무것도 아닌 어린애랑 비교도 안 되는.”
애가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벡스는 어쩔 줄 몰라 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부터 말수가 팍 줄었다 싶더니 나름의 충격을 받긴 받은 모양. 신시아는 자기중심적인 면이 강하긴 했지만 머리가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아마 오늘 온종일 일어난 사건들로 인해 자기 처지를 자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혼자 잘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마을에서는 내가 내려가니 순식간에 찬밥 신세. 돔에 도착하니 어딜 가도 우리 셋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그 뒤에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스스로가 짐처럼 여겨진 것이다.
[건방져. 처음에는 그럼 우리랑 자기를 동급으로 쳤다는 뜻이잖아?]‘원래 애들은 자기밖에 몰라. 애초에 6살 이전에는 타인의 개념마저 희박하다고. 저 녀석은 친부모를 제외한 사회 경험이 0에 가깝기도 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원하는 게 있으면 전부 스스로 챙겨야 했으니 자기중심적인 사상이 생길 법도 하지.’
하지만 건방지다는 생각에는 나도 동의한다.
왜냐하면 [교수, 벡스, 이안은 엄청나게 높은 사람이다 -> 그러므로 나는 학교에 갈 것이다] 라는 사고방식은….
“….에젤이 학교는 사람을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곳이래. 나도 금방 다른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만큼 훌륭해질 거니까, 그때까지는…. 안 와도 돼.”
어쨌든 우리랑 동일 선상에 서서 얘기하겠다는 뜻이니까.
유난히 ‘내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한 신시아로서는, 그 모든 소유욕의 주체가 되는 자신이 ‘가족들’ 사이에서 가장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타인에 비친 자기애라고 해야 하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하나.
뭐가 됐든 10살짜리 치고는 지나치게 성숙하고, 건방지고, 그래서 귀여웠다. 어쨌든 저 마음속에 우리 셋에 대한 애정도 제법 크게 포함되어 있을 테니까.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끝까지 자신의 포부를 내뱉은 신시아는, 억지로 울음을 집어삼키려는지 입에 샐러드를 한 볼때기 쳐넣더니 꾸역꾸역 삼키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이 꼬맹이가, 못 보던 사이에 쑥 커버렸구만! 야, 애는 어른 밑에서 응애~ 하면 되는 거야, 이 녀석아!”
결국 히죽거리며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이안이 제일 먼저 터져버렸다. 이안의 솥뚜껑 같은 손이 신시아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자, 눈물이 비죽 새어 나온 신시아가 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이익, 하지 마! 머리 헝클어져!‘
“크흐흐흐! 암, 그렇지! 콩만 해도 BDSM의 일원이라면 그 정도 포부는 있어야지! 안 그러냐, 벡스?
“….”
“벡스?”
답이 없다.
“귀, 귀여워….!”
심장을 부여잡고 가는 숨을 헐떡이는 벡스. 음, 이건 죽었군.
“네 뜻이 그렇다면야. 황무지 생활이 그리 좋다곤 할 수 없으니, 새로운 세대인 신시아는 뭔가 뜻이 있는 것을 배우는 게 좋을 수도 있겠지.”
“….가서 오래 있다 올 거야? 나 정말 열심히, 빨리 훌륭한 사람 될 거니까, 얼마 안 걸릴 테니까, 꼭 돌아오면 나….”
터억.
“안 버려, 안 버려. 너 감찰부에 버리고 우리끼리 어디 가는 거 아니니까, 학교나 잘 다니고 있어. 한 달, 어쩌면 두 달 정도 지나면 데리러 올 테니까.”
“히응-!”
내가 녀석이 제일 걱정하고 있던 부분을 콕 찝어 말해주자, 결국 신시아는 참고 있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쿠당탕! 하더니 벡스가 있던 자리에서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튼 신시아 문제도, 마을 문제도 잘 해결됐군. 적어도 황무지에서 돔의 교육 시설만큼 정상적인 교육기관은 찾기 힘들 테니. 애가 정치질에 좀 소질이 있는 것 같으니 학교생활은 잘하겠지.
신시아의 말을 곱씹고 있던 나는, 살짝 스쳐 들은 것이 생각나 신시아에게 물었다.
“너한테 학교가 훌륭한 곳이라고 말해준 사람이 에젤이라고?”
“훌쩍! 응. 작업복 같은 옷을 입고 엄청 지쳐보이는 모습이었어.”
“작업복이면…. 엑소슈트용 점프 슈트인가. 감시 임무 중 잠깐 복귀한 모양이군.”
잠시 에젤 레이든의 이름을 입에 굴려보던 교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필요한 게 모두 모인 느낌.
“자, 그럼 내 차례로군. 먼저 병원에 가기 전에 감찰 총장과 계약, 그리고 병원에서 전해들은 내 상태에 대해서 설명하지. 식량 말인데, 아무래도 고칼로리 위주로 열 명 정도 분량 식량을 더 실어야 할 것 같아서….”
내 설명에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점점 옅어져 가며 다시 진지한 얘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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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뒤, 감찰부 차고에 붙은 휴게실.
거의 일주일 가까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렙터 사이보그 게릴라 색출’ 임무를 갔다가 막 복귀해 축 늘어져 있던 에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
“너, 우리 일 좀 도와줘야겠다.”
안면 가득 좋아 죽겠다는 듯한 웃음을 피워 올리는 남자.
최근 단연코 40번 구역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인물이자, 그의 오랜 황무지 랜선 친구, 박교수가 만나자마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도와달라니. 다른 것도 아니고 인세의 마굴이라 칭해지는 30번 구역에 가는 길에 동참해 달라니.
“음…. 교수?”
“왜에?”
“네가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내가 너희 BDSM쪽 외교업무의 대부분을 맡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결국 나는 감찰부 소속 요원이란다? 그것도 엑소슈트의 기동이 가능하며, 실제 대 전차전을 겪은 ‘베테랑’ 요원이란 말이지. 아무리 네 위세가 하늘을 찌른다고 해도 지금 같은 비상사태에 나 같은 고오-급 인재를 함부로 쓸 수는 없단 말이-”
처억.
“말이. 뭐?”
에젤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박교수가 대답 대신 자신의 옷깃을 잡아당겨 그 위에 반짝이는 금 뱃지를 눈앞에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금색이 선명한, 마천루와 반구형 상징이 새겨진 뱃지. 베테랑 요원인 자신의 은색 뱃지보다 한 단계 위쪽인, 부장급 인사에게만 제공되는 권력의 상징이 선명하게 눈앞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아니 그걸 왜 네가….”
“왜냐하면, 친절하고 자애로운 우리 총장님이 내게 ‘모든 스테이션에서 부장급 권한을 발휘할 권리’를 주셨기 때문이지. 카운터에 가서 물어보니까 이미 다 얘기되어있던데?”
“모, 모든 스테이션에서 부장급 권한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권한을, 왜 너 같은 놈에게….”
“글쎄? 돔의 위대한 ★히어로☆ 님에게 또 엄청난 일이 맡겨진 것이 아닐까? 아직은 말할 수 없지만, 돔의 미래를 위해 정말 중요한 일이란다. 그런 임무를 맡은 사람으로서 온 힘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인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거고.”
교수의 입에서 ‘임무’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황무지 생활로 단련된 에젤의 본능이 마구 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따라가면 안 된다. 온갖 사고를 몰고 다니는 자연재해 같은 놈과 동행이라니! 그럴 순 없다. 난 어디까지나 안빈낙도의 삶을 살기 위해 감찰 고시에 응시한 것이지, 피와 폭연이 난무하는, 이번에는 방사능까지 포함된 그런 삶을 살기 위해 감찰부가 된 것이 아니란 말이다!! 배에 힘 딱 줘라, 에젤 레이든! 말하는 거야! 저 사탄 같은 박교수에게 딱 잘라서 거절한다고 말하는 거다!
감찰부 베테랑 요원답게 순식간에 후달리는 마음을 정리한 에젤은, 진중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교수의 말에 답했다.
“네가 요청이라고 말했으니, 거부할 수도 있는 거겠지?”
“그럼, 물론.”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거절하겠어. 어디까지나 나는 감찰부의 일원으로서 여전히 위험한 상태의 돔을 두고 볼 수 없으니까. 내가 너와 함께 30번대 구역에 가 있는 동안 내 빈자리를 채우려고 무리하게 된 동료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난 참을 수 없을 거야.”
“….그런가.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진짜?”
“그럼. 말했잖아? 어디까지나 권유라고. 싫다는데 어쩌겠어.”
‘예에에에에스으으으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순순히 포기하는 교수의 모습에 에젤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내가 해냈다! 턱 끝까지 다가온 악마의 손아귀에서 훌륭하게 탈출한 거야! 비바 민주주의! 비바 프리덤-’
“네가 오지 않는다면 감찰부에서 아무나 데려갈 수밖에. 총장님이 엑소슈트 한 대까지는 지원해준다고 했는데, 그거 생체인식이라 원래 파일럿 아니면 끌고 다닐 수 없는 거잖아? 네가 정 안 되면 다른 사람이라도 데려가야지 뭐. 음…. 어디 보자. 거기 이름이…. 존? 이름 참 정감 넘치고 좋네. 우리랑 같이 30번 구역에서 방사능 먹으면서 광신도랑 변종, 온갖 돌연변이와 신원미상의 위협을 무찌르러 가실래요? 싫어? 당신은 어때요, 키미? 비록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외부 활동 갔다 왔던 구역이 전부 초토화되고, 렙터의 근거지가 되고, 이번에는 전쟁이 나기도 했지만 뭐. 설마 이번에도 그러겠습니까? 비록 같이 다니던 한 친구는 옆구리가 거의 다 날아가서 내장이 흘러내리기도 했고, 또 한 명은 그동안 맞은 탄환으로 탄창 하나를 다 채울 정도가 되긴 했지만. 같이 갑시다! 에젤이 싫다는데 뭐 어쩌겠어요. 응?”
“어…..”
아아아. 주여.
같이 복귀한 감찰부 선배들의 눈빛이 전차를 마주했을 때의 그것과 비슷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교수는 그런 그들의 반응을 느긋하게 즐기며 만면에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호오옥-시나 해서 한 번만 더 물어볼게. 그래도 기왕이면 친한 ‘친구’랑 같이 가는 게 좋으니까. 에젤, 나랑 같이 30번대 구역에 아주 중요한 일을 하러 가지 않을래? 아니 뭐, 싫으면 말고. 네 자유야, 자유. 돔이잖아? 자유 민주주의의 보루! 네 마음대로 해!”
아아아. 나의 자유여. 우리의 정의여.
에젤은 온갖 감찰부의 은밀한 신호와 눈빛으로 ‘막내야! 막내야아아악!!!!’을 외치는 선배들 속에서, 눈물을 머금고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지원….하겠습니다….”
철썩!
“자알- 생각했어! 역시 내 ‘친구’야!”
“크흐흐흐, 호모 파일럿. 한 번 더 잘 지내보자고?”
“키히히힛, 할-짝! 잘 부탁해! 엔젤!”
등을 두드리는 교수와 음산한 웃음을 흘리는 이안,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리한 칼날을 핥는 벡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며, 에젤은 눈물을 머금고 입을 열었다.
“에젤 레이든입니다…. 훌쩍! 잘 부탁….드립니다….”
에젤은, 그렇게 무언의 압박 속에 BDSM 캐러밴으로 팔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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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틀 뒤. 점점 겨울에 가까워져 가는 9월의 차가운 아침.
무장 트럭 두 대. 수리 및 마개조가 끝난 허머가 돔의 북서쪽 출입구 앞에 엔진을 달구고 있었다. 트럭 뒤에는 커다란 트레일러가 연결되어 있었고, 허머도 지붕 위에 상자를 잔뜩 체결해 놓은 게 누가 봐도 장사하러 떠나는 캐러밴의 모습이었다.
“총장님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나 때문에 먼 길, 위험한 길 가는 사람들인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대수인가?”
털털거리는 차량 앞에 교수 일행과 총장. 그의 호위 병력이 마주하고 있었다.
“아이고, 성의는 이미 어제 물자 실을 때 충분히, 넘치도록 표하셨습니다. 이렇게 막 정비가 끝난 렙터제 무장 트럭도 2대나 준비해주시고. 우리 집 차만 가지고 장사하기엔 좀 운임비도 안 나올 것 같았는데.”
“애초에 자네들 물건일세. 계약상 노획 권리를 인정해주지 않았나? 일단 자네들 선에서 처리한 장비 중 고철이 되지 않은 게 그 전차랑 전투차량 네 대 정도로 확인됐는데, 전차는 아무래도 수리하는데 좀 더 걸릴 것 같아서 말이야. 잔뜩 구겨진 외부 장갑도 문제지만, 누가 내부 데이터 접속 시스템을 다 태워버려서 정상운용까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네. 전투 차량은 이런 물자 이송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임의로 무장트럭으로 대체해서 제공했지.”
“저희야 좋죠, 뭐. 어차피 전차야 중거리면 몰라도, 이런 초 장거리 운행에는 연료 때문에 부적합하니까.”
뻥이다. 스테이션에서 기름 전부 털어오면 되는데. 사실 끌고 갈 수 있으면 끌고 갔겠지만, 안된다는데 굳이 총장 앞에서 이런 소리 할 필요는 없겠지.
나와 악수를 나눈 총장은, 어느새 우리 일행이 된 에젤에게도 손을 건넸다.
“음…. 자네의 봉사에 감사를 표하지.”
“흐흐흐….아닙니다, 총장님. 감찰부 요원으로서 돔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다고 맹세한 사람이니, 바치라면 바쳐야지요. 분골쇄신한다고들 하잖습니까, 분골! 쇄신! 뼈를 갈고! 몸을 부순다! 죽으면 화장할 때 편리하겠네요! 하하하하! 흐히히히!”
“….고, 고맙네.”
“잘 갔다 와! 금방, 금방 따라잡을…. 히끅! 테니까!”
“오냐! 기대하고 있으마, 꼬맹이!”
“금방 올게! 너무 보고 싶으면 감찰부에 가서 얘기하고! 연락되니까!”
며칠 전부터 살짝 맛이 가 있던 에젤은 저 철벽같은 총장의 얼굴에 당황을 심어주었고, 신시아의 울먹이는 얼굴을 마지막으로 짧은 송별회는 막을 내렸다.
마지막으로 물자와 방사능 대비 장비까지 확인을 마친 일행은 각자 차량에 올라탔다. 허머에 이안과 벡스가 선두에. 엑소슈트와 배터리, 준 최신형 무기가 실려있는 전투차량은 에젤이. 그리고 마지막, 후미에는 보존기간이 긴 식품과 기타 교역물품이 가득 실린 전투차량에 내가.
“그럼, 슬슬 출발하자고!”
콰과가각! 그르릉!
부아아앙-!
세대의 차량이 모래를 박차고, 황량한 황무지를 향해 출발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46구역에 인접한 41구역. 지난밤, 라이프 앤 머더 측으로 준 최신형 무기, 공식 명칭으로 ‘과도기 장비’라 불리는 품목에 대해 은밀하게 구매 의사를 보낸 대형 스캐빈저 집단이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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