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66
Chapter. 10 납과 은화(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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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난 다음 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1층에 내려와 밥을 먹는 중이었다.
다들 멍-하니 수프나 퍼먹고 있는데 밖에서 ‘호외요! 천민 농장의 집단 탈주!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답니다! 단돈 30실링-!’ 하고 소리 높여 외치는 아이들이 지나가는 게 아닌가.
안 어울리게 다리를 떨고 있던 이안이 냉큼 그중 하나를 불렀다.
“어이, 꼬맹이! 여기 빵 한 조각 통째로 줄 테니까 와서 자세히 좀 얘기해봐!”
다다다닥-
“꼬맹이가 아니라 뉴스보이! 죄송하지만 저희 선-뉴스보이즈는 정가제로 운영 중이라 요금을 내지 않으면 소식을 전해드릴 수 없습니다 나으리! 이용을 원하시면 30실링!”
“….이거, 150실링 넘는 진짜 빵인데?”
“아, 물론 팁은 받습니다. 팁까지 얹어주시면 뉴스와 함께 최신 소문, 가십을 얹어 드리지요. 헤헤!”
이안이 빵을 흔들어 보이자 침을 꿀꺽 삼키며 손을 비비는 소년.
보아하니 일종의 조간신문인데, 종이가 비싸니 애들한테 내용을 달달 외우게 해서 저렇게 직접 정보를 전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모양이다. 역시 같은 돔이라고는 해도 거리도 있고, 몇 년 동안 단절되어 있다 보니 여러 가지 다른 문화가 생긴 모양.
지난밤의 그 끔찍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각들을 잊고 싶었던 나는 주저하지 않고 30실링 어치의 스크랩과 큼지막한 빵 한 조각을 소년의 손에 올려주었다.
돈은 주머니에 넣고, 빵은 뒤에 있던 다른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한입에 집어삼킨 소년.
우물거리는 그의 입에서 나온 소식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우음, 음, 그워이까, 음, 우음-”
“물 여기 있다.”
“—푸하아! 감사합니다 나으리! 빵은 뺏기기 전에 밥통에 보관하는 게 제일이죠. 에에- 그러니까, 어젯밤에 돔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던 것은 다들 아시죠?”
“모를 리가. 시체도 벌떡 일어날 만큼 거슬리는 소리였는데.”
“정확한 표현이십니다 커다란 나으리. 밤새 오줌을 지리지 않은 아이가 없어서 기자님한테 많이 혼났지요. 아무튼 그 무시무시한 밤이 지나가고 난 뒤, 확인해보니 농장의 천민들은 물론 그들을 감시하는 감시탑의 저격수들, 관리 인부들까지 싸그리 없어진 게 아닙니까? 주변에는 커다란 괴물이 남긴 것 같은 자국도 있고, 쥐떼 같은 게 지나간 흔적도 있고, 아, 물론 사람 발자국이 대부분이었지만요.”
그렇게 말한 소년은 품에서 누군가 급하게 그린듯한 스캐치 몇 장을 꺼냈다. 부서진 쉘터, 난잡하게 찍혀있는 신발 자국, 온통 짓밟힌 식물들과 깨진 온실 모듈, 그리고 커다란 발톱 자국.
농장 구역의 스캐치를 본 일행은 눈빛을 교환했다.
놈이다.
40구역 전체를 구조신호로 이루어진 공동묘지로 만든 장본인.
밤의 소동에 그 ‘발톱 변종’도 함께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난투가 벌어진 것 같기는 한데…. 피해자가 그렇게 많은 것치고는 핏자국도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요. 아침에 길길이 날뛰던 감찰부의 발표로는 ‘돔의 자생력을 말살시키려는 외부 세력의 테러이며, 연이어 이어지는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특별 자경대]를 조직하고 이를 위한 [자발적 기부]를 받겠다.’ 라고 하더라고요. 아, 외부에서 온 캐러밴이면 잘 모를 텐데, 감찰부에서 말하는 [자발적 기부]라는 것은 내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돔에서 추방되는 것을 선택한 것으로 간주하는 걸 말합니다. 뒤지기 싫으면 내놓으라는 거죠. 양아치가 따로 없다니깐요. 아직 테러범의 정체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게 없답니다. 신기하죠? 그렇게 많은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데 누구 하나 흉수를 본 사람이 없다니.”
여기까지가 뉴-스. 라고 말한 소년은, 일행의 테이블에 조금 더 다가오더니 주변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낮은 소리로 말했다.
“여기서부턴 팁에 대한 서비습니다. 테러범의 정체는 모르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대충 알아냈거든요.”
“알아냈다고? 너희가?”
“음, 불운한 사고 덕분이긴 했습니다만. 밤새 잠을 못 자서 화가 난 기자님이 ‘나가서 어떤 새끼가 지랄하는지 알아 와!’ 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저희 보이들이 몇 명 도시 실드 밖으로 차출되었습니다.”
목소리를 깔며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소년. 듣는 사람의 관심을 끄는 방법을 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별안간 이안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년의 말을 끊었다.
“….꼬맹이. 내가 알기로는 38구역 도시 실드는 밀도를 최대로 높여놔서 물리, 화학적 출입을 완전히 막아낼 텐데. 정화설비가 설치된 정문 말고는 출입이 불가능하잖아. 돔은 야간에 민간인의 외부 출입을 금지하는데 어떻게 나갔다는 거지? 방사능은 또 어쩌고.”
“에…. 거기까지 들으시게요? 그건 좀 많이 비싼 건데….”
이안의 의심에 대답 대신 손을 삭삭 비비며 눈치를 보는 소년. 교수가 말없이 빵 한덩이를 더 던져주자 빵을 마구 뭉쳐서 더러운 조끼 안에 쑤셔 넣은 소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이 참. 이거 진짜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어디 가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빵 도로 내놓을래?”
“옙! 개구멍이 있습니다.”
“개구멍?”
“원리는 정말 모르니까 묻지 마세요. 밀수꾼들이 작은 실드를 덕지덕지 겹쳐서 만든 구멍인데, 그 밀수꾼들이 잡혀가는 바람에 통행료도 안 내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요. 아무튼 방사능 차단용 액체…. 아, 쥐달팽이나 구멍파기 바퀴벌레의 체액을 말합니다. 더럽고 먼지투성이가 되지만 방사능에는 직빵이죠. 그걸 바르고 나가서….”
“거 감질나서 죽겠네! 그래서, 나갔는데!”
“아이구 깜짝이야! 사실, 나가질 못했습니다. 우리가 망보는 동안 개구멍의 소형 실드를 열었던 녀석이…. 그대로 쓰러져버렸거든요.”
딱 두 발짝. 소년은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두 걸음 가고 쓰러졌습니다. 당황한 보이 한 명이 그쪽으로 달려가다 또 쓰러지고. 뭔가 잘못된 것을 눈치챈 큰 형이 그 둘을 버려둔 채 개구멍을 닫고 냅다 반대편으로 뛰었죠. 멀리 떨어진 건물 위에서 관찰했습니다. 막 몸을 떨더라고요. 게거품을 물고, 소리를 지르고, 손톱이 죄다 빠져나가도록 벽을 긁어대고…. 그러다가, 변종이 되었습니다. 구멍을 넘어간 녀석은 그 너머로 비칠비칠 걸어갔고, 개구멍을 닫는 바람에 안쪽에 쓰러진 녀석은 거리를 뛰어다니다 누군가가 쏜 총에 맞아 죽었고. 이게 답니다. 선-뉴스보이즈의 기자님들은 뭔가 지도층에서 실험을 하다 실패했거나, 최근 사이가 나빠진 행정부가 감찰부의 힘을 줄이기 위해 수작을 부린 게 아닌가, 하더라구요. 여기까지, 끝! 제가 아는 건 이게 답니다. 다른 소식을 듣고 싶으시면, 저랑 다른 뉴스를 외운 보이를 찾아 요금을 지불하세요!”
말이 끝나고 어설픈 경례를 올려 보인 소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잠시 뒷골목 너머에서 ‘호외요~’ 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년이 사라지고 다시 침묵에 빠진 일행들.
“-하아아아아아아아.”
어렴풋이 드러나는 정황을 보고 있자니,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누가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환상적인 조합이다.
아마도- 공간의 제약 없이 어디든 갈 수 있는 W.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넓은 범위의 사람들을 강제로 변종화시켜버리는 ‘상자’
게임으로 치면 쿨타임 없이 이동기와 궁극기를 번갈아가며 쓰는 사기캐가 아닌가? 도대체 저걸 무슨 수로 막아야 할지 감도 안 잡혔다.
“….솔직히 쫄린다. 씨발. 뭐, 빌딩만 한 괴물이라면 총이든 폭탄이든 전기톱이든 들어보겠는데, 저 허깨비 같은 새끼는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든단 말이지.”
직간접적으로 죽인 사람이 네자리가 넘는 렙터의 카리스마, 이안 데스몬트님이 쫄았고.
“부끄러워하지마, 죠. 나도 어제 살짝 지렸어.”
과거 47구역에서 칼 한 자루만 들고 골목에 들어가 집행부 요원 1개 소대를 썰어버린 벡스님이 오줌을 지렸으며,
“….작전에 대해 재고를 해야하는 게 아닐까? 소집단이 할 수 있는 일에는 명확히 한계가 있어!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겠어!”
문무겸비의 엘리트집단 감찰부의 베테랑 요원 에젤 레이든씨가 패닉에 빠졌다.
그야말로 괴물. 추정되는 인원은 텔레포트 + 광역 오염장비의 사기조합 W와 커다란 발톱을 가진 3형 변종 동료뿐. 예술가 연합에서 온 동료가 더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순식간에 몇백 명은 변종으로 만들었으니 그중에서 적응자가 된 동료가 추가됐을 수도 있었다.
며칠간 이어진 전투로 인한 피로. 휴식할 곳이 적진이 되는 바람에 풀 수 없었던 긴장. 항거 불가능한 적의 출현. 어지럽다.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어 뭘 어떻게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그럼, 가던가.]그때, 흐리멍텅한 머릿속에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판이네? 오랜만에 나왔더니 웬 쌓인 정보가 이렇게나 많은지, 어우, 지저분해라. 정리 좀 해, 껍데기. 답지 않게 패닉에 빠져서는.]한때는 증오하던, 이제는 반가워 마지않은 목소리.
‘하이드!’
[얼씨구? 반가워하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자리를 좀 비울 걸 그랬군.]반가움과 동시에, W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난 달라. 내 왼팔은, 너희들과 다른 방식으로….’
‘자세한 사항은, 안에 계신 그분에게 물어보시길.’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의식을 공유하는 하이드에게는 충분히 전해졌으니까.
머릿속에서 발을 구르며 으르렁거리는 녀석의 모습이 그려졌다.
[허여멀건한 녀석. 다음에 만날 때는 사생활 침해라는 것에 대해서 좀 알려줘야겠군.]‘그럼, 놈의 말이 사실이라는 얘기야? 네가 그 변종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고 있다고?’
[….나도 몰라. 예전부터 말했잖아. 자꾸 졸린다고. 처음에는 그게 내가 담당하는 육체가 많아져서 그런 줄 알았어. 신생아가 잠을 많이 자는 것처럼, 의식 속 기억 뭉치가 아닌 실제 감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내 의식이 피로감을 느끼는 줄 알았지.]하이드가 왼손으로 테이블 위의 빵을 잡더니, 손끝으로 잘게 쪼개기 시작했다. 굉장히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예의 그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뭔가 그러모으는 시늉을 하더니, 털썩 드러눕는 하이드.
[뭐, 상의를 하자면 해줄 수도 있지. 하지만 지금 직면한 문제는 우리 문제 하나가 아닐 텐데?]‘그렇….지.’
[그럼 내가 좀 치워줄 테니까 그 잘난 머리를 굴려서 한번 답을 찾아봐. 이상하게 어젯밤 이후로 바이러스가 날뛰는 게 좀 잠잠해진 것 같으니까. 나도 어드바이스 정도는 해 주지.]스르륵, 스륵-
머릿속에 어지럽게 나열되어있던 정보들이 하이드의 손에 차곡차곡 정리되기 시작했다. 살짝 생각을 기울이면 하이라이트 되며, 그물처럼 주르륵 딸려오는 연관 기억들. 그 감각이 몹시도 익숙해서 생소했다.
‘….정신 쇠약의 보너스 효과?’
[배웠으면 써먹어야지. 난 잊어버리지 않잖아. 속에서 너 하는 거 몇 번 돌려보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따라 하게 되더라고. 편리하던데? 어드바이스라고 해봤자 내가 잔대가리로 널 어떻게 따라가냐. 이 정도가 끝이지. 나름 최선이야. 실망하면 슬퍼할 거라고.]실망이라니, 그럴 리가.
안 그래도 바닥까지 떨어진 컨디션 때문에 녹이라도 슨 것처럼 머리가 잘 안 돌아가고 있었는데.
하이드가 정리해준 깔끔한 의식은 그런 피곤한 머리로도 충분히 유연한 사고를 가능하게 할 만큼 훌륭했다.
우선 가장 중요한 목표.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흰색으로 환하게 빛나는 키워드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총장의 의뢰], [캐러밴-수입], [세계의 위기], [다나 엘리샤 히아신스 – 스피드 웨건]이렇게 보니까 군살이 붙은 정보가 참 많기도 했다.
‘다 필요 없는 정보지.’
총장의 의뢰? 뒤질 판인데 의뢰 같은 걸 따질 시간이 있나. 돈? 다 노잣돈 만들기 싫으면 신경도 쓸 필요 없다. 세계가 뭐? 몰라 시발. 이것도 지우고. 이건 왜 목표 항목에 들어있어?
전부 다 직직 그어버렸다. 이상하게 지워지지 않는 [다나]의 항목은 어둠 속에서 나타난 하이드의 손이 가져갔다.
‘나 없는 동안 재밌는 일이 있었네.’
[쓰읍- 집중 안 된다.]‘아니 뭐. 그냥 알아두라고. 여긴 네 머릿속이야. 거짓말 같은 거 못한단 말이지. 스피드-웨건. 지금까지 신세를 졌던 것 이상으로 신세 지게 생겼군.’
후우우. 집중하자 집중. 하이드가 잘 정리된 정보 중 제일 눈에 띄는 곳에 다나의 이름을 걸어놓고 하얀색 별표시 까지 달아놓는 게 보였지만,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무시하는 데 성공했다.
‘이곳에서는 거짓말을 못한다.’
그 말을 떠올리니 최종 목표가 너무나도 수월하게 떠올랐다. 당장 목표 정리할 때만 해도 제일 우선시한 과제가 있었잖아.
스르륵-
[생존]정보의 가장 깊숙한 밑바닥에서 궁서체로 쓰인 글자가 떠올랐다. 결국, 돌고 돌아 여기로군.
생존. 궁극적으로 우리 캐러밴이 살아남는 방법.
도주? 당장은 살 수 있겠지. 여기서 빠져나가 47구역으로 도망친다면 살 수는 있을 것이다. 몇 달, 어쩌면 몇 년 정도 더.
스르륵-
[정확히는 늘리고, 보호하고 싶은 겁니다.]어젯밤 W와 나눈 이야기가 떠올랐다.
‘놈들의 목표는 3형 변종, 적응자를 늘리고, 동료로 끌어모으는 것. 그 과정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의 숫자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인간입니까? 아니면 변종입니까.] [….그 침묵을 잘 기억해두시길.]정정. 완전히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군.
어쨌든 하룻밤 사이에 38구역 돔의 외곽, 농장지구 사람 수백 명을 학살한 것으로 보아 망설임이 없다는 것은 충분히 증명됐다. 아마 쓸 수 있다면 온 동네를 번쩍번쩍 날아다니며 그 살인 쥬크박스를 마구 돌려대겠지.
그러지 않는 이유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스르륵-
[구조신호 기록. 좌표…. 확인지점….]놈들은 처음부터 대규모 학살을 자행하지 않았다. 40구역 외곽, 2, 3인 단위 소규모 생존자들. 인근에 대형 스캐빈저가 있음에도 불과하고 소규모 무리를 상대로 반복적인 실험을 자행했다.
‘….실험?’
스르륵-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신선한 정보가 되어 떠올랐다. 테스트. 만약, 이게 테스트라면?
‘행정부는 분명 [실현 불가능한 미완의 기술]이라 표현.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사용이 불가능. 기술을 완성시킨 누군가가 있다. 40구역 인근에서의 학살과 어젯밤의 학살. 그 사이에 분명히 긴 텀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한번 가동 이후 정비 소요가 상당한 것으로 보이고.’
스르륵-
[관리자]‘변종화 장치를 완성하고, 유지, 보수하는 기술자가 있다.’
‘시간을 주면 결국 완성된 변종화 장치를 들고 W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게 되겠지. 나한테도 찾아온다. 녀석은 나의 [가치]에 매우 관심을 보였으니까. 이미 팔이 변한 나는 적응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도 하고.’
‘도망쳐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 상자를 파괴, 혹은 그 관리자로 추정되는 놈을 찾아서 제거해야 해.’
차곡차곡 쌓인 생각들이 정리되며, 흐리멍텅하던 목표란에 선명한 글씨가 떠오른다.
목표 : [상자, 관리자 제거를 통한 지속 가능한 생존]
명확한 목표가 생기니 용기가 솟아나는 게 느껴졌다. 무한텔레포트 신비주의 괴물보다는 이쪽이 현실감 있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도 하고.
목표가 생기니 할 일도 금방 떠올랐다.
스륵-
+ 타임어택. 늦으면 완성된다. 시간을 주면 적이 더 늘어남. 1초라도 더 빨리 습격하는 게 최선.
+ 소리, 주파수, 파장 비스무리 한 것을 이용함. 실드를 통해 영향력을 막을 수 있다.
+ 다나의 쉘터는 기체가 출입 가능한 곳만 실드로 막혀있었다. 인근에서 상자의 연주가 시작되면, 콘크리트, 납 따위로 막힌 부분을 통해 영향력이 안으로 퍼질 수도-
쫘아아악-!
‘야, 하이드! 이거 고장 났어! 자꾸 이상한 사족이 붙는다니까!’
[흠흠흠~♪ 하늘은 속여도 스스로는 속일 수 없는 법이라네~]‘이, 이이익!’
얼굴이 새빨개진 교수는 도망치듯 의식의 표면으로 돌아갔다. 뭘 해야 할지 떠올렸으니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려는 생각이겠지.
[낄낄낄낄. 진짜 볼수록 재밌다니까. 내가 껍데기 하난 잘 골랐….응?]그 모습을 히죽거리며 관찰하던 하이드의 눈에 새로운 파생 정보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생존 – 하이드] [상자의 영향력이 하이드의 졸음을 억제한 것을 확인. 만약 그 효과를 잘 이용한다면 하이드의 의식에 무리가 가는 것을 막고, 변종화를 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상자를 정말 파괴하는 것만이….] [어이쿠!]쫘아아악!
황급히 달려가 새로 생성되는 정보를 뜯어낸 하이드. 새로 올라오는 활자들까지 깔끔하게 떼어낸 그는 두 손으로 뜯어낸 정보를 마구 뭉쳐서 공처럼 만든 다음, ‘무의식’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쓰레기통에 멋지게 던져넣었다.
[잘 가고 있는 차에 쓸데없이 브레이크를 밟을 필요는 없지.]고개를 들어보니 교수가 일행에게 열성적으로 작전을 설명하는 것이 보였다.
[….기특하긴.]털썩!
별로 만든 모빌처럼 어두운 공간에 매달려 반짝이는 정보들을 보며, 하이드는 소파에 몸을 던졌다.
스르륵-
[아군. 무조건 찾아야 함.] [박스를 부수면 빡친 W한테 뒤질 수도 있음] [47구역에 지원요청. 감찰부가 점령한 라디오타워?] [기술자. 민간 말고 진짜.] [….정말. 잠시도 생각을 쉬지 않는다니까.]느긋하게 드러누운 하이드는 떠오르는 생각들에 깔끔하게 태그를 달아 하나둘 의식의 한켠에 매달기 시작했다. 역시 의식을 유영하며 기억을 뒤지는 것도 좋지만, 라이브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천생 방송인이야, 방송인.]검은 공간 속 하이드의 키득거리는 웃음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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