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6
Chapter.2 위기는 기회는 위기다(6)
***
“전공…. 전공이라…..”
콰악!
대열에서 빠져나와 내 앞으로 걸어나온 왈도프는 대뜸 내 멱살을 잡아올렸다.
“어이, 애늙은이. 우리가 좋다, 좋다, 해주니까 니가 뭐라도 된 것 같냐? 내가 아침에 너 끌려갈 때 뭐라고 하디?”
“알죠, 그거 아는데….”
“알아? 이야~ 그럼 알아들었는데도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거구나? 도박을 할 거면 본인 주머니만 탈탈 털어야지. 괜히 남의 돈까지 판돈으로 올리지 말고. 그치?”
‘….첫 전투가 생각보다 치열 했나보군. 보아하니 다들 돌아가고 싶어하는 눈친데?’
도박이라…. 미안하지만, 이 게임이 워낙 거지 같은지라 내 돈, 남에 돈은 물론 캐피탈까지 박박 긁어서 올인을 해야 풀릴까 말까 한 게임이거든.
“도박도 도박 나름 아닙니까? 저도 사람인데 그냥 저 미친 몬스터들한테 대가리 박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스릉!
왈도프의 칼이 내 말끝을 자르고 목에 드리웠다.
“판돈이, 우리 목숨이라고.”
“그리고, 우린 용병아닙니까.”
이 아저씨야, 그쪽도 나름 용병으로 잔뼈가 굵은 것 같지만, 나도 월드 2에서 용병생활 꽤나 해봤거든?
용병을 설득하는데 필요한게 뭔지 정도는 훤하다고.
“원래 낚싯대 끝에 목숨 걸어놓고 보물을 낚아올리는 게 우리네 삶 아닙니까? 아까 전이야 죄다 똑같은 입장에서 뮤트놈들이랑 치고박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잖아요? 저기 뮤트새끼들을 문자 그대로 ‘갈아’버리고있는 기사님들 안 보이십니까? 아까까지 전장이 도박장이라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전장은 사기 도박장이라구요! 딸 수밖에 없는 판! 전투 끝날 때까지 앞에 남아있던 놈들이랑 뒤로 빠진 놈들이랑 보수가 천차만별인 건 다들 아시죠?”
첫 번째. 용병의 삶 그 자체로 정의될 수 있는 것, 황금.
“그건 그렇지만, 저 기사들이 우리 쪽에만 머무를 리도 없고….”
“지금 주변을 한번 둘러보십쇼. 내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런데, 어제 봤던 친구들 얼굴은 전부 다 보이는 것 같거든? 죽은 사람 없죠?”
“….운이 좋았지.”
“전장에서 동료가 한 명도 안 죽은 데다가, 하필! 기사단이 우리 쪽으로 내려와서 위기한번 없이 살았네? 이게 정말 전부 다 운으로 보이십니까? 군다르-파사의 눈길이 저희에게 임한 게 아니라? 그런 전장에서 그냥 내뺀다고?”
“으음….”
슥슥-
슥, 스슥
용병과 방랑자의 신, 군다르-파사의 이름이 나오자 옆에서 듣고 있던 용병들이 손을 등 뒤로 돌리고 왼손으로 오른손 엄지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흔히 군다르의 가호를 비는 용병들의 약식 기도같은 것이다.
두 번째. 가장 강력한 용병조차 벌벌 떨게 만드는 것. 미신.
“….어느정도는 네 말이 맞을 수도 있겠어, 애늙은이. 하지만 나는 용병조합 투란지부장이야. 지금은 우리가 병력을 가지고 있으니 영주 측에서 대우해주고 있지만, 우리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지금보다 더 불공정한 계약을 우리 목전에 들이밀 거라고. 위험을 감수하기엔….”
“아, 진짜! 거 쎄빠닥이 길다 못해 바닥에 질질 끌리겠습니다? 어휴, 저거 먼지 묻은것 봐! 그냥 쫄았다고 얘기하십쇼! 왜요, 뮤트새끼들 미친 듯이 뛰어오는 거 보니까 불알이 똑 떨어져서 못 걷겠습니까?”
뚜둑-
“….뭐 이새끼야?”
“아니, 어차피 다들 목숨 걸고 돈 벌겠다고 용병했으면서 뭘 그렇게 많이 따집니까? 상황 좋고, 수익성 좋고, 더러운 일도 아닌데.”
“…..하! 말하는 본새 하고는.”
“몸은 너덜너덜한게 주둥이는 팔팔하구만.”
“어제 술을 덜 쳐먹은 게야.”
물러설 준비를 하던 용병들이, 목을 뚜둑, 하고 꺾으며 하나둘 몸을 풀기 시작했다.
돈만 주면 뭐든 한다는 세간의 부정적인 시선 덕분에 흠집과 상처로 가득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용병이다.
“씨이팔. 오냐! 한다 해!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갔는데 아니다 싶으면 그땐 너새끼 모가지를 잘라서라도 끌고갈테니까 그런줄 알아!”
세 번째. 자존심에 죽고사는 용병들이 듣고 그냥은 못지나치는 것. 도발.
“쯧. 죽으라고 가져다 놓은 자리에서 살아 돌아온 걸 보니까 나름 한 가닥 하는 것 같아서 들어는 주겠는데,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띠링-!
[정보 업데이트 : ‘은빛 함성 용병 조합 무리’가 일시적으로 당신의 통제를 따릅니다.]반가운 시스템 알림음과 함께 나타난 메세지에, 교수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드디어. 전장을 움직이는 작은 말 하나가 내 손에 들어왔군.’
“아, 그거요. 사실 별로 특별한 건 없습니다. 아마 싸울 필요도 없을걸요?”
교수는 앞으로 걸어나가며 들고 있던 방패로 땅에 선 하나를 죽 그어놓은 다음, 거의 지척까지 다가온 2차 웨이브를 응시하며 말했다.
“원형진 풀고, 여기서 우리끼리 일자 방어선 만들어놓고 최대한 소란 피우시면 됩니다.”
***
GG에는 부정적인 특성이 많다. 아니, 단순히 많은 게 아니라 특성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특성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특성이라고 마냥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황혼기, 60세 이상 캐릭터가 모두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특성인 [ 노환 ]같은 경우에는 모든 신체능력이 30% 감소하지만, [ 노인의 지혜 ] 라는 특별한 스킬을 제공한다.
[ 방화광 ]의 경우에는 화 속성 친화력 및 저항력을, [ 식인종 ]은 인간형 적을 대상으로 추가 공격력을, 내가 가진 [ 정신쇠약 ]의 경우에는 컨트롤 할 수는 없지만 광범위한 정보 습득능력을.평소에는 쓸모없는 정보가 다른 생각을 덮어서 짜증 나고 머리만 아픈 특성이었는데, 이렇게 다각도에서 정보를 필요로 하는 전장에 나와보니 두통만 제외하면 생각보다 쓸만한 구석이 많았다.
부상을 입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쳐서 그런가, 전보다 구분이 더 쉬워진 것 같기도 하고.
화악-!
화확!
교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무차별적으로 눈앞에 들이닥치는 정보들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역시 없다. 깃발이나 나팔, 하다못해 소리를 질러서라도 전해져야 하는 지휘부의 명령이 하나도 전해지지 않고 있어.’
급하게 이루어진 전투 다 보니 정확하게 정해진 전략은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지휘관 역할을 맡은 기사가 그때그때 전황을 판단하고 임기응변식으로 내리는 명령이 전부겠지.
하지만 지금 지휘부가 위치한 중앙군은 이미 무너진 우측 전선의 뮤트와 원래 상대하던 중앙, 양면으로부터 공격받으며 정신이 없는 상황. 아마 각 군에 위치한 백인대장들의 판단에 맡기고 전투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우리 쪽에 이렇게까지 통제가 없다는 것은…. 명령을 내려줄 백인대장이 전사했다는 의미가 되지.’
샤를롯 데 아가트의 기사단이 괜히 우리 쪽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 아니다. 샬롯 정도되는 히어로 유닛은 스탯이 장난 아니게 빵빵하거든? 힘도 세고, 방어력도 높고, 시야도 넓다.
언덕에서 우리쪽 지휘관이 전멸한 것을 보고 병사들이 통제 불능 상태에서 완전히 난전에 돌입하거나 후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쪽으로 온 것이다. 당장 우리 용병 친구들만 해도 자기 식구만 다 챙기고 튀려고 했잖아? 이렇게 되면 중앙군은 좌,우익이 전부 비어서 3면 공격을 받고 박살 나게 된다고.
그리고 이렇게 한 자리에 묶여있는 것은, 그녀 정도의 전투력을 가진 입장에서 엄~청나게 답답한 일이다.
‘9~7급이면 샬롯을 위시한 기사단이 차징 한번하면 볼링핀 마냥 와르르 무너지는 병력인데, 그걸 못하고 있으니 속이 터지겠지.’
여기서, 우리 용병 친구들과 내가 끼어들 틈이 생긴다.
“야, 야! 진짜 이거 맞아?”
“맞다니까요! 잔말 말고 두드려요!!”
“아니, 우리가 몇 명이나 된다고 일자진을 우리끼리 짜고 있는데! 당장 옆구리 횅하니 빈 거 안보이냐? 이 상태에서 들이박으면 우리 다 죽어! 주의를 더 끌어서 어쩌자는 거야!”
“아, 그냥 좀 믿어! 쫌! 자아, 더 크게! 힘껏 두드립시다!”
캉! 캉! 까앙!
탕탕탕, 태엥!
“이, 이쪽이다아아아!!”
“어어어이이이!!! 괴물새끼들아아!!”
말로야 믿음직스럽지 못하면 뺀다고 했지만, 이미 시스템이 확정지은 이상 눈에 띄는 피해가 생기기 전까지는 내 말을 따르게 되어있는 용병들은,
매우 불안한 눈으로 다가오는 뮤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전사자들에게서 구한 가장 큰 방패를 가지고 있던 무기로 마구 두들기고 있었다.
“카아아아아!!!!”
“크아! 캬아악!”
“우그으으우우우!!!”
“야, 야! 애늙은이! 진짜 죄다 이쪽으로 몰려오잖아! 이제 뭐 어떻게 하면 되는데!”
교수는 자신의 뒤쪽, 용병들과 제법 떨어져 있는 좌익의 본대를 살폈다. 1차 웨이브의 뮤트는 거의 다 정리된 상황.
‘믿자. 보통 히어로도 아니고 무려 그 전장의 태양이잖아. 나보다 100배는 더 전황을 잘 꿰고 있을거라고.’
“그만! 소음 멈추고! 지금부터 제 왼쪽 라인 좌로 10보! 오른쪽 라인은 우로 10보! 가운데를 넓게 비워!”
“뭐? 일자 방진이라며! 구멍을 내자고? 너 미쳤-”
“빨리!”
교수는 움직이면서도 끊임없이 뒤를 살폈다. 와야 되는데…. 분명히 와야 되는데….!
….두두두두두-
그렇게 가슴졸이던 교수의 귓가에, 마침내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온다! 전부 좌우로 5보, 아니 그냥 가던 방향으로 뛰어!”
“아니, 도대체 뭐가 뭔지 알려는 줘야지!”
“으하하하! 뒤를 보라고 뒤를! 내가 말했잖아요! 싸울 필요도 없다고!”
함박 웃음을 짓는 교수의 말에 왈도프와 용병들은 고개를 돌렸고-
히히이잉!!!
“비-켜라아아아!!!”
구구구구구구!!!!
“날개 기사단-! 거차아앙!!”
철커억-!
“우, 우와악!”
“비켜! 빨리 옆으로 꺼져!”
“으하하하! 저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가 뭐하러 싸웁니까! 판이나 깔아주면 되지!”
당장 무너져가는 중앙군에 지원은 가고 싶고, 막상 좌익을 떠나자니 지휘관도 없이 2차 웨이브랑 붙으면 개판이 될 것 같고. 그런 상황에서 기사단이 가장 간절하게 바라는 상황이 뭘까?
‘안 그래도 나 때문에 전선이 앞으로 돌출되어서 적들이랑 먼저 조우할테니, 빨리 정리해버리면 되겠다 싶지 않겠어?’
뮤트? 지금 샬롯 옆에 있는 기사단이 원래 그녀의 휘하에 있는 근위 기사단이 아니라고 해도, 그녀의 버프 효과 하나만으로도 앞에 지나가는 저급 뮤트는 죄다 고깃덩어리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적의 숫자와 관계없이 붙으면 그냥 이길 정도의 비대칭 전투력.
‘그 정도로 전투력 차이가 나면, 당연히 몰이 사냥을 해야지!’
그래서 용병들을 불러모았다. 적이 보이면 일단 달려드는 저급 뮤트의 특성에, 최대한 넓게 펼쳐선 진영에, 그것도 모자라서 그 소음에 그 난리를 피워댄 결과,
“그우어어어!!!”
“워어어어억!!!!!”
좌측 전선 근처로 몰려오던 뮤트들은 죄다 우리 쪽으로 뭉쳐오고 있었으며,
흐으읍-
“왕을!!!위하여!!!!!”
“왕을 위하여!!”“왕을 위하여!!”“왕을 위하여!!”“왕을 위하여!!”“왕을 위하여!!”
“돌파하라아아아!!!!”
콰가가가가가각!
‘어그로 끌기’라는 임무를 마친 우리 용병조합 사람들 사이를 돌파한 기사단은 순식간에 뮤트를 갈아버리며 전진하고 있었다. 아, 거 시원하게도 미는구만!
“낄낄낄! 거봐요. 제가 뭐랬습니까? 사기도박이라니까? 쉽죠?”
왈도프와 용병들은 멍한 얼굴로 하늘로 비산하는 뮤트 무리를 한번, 내 얼굴을 한번씩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이걸….. 다 예상한거냐?”
“뭐 예상할 것까지 있습니까. 그냥 저 뒤에 있는 기사단이 참 답답하겠구나, 기사단은 랜스차지에 미친 놈들이니까 자리만 잘 만들어주면 눈이 훼까닥 뒤집혀서 이쪽으로 와주겠구나, 생각한 거죠.
본대랑 우리 거리가 좀 되잖아요. 그 정도면 속도도 충분히 붙을 거고, 잘 몰아주면 한방에 싹 정리해주겠다 싶어서.”
랜스차지는 원래 기사단이 전투지역의 가장자리로 돌아 적들의 후방이나 측면을 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저렇게 적들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서 다가오면 애써 돌파해봤자 큰 피해를 못 입히거든?
그래서 일부러 앞으로 나와서 가속할만한 거리도 만들어주고, 뮤트도 잘 뭉치게 몰아놓은 거다. 이정도로 대놓고 판을 깔아놨다? 말타고 갑옷입은 놈들은 이거 못 참지.
왈도프는 내 설명을 듣더니, 뭔가 이상한 것을 본듯한 눈을 하였다.
“그걸 이 짧은 순간에 다 생각했다고? 심지어 방금 전투를 마치고 부상까지 입은 네가?”
“흐흐흐. 제가 머리는 좀 쓰는 편입지요.”
사실 신경쇠약의 레이더에 칼 휘두르면서도 1초에 세네 번씩 중앙쪽으로 고개를 휙휙 돌리는 샬롯이 포착돼서 그런 거지만.
두두두두두두!!
“와. 벌써 다잡았네.”
한바탕 전투를 마친 기사단이 말머리를 이쪽으로 돌려 복귀하는 소리가 들렸다.
저급 뮤트놈들은 이게 좋아. 앞에 놈들만 끌어들이면 뒤에 놈은 아무 생각 없이 그놈들을 따라가거든. 덕분에 랜스 차징 한방에 좌측 전선을 향하여 오던 놈들을 다 정리한 모양이다.
히히이잉!
복귀하던 기사단이 우리 앞에서 천천히 감속했다. 정오의 태양을 후광처럼 등에 진 금발의 기사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대들 중 책임자가 누구인가.”
“아, 은빛 함성 용병 조합의 마스터, 왈도프 토프릭이라고-”
“용병조합이라. 군용 갑옷을 입은 이가 없으니 이들은 전부 용병이겠군. 그럼 이들을 이 자리로 이끈 것도 그대라고 봐도 되겠지?”
토프릭은 갈등했다. 대충 봐도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한눈에 보이는 여기사. 여기서 ‘그렇다’ 라고 말하면 애늙은이 녀석이 말한 전공은 온전히 내 것이 되겠지. 탐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낄낄낄! 제가 뭐랬습니까? 사기도박이라니까? 쉽죠?]옆에서 멀뚱히 입 꾹 다물고 있는 녀석을 보자, 대답 대신 실소가 입을 비집고 나왔다.
누구는 목숨걸고 잡아야 하는 괴물을 열명 남짓한 기사들과 함께 수백마리씩 날려버리는 기사.
한순간에 전장을 읽어내고 의심하는 용병들을 설득하면서 동시에 우리쪽에 가장 이상적인 작전을 세워놓고는 쉽다고 하는 녀석.
‘하, 참나. 내가 송충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음? 뭐라고 했지?”
“아, 그냥 혼잣말입니다. 방금 물어보셨던 것 말인데, 조합장은 제가 맞지만, 작전을 세우고 저희들을 여기 세운 것은 제 옆에 있는 이 커다란 놈입니다.”
“흠…. 그래? 거기. 이름이 뭐지?”
“아? 아 예. 교숩니다. 성은 못쓰게 돼버렸고. 그냥 교수요.”
“성을 못쓰게 됐다…. 귀족 출신이군. 어쩐지. 전략에 관해 좀 알고 있는 자가 있는듯 하더니. 그대였군.”
“하, 하하….”
처억-!
여기사, 샬롯은 어색하게 웃는 교수의 목에 검을 내밀었다.
“그럼 자네가 지금 저지른 일이 뭔지도 알겠지. 따로 명령도, 지휘권도 없이 군에 소속된 이들을 움직여 작전지역을 무단 이탈했으며, 그렇게 이탈한 병사들을 이끌고 전장에서 지휘부와 별개의 전략을 펼쳐 전선에 혼란을 야기할 뻔 했다. 군법으로 대단히 중죄에 해당하지. 죄를 인정하는가?”
교수의 목에 서슬 퍼런 칼을 드리운 기사의 말에, 왈도프는 저도 모르게 앞으로 뛰쳐나갔다.
“자, 잠깐! 기사님! 뭔가 오해를 하신 게 틀림없습니다! 이 친구는 그런 의미로 움직인게-”
“조용.”
철컥.
샬롯의 말에 옆에 있던 기사 한 명이 왈도프의 앞을 가로막았다.
“성을 잃은 교수. 죄를 인정하는가?”
“….예.”
“좋다.”
샬롯은 한시가 아깝다는 듯 교수의 대답이 떨어지자 마자 칼을 높이 들어올려-
탁. 탁.
칼등으로 교수의 양어깨를 두드렸다.
“죄는 공으로 사하는 법. 왕의 기사 살롯 데 아가트의 권한으로 지금부터 너를 좌익의 군을 통솔하는 임시 천인대장으로 임명한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음. 좋아. 나릭, 아까 챙겨둔 그것을.”
샬롯이 부르자 옆에서 용병들을 가로막던 기사가 말에 매어둔 뿔피리 하나를 교수에게 던져줬다.
띠링-!
[아이템 획득 – 투란군 진군 나팔 : 각 군의 지휘관에게 제공되는 뿔나팔. 보통 출진 시에만 사용되는 물건으로, 지휘관의 권위를 상징한다. / + 금이 가고 깨져있다. 강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 + 피가 잔뜩 묻어있다. 전 주인이 곱게 반납하지 못한 것 같다.]“진군나팔이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네가 저들의 지휘관이라는 증표가 되겠지.”
“충분합니다.”
“좋다. 나와 기사단은 지금부터 방어선에 엉겨붙은 뮤트를 긁어낸다.”
“그럼 저희들은 뒤를 막고, 옆을 트겠습니다.”
물흐르듯 이어지는 대답에, 여기사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후후후. 교수…라. 기억할만한 가치는 있겠군.”
“과찬이십니다.”
“그럼. 믿고 맡기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말머리를 돌린 샬롯과 기사단은 순식간에 중앙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용병들의 고개가, 천천히 교수를 향해 돌아갔다.
“지, 지금 뭐가 어떻게 된거냐.”
“너, 방금 뭐라고…..”
“흐흐흐흐. 뭐가 어떻게 되긴요.”
아, 이제 이렇게 웃으면 안 되는데. 천인대장이라고. 현대로 치면 대위쯤 되는데 이렇게 품위 없이 웃으면 안 되는데-
“크헤헤헤! 뭐긴 뭐야! 사기도박이 아주 기가 막히게 대박 난거지! 자자,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나 혼자 나팔 들었다고 저 뒤에 멍청이들이 열심히 따라주는 게 아니거든! 같이 옆에서 분위기 좀 잡아주십쇼!”
성과에 취해있을 시간이 없다. 교수는 곧바로 샬롯에게 받은 나팔을 들고, 힘껏 불었다.
뿌우우우-!
“정려어어얼!!! 지금부터 좌익은 내가 통제한다! 전군! 가장 좌측 열의 뒤를 따라 크게 돌아 반전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중앙군과 전투 중인 뮤트새끼들의 뒤를 친다!”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내뱉은 교수의 명령에 전투가 끝나고 어정쩡하게 서 있던 좌측 전선의 병사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왈도프! 뭐해요! 빨리 맨 왼쪽에 붙지않고!”
“응?”
“원래 이런 건 앞에서 시작하면 다 따라붙게 되어있다고요! 저어기, 옆에 우리 아저씨들이랑 한 줄로 붙은 다음, 발맞춰서 천천히 크게 돌아봐요!”
“어, 어. 그래.”
왈도프는 서둘러 용병들을 데리고 교수의 말에 따라 웅성거리는 대열의 가장 왼쪽에 섰다.
“어이, 준비됐지?”
“형님, 이거 진짜 합니까?”
“잔말 말고 막내 시키는 대로 해봐. 발맞추고. 하나, 둘!”
척. 척. 척. 척
자리잡은 용병들이 발 맞춰 움직이는 소리가 병사들의 귀를 붙잡고,
“정신 차려라!!! 명령에 불복하는 이는 군법으로 다스리겠다! 너희들의 무거운 엉덩짝이 꼼지락 거리는 동안 지금도 중앙군은 괴물 새끼들에게 죽어가고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붙어!”
하나 둘, 용병들의 뒤에 붙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어설프게 발 맞추는 소리가 병사들의 소란을 앞서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