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57
Chapter. 10 납과 은화(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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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된 사이보그 병은 둘.
전에 47구역 돔의 메인 발전실에서 봤던 놈들과는 또 다른 형태의 장비를 달아놓은 놈들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동력을 어떻게 해결 하나 했는데….”
“이건 뭐.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퇴보에 가깝군. 그것도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을 잔뜩 추가로 얹어서 아주 땅에 파묻다시피 한.”
일전에 들었던 것처럼 사이보그화 시술은 사장된 기술이다. 단순 의수가 아니라 척수나 기타 깊숙한 곳까지 연결된 온갖 반응성 전극과 기계 장치들은 엄청난 거부반응을 일으켜 사용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으며 원래 목적에 맞게 충분한 출력을 내기 위해서는 연료를 포함한 동력기관을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단점투성이 기술.
렙터 소사이어티의 기술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한 방식은 지극히 단순했다.
‘필요 없는 것은 비우고 필요한 것은 채운다.’
담당관이 준비한 자료 속 해부된 사이보그의 뱃속에는 위와 신장이 사라졌고 소장의 대부분이 적출되어 있었으며, 그 자리에 차갑고 음울한 동력장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으, 나 토할 것 같아.”
“토해. 어차피 이거 담당관이 돔으로 보낸다고 했으니까 너는 필요하면 감찰부에서도 읽을 수 있을 거다.”
나는 해쓱해진 에젤을 뒤로하고 자료를 읽는 데 집중했다.
다섯 가지 종류의 마약성 진통제가 치사량에 준하게 검출되었고. 15% 정도 남은 소장에서 소화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곱게 갈아진 전분 같은 것이 확인되었다는 기록.
그러니까 이놈들은 뭔가 대단한 기술이 있어서 SF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기계로 내장기관을 대체하여 고기능 장기로 바꿔준 것이 아니라, 그냥 뺄 수 있는 건 다 빼버린 것이다. 평생 소화할 필요도 없는 죽만 먹이면 되니까 위와 소장의 대부분 덜어내고. 어차피 주기적으로 정비를 받아야 하니 신장이 걸러내지 못한 노폐물도 투석으로 걸러내고. 그렇게 만들어낸 빈 공간에 기계 의수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동력 기관을 쑤셔 넣어 놓은 것이다.
“으우욱…. 나는 이해가 안 가는 게, 아군을 저렇게까지 가혹하게 대하면 집단이 유지가 되나? 만약 누가 나한테 명령으로 ‘앞으로 평생 죽만 먹고, 오줌도 주머니 차고 다니면서 수시로 빼내야 하고, 매일 혈액 투석에 진통제로 절여진 삶을 살아라!’ 하면 당장 람보 쇼부터 벌일 것 같은데.”
“강제라면 그렇겠지.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사이보그 병들은 전부 자원해서 이 시술을 받았을 거다.”
정말 속을 게워내고 왔는지 안색이 한결 나빠져 돌아온 에젤에게, 심각하게 인상을 찌푸린 이안이 말을 이었다.
“렙터는 네가 생각하는 보통 집단과는 달라.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집단임에도 어떤 면에서는 황무지에 살아가는 것보다 더 야생에 가깝지. 힘의 논리가 전부인 곳이야. 돔의 말단 병사조차 되지 못한 최하급 노동자원. 그들은 어차피 먹는 것도 매일 벌레나 음식물 찌꺼기 갈아서 뭉친 스틱일 테니 평생 죽만 먹는 건 오히려 포상에 가깝고. 시술에 성공하면 납치된 적 세력 노동자원과 같은 처지의 최하층민에서 단숨에 중요한 특수부대로 지위가 격상되는 거지. 원하는 여자도 마음대로 품을 수 있고, 네스트 안에서 민간인들을 상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된다는 말이야. 군 계급도 팩 리더 바로 아래 정도로 엄청 높을걸? 사실 이런 복잡한 가정을 할 필요도 없어. 왜냐하면….”
톡톡.
이안은 다섯 가지 종류의 마약이 어쩌고- 하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렙터에는 마약 중독자가 진짜 많거든. 자의로 중독된 자들도 있고, 보급 담배에 슬쩍 끼워 넣어 강제로 중독시킨 사람들도 많고. 납치된 민간인의 대부분은 중독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마약만 준다면, 뭐든지 할 사람들.”
“….마약을 미끼로 시술에 참여시켰구나.”
“그래. 정말 거부반응에 대한 약으로서의 진통제였다면 기껏해야 한두 종류나 검출되었겠지. 겨우 두 명 해부했는데 둘 다 다섯 가지, 여섯 가지씩 마약 성분이 나왔다는 것은 놈들이 단순히 약으로서가 아닌 쾌락을 위해 고강도 진통제를 블랜딩해서 썼다는 뜻이야. ‘기계화 시술을 받으면 마약을 무상으로, 무제한 제공합니다!’. 캬아아- 마약 때문에 제 자식도 팔아먹는 마약쟁이들은 이거 못 참지. 돔에서 관리하던 기계화 시술 생존율이 3할이었지?”
끄덕끄덕.
“지금 꼬라지를 보니까 렙터의 개량형 기계화 시술은 1할도 안 될 것 같다. 그런데도 이렇게 렙터의 사이보그 병이 황무지를 종횡하고 있다는 것은 그 지원자가 얼마나 많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거야.”
“….”
“각오를 다져, 호모 친구. 너희들의 주적은 인간의 상식에서 벗어난 사이코 집단이다.”
이안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키며 사이보그 병의 해부도를 살피는 에젤.
“후우우. 좋아. 그럼 이런 녀석들이 42구역 인근을 돌아다니는 중이란 말이지?”
“그래. 어쩌면 작년보다 몇 배는 많아지고, 흉포해진 머글러와 놈들이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겠어. 43구역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지?”
“어디 보자…. 직선 거리상으로는 47구역에서 여기까지 오는 것보다 한참 먼데, 그 고목 변종의 장벽 돌아오는 거리를 따지니까 이동 거리로는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아.”
역시. 마음만 먹으면 43구역에 자리 잡은 놈들의 게릴라 작전 범위에 이곳도 충분히 포함될 수 있다는 뜻이다.
놈들이 시술받은 장비도 특이했다. 전기톱이나 유압 피스톤, 뭐 이런 직관적인 전투 장비가 아니라 기계 팔 끝에 그…. 램머인가? 건설현장에서 땅 다지는 데 쓰는 그거랑 닮은 용수철 달린 금속판이 달려있었다.
‘적어도 전투형이 아니라 특수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놈들은 확실하다. 이미 돔은 45구역 지하벙커 공사에 들어갔어. 세가 약해진 렙터가 뭔가를 할 것은 분명한데….’
지이잉-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더는 제대로 된 정보가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아서 일단 영상 장치를 꺼버렸다.
“추측은 여기까지만 하자.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토대로 움직였다가 그 정보가 사실이 아닐 경우 골로 가는 경우도 많으니까. 일단 담당관의 자료에서 확인한 것은 세 가지. 가을이라서, 앞서 운송대가 소란을 피워서가 아니라 그 전부터 갑자기 이 부근 변종의 공격성이 늘고 숫자가 늘어났다는 것. 렙터가 아주 미친 또라이 새끼들이라는 것, 그리고 그 또라이가 만들어낸 슈퍼 마약 솔져들이 이 부근에서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
“앞서 간 운송팀의 정보는 없었어?”
“지나갈 때 잠깐 교신한 것 빼고는 없었어. 일단 운송팀은 아예 엑소슈트를 주력으로 운용하기 위한 장비를 다 갖추고 출발했으니 우리 쪽보다 돌파력이나 화력은 앞서겠지. 적어도 여기까지 오는데 재보급의 필요성은 느끼지 않았다는 뜻이야.”
정보도 얻었고, 보급도 마쳤다. 이제 여기서 볼 일은 없다.
“슬슬 떠나자. 렙터에서 뭔가 작전을 꾸미고 있다면, 빨리 움직이는 편이 도움 될 것 같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네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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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급도 마쳤겠다, 필요한 정보도 얻었겠다. 스테이션에 더 머물 필요를 느끼지 못한 일행은 더 쉬고 가라는 담당관의 권유와 결국 바닥까지 털려버린 보급관의 절규를 뒤로하고 더욱 북쪽을 향해 차를 몰았다. 다행히 워킹 케인(working kane)의 장벽 남쪽과 다르게 북쪽은 곳곳의 스테이션과 인근 스캐빈저들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있는 상태였고, 일행은 산더미처럼 도축되어 쌓여있는 머글러들의 시체를 지나 마침내 첫 번째 손님이 기다리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좋은 물건 팔아줘서 고맙군. 요즘 캐러밴들은 뚝심이 없어서 조금만 위험해졌다 싶으면 장사 접고 틀어박혀 버리거든. 덕분에 숨통이 트였어.”
41구역, 이 주변을 통틀어 가장 몸집이 큰 대형 스캐빈저 ‘히드라’의 본거지.
히드라의 삼 두령 중 하나인 디에고 알레한드로 뻬냐 곤잘레스….라는 외우지도 못할 이름을 가진 남자는 자단목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펼쳐진 여섯 개의 건 케이스를 보며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보상이 귀한 정보가 들어왔다길래 속는 셈 치고 돈부터 쥐여 줬는데, 그게 돔의 기술유출 제한 완화에 대한 소식이었을 때 내가 어떻게 생각한 줄 아는가?”
“….히드라의 전력을 획기적으로 증강시킬 기회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야, 딜러.”
애꾸눈에 얼굴에 일반 피부보다 흉터가 더 많을 정도로 끔찍한 몰골을 한 남자는 건 케이스 안에 곱게 포장된 스나이핑 코일 건을 들어보였다. 하나만 남은 눈으로 가늠자를 피는 그의 얼굴에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마침내 그 정보상이 한탕 하고 내 곁을 떠나려는 줄 알았지. 일전에 내가 그놈을 잡으려고 했던 것도 있고. 돔에서 잘못 흘러나온 물건이랑 나를 엮어서 그 끔찍한 돔의 메탈 자이언트의 손으로 히드라의 목을 치려는 줄 알았지 뭔가. 음, 이건 정말 물건이로군.”
철컥!
건 케이스 안의 과도기 장비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듯 만져보던 알레한드로는 의수형 핸드 캐논과 손가락이 두 개만 남은 자신의 손을 번갈아 보더니, 입가의 흉터를 일그러뜨리며 웃어 보였다.
“심지어 거래 책임자가 듣도 보도 못한 새로 만들어진 캐러밴이라니. 일단 돈 주고 산 정보이니 아까워서라도 발주는 넣었는데, 자네들이 여기까지 올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지 못했어. 정말…. 뜻밖이었지. 감탄했네, 딜러. 너흰 나를 감동하게 했어.”
“삼두사(三頭蛇)의 두 번째 머리가 겨우 이까짓 일로 감동이라…. 그래서. 상인에게 감사를 표하는 법 정도는 알고 있겠지?”
“물론.”
따악!
흉터투성이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뒤에 시립해 있던 녹색 후드를 쓴 스캐빈저들이 커다란 상자를 이안의 앞에 내려놓았다.
“현물로 치를 생각인가?”
“우린 실체가 없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니. 전쟁 이전에 팜을 운영할 때도 대금은 항상 금으로만 취급했지. 열어라.”
끄드득, 끼익!
그의 말에 기다리고 있던 스캐빈저들이 빠루로 상자의 못을 뽑아내고 뚜껑을 열어 보였다.
“나는 우리 패밀리의 전통을 사랑하지만, 전통을 지키겠다고 쓸모도 없는 금 따위를 준비할 정도로 멍청하지도 않으니.”
“….라 엠므. 이번엔 나를 감동시켰군.”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받은 걸 그대로 되돌려줬을 뿐이다.”
상자 안에 들어있던 것은, 지난날 교수 일행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태양열 발전기였다.
“6개월 전에 37구역 주택가에서 발견한 물건이지. 이걸 가져온 녀석은 방사능 중독으로 죽었지만, 녀석의 목숨값치고는 지나치게 좋은 물건이지. 그래서, 이 정도면 만족하나, 딜러?”
“….대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즐기는 성격이로군?”
“하하하하! 마음에 들어…. 아아주, 마음에 드는군.”
서로 비슷한 미소를 입에 담은 두 사람은, 거래 성사를 의미하는 악수를 나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안은 제법 위험했던 거래가 무사히 끝난 것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마무리가 될 때까지 저들이 허튼 수작을 부리지 않기를 기원했다.
“그래…. 다음에는, 여기까지 올 배짱도 없는 그 겁쟁이 리더도 함께 봤으면 좋겠군. 자네 같은 남자가 그런 작은 그릇 안에 담겨있다니. 안타까운 노릇이야.”
“…..쯧.”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알레한드로의 마지막 말에 이안의 품에서 커다란 리볼버 한 정이 튀어나왔고, 주변에 시립해 있던 스캐빈저들의 총구가 이안의 머리를 향했다.
“….내가 틀린 말을 했나, 딜러?”
“어리석은 말을 했지, 라 엠므.”
일촉즉발의 상황. 알레한드로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댄 이안은, 주저 없이 그의 손끝에 걸린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찰칵!
움찔!
리볼버의 공이가 빈 약실을 치는 소리가 침묵을 깨트리며, 이안의 머리를 향하던 총구가 천천히 위를 향했다. 무기를 들고 오되, 약실을 비워서 온다. 저쪽이 그들의 오랜 전통을 먼저 지켜준 이상 두령의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그를 존중해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안은, 알레한드로의 화려한 방을 뒤로하며 말했다.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당신 정도로는 그 녀석을 만날 자격이 안 되기 때문이지.”
“자격이라…. 40구역에서 42구역까지. 3개 구역을 통틀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이 히드라의 알레한드로가 말인가?”
“그래.”
화아악-
문을 열자 안으로 훅 들어오는 외풍을 느끼며, 이안은 그제서야 상대가 술을 권할 때도. 대화할 때도 벗지 않고 있던 스킨 마스크를 벗으며 담배를 물었다.
“적어도 우리 캐러밴의 리더를 만나고 싶으면 그쪽 뱀 머리 셋은 모아놓고 요청해라. 이런 개수작 따위는 집어치우고.”
“자만이 지나친 게 아닌가?”
“자만이 아니라, 큰 손님에 대한 서비스지. 충고 한 번으로 단골이 될지도 모를 손님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남는 장사니까.”
후우우-
이안은 밖으로 걸어 나오며 아직까지 공기 속에 남아있는 묘한 잔향에 콧잔등을 찌푸렸다.
알레한드로의 방 한쪽 구석에 피워져 있던 작은 향로.
“….돈 잘 주는 더러운 손님이라…. 쉽진 않군.”
그의 기억이 맞다면 그건 미약, 흥분제의 일종이었다. 렙터의 사창가에서 종종 쓰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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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직-
“그래서. 과도기 장비 6개에 일반 화기의 1/3을 다 팔아치웠다고?”
차량 간 무전으로 복귀한 이안의 얘기를 듣던 나는 백미러에 비친 트레일러가 홀쭉해진 것을 보며 감탄을 토했다.
트럭에서 웬 코트에 조끼, 모자까지 꺼내서 차려입은 이안이 혼자 가겠다고 했을 때는 이게 뭔 미친 소리인가 했다. 결국 고집에 못 이겨 보내주고 한참을 오지 않길래 잠입해서 알아보겠다는 벡스를 에젤과 함께 말리기를 두 시간.
저 멀리 커다란 상자를 짊어진 스캐빈저와 함께 코트를 휘날리며 돌아온 이안은, 짐을 실어준 스캐빈저들이 돌아가자마자 숨을 몰아쉬며 빨리 벗어나자고 다그쳤다. 돈 받았으니 더는 볼 일 없다고. 재수 없으면 ‘자발적 충성심’으로 무장한 스캐빈저들이 독단적으로 습격할 수도 있다고 하며 말이다.
“그래. 주문했던 수량보다 훨씬 많이 사더군. 이 난리통 한가운데에 영역을 가지고 있으니 무기가 많이 필요했겠지.”
“….그게 렙터로 다 넘어갈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히드라는 박쥐 같은 놈들이야. 이득이 되면 누구와도 손을 잡고, 또 같은 이유로 배신하지. 지금 놈들은 제법 돔에 협조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으니 그렇게 쉽게 넘어가진 않을 거야. 뭐, ‘거부하기엔 너무 많은 돈’을 준다면 또 모르지만. 거기까지는 우리가 신경 쓸 필요 없지. 애초에 어느 정도 저쪽에 넘어갈 것을 각오하고 돔에서도 푼 물량이니까.”
그렇게 허겁지겁 히드라의 본영에서 나와 북으로 향하기를 한 시간. 어느 정도 놈들의 공격권에서 멀어졌다고 느꼈을 때, 이안이 말해준 거래 대금에 그대로 브레이크를 밟고 트렁크에 뛰어 들어가 확인했다.
“발전기라니. 그것도 소형도 아니고 중형 중에서도 이렇게 멀쩡한 놈이라니….”
“그러니까 장사는 나한테 맡기라고 했잖냐. 의외로 이런 육식파 손님들은 이성보다 감성적인 부분을 건드려야 할 때가 많은데 그들의 전통이나 문화를 모르는 사람은 쉽게 다가가기 힘들거든.”
손으로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히죽 웃는 이안.
“그렇다고는 해도 발전기 하나면…. 마진을 너무 크게 남긴 것 아닌가?”
“크흐흐흐. 놈들은 남는 장사만 하는 녀석들이지. 이건 감사의 표시 따위가 아니야. 페이백까지 생각한 거래지.”
탱 탱!
여유로운 척하지만 제법 긴장했는지, 품에 들어있던 힙색에서 술을 한 모금 들이킨 이안은 제독처리까지 끝난 깔끔한 발전기를 두들겨 보였다.
“우리가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니까 대번에 현물 거래를 입에 담더군. 지들 말로는 자기네 구역은 깨끗하게 청소했다고 하는데, 정작 그렇게 말하면서도 안으로 들어가는 우리가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 거야. 우리가 죽으면 거기 덩그러니 남아있을 물건을 날름 채어 가겠다는 뜻이지. 실링으로 주면 그게 안 되니까 이렇게 튼튼하고, 트럭이 몇 바퀴는 굴러도 살아남을 것 같은 발전기를 내놓은 거야. 속으로는 가다 죽어라~ 하고 고사를 지내고 있을걸? 속 보이는 자식 같으니라고.”
“참…. 도대체 뭐가 돌아다니기에 죄다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자고로 장사는 리스크를 동반할수록 수익이 극대화되는 법이지. 벌써 중형 발전기 하나다. 안으로 들어가서 남은 거 다 팔고, 저기서 사온 거 또 47구역에서 다 팔아야지. 잘하면 이번 상행 한 번에 마을에 필요한 대부분의 물자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덜컹! 덜컹 덜컹!
얘기를 하며 차를 달리는 동안, 어느새 거칠어진 노면에 무장트럭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황무지에 살다 보면 미세한 사람의 흔적도 쉽게 찾을 수 있게 되기 마련이다. 신발에 밟혀 살짝 모래에 파고든 돌 조각이라거나, 뭔가 거칠게 파내고 뜯어간 흔적, 작은 혈흔 그런 것들 말이다.
길이 거칠어지기 시작한 다음부터, 그런 흔적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귀로 들리는 침묵이 아닌, 감각적인 침묵.
누가 말하지도 않았지만 세 대의 차량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이 침묵을 깨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이.
“버블 확인하고. 마스크 절대 벗지 말고. 사전에 얘기한 대로, 지금부터 되도록 교전은 피하면서 들어간다. 승패를 떠나서 교전이 곧 치명적인 손실이라고 생각해. 선두 허머에서 뭔가 발견하면 즉시 신호하고. 특히 벡스.”
치직-
“알아들었다.”
“에젤, 지금부터 38구역까지 소모성 배터리는 다 쓴다고 생각해. 반향 레이더 켜 놓고. 신호 감지기도 최대 출력으로 돌리고. 앞서 간 운송팀이 뭔가에 당했다면, 구조 신호 정도는 켜놨을 테니까. 38구역까지 가는 경로에 있는 구조신호 위주로 확인하며 올라간다. 패널은 운전석에 연결되어있지?”
치직-
“확인했음. 돌아가면 방사능 산재처리로 평생 놀고먹을 테다.”
에젤 녀석. 이런 상황에도 농담이라니.
차량 간 무전에 약간 잡음이 섞이더니, 에젤 쪽에서 다시 무전이 왔다.
치직-
삑-…… 삑-…..
“연결됐다. 소리 들리지? 딱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에 하나 잡히는군. 길을 제대로 찾은 모양이-”
삑-. 삑-. 삑-. 삑-.
“어….”
삑. 삑. 삑. 삑. 삑. 삑. 삑. 삑.
점점 빠르게. 데이터화 된 단말마나 다름없는 구조 신호가 하나둘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불어나며 에젤의 차량 안을 신호음으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치직-
“….음량 줄여, 에젤. 저 신호음 중 하나로 여기 남고 싶지 않으면.”
교수는 전자음으로 이루어진 아비규환 속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끄극, 끅, 끄극, 끄그그극, 끄그그극, 끄그그극.
스테이션에서 받아온 가이거 계수기의 바늘이 특유의 긁는 소리와 함께 사납게 떨리고 있었다.
41구역의 끝자락. 본격적인 방사능 지역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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