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end of the world, Cry Clear RAW novel - Chapter 168
Chapter. 10 납과 은화(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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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에젤은 자신이 황무지 생존자 중 대단히 안정적이고, 생존력이 높은 편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사는 곳? 돔이다. 그것도 가장 생존에 적합하다는 40번대 구역 돔의 관계자용 관사. 갑자기 습격당하거나 암살당할 위험도 없다.
소속집단? 돔. 그중에서도 최근 끝내주게 이름을 날리고 있는 47구역 감찰부다.
개인능력? 감찰부 요원으로서 사격 및 근접 전투에 있어 전문가에 가까운 실력을 쌓았으며 탐색, 추적, 은신에 대해서도 보통 스캐빈저 이상으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베테랑. 생존전문가 그 자체! 이대로만 산다면 황무지 평균 수명인 35세까지는 걱정할 필요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람 가는 거 한순간이구나….’
자신을 겨눈 다섯 개의 검은 총구를 보며 에젤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작정하고 죽이겠다면 5분이면 처리할 이런 잡병들 앞에, 비무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의 처지가 너무 서글펐다.
“행정부 소속. 연구원 앙겔 리든이라…. 그래. 행정부에서 자진해서 우릴 돕겠다고 했다, 이건가?”
라디오 타워 앞, 외부 보안 출입구.
구시대 건물이라 그런가, 대충 봐서는 용도도 모를 장치들이 잔뜩 깔린 보안문 앞에서 에젤은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예, 예! 그렇습니다! 그…. 저희 행정부에서 여러 가지로 얘기가 많았는데, 따지고 보면 연구비를 확보할 수 있게 해준 것도 감찰부고, 또 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도시를 총괄하는 일에 어울리기나 하느냐는 말도 있었고…. 저희끼리도 다툼이 좀 있었지요. 헤헤!”
“의견충돌이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 갑자기 왜!”
“그, 그건!”
에젤은 필사적으로 기억을 뒤졌다. 품 안에 박교수가 써준 변명 리스트가 있긴 했는데 바로 앞에 총구를 들이밀고 있는 상황에 그걸 어떻게 펼쳐본단 말인가!
[뭐…. 달라니까 주긴 하는데. 그냥 대충 임기응변으로 넘겨. 적당히 맞장구쳐주고. 그리 어렵지 않을걸?]에젤이 간절하게 부탁한 끝에 한 손으로 삽탄을 하며 대충 휘갈겨 써준 메모. 작전에 투입되기 전에 달달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이마에 차가운 총구가 닿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가 되어버렸다.
‘안 어렵기는 개뿔이! 말 한마디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데 어떻게 머리를 굴려!!!’
꾸우욱-
이마에 닿은 총구가 더욱 강하게 눌리면서 온 의식이 그쪽에 사로잡혔다. 말을 해야 해. 뭔가, 뭐라도 좋으니 변명을 해야 된다고! 입을 열어, 혀를 움직여! 젠장! 저 새끼 인상 쓰고 있잖아! 빨리!!!
점점 찌푸려지는 보초의 인상을 보며 에젤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 죽는다는 생각만 들었고, 오기 전에 손바닥 피부 아래에 심어둔 핀 신호기를 아무리 눌러도 교수 일행이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덜덜덜, 덜덜덜덜!
점점 험악해지는 분위기에 근처에 앉아있던 다른 보초들도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수상한데? 어이, 갑자기 여기 온 이유가 뭐냐니까?”
“그, 그으으, 음….어….”
혀가 굳어서 말이 안 나온다. 소총을 잡은 보초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귓가에 끼리릭- 하고 안전장치를 해제하는 소리가 들린다. 훈련받은 몸이 당장 뛰어들어 보초를 제압하라고 아우성이었다.
‘달려들어? 총성이 울리면 즉시 전면전. 작전 실패. 죽는다. 이렇게 허망하게? 총구를 쳐올리고 목젖을 가격해. 보안 설비가 가동되겠지. 작전은 실패. 저격수는 왜 놈을 쏘지 않지? 아직 가능성이 있나? 대답? 대답을 하면! 대답을 하면….!’
꽈아아악!
“주, 죽을 것! 같아서! 죽어! 죽기 싫어서 왔습니다!”
보초의 엄지가 총기의 안전장치를 내리는 순간, 속에서 마구 소용돌이치던 단어가 발작적으로 튀어나왔다.
‘되, 된다! 말이 나와! 말문이 트였어!’
그냥 죽기 싫다고 한 것뿐이지만 어쨌든 굳어있던 혀가 풀렸다는 게 중요했다.
“하, 거 웃기는 놈이네. 야, 누가 죽인대? 왜 왔는지 말하라니까?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가 뭐냐고, 이유가!”
보초의 질문에 에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를 물었을 때.] 종이에 적혀있던 상황. 한치의 틀림도 없이 동일한 그 문장에 30분 전 교수의 잔소리가 떠올랐다.
‘어휴. 이런 놈한테 베테랑이라고 은 뱃지를 주다니. 잘 들어.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한 번쯤 찔러볼 거야. 나름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항복이라니. 수상하잖아? 그럴 땐, 최대한 겁에 질린, 절박한 표정으로…’
와락!
“으, 으왓!”
“집행부! 집행부가 아주 대놓고 우릴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놈들이 총을 들고, 정의를 위한 소거니, 썩은 살점이니 하면서 우릴 다 죽이고 권력을 잡으려고 하고 있다구요!! 살고 싶습니다! 난, 살고 싶어!”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것 좀 놔! 이 자식, 연구원이라는 놈이 무슨 힘이…. 지미! 와서 이 녀석 좀 떼어줘!”
갑자기 눈물을 뿌리며 달려드는 에젤에 당황한 보초. 솔직히 달려들 때 바로 쏴버릴 줄 알고 사선을 피하며 태클하듯 들어갔는데,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진짜 쏠 생각은 없고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모양이었다.
당황한 보초에게서 에젤을 난폭하게 떼어내는 다른 보초들. 실실 웃는 그들의 표정을 보니 첫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적의 눈을 속이려거든 최대한 약하고 못나 보여야 한다.]감찰 고시에 응시할 때 골백번도 넘게 읽었던 문장.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며 소리칠 정도로 달달 외웠던 ‘첩보 12-3 단원’의 내용이 떠오르자, 에젤은 내동댕이쳐진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진심이 담긴 절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행정부는 감찰부를 돕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온 겁니다! 뭐, 민간 기술자? 저를 포함한 연구원 넷은 그런 머저리 깡통들이랑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술자입니다! 여, 여기! 제 뒤에 있는 올리는 대전쟁 당시 첨단 장비의 정비를 맡았던 사람이고요, 케니스! 이 친구는 무려 나사에서 일하던 엔지니업니다! 장담하는데, 저희를 들여보내 주시면 하루 만에 뭐가 문제인지 싹 다 확인하고 고칠 수 있습니다!”
덜덜덜덜-
흥분과 긴장으로 손끝이 떨렸다. 이게 맞을까? 정말 이 어설픈 연기에 놈들이 속을까? 차라리 놈들이 방심한 지금, 앞에 있는 보초의 경동맥을 긋고 놈의 총을 빼앗아 난사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내 간곡한 외침을 듣고 저들끼리 낄낄거리는 보초들을 그냥 두고 보기가 힘들었다. 지금이라면 안전하게 입구를 확보할 수 있는데. 조용히 들어가야 한다는 제약만 아니면, 이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가 다시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리면….!
찌릿, 찌릿-
그때, 손바닥 안쪽의 핀 신호기에서 따끔한 감각이 느껴졌다. 모스 부호로 이루어진 짧은 단어.
[GOOD]. 잘하고 있다.‘….으아으윽!’
그 짧은 단어. 아군이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 하나에 의지해 에젤은 가까스로 튀어나가려던 다리를 억누를 수 있었다.
등을 보이던 보초들이 다시 에젤과 연구원들을 향해 돌아섰다. 기회는 사라졌다. 이제 판결만 있을 뿐.
“어이. 거기 먹물 넷.”
“예, 예?”
철그럭!
보초는 에젤 앞에 뭔가를 던졌다. 수갑이었다.
“서로 그거 채워주고, 따라와. 일단 부장님이 한번 보셔야 할 것 같으니까.”
히죽 웃으며, 총구로 에젤의 정수리를 탁,탁 때리는 보초.
“서로 아군 하자고 찾아왔다면서. 뭐가 그렇게 무섭냐? 응? 먹물이라 총은 처음 보나?”
“하, 하하…. 너, 너무 긴장해서 그랬습니다. 죽일까 봐, 못 참고 죽여버릴까 봐….”
“응?”
“주, 죽을까 봐 무서워서 그랬다구요! 하, 하하! 하하하!”
“….이상한 녀석.”
횡설수설하는 에젤과 대화하던 보초는 고개를 저으며 라디오 타워 정문으로 향했다. 전력으로 달려들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고 있던 에젤도 비틀거리며 그 뒤를 따라나섰다.
딸깍, 딸깍딸깍, 딸깍, 딸깍!
[씨발! 씨발! 도움! 씨발! 지연된!]수갑을 찬 그의 손은 쉴 새 없이 신호기로 욕설을 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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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삭!
“우음, 쩝. 잘하네.”
“그치? 호모 저놈 딱 봐도 얍실-하니 간사하게 생긴 게, 저런 거 잘하게 생겼다 싶었어.”
“그러게. 잘 참네, 엔젤. 초짜가 저 상황에서 공격성을 억누르다니. 쉽지 않았을 텐데.”
“내 족집게 강의가 잘 먹혔다는 소리겠지. 벡스, 물 좀.”
“어어, 점마 무릎 꿇었다. 이야, 본격적인데?”
에젤이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보초들 앞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갈 무렵.
교수 일행은 그리 멀지 않은 옥상에서 망원경으로 에젤을 관찰하고 있었다.
꿀꺽꿀꺽-
“끄어억! 어우, 목 막혀 뒤지는 줄 알았네.”
“그렇게 말하면서 또 먹냐?”
“의사 쌤들이 그러더라고. 밥 제대로 안 챙겨먹으면서 왼손 막 쓰면 진짜 말라 죽을 수도 있다고. 나름 전투에 앞서 장비에 연료 채우는 거란 말이야.”
“으으, 괴물이 따로 없군.”
“이게.”
와삭!
힘껏 던진 칼로리 바는 이안의 얼굴을 때리는 대신 놈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재주도 좋은 녀석.
“요즘 대세라잖아. 이안 네 녀석 턱도 그렇고, 렙터 놈들도 막 팔다리 갈아 끼우고 다니는데 나도 유행을 따르는 거지 뭐.”
“크흐흐흐. 그래도 내 턱은 네놈 같은 기능은 없는데?”
“왜 없어. 이빨 닦을 때 반만 닦아도 되잖아.”
이렇게 실없는 농담 따먹기나 하며 옥상에서 대기하길 15분.
그동안 까먹은 칼로리 바가 벌써 20개다. 이렇게 처먹어도 좀 더부룩한 것을 빼면 배가 부른 느낌이 없는 걸 보면 확실히 몸이 변하긴 변한 모양.
[긍정적으로 보자고. 힘을 쓰는데 칼로리가 필요하다는 건 우리 몸이 아직 그 W라는 놈처럼 물리 법칙에서 벗어날 정도로 변한 게 아니라는 뜻이니까.]‘불편한 만큼 인간에 더 가깝다는 뜻인가?’
[그렇지.]까드드득.
하이드의 말에 커다란 왼손을 쥐어보았다. 딱히 뭔가를 쥐지 않아도 느껴지는 거대한 악력과, 단단한 갑피의 질감.
이 손이 생기고도 제법 시간이 흘렀고, 이질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지도 꽤 됐다. 어떻게 해야 전투에 유용할지도 나름 생각해뒀고.
이번 적, 예술가 연합 앞에서는 우리가 절대적 약자인 만큼 가진 걸 모두 사용할 생각이었고, 이 왼팔 또한 그 안에 포함되었다.
딸깍. 딸깍딸깍.
“음? 벡스. 뭐해?”
“아니, 그냥. 엔젤이 많이 긴장한 것 같아서 힘내라고 메세지 좀 보냈지.”
“뭘 저 정도를 가지고. 대단한 놈도 아니고, 그냥 보초 다섯 명 속여 넘기는 거잖아?”
그렇게 말하며 망원경을 들었는데, 식은땀을 뚝뚝 흘리면서 앞꿈치로 땅을 꽉꽉 누르는 게 한눈에 봐도 전쟁터에서 총기 난사하며 돌격하기 직전의 병사처럼 보였다.
“아, 맞다.”
생각해보니 에젤은 이런 종류의 경험은 처음이었다. 자세한 과거는 모르지만 전쟁 때 가족과 함께 벙커에 들어갔으며, 어쩌다 고아가 되어서 돔의 고아원에 있었고, 우리랑 만나기 얼마 전에야 감찰부 요원이 된 햇병아리. 아니지, 렙터랑 한판 뜰 때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버텼으니까, 중닭 정도 되려나?
“음…. 비숙련병에게는 좀 힘든 임무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걸 지금 생각하냐, 이 나쁜 자식아.”
“그래도 쟤밖에 들어갈 사람이 없었잖아? 내가 이 팔로 숨어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너나 이안도 그렇고.”
괴물 팔. 강철턱 근육질 덩치. 작은 키 늙은 얼굴.
이마에 [거동이 수상한 자]라고 써 붙여놓고 다녀도 우리보단 덜 수상할 것이다.
강행돌파를 한다고 해도 저 구시대 사령부나 다름없었던 라디오 타워에 어떤 기괴망측한 방어 설비가 있을지 모르니.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었다는 말씀.
딸깍. 딸깍딸깍. 딸깍.
[씨발! 씨발! 도움! 씨발! 지연된!]“오. 들어간다. 슬슬 우리도 따라붙자고. 예정대로 움직인다. 침투 위치는 다 숙지해뒀지? 에젤이 배기 시스템에 접근하는 순간, 각자 위치에서 지역 확보하면서 들어가는 거야. 오케이?”
“도와달라는데 그냥 원래대로 가?”
“쟤 아까부터 저러더라고. 습관이야, 습관. 내버려 두면 잘하겠지.”
와삭!
내가 마지막 칼로리 바를 입에 털어 넣는 것을 신호로, 일행은 각자 장비와 가방을 챙기고 신속하게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 쪽 준비는 끝났다. 이젠, 에젤이 잘해주길 기대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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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 뚜벅. 뚜벅. 뚜벅.
금속판으로 온통 보강된 라디오 타워 내부의 복도. 전쟁 사령부로 쓰였다고 하더니, 과연 웬만한 공격으로는 끄떡도 안 할 것같이 생겼다.
복도를 지나는 내내, 보초들은 에젤을 포함한 연구원 일행에게 말을 걸어왔다.
“뭐, 안에 들어왔으니 하는 말인데, 잘 왔어. 오래된 시설이라 그런가. 맛이 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거든?”
“흐흐흐. 그럼! 우린 꽉 막힌 집행부 머저리들이랑은 다르지. 능력이 있으면 대우를 해준다고. 13번 통로 알지? 거기 하수도가 아주 제대로 막혔는데….”
돔의 동쪽 구역이 대부분 날아가며 기반을 아예 이쪽으로 옮겨버렸다는 얘기. 시설이 잔뜩 고장 나서 불편하다는 얘기. 앞으로 자기들한테 잘하면 이곳 생활이 편해질 거라는 얘기….
나름 긴장을 풀어준다고 하는 얘기 같았는데, 에젤과 연구원들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기잉- 위이잉-
왜냐하면, 그들의 머리 위에 매우 미래적인, 그러면서도 뭔가 어설픈 보안 포탑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음? 왜.”
“저 포탑. 안전한 거 맞습니까?”
포탑이 이쪽을 향해 움직일 때마다 움찔거리던 연구원 일행은 최대한 몸을 숙인 채 에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보초는, 이제서야 왜 연구원들이 이렇게 움직이는지 알았다는 듯 히죽거렸다.
“아, 저것 때문에 그랬구나? 나 참. 당연히 안전하지!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자, 봐라!”
“뭐, 뭘 하려는…. 히이이익!”
휘익! 휘익!
기잉- 기잉-
안전을 확인시켜 주겠다는 듯 총을 머리 위로 흔들어 보이는 보초와, 기민하게 그것을 따라 움직이는 포탑.
“와하하하! 쫄기는. 걱정할 것 없어, 먹물놈들아! 우리 총장님이 이곳을 점령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보안 시스템을 확보하는 거였으니까. 민간 기술자들이 죄다 달라붙어서 하루만에 해결했다고 하더라고. 애초에 지금 우릴 쏘지 않는 게 안전하다는 증거 아니겠어?”
‘아니야! 아니라고 이 멍청한 새끼야! 그러니까 제발 그 총 좀 그만 흔들어! 그러다 다 죽어 병신아!!!’
에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보초가 총을 흔들어댈 때마다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빛을 반사하지 않는 반광성 렌즈. 세 겹으로 접히는 포탑. 총구 위에 붙은 벽과 같은 소재의 철판까지.
에젤이 본 게 맞다면 저건 최신형 3세대 보안 포탑이었다. 평소에는 벽 안에 숨어있다가, 적을 발견하면 튀어나와 마구 갈겨대는 그런 물건.
그게 밖으로 나와 있고, 심지어 그냥 좌우로 왕복하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기민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적으로도, 아군으로도 인식하지 않고 경계모드로 설정되어있는 거야! 누가 저따위로 고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율 반응회로에 입력된 적대 행위 하나라도 하는 순간….’
끔찍한 미래가 보였다. 심지어 건물에 연계된 보안 시설. 하나의 보안 터렛의 적대심사에 걸리면 모든 터렛이 그 개체를 적대한다.
‘여긴 이미 빌어먹을 킬링필드야. 이 멍청한 놈들이, 진짜 뭣도 모르고 시설을 막 쓰고 있다고!’
에젤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엎드린 연구원들의 입에서 가족들의 이름이나 예수, 부처 같은 이름이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기술자들도 저 터렛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뜻.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어흐흐흑! 우린 죽을 거야. 지원하는 게 아니었어! 에이미, 아빠가, 아빠가 이번 생일에는….”
“어이, 빨리 안 오고 뭐 해!”
“다, 다리가 풀려서! 금방 가겠습니다!”
절대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수상하게 보이면 그건 그것대로 죽을 길이니.
‘이런 자동화 보안시설은 해킹에 대비해서 지휘실 같은 중요시설은 비워놨다고 들었어. 거기까지만 가자, 제발! 거기까지만 무사히 가자! 하느님!’
딸깍, 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딸깍!
[도움! 위험! 도움! 위험! 보안시설! 미쳤음! 도움! 도움!]에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연구원들을 독려해 엉금엉금 움직이며 미친 듯이 손바닥을 누르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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